퀵바

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6.15 18:10
연재수 :
288 회
조회수 :
1,507,303
추천수 :
30,253
글자수 :
2,199,617

작성
24.02.07 18:10
조회
2,494
추천
69
글자
17쪽

성장(9)

DUMMY

독과 암기의 합일. 당가무공의 이상적인 정점을 입에 담는다.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백연은 천독의 말을 떠올렸다.


당소하가 진정으로 가주의 위에 오르고자 한다면, 당가주를 넘고, 가문의 무학을 넘어서야 할 것이라고 했던가.


‘이제 이해가 된다.’


당가주 천독은 만독을 넘어선 초월적인 독공의 정점에 이르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만천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는 그의 후계가 자신이 닿지 못한 영역에 이르기를 원하는 것인가.


‘터무니없는.’


백연이 생각했다.


말도 안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간에서 말하는 당가주는 젊은 나이에 이미 쟁쟁한 무림의 거목들에 밀리지 않는 무위를 이루어낸 괴물이라 했다. 당시 이미 초로(初老)에 접어든 서제동왕, 그리고 신승과 선극의 이름과 비슷한 선상에 올라선 두 신진 괴물중에 하나였다고.


검신 서일화와 더불어 가장 독보적으로 빠른 성취를 엮어낸 무인이다. 희대의 천재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독의 등장 이후로 사천당가의 위세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듯이 올라갔다고 했다.


그런 자가 자신의 후인에게도 똑같은 재능을 요구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나아간 것을 요구한다.


그 스스로도 이뤄내지 못한 정점에 닿기를 원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당가주는 만독 때문에 만천을 넘어서지 못한거야? 아니면.”

“모른다. 가주께서 이룬 경지에 대해서는 나도 막연히 짐작할 뿐이야. 만독을 넘어선 방식은 어느 정도 추측하고 있지만, 만천으로는 어떤 방법을 시도했는지 조차 모르겠군.”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그것을 후계들 중 누군가가 넘어서길 바라는 것이고.”

“그런 셈이다.”

“애초에 만천을 넘어서 정점에 닿을 정도의 힘을 지니면 소가주는 물론이고 당연히 가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백연이 말끝을 흐렸다. 그가 당소하를 쳐다보았다. 그가 삐뚜름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공을 완성시키기 위해 후계 구도의 분쟁을 방관한다고? 서로를 서로의 시금석으로 삼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데.”

“가주께서는 당신 자신도 무(武)를 이루기 위한 시금석으로 삼으시지. 조금 다르다.”


본인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 그냥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백연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에 당소하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매번 말하지만, 가주께선 실력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으시다. 내가 소가주가 된 것 또한 당장의 실력이 가장 앞서나가기 때문이다. 그에 뒤따르는 실적도 마찬가지다만.”

“소가주의 자리에 의미가 있긴 한거야?”

“자리의 이름값 외에는 없지. 하지만.”


당소하가 입매를 비틀었다.


“나는 이 자리가 필요했다. 살아남기 위해.”


끝맺는 말이 짧았다. 하지만 백연은 그 속에 무슨 뜻이 담겨있는지 이해했다.


그를 죽이려는 시도가 여러차례 있었다고 했던가. 가문 내에서의 경쟁은 수면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물밑에서 이뤄지는 것도 많다.


당소하를 위협하는 것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집 안이라 해서 안전하지 않겠지. 오히려 그가 몸을 뉘이는 방 안이 그에게는 중원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가주라는 자리가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대외적인 평판에 신경을 쓰지 않을리가 없어.’


당진천의 평판은 나쁘지 않은 듯 보였다.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겠지. 무릇 거대 세가의 일원이라면 세간의 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당가의 삼남 하나가 죽는 것은 금방 묻히겠지만, 칠룡의 일좌이자 당가의 소가주가 석연찮게 사망하는 것은 파급력이 전혀 다르다. 당진천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세간의 소문을 피하기가 극히 어렵다.


즉 당소하가 오른 소가주의 자리는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세력도 없다고 했나.’


당소하의 모친은 이미 죽었다고 알고 있다. 현 가모는 첫째인 당진천과 둘째인 당백건의 친모.


가문 내에 온통 적밖에 없을 것이다. 소가주가 아니었다면 하루하루 더 위험한 삶이었겠지.


당소하에게 소가주의 자리는 나중에 가주의 위에 오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장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는 소리다.


“고생이 많네.”


담백하게 말하자 당소하의 눈매가 휘어졌다. 술을 한모금 들이킨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익숙해서 괜찮다. 요즘은 외려 편하지. 가주께선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오직 무(武)에 미친 분이시지만, 반대로 그 이상적인 무학을 일궈낼 자질을 선보인다면 관대하시다.”

“네 자질은, 그 정도야?”

“......알 수 없다. 뭐, 형님들보단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만.”


냉막한 얼굴에 씁쓸함이 서린 미소가 깃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백연이 생각했다.


‘하지만, 당가주는 그때 분명.’


정말로 당가주는 무학에만 미친 사람이 맞는가.


사천에서 만났을 때의 당가주가 했던 말은 그렇게만 느껴지진 않았는데.


‘내게 피독단을 준 이유도 당소하를 위해서......’


거기까지 생각하던 백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까지 자신이 관여할 수는 없다. 어찌 되었든 당가주는 대외적으로 후계의 경쟁 구도를 표방하고 있고, 당소하는 그것을 스스로 넘어서야 한다.


“여하간 이해했어. 당가주의 행동이 그런 의미였군.”

“그렇다.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사람같아 보이나, 본질은 단순하지.”

“그렇다면 지금의 너는 어떻지?”


백연이 물었다.


“만독이 네 절기라는 것은 잘 알아. 하지만 만천도 익히긴 했을 것 같은데.”

“당연한 소리.”


당소하가 손을 펼쳤다. 그의 손 위로 느릿하게 진기가 휘도는 것이 느껴졌다.


“만천을 다루는 것에 자신은 있다. 다만 만독의 경지와는 다를 뿐. 가문의 누구와 비교해도 내 만독은 이미 극상의 성취에 이르렀어. 이야기 해주었던가?”


당소하가 태연히 말했다.


“일전 가모의 사주로 나를 죽이려던 장로가 있었는데, 재수없게도 내가 살아남았고 가주께 그 사실이 발각되었지.”

“......장로가?”

“뒷방 늙은이들의 발악이었다. 다만 그놈은 독공 성취가 뛰어났어. 뭐, 그러다가 자기 독에 뇌를 파먹혀 사리분별을 못하게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손을 뒤집었다. 찰나지간 그 끝을 따라 짙은 독기(毒氣)가 피어올랐다. 한순간에 진기의 조합으로 독을 만들어 내는 신공절학.


“가모가 사주했다는 증거는 물론 없었다. 더불어 장로들 측에서도 그자를 변호하며 살리려 하던 상황이었지. 그래서 가주께선 그 일을 간단히 해결하셨다.”

“어떻게?”

“나와 그자가 일대일로 만독을 펼쳐 대결하게 만들었지. 덧붙여 말하자면, 그자는 무덤이 없다. 시체가 남지 않았으니까.”

“......허.”


백연이 중얼거리자 당소하가 웃었다.


“내 성취를 가늠할 요소가 되었나?”

“의심한 적은 없어.”

“안다. 그리고......”


백연을 힐끔 쳐다보는 당소하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혹 내 손속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무슨. 죽이려 한 사람을 살려주는게 더 바보짓 아닌가? 당가는 은혜는 두배로, 원한은 열배로 갚는다고 아는데.”

“......그리 말하니 다행이군.”


한결 가벼워진 음성이다. 손끝을 매만지며 독기를 거두는 당소하. 그를 보며 백연이 생각했다.


‘저 정도 성취라면.’


독룡 당소하가 칠룡 사이에서 무위가 독보적이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당소하가 만독을 봉인하고 싸웠을 때의 이야기. 진정으로 상대를 죽이고자 하고 만독을 펼친 당소하는 어느 정도의 무위를 지니고 있을 것인가.


‘장로를 꺾었다 하면.’


심지어 그것이 가까운 시일 내의 이야기도 아닌 듯 싶었다. 만독의 성취가 그리 뛰어나다면, 반대로 만천 또한 경지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


그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당진천은 만천이 특기라 했지.”


당소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비화라는 별호는 그가 만천을 펼쳤을 때의 광경에서 따온 별호니까. 감각이 탁월하고, 변수를 창출하는 것에 능하지.”

“평가가 후하네.”

“적을 모르면 되겠나?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애초에 그 정도가 아니었으면 나를 위협하지도 못했겠지. 가주님의 선에서 내쳐졌을테니.”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 하지만 당진천의 무위에 대해서는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당진천이 만천을 잘 익혀냈다는 소리겠지.


“내 만천은 당진천에 비하면 부족하다. 만독의 영향이 없진 않으나, 그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네.”

“점창놈과 연화의 차이 정도는 될거다.”


비룡 모위진과 현월검룡 연화를 입에 담는다. 두 사람의 무위 차이가 당소하 본인의 만천과 당진천의 만천의 차이 정도라는 것인가.


그 둘의 무공을 일전 내기때 한번 눈에 담았던 백연이다. 적당히 감이 잡혔다.


“차이가 엄청나지는 않네. 검초로 따지면 한합하고 반정도 앞서나.”

“그 정도로 자세히 파악하나? 눈이 좋군. 하지만 그 한합 반은 엄청난 차이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그렇지.”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당소하가 덧붙였다.


“특히 만천은 수많은 암기를 동시에 다루는 무공. 그 자그마한 차이가 수십배로 번진다. 나는 그 간극을 아직 채우지 못했어.”

“그렇다면 당진천의 만독은......”

“그건 비교할 거리가 없다. 당진천은 만독을 익히지 않았어. 평범한 독공에서 멈췄다.”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의외의 이야기였다.


“왜?”

“암기로 정점에 서겠다 호언장담했다. 가주님께서는 간섭하지 않으셨지. 꽤 자주 있는 일이다. 당가 무인들 중에 기본적인 독공만 익히고 암기술 위주로 나아가는 것은.”

“감각의 여부 때문인가.”

“맞다. 그리고 그에 더해 오래전 암기술 하나로 맹위를 떨쳤던 무인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다. 꽤나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바지. 그게 진실인지는 모르겠다만.”


만독을 익히지 않았다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비중이 꽤 될법도 했다. 당소하의 말대로라면 만독을 익힐 경우 만천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었으니까.


‘그러고보니 그 늙은이도 암기술은 기가 막혔는데.’


암기술 하나로 맹위를 떨쳤다 하니 문득 한 노인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쳤다.


백여년 전의 무영방주 무허. 월영비도를 쥐고 그림자로 엮어낸 암기를 흩뿌리던 신위가 압도적이더랬다.


‘어쩌면 단초를 얻을 수 있을련지.’


만천을 뛰어넘을 단서들이 있다면 얻어내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 또한 당소하가 반드시 가주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랬으니까.


“비화 당진천. 흥미롭네.”

“......그리 가볍게 대할건 아니다만. 비무제전에서는 살초가 허용된다. 알고 있겠지.”


당소하의 눈이 걱정스레 휘어든다. 냉막한 소년의 표정에 우려가 깃들었다. 그 모습에 백연이 싱긋 웃었다.


“걱정마.”

“하아. 네놈은 항상 그리 말하니 문제다.”

“그것보단 다른 이야기가 우선이야. 너는 만독을 뛰어넘을 자신은 있어?”


당가주가 원하는 것은 둘의 합일. 결국 만천 이전에 만독을 넘어서는 것이 우선과제다. 둘을 동시에 해결할 수 없다면 하나라도 먼저 가야겠지.


“물론 내가 짐작하기에 만독을 넘어선다는 소리는 초월의 위에 도달한다는 것과 같은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럴거다. 그리고 나도 어느 정도는 감을 잡고 있다. 만독쪽은.”

“그렇다면 만천을 해결해야겠네. 하늘을 뒤덮는 암기의 폭풍.”


백연의 중얼거림에 당소하가 손을 쥐었다가 폈다. 그가 툭 던지듯 말했다.


“만천의 요결을 보겠나.”

“만천의 요결? 왜?”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거다.”


그러나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필요없어. 말했잖아. 당진천은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고집만 더럽게 세군.”

“당진천과의 경기가 끝나면 그때 볼게. 걱정해줘서 고마워.”


백연이 웃으며 자연스레 손을 뻗었다. 유려하게 휘어진 금나수가 그대로 당소하의 손에 들려있던 호리병을 낚아챘다. 찰나지간 반응한 그가 손을 빼려 했지만 이미 유령처럼 스친 백연의 손아귀에는 병이 들려 있었다.


찰랑이는 내용물을 확인한 백연이 가볍게 술을 들이켰다.


“후우.”

“......젠장할.”


혀를 찬 당소하가 중얼거렸다.


“죽지 마라. 절대.”

“당진천한테? 새겨둘게. 그리고......”


비화 당진천의 만천. 그를 상대로 꺼내들지 않을리가 없었다. 당소하가 스스로 공언한 실력자의 만천이다. 그 성취가 낮을리가 없었다.


그도 무인이니만큼 만천에 쏟은 세월과 고민, 자신만의 해석이 쌓여 있겠지.


‘빼앗아 온다. 전부.’


방금 당소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정했다.


소년이 당소하에게 말하지 않은 목표였다. 그가 친우에게 건네고자 하는 작은 선물.


“기대하고 있어도 좋아.”

“무엇을?”

“경기 끝나고 알려줄게.”


백연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당소하의 한숨을 한귀로 흘리면서였다.



※※※



날이 흘렀다.


본선 개회식 당일.


무연봉 위는 그 어느때보다도 사람으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드넓은 봉우리 위 전체를 가득 매운 구름같은 인파.


봉우리를 다 채우는 것을 넘어 그 아래의 능선을 타고 주욱 퍼져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했음에도 이곳에 걸음한다. 표를 구하지 못했어도, 이곳에라도 있는 것이 경기의 결과를 가장 빨리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상행부터 호사가들과 학자들, 풍류를 논하는 젊은이들과 나들이를 온 가족들, 한몫 손에 쥐어보고자 온 도박꾼들과 무(武)의 영감 한 자락이라도 얻으려 걸음한 수많은 낭인 무사들까지.


그들이 에워싼 경기장 안은 바깥과 마찬가지로 빼곡하게 사람이 들어차 있었다. 객석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과, 무대를 전부 치운 경기장의 바닥에 들어찬 이백 오십여명에 달하는 본선 진출자들.


그 속에서 백연은 상석을 올려다보았다.


‘여기가 곧 정파 무림이군.’


백연이 생각했다.


반쯤은 진심이었다. 사방에 도열한 무인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기파가 저릿했다. 그러나 그 기운은 상석에 이르기도 전에 흩어져 사라진다. 저 위에 걸터앉은 무인들의 면면이 하나같이 찬란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강호의 이목을 불러 일으키는 절대자들. 현천검제를 제외한 구파의 모든 장문인과 세가의 수장들이 한 자리에 앉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와 소년의 눈매를 투명하게 비추고.


“오늘 이곳에서.”


문득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어느 순간 상석의 앞에 선 외팔의 노인. 여상히 뒷짐을 진 채로 굽어보는 시선이 부드러웠다. 그 존재감은 백연이 그를 처음 봤을때와 똑같이 인지를 벗어나 있었다.


언제 그 자리에 섰는지, 언제 입을 열었는지.


“무도(武道)의 길을 걷는 이들의 제전이 시작되겠소.”


허허로이 뱉는 음성이 사방을 타고 스며든다. 육합전성의 기예도, 내공을 실어 증폭시킨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연에 휘도는 바람처럼 모든곳에 동시에 닿을 뿐.


“본 무인은 무당파의 장문을 맡고 있는 현려(玄慮)라 하오.”


무당파 장문인 선극. 두번째로 보는 것이지만 여전히 아득했다.


어떤 호사가들은 선극과 신승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도 비무제전에 걸음할 가치가 있다 하더니. 크게 틀린말은 아니었다.


백연 또한 눈앞의 선극과, 그 뒤편의 상석에 자리한 신승의 몸짓 하나하나를 볼때마다 머릿속에서 불티가 마구 튀어오르는 듯한 감각이 일었으니까.


“금번 비무제전의 주관을 맡게 되어 한없이 기쁜 마음이오. 늙은 몸으로 강호 무림을 빛나게 할 별들의 일전에 한 손을 거들 수 있는 것은 크나큰 영광이니.”


나직이 미소를 지은 선극의 시선이 좌중을 천천히 훑었다.


그때였다.


“허나, 본격적으로 비무제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모두에게 소개시켜 드려야 할 인물이 있소.”


선극의 말에 옅은 소란이 스쳤다.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백연 또한 눈매를 좁혔다.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다고? 예측이 되질 않았다. 비무제전은 정파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축제중 하나. 선극이 나서 저리 발언하는데 그 앞에 나설 인물이 있기 어렵다. 저 뒤에 앉은 소림의 신승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하지만 신승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고, 선극은 다른곳을 쳐다보았다.


“올라오시지요.”


공대였다. 백연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파 무림의 정점에 선 이가 저리 대할 인물이 있는가.


모두의 당황과 소란 속에서 한 인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신묘한 움직임.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계단을 올라 상석의 앞, 선극의 옆으로 내딛는 걸음이 가볍다. 그의 뒤로 흩어진 한없이 짙푸른 청포(靑袍)가 고귀했다. 금실과 홍실로 엮어진 화려한 문양.


그 어깨를 타고 오르는 것은 황금빛 룡(龍)이다.


삽시간에 정적이 깃들었다.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저 문양이 상징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으니.


이윽고 청포의 사내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나른한 눈매가 쏟아질듯 휘어졌다.


“이 자리에 모인 강호 무부(武夫)들이여. 본왕은 주(朱)씨 일가의 재후라고 한다.”


툭 내던지듯 말한 그가 가벼이 덧붙였다.


“반갑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2 본선(10) +7 24.03.02 2,487 73 16쪽
201 본선(9) +6 24.03.01 2,288 69 16쪽
200 본선(8) +14 24.02.29 2,319 73 15쪽
199 본선(7) +9 24.02.28 2,282 70 15쪽
198 본선(6) +6 24.02.27 2,342 78 17쪽
197 본선(5) +7 24.02.26 2,353 72 14쪽
196 본선(4) +7 24.02.24 2,435 73 14쪽
195 본선(3) +6 24.02.23 2,478 74 15쪽
194 본선(2) +5 24.02.22 2,390 64 16쪽
193 본선 +5 24.02.21 2,415 73 16쪽
192 창염(蒼炎)(2) +6 24.02.20 2,420 72 16쪽
191 창염(蒼炎) +7 24.02.19 2,418 74 16쪽
190 만천(滿天)(4) +6 24.02.17 2,555 79 19쪽
189 만천(滿天)(3) +9 24.02.16 2,476 76 19쪽
188 만천(滿天)(2) +8 24.02.14 2,492 76 15쪽
187 만천(滿天) +6 24.02.13 2,474 71 15쪽
186 성장(13) +6 24.02.12 2,465 70 21쪽
185 성장(12) +6 24.02.10 2,594 73 21쪽
184 성장(11) +7 24.02.09 2,488 69 19쪽
183 성장(10) +6 24.02.08 2,457 72 15쪽
» 성장(9) +5 24.02.07 2,495 69 17쪽
181 성장(8) +7 24.02.06 2,591 69 16쪽
180 성장(7) +6 24.02.05 2,570 68 17쪽
179 성장(6) +6 24.02.03 2,687 71 16쪽
178 성장(5) +6 24.02.02 2,671 71 16쪽
177 성장(4) +4 24.02.01 2,758 67 15쪽
176 성장(3) +7 24.01.31 2,756 72 17쪽
175 성장(2) +4 24.01.30 2,689 72 17쪽
174 성장 +7 24.01.29 2,725 72 17쪽
173 음모(3) +5 24.01.27 2,785 77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