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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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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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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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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성장(11)

DUMMY

※※※



“여기입니다.”


인파를 헤치고 당정과 함께 도착한 곳은 무당파 경내에서도 꽤나 안쪽에 자리잡은 전각이었다. 도문의 전각답게 수수한 가운데서도 웅장함을 겸비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돌아다니는 무인들이 많았다.


간간히 그를 힐끔거리는 시선도 있었다. 대부분은 호기심이었으나, 경계가 서린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저들이 전부 그를 알아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저들은 당정 또한 알아볼 것이다. 그의 얼굴은 제쳐두더라도 그가 입고 있는 짙은 녹색 무복은 오직 한 세가의 전유물.


‘일부러 이런 것 같은데.’


백연이 생각했다.


지금의 그의 이름은 좋건 싫건간에 상당히 알려져 있다. 그런 와중에 그가 사천당가의 자제와 동행해 그들이 머무르는 처소에 들어갔다. 다음 대진 상대가 당진천인 상황에서.


여러가지 추측과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딱 좋았다. 당가에서도 그를 모르지 않을 터.


무슨 생각으로 이리 행동했는지가 궁금해졌다.


“들어가시지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각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과 몇마디를 나눈 당정이 돌아왔다. 백연은 잠자코 그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음? 정이냐? 여기는 왠일로.”


큼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옮기던 당정이 멈춰서며 미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백건 도련님.”


당정이 고개를 숙였다. 반대편에서 성큼성큼 걸어오는 다부진 체격의 무인을 향해서였다.


‘당백건?’


백연이 무인을 눈에 담았다.


키가 크다. 체격 또한 다부지게 뻗어 있었다. 거구라 부를 만큼은 못되지만, 백연보다는 머리 하나가 더 높은 사내.


뺨을 따라서는 한줄기 깊숙한 흉터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인상은 험악하다기보단 호쾌함에 가까웠다. 짧게 붙여 넘긴 흑발 중 두어가닥이 눈매를 타고 흘러내렸고, 짙은 눈썹과 강직한 눈매는 당소하와도 매우 닮아 있었다. 아니, 당가주와 닮았다 해야겠지.


그러나 눈매와 미간을 제외한 전체적인 외양은 좀 더 단단했다. 고아한 날카로움을 엮어넣은 듯한 당소하와의 차이점이었다.


아마 그것은 두 사람이 배다른 형제이기 때문이리라.


‘저게 당소하의 둘째 형.’


당백건. 비화 당진천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그 또한 당소하의 경쟁자이다. 쉬이 볼 수 없겠지.


백연의 눈매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그리 딱딱하게 굴지 마라. 어릴 적에는 잘도 쫓아다니더니.”

“......”

“형님의 휘하에 들어가더니 섭섭하게 굴어. 편하게 해라.”

“새겨 듣겠습니다.”

“쯧. 형님은 애를 이리 망쳐놓고. 그나저나 옆은 누구인가? 손님?”


성큼성큼 다가온 당백건이 백연에게 시선을 던졌다. 당정에게 핀잔을 던지다가 백연을 뒤늦게 주시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백연은 그의 눈길이 처음부터 이쪽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러 늦게 알아챈 척 어수룩하게 꾸민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다.


“형님께서 불렀나보군. 어디......그 룡(龍)의 문양은 들은적이 있는데. 곤륜이던가?”


그가 씨익 웃으며 손을 내민다.


“그러고보니 형님께서 암화라는 무인과 붙는다 들었다. 그대가 암화겠군.”

“곤륜의 백연입니다.”


태연히 당백건의 손을 맞잡았다. 백연을 가늠하듯 눈을 굴린 당백건이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대의 명성은 몇번 들었다. 우리 소하와도 친하게 지낸다고.”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자가 지금 우리 소하라고 했나. 속으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가 알기로 당소하의 두 형은 모두 당소하를 죽이려 든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니 당백건도 마찬가지로 당소하의 목을 노렸을텐데.


저리 이야기 하는 것이 참으로 뻔뻔했다.


‘이대로 베어버릴까.’


한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 그러나 백연은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단숨에 무림공적이 될 수는 없는 노릇. 검귀의 몸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신경쓸 것이 많았다.


“형님과의 경기도 예정되어 있다 아는데, 준비는 되었나?”

“준비라면.”

“형님께서는 뛰어난 무인이시니 말이다. 아, 그대의 무위는 익히 들었지만 만일이라는 것이 있으니. 비화가 펼치는 만천의 두번 피어나는 꽃을 감당하기엔 어려울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나.”


찰나, 백연의 귓가에 틀어박혔다.


‘두번 핀다고?’


생각이 빠르게 돌았다. 동시에 소년은 자연스럽게 당백건을 향해 답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옳군. 옳은 대답이야.”


말하며 한번 더 씩 웃는다.


그 속에서 백연은 호쾌한 인상 뒤에 잠겨있는 가면을 보았다.


방금 전, 당백건은 그에게 당진천의 만천에 숨겨진 무언가를 귀띔해준 것이다. 두 번 피어나는 꽃이라고 넌저시 들먹이면서.


‘집안 꼴이.’


백연이 생각했다.


당백건은 당소하뿐만이 아니라 당진천도 제거하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그가 이번 비무제전에서 백연에게 패배하기를 원하고 있는 듯한 언동.


형제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상황이라니. 당가주 천독은 정녕 이런것을 바라고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도련님. 이만 가봐야 합니다.”

“어이쿠, 그래. 형님께서 부르셨을 텐데 내가 방해하고 있었나. 가모님도 함께더냐?”

“......”

“흐하핫. 정이 네 입이 이리 무거울 줄은 몰랐다. 기특하구나.”


당정의 어깨를 툭툭 내리치는 언동이 호쾌했다. 직후 머리를 긁적인 그가 백연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즐거운 대화 되기를 빌지. 당가의 안가는 따스하니 졸지 않게 조심하게나.”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그렇게 툭 뱉은 당백건은 뭔가를 되물을 새도 없이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조금 지체되었군요. 이리 오시지요.”


당백건의 뒷모습을 흘깃 응시한 백연이 당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으로는 직전의 대화를 되새기면서였다.


‘당백건, 위험한 자로군.’


당소하와 적대적인 것과 별개로, 당백건은 당진천과 가모쪽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써 당가에서 나눠진 세력구도가 대략 짐작이 된다.


당진천과 당가의 가모를 위시한 세력. 그리고 당백건의 세력. 마지막으로 당소하.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당백건은 당진천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는 듯 했다. 그가 당소하의 친우인 것을 알면서도 당진천에 대해 넌저시 일러주는 태도가 그랬다.


마지막에 뱉은 말도 의미 없는 내용이 아니었다. 혹여나 가모가 그에게 부릴 수작중 하나를 경고한 모양. 정신을 흐리는 독(毒)같은 것을 염두에 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확실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당백건도 피독단에 대해서는 모른다.’


의외성은 굉장한 무기. 이것은 언제고 써먹을 수 있는 정보였다. 과연 당진천도 이를 모르고 있을까.


“이곳입니다.”


생각을 하며 걷던 사이, 당정이 작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춰섰다. 전각의 안쪽에 자리한 방. 문에 다가간 당정이 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가모님, 도련님.”

“들어와도 좋네.”

“가시면 됩니다.”


당정을 향해 고개를 까딱인 백연은 망설임 없이 문을 잡아 열었다.


끼익.


옅은 소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곧바로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옷자락이었다. 알 수 없는 향긋한 향으로 채워진 방 안.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살이 화사했다. 그 가운데를 타고 흐르듯 넘치는 밝은 녹빛의 옷자락이 귀했다.


옷자락에 한치 빈틈이 없었다. 녹빛으로 뒤덮인 장포의 위를 타고는 붉고 푸르고 노란 실들이 다채로운 문양을 엮어내고 있었다. 달리 눈길을 잡아끄는 옷이었다. 자칫하면 입고 있는 사람의 존재감을 죽여버릴 정도로.


하지만 아니었다.


“암화 백연.”


산뜻한 음성이 허공을 가른다.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책상을 짚으며 일어나는 형세가 여유롭다. 길다란 흑발은 뒤편으로 묶여내려져 있었는데, 수십갈래로 꼬아지고 땋아진 것이 화려했다.


머리의 뒤편으로는 용 문양이 새겨진 길쭉한 금빛 비녀를 꽂아넣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본디 사내들이 잘 즐겨하지 않는 장식임에도 터무니없이 잘 어울렸다.


“기다리고 있었네.”


생긋 웃으며 눈매를 휜다. 짙은 눈썹은 당소하나 당백건과 같았지만, 그 외의 것은 전혀 아니었다. 훤칠하게 뻗은 콧날. 따스한 갈색빛의 눈동자. 화장을 했는지 옅은 색(色)이 감도는 눈매는 뭇 여인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고, 붉은 기운이 서린 입술은 요요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 백연이 본 이들중 가장 화려하고 수려한 모습의 사내였다.


단순히 외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돌아나오는 동작도 그랬다. 신법 묘리를 자연스레 휘감은 듯 했는데, 사뿐거리는 걸음걸이가 우아하다 평할만 했다.


달리 고귀하다는 느낌이다. 화화공자(花花公子)라는 말이 문득 머리를 스쳤으나, 사내에게는 화려함 위에 기품이 더해져 있었다.


별호가 비화(飛花)인 사내. 만천을 펼치는 모습으로 그 별호를 얻었을테지만, 그와 별개로 외양만으로도 더없이 잘어울린다.


“당진천이라고 하네. 이미 알고 있을테지만.”

“곤륜의 백연입니다.”

“이리 앉게. 혹 좋아하는 차가 있는가?”

“딱히 없습니다.”


백연은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에 생긋 미소지은 당진천이 손을 뻗어 김이 올라오는 찻주전자를 따라내었다. 향긋한 차향이 느릿하게 퍼지며 허공을 채웠다.


“그렇다면 내가 추천해주는 것은 어떤가. 참고로 독은 없네.”


말하며 유쾌하게 웃음을 덧댄다. 백연은 당진천을 힐끗 응시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한잔 하지요. 차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은시옥로(恩施玉露)라 하네. 호북의 명차지.”


그의 앞에 찻잔이 놓였다. 백연은 잔에 들어찬 투명한 찻물을 가늠했다.


‘독이 안 들었다라.’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 당장 이 자리에서 그에게 독을 먹이는 것은 가장 하책. 그 정도로 뻔히 보이는 수법을 쓸련지.


“들게. 차에 익숙치 않아도 편히 마시기 좋은 맛이야.”


그리 말하며 찻물을 홀짝인다.


백연은 가만히 차를 한모금 들이켰다. 그렇게 고요한 침묵이 흐르길 잠깐.


“길게 끌 것은 없겠지요. 저를 보고자 하신 이유가 뭡니까?”


백연이 물었다. 그에 당진천이 웃음을 지었다.


“그대는 직선적이군. 마음에 들어.”

“비무제전의 대진은 이미 어제 나왔지요. 서로 상대라는 것도 알고. 이틀 뒤에 경기장에서 봐도 충분하지 않았을련지.”

“거침이 없고. 세가의 자제들에게도 격식없이 대하니 그것이 구파를 비롯한 어떤 사람을 만나도 마찬가지겠지. 그대는 어느 누구에게도 투명한 사람으로 보이네. 정확한가?”


백연을 쳐다보는 시선이 부드러웠다. 그것을 마주하며 백연은 생각했다.


‘이자는 뱀이군.’


당진천은 그의 답을 따로 기다리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인 그가 말을 덧붙였다.


“소하가 그대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군.”


백연의 시선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당소하의 이름을 계속 들먹이는 것이 짜증난다.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것인가. 역겨움이 치솟는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고 싶을 만큼.


그때였다.


“초대한 손님이 왔구나. 말을 하지 않고.”

“아, 어머님. 잠시 차를 따라주느라 그랬습니다. 와서 앉으시지요.”


백연이 고개를 돌렸다. 방 안쪽에서 걸어나오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외양과 자태. 당진천을 빼다 박은 모습의 중년 여인이었다. 그러나 당진천의 요요한 화려함보다는 조금 더 수수하게 죽은 듯한 분위기다.


“그 이야기를 익히 들었습니다. 암화 백연.”


자연스레 당진천의 옆에 와 앉는다. 그를 쳐다보는 얼굴에는 아들과는 다르게 미소가 없었다. 담담한 눈으로 그를 응시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


“저는 공손령이라 합니다. 소가주에게 들었을련지는 모르겠지만.”

“......”

“그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대의 이름을 참 많은 곳에서 들었습니다. 섬서에서 이름을 새긴 뒤부터, 소가주와 연을 맺고 검왕과 독대한 소년.”


여상한 어조에 실린 것이 많았다. 그의 행적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것은 제쳐두더라도 검왕의 일을 입에 담는것이 그랬다.


“저는 그대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대가 소가주와 매우 친하며, 당가의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까지도요.”

“그런데 이곳에 부르셨습니까? 만약 지금 저를 제거하려는 계획이라면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무당의 경내에서.”

“무슨. 저는 그런 바보가 아닙니다. 그러했다면 애저녁에 저는 이자리에 없었을테니.”


백연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그대를 죽이는 것의 어려움은 제외하더라도, 당가주가 그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이는 본래 홀로 누군가를 만나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지요.”


백연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번에야말로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당가모 공손령. 그가 사천에서 당가주와 만난 사실을 안다. 대체 어떻게? 그 당시에 당가 가솔들은 이미 사천을 떠나 있었고, 공손령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피독단도 알고 있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사이 공손령이 덧붙였다.


“그럼에도 가주가 움직였다는 사실이 그대의 자질을 확실하게 만듭니다. 그런 이를 죽여 없애려 드는 것은 가장 하책이겠지요.”

“그럼 더 할 이야기가 있습니까?”


백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당신들이 제 친우를 죽이려 했는데.”

“아하하. 정말로 말을 가리지 않는군. 소하도 그대 앞에서는 한수 접고 가야겠어.”


웃음을 지은 당진천. 그가 가벼이 말을 얹었다.


“우리는 그대와 그런 다툼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네. 이곳에 그대를 부른 용건은 간단해.”

“그대의 자질과 성정을 높이 삽니다. 우리에게 힘을 더해줄 생각이 없는지 묻고 싶군요.”


백연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미쳤습니까?”

“아니. 미치지 않았네. 그대의 힘과 자질은 아까워. 소하가 가진 가장 강력한 손패. 외인이 당가 후계의 구도를 비트는 것이 우습지만, 가주께서 그대를 독대하고 가만히 놔둔 이상 외인이라 무시하고 넘길수도 없지.”

“제가 응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본 것이라면 당신들은 미친겁니다. 주화입마에라도 빠지셨는지.”


내뱉는 백연의 음성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당진천과 공손령은 여전히 똑같은 표정이었다.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제안하는게 아니네. 나름의 이유가 있지. 그대는 소하가 정말로 당가주의 위에 오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나?”

“지금의 소가주는 자질로써 가주의 눈에 들었지요. 살아남기 위해 그 자리를 수락했는데.”


공손령이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소가주가 앞으로 목숨의 위협 없이,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당소하가 신변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면? 그때도 소가주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을 것인가.


모든것이 부담과 중압으로 다가올 자리. 목숨의 위협과 더불어 당가주의 무공에 대한 집착까지. 술을 좋아하는 소년은 자유로이 살았을때 더 행복하지 않을까.


잠시나마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지 않을수가 없었다.


백연의 침묵이 길어졌다. 그에 공손령이 재차 입을 열었다.


“별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그대가 행해줘야 하는 것은 두가지. 다가오는 경기에서 패배하고, 향후 당가의 이름으로 첫째가 그대에게 요청했을때 한번만 들어주면 됩니다.”

“아, 물론 소하도 소가주의 자리를 포기해야 하네. 당가에서 나가주어야 하고. 하지만 그 아이는 집 밖이 더 편할테니 크게 상관 없지 않겠나.”

“......”

“그리 하면 내 모든것을 걸고 소하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다른 이의 입회하에 약조로 남겨도 좋아. 여생동안 편안하게 살 수 있을걸세.”


파직.


백연의 혈맥을 따라 뇌기가 휘돌았다. 어느 순간 그도 모르게 일어난 태청신공의 벼락이었다. 시린 뇌광의 기파가 상단전을 일깨웠다. 작열하는 듯한 감각이 백회에 휘감기고.


‘......거짓이 아냐.’


백연이 생각했다.


두 사람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적어도 입밖에 낸 내용은 진실이다.


그것이 백연의 미미한 망설임을 만들었다. 당소하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녀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잠시 고민이 바람처럼 휘감기고.


-멍청하군. 쓸데없는 고민을.


문득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은 당소하의 목소리를 새기며 백연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고민이 길지 않았다.


자존심이 드높은 녀석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냉막한 듯 대하는 태도 속에도 항상 많은 생각이 묻어있다. 단순히 편하고자 소가주의 자리를 포기할 리가 없다.


그와 더불어 당가무공을 이야기하던 소년의 눈빛과 목소리.


-어느 정도는 감을 잡고 있다. 만독쪽은.


무공에 대한 열망도 드높다. 소가주의 자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그 모든것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 백연은 당소하가 그리 할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더불어 이미 약조도 해버린 몸이다. 기대하고 있어도 좋다고 말해놨건만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만독과 만천.’


두 무공은 반드시 당소하의 손에서 완성되리라. 그리고 그것으로 당소하는 당가주의 자리에 오르겠지.


‘내가 반드시.’


그리되게 만들 것이다.


“어떤가? 그대의 결정이 소하를......”

“그 입에.”


백연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렸다. 어느새 자색으로 물든 눈이 번뜩였다.


“소하의 이름을 담지 마시지요. 역겹습니다. 혈육의 목을 노리는 자들이.”

“......하하. 그대의 언행과 현명함은 별개라 보았는데 의외로군.”

“당가는 은혜는 두배로, 원한은 열배로 갚는다고 들었는데.”


소년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공손령과 당진천을 눈에 담으며 백연이 고개를 기울였다.


“소하가 당신들에게 지닌 원한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군요.”

“......”

“이틀 뒤에 보도록 하지요. 경기장 위에서.”

“아직 차도 다 안마셨지 않은가. 조금 더......”


백연의 손이 찻잔을 쥐었다. 한순간 소년의 손에 기파가 벼락처럼 휘감기고.


화아아아악!


시린 불꽃이 피어올랐다. 작열하는 불꽃은 어느 순간 적색을 넘어 옅은 자색에 가까워져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불꽃이 사그라들었을때, 찻잔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이만.”


탁.


찻잔을 내려놓은 백연이 몸을 돌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어젖히고 걸어나가는 뒷모습.


그것을 가만히 앉아 지켜보던 당진천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되는군요.”

“아깝게 되었구나.”

“......뭐, 어쩌겠습니까. 이리 되었으면 역시.”


당진천의 눈매가 휘어졌다.


“죽여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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