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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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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9.21 18:10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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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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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성장(13)

DUMMY

※※※



벼락이 경기장을 가르는 순간.


“......!”


백연이 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여태껏 일방적으로 청율이 밀리던 와중에도 그다지 놀라는 기색 없이 경기를 보던 그가 여지없이 당황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직후 아이들의 목소리가 뒤섞인다. 그들의 눈에도 시린 벼락은 충분히 놀랄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백연 외에는 보여준 적이 없는 곤륜의 상승무공.


“백연! 저거......”

“태청신공이다.”

“사숙의 성취가 언제 저기에 닿았지?”

“뭐야. 따라잡으려면 한참 남았잖아.”


자신이 먼저 닿지 못했다는 아쉬움, 사숙의 성취에 대한 감탄, 그리고 이제서야 각정을 상대할 방법이 보인다는 희망......사형들의 음성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백연의 귀에는 그 중 어느것도 자세히 들려오지 않았다.


“약선객은.”


운현에 있을 약선객을 떠올리던 백연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멀다. 경기가 끝나기 전에 출발해 내려갔다 온다 해도 약선객이 여기까지 오려면 꼬박 반나절이 걸린다.


소년이 주먹을 말아쥐며 경기장을 응시했다.


‘아직 닿을 차례가 아니었는데.’


위험하다. 이제부터는 백연도 예측할 수 있는것이 없었다.


태청신공.


상반된 두 기운을 충돌시켜 본디 손에 넣을 수 없는 막대한 뇌기를 부리는 신공절학이다. 그 대가로 사람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반동이 오는데, 그 문제를 상단전 신(神)을 이용해 받아내는 것으로 해결했다.


절반의 해결책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운연동공으로 닦인 신체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단순히 상단전으로 반동을 받아내는게 전부가 아니다. 즉, 오랜기간 신체를 연마해야 한다.


세월의 무학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지금, 청율은 태청신공에 닿아도 될 만큼 충분한 세월을 엮어냈는가.


‘......알 수 없다.’


청율은 그가 곤륜산에 오르기 전부터 오랜기간 운연공을 연마했고, 그것이 운연동공으로 재탄생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무공을 수련해왔다.


사형들을 포함한 모든 곤륜의 무인중, 당장 태청신공의 반동을 가장 잘 버텨낼 수 있을 사람이라 하면 단연코 청율이 가장 앞서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당장 백연도 태청신공에 닿기 위해 억지로 환골탈태를 통해 세월을 건너뛰었으니까.


각정과의 경기가 끝나고, 청율은 괜찮을까.


‘믿는 수 밖에.’


자리에 걸터앉은 백연이 손을 그러모았다. 경기장 위를 희끗하게 물들이며 황금빛 기파를 찢어내는 다섯 갈래의 벼락 줄기를 눈에 담으면서였다.



※※※



지켜보는 모두의 눈에 새겨졌다. 경기장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시린 벼락. 몸을 낮춘 청율의 장포자락이 뒤편으로 거칠게 흩날렸고, 한순간 청년의 신형은 경기장 끝에서 끝을 격하며 각정의 왼편을 베어들어갔다. 직전 각정이 내친 권격 경파를 아슬아슬한 차이로 회피하면서였다.


쩌엉!


경합이 일었다. 각정은 검이 떨어지는 순간 금강불괴에 내공진기를 조합해 왼팔을 일시적으로 강화했다. 짧은 순간 벼락에도 베이지 않는 외공 강도로 검격을 받아치곤, 진각을 내리찍으며 우장(右掌)을 내뻗는다.


콰앙!


둔중하게 울리는 대지. 이어지던 벼락이 잠시나마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태청신공을 일으켰음에도 그에 휩쓸리지 않는다. 첫 일격을 허용해 어깨에 자상을 내준 뒤로는 각정도 청율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소림의 이대제자이자 중원 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기재다.


격차가 단번에 쉬이 따라잡힐 것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청율의 자질과 별개로.


“흐읍!”


내뻗은 우장을 회피했다. 각정이 내리찍은 진각 여파를 회피하기 위해 허공으로 떠오른 청율. 용형보는 사방 공간을 격하는 것에 제약이 없었다. 그것이 허공이라도 그랬다.


‘여기에 운해비영까지 익힌다면.’


그 순간 청율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었다. 그와 함께 백연과의 격차가 문득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 소년이 얼마나 앞서 나가고 있는지.


지금 이 벼락도 그랬다. 같은 간극에 진입한 상태임에도 이전과는 확연한 속도의 차이가 느껴졌다. 찰나지간이지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만큼. 각정의 권법 투로를 쫓아가기에 급급했던 청율은 이제 대등한 시간 속에서 각정과 합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대로.’


청율은 꽃잎처럼 허공에서 휘돌았다. 세갈래의 벼락을 휘감은 채였다. 작열하는 듯이 뜨거워진 상단전이 나아가야 할 투로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허공에 뜬 그대로 청율의 검이 번뜩이며 세갈래 백광을 그려내고, 입매를 굳힌 각정이 마찬가지로 세차례 권격을 내쳐 받아쳤다.


쩌어어엉!


땅을 딛고 있지 않은 청율만 뒤로 날아가야 옳았다. 본래 양 발을 굳건히 디디고도 힘에서 밀려나던 청율이다. 이번에도 분명히 청년의 신형은 뒤로 주욱 뻗어나가며 바닥에 구르듯 착지했다.


“음......!”


그러나 상석의 무인들의 눈에 비친 것은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 찰나지간에 그들은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얽혀든 검격이 권격 경파를 짓이겼고, 터져나온 벼락에 각정이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광경을.


경기 내내 처음이었다. 각정의 걸음이 앞이 아니라 뒤로 물러난 것은.


“느껴져요. 백연이랑도 많이 닮았는데. 청휘라는 분의 의념.”


짧은 순간 세 합을 나누고 그 여파에 몸을 실어 뒤로 물러난 청율이 입꼬리를 올렸다.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산뜻한 즐거움이 들어 있었다.


“이리 위험한 무공을, 모두를 지키려 완성시키고자 했다니.”


그 스스로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했다. 청율은 이미 일하곤륜의 비급을 전부 읽었다. 지금 이 태청신공도 그곳에서부터 뻗어나온 신공. 꼭 청휘와 백연의 의념이 동시에 귓가에 속삭이고 있는 듯 했다.


몸을 아끼지 말고, 전진하라고.


그 뒷감당은 이 무공이 대신할테니.


파아앙!


청율의 가죽신이 경기장을 박찼다. 희끗한 잔상이 전진하며 벼락을 휘둘렀고 웅혼한 광채의 법력 기파가 그것을 막아섰다.


콰앙! 쩌저정!


두 무인의 신형이 수시로 교차한다.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은 주로 청율이었다. 일보에 경기장의 사방을 격하며 움직이는 것이 간합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움직이는 듯 했다. 반면 각정은 굳건하게 가운데에 버티고 선채로 금강불괴의 의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동수인가.”


지켜보던 누군가가 그리 뱉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한 것이었다. 각정과 청율의 합이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쩌어엉!


일보에 오장(五丈:십오미터)의 거리를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격하며 전진해 각정의 좌중간에 벼락같은 검격을 때려박는다. 그러나 각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올려쳐 검면을 후려낸다. 그의 신형이 찰나지간 휘돌며 막대한 경파가 실린 우장을 내려찍는 것도 동시였다.


“아하핫.”


청율의 신형이 이지러졌다. 극한까지 달아오른 상단전이 자령안의 공능과 합쳐져 투로를 예지에 가깝게 예측하고 있었다. 백연이 보는 세상의 편린이었다.


자연스레 몸을 낮추며 각정의 오른팔 아래로 파고든다. 장법 경파를 한끝 차이로 회피하면서다. 각정이 올려친 검을 놓아버리며 허공에서 왼손 역수로 낚아채 바꿔쥐고,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낙안권 경파를 휘감아 강철마냥 단단한 각정의 복부를 후려치며 반동을 몸으로 받는다. 그를 통해 용형보에 역(逆)추진 경파를 덧씌워 단번에 후퇴보법을 전개.


뒤로 물러나며 역수로 쥔 검을 횡격으로 휘둘러 각정의 오른팔을 그어냈다.


파아악!


“......!”


허공을 물들이는 선혈.


청율이 휘두른 왼손 역수검(逆手劍)이 각정의 오른팔 팔뚝에 길다란 자상을 만든 것이었다. 장법을 내뻗느라 채 진기를 두르지 못한 오른팔의 금강불괴가 꿰뚫린 상황. 하지만 점점이 흩어지는 핏물은 각정의 것만이 아니었다.


“시주......!”


후퇴보법으로 단숨에 거리를 벌려선 청율을 보며 각정이 입을 열었다. 그의 탄식섞인 음성에 청율이 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이런.”


손끝에 선명한 핏물이 묻어나왔다. 그의 코와 입에서 흐르는 것이었다. 일전 입은 내상 때문이 아니었다.


“아직은 부담이 심한가보네요.”


점점 상단전이 뜨거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태청신공의 반동을 오롯이 받아내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몸에 가해지는 부하도 상당했다. 얼마나 몸을 더 닦아야 이를 굳건히 버텨낼 수 있을련지.


“괜찮으신겁니까?”

“괜찮습니다. 그리고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지요.”


청율이 웃으며 검을 바꿔쥐었다.


“아이들 앞에서 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미타불. 그리하다 몸을 망치십니다.”

“그 전에 끝내면 될 일입니다.”


감각을 손에 쥐었다. 백연은 자령안이 자신이 감각하는 세상을 안법 구결에 엮어넣은 것이라 말했고, 태청신공에 닿은 지금에서야 그것이 무슨 뜻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제 보인다.


무인으로써 참기 힘든 환희였다. 그 대가로 며칠쯤 앓아눕고 만다 해도 그랬다.


‘며칠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 자리에서 검을 거둘 생각은 없었다.


“가지요.”

“시주께서 그리 원하신다면 어쩔수가 없군요.”


각정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청율이 태청신공을 일으킨 이후부터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던 그의 신형이 찰나지간 소리없이 전진한 것도 동시였다.


쩌엉!


한순간 여름날의 햇살마냥 느릿하게 흩어졌던 각정의 주먹이 청율의 코앞에 나타났다. 직진 권격을 때려박는 속도가 무지막지했다. 금강이라는 별호에는 각정이 극성으로 수련해온 두가지 무공에 대한 경의가 담겨 있었다. 금강불괴와 금강부동신법.


이번에는 후자였다.


그러나 그 권격이 청율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각정의 신형이 흐릿해진 순간 청율은 전진보법을 내딛었던 것이다. 각정이 어디로 걸음을 내딛었는지 보지도 않고서.


뇌광을 휘감은 청년이 권격 간합 안으로 파고들며 왼손 수도(手刀)로 각정의 팔꿈치 안쪽을 후렸다. 미세하게 뒤틀어진 권격 궤적은 사선으로 굉음을 내며 빗나가고, 청율의 검은 위편 사선으로 희끗한 잔상을 남기며 그어졌다.


파아아앙!


뒤늦은 발경력의 여파가 바람을 몰고왔다. 청율의 머리칼과 옷자락이 나풀거리며 일어났다가 느릿하게 가라앉았다.


그 바로 앞.


우권(右拳)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멈춰선 각정이 청율을 내려다보았다. 승려의 눈에는 고통과 함께 경탄의 빛이 어려 있었다.


“예측입니까?”

“아이 하나가 이런 짓을 자주 해대서 말입니다.”

“그가 암화인가보군요.”

“그렇습니다.”

“터무니없이 무모합니다. 제가 왼손을 내뻗었으면 어쩌려 하신건지.”


청율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제 패배였겠지요.”


각정의 품을 파고들듯 가까이 붙은 청율. 위로 검격을 올려친 형태다. 희끗한 빛이 깃든 청율의 검은 각정의 왼팔 상박(上膊) 아래에 깊숙히 틀어박혀 있었다.


도박에 가까운 예측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도박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싸움 속에서 청율은 각정의 투로를 인지했고 받아들였다. 각정이 주로 사용하는 손은 우수(右手)였다. 습관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싸움을 끝낼 일격을 준비한다면 오른손. 금강부동신법의 전진 보법 간합은 태청신공을 꺼내기 이전부터 계속해서 가늠하고 있었다.


그래서 청율은 보지 않고 반응했고, 성공했다.


“......제가 졌습니다. 시주. 많이 배웠습니다.”


다음에는 이리 이길 수 없으리라. 그가 각정의 습관을 파악해 승리한 것은 어느정도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 것이고, 이제부터 그를 상대할 때에는 그에 주의를 기울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소림사 각정 대 곤륜파 청율의 대전은, 청율의 승리로 끝났음을 알리겠소.]


그가 이겼다.


혈맥에 휘돌던 벼락이 느릿하게 가라앉는다. 한껏 달아올랐던 백회도 서서히 잠재워지며 주변의 모든것이 다시 덜 선명하게 인지된다. 감각이 무뎌지고 몸이 수면 아래로 끌어내려지는 느낌. 싸움의 흥분과 태청신공의 흐름이 멈추자 뒤늦게 찾아오는 반동이었다. 온몸이 찢어질듯 아파온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객석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위에서 문득 경기장 안을 향해 바람같이 뛰어내리는 소년의 신형을 보고 청율이 미소를 지었다.


‘저러면 안되는데.’


그러나 더 이상의 생각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검을 거둔 청율이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각정이 침음성을 내며 그를 받아들고, 뒤이어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사숙, 괜찮......!”


사락.


주변을 휘감는 백청색 무복과 백연의 걱정섞인 얼굴을 마지막으로, 청율의 의식은 수면 아래로 침잠했다.



※※※



소란이 휩쓸었다. 사방에 울려퍼지는 목소리들이 요란했다. 각정의 패배가 선언되고, 청율이 정신을 잃으며 쓰러진 후, 곤륜파의 소년이 경기장에 난입하기까지.


관중들은 뒷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전부 하나의 주제에 관한 것이었다.


곤륜파의 이대제자가, 소림사의 금강 각정을 상대로 승리했다.


이변이었다. 지금까지 곤륜파의 모든 행보는 이변이었지만, 이번에는 의미가 아예 달랐다.


“이제 누구도 확신할 수 없겠네요.”


제갈혜가 손을 그러쥐었다. 소가주 제갈천의 옆에 앉은 소녀. 경기장에 눈을 고정한채였다.


“곤륜파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적어도 이번 대회에 한해서는 남궁을 비롯한 몇몇 구파와 세가보다 위라 봐야 옳겠지.”


제갈천이 답했다. 경기장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침착했다.


“너도 조심하거라.”

“지금이라도 수련을 하러 가야 하려나.”

“네가 그리 말할 정도라니,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 보구나.”


제갈혜가 머리칼을 매만졌다. 평소라면 오라버니의 말에 자연스레 반박했을 그녀지만, 이번에는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다음 대진 상대. 곤륜파의 선아라고 했던가. 일전에 예선 경기를 딱 한번 본적이 있다. 화염을 쥐고 흩뿌리는데, 그 축기량이 제갈혜 자신보다도 많은 것 같았다. 쉬이 상대할 수가 없는 적이라는 뜻이었다.


더욱이 방금같은 경기를 보고 난 이후에야.


“암화는 저런 이들보다 몇배나 강한건지 모르겠네요.”


경기장을 빤히 바라보며 제갈혜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스스로가 비무제전에서 우승할 수 있을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탈락할 것이라면 높은곳에서 떨어지고 싶었다. 암화와 만나면 더 좋지 않을지.


“그 검을 한번 받아보면......”

“제갈혜.”

“에헤헷.”


금새 철없는 웃음을 흘리는 제갈혜에 한숨을 흘린 제갈천이 경기장을 응시했다.


직전 보았던 경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패에 집착하겠지. 하지만 제갈천은 조금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곤륜파의 청율이라고 했던가. 저자가 백연만이 사용하던 벼락을 선보인 것도 놀라웠으나,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청율이 각정과의 싸움에서 보여준 전법. 그 속에서 제갈천은 언뜻 커다란 판세를 이끌고 가는 계획성을 보았다. 다시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는 청율의 흐름대로 흘러갔다는 소리다.


부러 벼락을 늦게 꺼낸것 부터, 마지막에 보여준 금강부동신법을 파훼하는 한수까지.


‘제갈세가의 사람을 보는 듯도 하군.’


곤륜파의 청율.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다. 주의해둘만 했다.


어쩌면 나중에 제갈천 자신과도 붙을지 모르는 일이니.



※※※



돌풍은 끊어지지 않았다. 청율 이후로 같은날 곤륜파는 두 번의 경기를 더 치뤘다.


단휘와 연청의 경기였다.


단휘는 제갈세가의 방계를 만나 스무합 정도를 겨룬뒤에 승리했다. 연청은 공동파의 삼대제자를 맞이했는데, 거의 오십여합을 겨룬 뒤에야 승부가 났다.


아주 쉬웠다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청율만큼 고전하지도 않았다.


허나 세간에 남은 것은 하나였다.


곤륜파의 본선 첫날 전승.


그리고 그것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청율이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금강 각정을 첫 경기에서 꺾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백연은 그다지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사숙.”

“아하하.”

“......웃지만 말고요. 좀.”


저녁이었다. 곤륜파의 전각 안쪽. 침상에 바로누운 청율이 파리한 안색으로 백연을 응시했다. 그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얄미워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대체 언제 익힌거에요?”

“백연이 신강에서 돌아온 이후 줄곧 익히고 있었어요. 사용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백연이 한숨을 뱉었다.


천만다행으로 청율의 상태는 심각하지 않았다. 그가 태청신공을 사용한 시간이 극히 짧았고, 또 청율의 신체가 꽤나 잘 연마가 되어있던 까닭이었다.


각정과의 싸움으로 인한 약간의 내상. 그리고 태청신공으로 인한 전신 경혈에 걸린 약간의 과부하.


사흘정도 가만히 운기요상을 하고 적절히 약을 먹으면 나을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에도 또 쓸거에요?”

“필요하다면요.”


웃으며 답하는 청율이 문제였다. 그 속에서 확고한 의지를 읽은 백연은 재차 한숨을 뱉었다.


이미 자신의 사숙은 태청신공에 대한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장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감에도.


“그리고 백연, 들어봐요. 전신 경혈에 걸리는 과부하가 문제인데, 결국 그것은 너무 막대한 힘을 체내에서 회전시키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하나 해결책을 생각해봤어요.”

“뭡니까.”

“그 막대한 내공 진기를 호신기의 형태로 상시 발출시키면, 체내에 걸리는 부하를 낮출 수 있지 않을까요?”

“......그 호신기는 누가 만듭니까?”

“그야.”


청율이 생긋 웃었다.


“백연이죠.”

“하하......”


백연이 이마를 짚었다. 원래 이 정도로 뻔뻔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왠지 날이 갈수록 그의 주변 사람들은 능글맞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문제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금새 털어버린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청율의 말은 합리적인 해결책이었고, 백연이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의 접근이었으니까.


‘그렇잖아도 호신기나 호신강기는 만들려 했고.’


내공으로 된 갑옷. 일전 곤륜산에서 선아의 일을 돕다가 그 발상과 단초를 얻었다. 아직 그에 맞춰 엮어낼 계기나 재료가 부족했기에 놔두고 있었지만, 근시일내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여하튼 몸에 너무 무리가 가면 안돼요. 이번에는 그나마 반동이 약했지만, 다음에는 위험합니다.”

“반각(半刻:칠~팔분) 정도면 몸에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것 같은데요.”

“......제가 실험 좀 해보고요.”

“그래요. 백연도 푹 쉬고요.”


가만히 미소짓는 청율을 뒤로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본선의 첫날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소년이 바깥으로 걸어나가려던 그때.


“암화 백연, 계시오?”


웅성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의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들. 바깥에서 수많은 인기척을 느낀 백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걸어나갔다.


바깥에는 사형들이 수련을 하다 말고 전각의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백연은 쉬고 있습니다. 돌아가시지요.”

“무림의 신성과 대련 한번 해보고자 왔는데 이리 야박하시오.”

“안됩니다.”

“거, 본인이 나와서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음? 저기, 암화다!”


전각의 앞. 십수명 이상 모여든 무인들이 보였다. 그들이 백연을 보고는 반색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천천히 다가간 백연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 사람들이 너랑 대련을 신청하고 싶어서 왔다고 하는데, 거절했는데도 들어먹질 않는다.”


무진의 답이었다. 그에 화답하듯 맨 앞에 서 있던 검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화 백연. 소문을 익히 들었소. 그 검을 한번 받아볼 수 있다면 영광이겠소이다.”

“지금 말입니까?”

“당연하지! 이때가 아니면 또 기회가 언제 있겠소. 나 하나만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눈을 깜박인 백연이 모여든 사람들을 천천히 훑었다.


이게 전부 그와 대련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가.


‘이상한데.’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구파와 오대세가의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백연이 알아볼 수 있는 문파의 사람들은 아니라는 소리. 허리에 걸치고 있는 검은 하나같이 허름했고, 얼굴은 거칠었다.


비스듬히 검을 매고 있었는데, 그 형태가 단숨에 뽑아 적을 찌르기 좋은 자세였다. 언제나 정갈하게 검을 차고 다니는 정파의 후기지수들과는 달랐다.


그 모습은 마치, 검귀와 비슷했다.


칼밥을 업으로 먹고 사는 낭인 검객들.


백연이 그들의 눈을 마주쳤다. 소년의 입꼬리가 서서히 비틀렸다.


“대련을 하고자 하는겁니까? 지금 당장?”

“그렇소.”

“당신들 전부?”

“뭐, 모두 비슷한 이유로 모였겠지 않겠소.”


백연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의 머릿속에 당소하의 음성이 스쳤다.


‘수작을 부린다 하더니.’


겨우 이런 것이었나. 간만에 검귀의 시절이 기억나려고 했다. 그때도 낭인 검객들 수십, 수백을 연이어 상대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익숙한 분위기를 맞이할 줄이야.


백연이 한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검파에 손을 올리면서였다.


“그럼 가지요.”

“......호오?”

“대련을 하러.”


백연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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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휴식(3) +6 24.05.30 1,961 52 16쪽
273 휴식(2) +6 24.05.29 1,965 60 17쪽
272 휴식 +9 24.05.28 1,996 63 16쪽
271 검흔(3) +7 24.05.27 2,053 60 16쪽
270 검흔(2) +8 24.05.24 2,172 67 20쪽
269 검흔 +9 24.05.23 2,072 64 15쪽
268 천라방(2) +6 24.05.22 2,098 59 16쪽
267 천라방 +6 24.05.21 2,072 61 15쪽
266 천독(3) +7 24.05.20 2,024 62 15쪽
265 천독(2) +7 24.05.18 2,172 58 18쪽
264 천독 +7 24.05.17 2,043 64 15쪽
263 무극(無極)(3) +10 24.05.16 2,079 64 19쪽
262 무극(無極)(2) +6 24.05.15 2,102 62 22쪽
261 무극(無極) +10 24.05.14 2,102 65 20쪽
260 권마(拳魔)(5) +8 24.05.13 2,106 61 17쪽
259 권마(拳魔)(4) +9 24.05.11 2,189 63 18쪽
258 권마(拳魔)(3) +8 24.05.10 2,034 63 15쪽
257 권마(拳魔)(2) +6 24.05.09 2,067 60 16쪽
256 권마(拳魔) +6 24.05.08 2,151 64 16쪽
255 서주(4) +6 24.05.07 2,174 64 16쪽
254 서주(3) +7 24.05.06 2,147 65 14쪽
253 서주(2) +7 24.05.03 2,470 66 17쪽
252 서주 +7 24.05.02 2,405 64 17쪽
251 푸른 별(9) +7 24.05.01 2,218 6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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