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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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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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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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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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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암야서고

DUMMY

예상외로 반응은 즉각적이지 않았다.

종남파와 화산파의 무인들이 마음에 명경지수를 새기는 도인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지금 뭐라 한 것이오?”


다만, 그들이 결코 들을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말을 접해서인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참으로 드높고 찬란한 구파의 무맥들이 부딪히니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하였습니다만.”

“기초부터 배우라......?”

“처참하다 한 것 같습니다만, 사형.”


종남과 화산의 무인들이 저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마디씩 덧붙이는 것도 잠시. 이윽고 그들이 내뿜는 기세가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방금 그 말......진심이시오?”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듯이 허리춤에 손을 올린 종남파의 검객이 눈을 부라렸다.

그 모습을 보며 백연은 속으로 감탄했다.


‘정파는 정파네.’


당장 칼부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저들은 놀라울 정도의 자제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정파라 할 만 했다. 출수할 것 처럼 손을 올려놓고는 있었으나, 아직 출수한 건 아니니까.


그때 그들 사이에서 좀 더 키 큰 무인이 걸어나왔다. 주변 이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무복. 화산파의 검객이었다. 유려하게 뻗은 눈매가 인상적이었는데, 실로 쾌남의 상이었다.


그가 눈매를 가벼이 늘어뜨리며 말했다.


“낭인 검객으로 보이는데. 분위기에 취해 실언을 한 것이라고 말하면 한번은 곱게 넘어가드리리다.”


백연은 눈을 깜빡였다.


‘군자다.’


실로 군자였다. 수백은 족히 되어보이는 관중 앞에서 정체모를 검객 하나가 종남과 화산의 무인 둘을 동시에 싸잡아 처참하다 평했음에도 저리 나오다니. 그야말로 명문 정파의 기상이 아닐 수가 없었다.

때문에 백연은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실언이라 말하려 했다.


“진심인데요.”


......정말로 그러려고 했었다.

입이 먼저 나서서 움직였을 뿐.


“진각을 내딛는 다리, 걸음에 실린 힘이 전부 약합니다. 기초적인 외공 수련이 부족해 무게 중심이 흔들리고 그로 인해 연격에 담긴 파괴력이 부족해지죠. 허공에 휘두르는 칼질은 화려하기 그지없으나 형(形)만을 따라한다고 그것이 검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멋모르고 휘두르는 검이 검법이 아니듯.”

“뭐, 뭐라고?”

“한 초식에 실린 변초와 허초가 더없이 많아 마치 화려한 검무를 보는 듯 한데, 정작 실속은 바닥입니다. 살기가 제대로 실려있지 않아 허초가 전부 눈에 보이는데 많이 섞으면 뭐합니까. 손 여러번 휘두르는 광대 놀음이나 다름없는 일인데.”


빠르게 쏟아져 나오는 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당황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백연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방어초를 펼치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세를 받아낼수록 균형이 흔들리는 것이 눈에 보이던데, 본디 그런 검법이 아닐텐데요. 막아낸다라는 전제에 집중해 본인 스스로의 몸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이은 방어초로 일관할때 상대의 검을 받아내며 충격이 몸에 점차 누적되더군요. 본디 그 검법은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기 보단 물 흐르듯 흘려내는 절세의 방어 검법 같은데. 기본적인 요체부터 틀려먹었습니다.”

“뚫린 입이라고......!”

“하니, 누가 승리했는지 가릴 만큼 가치있는 비무가 아니군요. 두분 다 기초가 무너져 있으니. 그럼에도 굳이 끝까지 갔다고 가정하면 내력이 많은 사람이 이겼을 것입니다. 서로의 공세와 방어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리하겠지요.”


말을 마친 백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각양각색의 표정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부 말해 버렸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하다보니 생각했던 것이 줄줄 흘러나왔다. 사형들과 수련할때 자주 이래서 그런가. 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드높은 구파의 검이건만 그것을 다루는 무인의 경지가 너무 처참했다.


‘삼대 제자쯤 되어 보이는데.’


저런식으로 무공의 겉모습에만 집착해 수련한다면 당장은 뛰어나보일지 모른다. 허나 오 년, 십 년 뒤 실제 적과 칼을 맞대기 시작했을때 그런것은 의미가 없다. 전장에서는 모든게 찰나에 목숨을 가르니까. 허초 하나에 살기를 정확히 싣느냐 못 싣느냐. 내딛는 진각을 다리의 근력이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 이러한 기초적이고 사소한 것들로 살아남고, 죽는다.


그리고 백연은 그 속에서 언제나 살아남는 쪽이었다. 한번을 제외하면.


“이상이 물으신 제 의견입니다.”


그 순간. 앞으로 걸어나왔던 키 큰 화산 검객의 신형이 길쭉하게 늘어났다.

절세 보법이었다. 일순 허공에 은은한 향기가 확 번지는 듯 했다. 전조 증상 없이 공간을 격하듯 백연의 코앞에 나타난 검객. 동시에 출수가 이뤄젔다. 극히 쾌속했다. 모두가 잠시나마 백연의 몸이 반으로 잘려나갔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파앙!


허공에서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주변으로 기파가 터져나왔다. 충돌로 인한 반발이었다. 기파가 돌풍처럼 일며 사방을 휩쓸었다. 갑작스런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던 관중들이 이윽고 눈을 떴을때, 그들의 눈에 비친것은 손을 뻗은 백연의 모습이었다.


“정파의 도인께서 다짜고짜 사람을 벨 작정입니까?”


찰나에 베였다고 착각이 들 정도로 쾌속한 접근과 발검.

허나 그들의 시야에 담긴 것은 아직 검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검과, 그 손잡이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하얀 손이었다.


검이 채 뽑혀나오기도 전에 백연이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


“화산파의 검객이 서안 한 가운데에서 피를 보는건 좋은 일은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러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시선을 들어 검객의 얼굴을 봤을때, 백연은 그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자세히 보니, 그의 눈은 자신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


당황섞인 목소리.

그제서야 백연은 자신의 시야가 어느새 탁 트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쓰고 있던 삿갓이 기파의 충돌에 날아간 탓이었다.


얼굴이 눈에 띈다고 사형들이 극구 씌워주길래 쓰고 나온 것이었는데.


주변에서도 당황하는 기색들이 느껴졌다. 아래 감춰져 있던 얼굴이 너무 어렸던 탓일까.

기습적으로 공격하려 했던 화산의 검객도 잔뜩 난처한 표정이었다.


“......미안하오. 베려던 것은 아니었고, 순간 욱해서 실력을 확인해보려고 한 것인데.”


한걸음 물러난 검객이 복잡한 얼굴로 포권했다.


“실수했소.”

“괜찮습니다.”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방금 일격이 들어올때 느끼고 있었다. 움직임에 살기가 옅었다. 때문에 눈앞의 검객이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았다. 발검으로 위협을 좀 주어 체면을 살려보려 한 것이었겠지.


‘역효과가 나버렸지만.’


본능적으로 반응해 발검 자체를 못하게 막아버린 움직임. 지금 그를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종남파와 화산파의 무인들도 방금의 짧은 경합으로 인해 그가 그저 삼류 무인은 아님을 알게 된 눈치였다.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한발 앞선 움직임으로 막아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그 상대가 화산파의 검객이면 더욱 그렇다.


“이름을 물어도 되겠소?”

“백연이라 합니다.”

“좋은 이름이군. 본도는 화산의 이대 제자로, 진무라 하오.”


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상대방의 시선에 담긴 눈빛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뒤편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그의 움직임과 얼굴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뭐지.’


묘한 분위기에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보아하니 꽤 어린 것 같은데.”

“어립니다.”


가감없는 사실. 팔영이 진찰하며 확인해준 것이니 맞을터다. 열댓이나 되었을까. 스스로도 스스로의 나이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얼추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연배를 보니 딱 우리 화산파의 삼대 제자 배분에 걸맞은 나이인데. 무공을 상당히 익히신 듯 싶구려.”

“조금 익혔습니다.”

“구파의 일원은 아닌 듯 싶은데, 세가의 자제시오?”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 진무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하면, 혹 화산의 객으로 모셔도 되겠소?”

“잠깐!”


그에 대답한 것은 백연이 아니라, 뒤편에 있던 다른 사람이었다. 백의의 무복을 입은 종남파 검객들. 그들 중 한명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왔다.


“욕심이 많군, 진무.”

“무슨 소리요. 내가 출수한 것이 죄송한 터라 화산의 객으로 초대해 모시려 한 것인데.”

“객은 무슨. 나이에 비해 출중한 재능이 탐나는 것이겠지.”

“화산의 뜻을 곡해하지 마시오. 송하.”


송하라 불린 검객이 픽 웃었다.


“곡해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재능있는 아이라면 눈이 벌게져서 돌아가놓고. 검룡으로 충분하지 않은 것인가?”

“그러는 당신도 마찬가지로 보이는데.”

“당연하지.”


당당한 표정. 이윽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가 물어왔다.


“백연이라고 했나? 저놈처럼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묻겠다. 혹 종남의 검에 들어설 생각이 있나? 있다면 내 즉시 장로께 말씀 드릴 수 있다.”

“예의가 아니오. 본파에서 먼저 초대 요청을 했건만.”

“아직 수락한 것은 아니지 않나.”


말다툼을 벌이는 진무와 송하. 그 모습이 퍽 우스웠다. 동시에 약간은 어이가 없기도 했다.


구파의 재능에 대한 집착. 강하다곤 들었는데 생각 이상이었다. 방금 전 잠깐 보여준 한합을 가지고 이렇게 달려들 줄이야. 더해 그의 어린 외양도 한몫 했을터. 직전까지 그를 향해 뿌려대던 적대적인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러고 있는 꼴이 재밌었다.


한편 진무와 송하를 제외한 나머지 검객들의 시선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의 혼란과 선망, 그리고 조금의 적대감이 섞인 눈빛들. 특히 그가 오기 전 비무를 벌이고 있던 두 사람의 시선은 강렬한 적대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둘만 이대제자인가 보군.’


나머지는 훨씬 어려보였다. 약관 언저리의 나이 정도. 보아하니 진무와 송하가 그들을 인솔하여 이동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까 무공의 차이도 그렇고.’


백연이 지적했던 둘과는 달리, 진무의 출수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특히 보법은 뛰어나다 평할 만 했다.


아마 진무가 사용한 것이 화산의 절세 보법으로 유명한 암향표일터. 전방위로 공간을 격하듯 움직이는 신묘한 걸음이 특징이라 들었는데, 확실히 그랬다. 전조 증상이 보이지 않고 걸음을 내딛는다는 느낌이 없었다. 간합을 뛰어넘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배울 것이 많았다. 방금 전 보았던 한 걸음이 그의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새로운 걸음에 대한 느낌을 잡을 수 있을 듯 했다.


‘전방위를 점하는 보법.’


공세와 수세에 있어 더없이 유용할 터이다. 곤륜의 무공에 담아낼 수만 있다면.


“하여, 어디로 가시겠소?”

“선택은 자유다.”


그때, 여태껏 말다툼을 나누던 두 사람이 백연에게 물어왔다.

백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저들끼리 지금껏 다투고 있었다니. 그나저나 어떻게 답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적어도 명분 상으로는 초대였다. 구파의 자존심은 드높다. 무공을 평한것 마냥 거절하면 적대감을 살 가능성도 있었다.


그때.


“여기서 무엇하고 있나.”


후욱. 일순 발치의 그림자가 부풀어 오르듯 일렁였다. 그에 얼굴을 굳힌 진무와 송하가 재빨리 물러서며 검을 뽑아들고.


“온다길래 기다리고 있었더니.”


다음 순간 백연의 옆에 큰 키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만 장포를 걸친 무인. 냉막한 인상과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산, 종남. 많이도 몰려 다니는군.”

“하오문?”

“무슨 일로......!”

“손님이 안오길래 찾아나선 참이다. 이런 곳에서 붙잡혀 있었을 줄은 몰랐군.”


흑랑이 백연을 힐끗 쳐다봤다.


“방주 대리?”

“저들에게 볼일이 있나.”

“그런 건 딱히 없는데요.”


무공 견식을 제외한다면. 어깨를 으쓱인 백연이 반가운 기색으로 흑랑을 바라보았다.


“데리러 나온 겁니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위치까지 알려줬는데 안오니. 더 볼일 없으면 이만 가도록 하지. 성화방주(星火幇主)가 기다리고 있다.”

“자, 잠깐만!”


진무였다. 그가 다급한 기색으로 물어왔다.


“공자는 하오문의 사람이오?”


그에 답한것은 흑랑이었다. 그가 비웃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아니.”

“허면, 무슨......”

“하오문이었으면 좋았을테지만. 아쉽게도 내가 초대한 손님이다.”


그에 진무가 입을 벌렸다. 송하도 마찬가지였다. 흑랑, 하오문의 그림자를 다루는 무인은 그들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성정도 얼추 알고 있었다. 헌데 그가 손님이라 칭하는 인물이라니.


“그러니 눈독 들이지 말도록.”

“어, 어. 잠깐만......!”


그 말과 함께 백연의 팔을 낚아챈 흑랑이 기운을 일으켰다. 백연이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으나 그것도 잠시. 이내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둘을 집어삼키듯 훅 움직였다. 직후 그림자가 걷혔을때,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낡은 삿갓 하나 뿐이었다.


“......허어.”


진무가 허탈한 목소리를 내었다. 송하도 허탈한 표정이긴 마찬가지였다.


“그 하오문의 흑랑이 직접 초대한 손님이라니.”

“저 아이가?”

“내 발검을 막는 순간 범상치 않은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도 더 뛰어난 소년인 것 같소.”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

허망한 눈길만이 백연이 있던 자리를 뒤쫓을 뿐이었다.



※※※



후욱.


거친 바람 소리가 귀를 스쳤다. 순식간에 늘어난 주변 풍경이 그림자와 뒤섞여 훅훅 지나갔다. 보신경과 공수까지 전부 망라하는 절세의 신공.


‘월영신공.’


언젠가 꼭 파헤쳐 보겠다는 일념이 더욱 강해진다. 이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탐나는 무공이 아닐수가 없다.


“도착이다.”


이윽고 주변의 풍경이 멈춰서고, 낯선 전각들의 한복판에 떨어진 흑랑이 백연을 내려주었다. 반쯤 들쳐엎다시피 백연을 들고 온 흑랑.


“다음부턴 미리 말좀 하고 움직여 주시죠.”

“그때가 되면 이미 네가 경공을 만들었을 듯 싶은데.”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그를 힐끗한 흑랑이 픽 웃으며 전각 안으로 걸음한다. 사방에 깔려있는 기척이 한둘이 아니었다. 꽤나 커다란 영역을 점유하고 있는 하오문의 서안 지부. 하지만 백연은 외부에서 이런 건물을 본 적이 없었다. 환술로 보호되고 있다고 했던가.


‘구파쯤 되면 위치를 알겠지만.’


일차적으로 잡다한 적을 걸러내기에는 충분한 정도일터. 설령 구파라 해도 뚫어내고 들어오려면 나름의 심력을 소모해야 할 듯 싶었다.


“데려왔다.”

“야, 야. 내가 내 술법진 안에서 그 신공 쓰지 말라고 했지. 정문 떡하니 있는데 왜 자꾸 그림자로 파고 들어오는건데!”


앳된 목소리. 전각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에 흑랑이 코웃음치며 답했다.


“귀찮다.”

“너 때문에 또 수정해야 하잖아.”

“네 능력이면 손짓 한두번으로 될 일 아닌가?”

“그 손짓 한 두번에 얼마나 많은 묘리가 중첩되어 있는줄 알아? 이래서 싸움쟁이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걸어나오는 인영.

작은 키와 체구였다. 길다란 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발밑으로 길다란 소매 자락이 질질 끌리는 것이 어른의 것을 훔쳐 입은듯 보일 정도였다. 부스스한 머리칼과 졸린 눈이 인상적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소홍 사형과 비슷하다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작은 체구였다. 정말로 열 살도 안된 어린아이의 몸이라고 보일 정도로.


터벅터벅 걸어온 그 꼬마가 백연을 올려다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말한 애가 얘야?”

“그렇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눈을 연신 깜빡이며 백연을 관찰하는 꼬마. 그에 지켜보던 흑랑이 끼어들었다.


“그만 쳐다보고, 우선 통성명부터 하는게 어떤지.”

“아 맞아, 그렇지.”


꼬마가 손을 척 내밀며 미소지었다.


“나는 성화방(星火幇)의 방주를 맡고 있는 성화방주이자, 암야서고의 관리자. 하령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백연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답하며 백연은 속으로 놀람을 감추었다. 흑랑의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하긴 했지만, 눈 앞의 꼬마가 정말로 성화방주였을 줄이야. 하오문주 아래 일곱 방. 그 방을 맡고 있는 일곱 방주들중 일각. 구파의 장로들과 비교해도 더 위에 놓아야 할 강자가 이런 어린 아이의 모습이라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 네가 암야서고에 들어가고자 하는 녀석이구나.”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령이 싱긋 웃었다. 언뜻 짖궂은 빛이 그의 눈동자에 스쳤다.


“그럼 지금부터, 한번 관리자의 이름으로 자격 시험을 시작해볼까?”

“네?”

“뭐? 하령. 이런 말은 없었......”

“준비하시고......하나, 둘. 시작!”


당황한 흑랑의 목소리가 끼어들기 직전. 하령의 손가에서 환한 빛이 일었다. 일순 피부를 타고 느껴지는 강대한 기파. 동시에 시야가 하얀 빛으로 명멸하며 사방이 희게 뒤덮였다.


언뜻 귓가를 타고 수천장의 종이가 날리는 듯한 소리가 느껴지고.


다음 순간 백연이 서 있는 곳은 황량한 눈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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