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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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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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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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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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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엮어내다(3)

DUMMY

공기가 찼다.

가면 사이로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새벽까지 다녀올 수 있으련지.’


아마 어렵겠지.

여의치 않으면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백연은 개의치 않았다. 해야 할 일은 바로 처리해야 한다.

내려가는 김에 최대한 많은 일을 정리하고 올 생각이었다.


‘저쪽이지.’


곤륜파의 정문이 있는 방향. 그가 올라왔던 후문과는 반대의 위치였다.

절벽이 아닌 제대로 된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욕설을 뱉을뻔 했었다.


검을 들어올린 그가 가볍게 힘을 줘 검을 반쯤 뽑아내었다.

달빛에 반사되는 검날이 창백했다. 여전히 예리하기 그지없는 자태였다.

아직까지 이 검을 끝까지 뽑아들 일은 한번도 없었다.


‘어쩌면 오늘.’


속으로 중얼거린 백연이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거기서 뭐해.”


부스슥.

운향관 앞의 나무가 흔들리더니 위에서 한 인영이 툭 떨어져 내렸다.

항상 졸려보이는 눈이 백연을 지그시 응시했다.


소홍이었다.


“사형, 안자고 뭐 하는거야?”

“너는.”

“나는 다녀올 데가 좀 있어서.”


소홍이 백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졸린 눈을 한 사형의 표정은 읽기가 어려운 편이었다.


‘첫날 그때도 안보였는데.’


자신의 검을 뺏으려 들던 무리에 없었다. 애초에 그런 일에 낄 성격이 아닌 듯 했다.

그럼에도 지금 이곳에 나와있다.

그가 움직일 것을 예상하고 있었겠지.


‘뭐하는 사람인지.’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별안간 소홍이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이 가.”


백연은 생각에 잠겼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래.”

“안된다고 해도. 따라갈......응?”


소홍이 눈을 깜빡였다.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된다고?”

“응. 같이 가자고.”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홍 사형은 안들키고 움직일 수 있잖아.”

“......어떻게?”


어떻게 알았냐는 물음이었다.


백연은 소홍을 위아래로 훑었다.

자신과 비슷한 키의 사형.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뭘 할 수 있는지는 대충 보였다.


“걸음이 조용하고, 호흡이 옅고, 참을성이 좋은데. 살수의 기본 아닌가.”

“......”

“그냥 딱 보면 아는거 아니야? 물론 어쩌다가 살수 훈련을 받은 사람이 여기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 이상해.”


소홍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몰랐는데,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면을 고쳐쓴 백연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래서, 갈거야?”

“응.”

“왜 따라가려고 하는거야? 위험한건 알지?”

“내가 사형이야.”


단호한 대답에 백연은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럼.”


백연의 시선이 산 아래를 향했다.


곤륜의 사방이 위험한 것들 투성이었다.

청해의 한 가운데에 뚝 떨어져 고립된 문파.

산 아래로 내려가면 사파의 영역이다.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곤륜의 방파제를 만들어야 한다.


‘하오문.’


그들은 아직 그가 알던 하오문과 같을까.


‘그래야만 해.’


수많은 고민과 생각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출발하자.”


소홍이 고개를 끄덕이고, 두 소년은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 가면은 왜?”

“멋있잖아.”

“......조잡해.”

“사형.”

“미안.”



※※※



산 아래의 밤은 화려했다.

줄줄이 늘어선 가게와 번쩍이는 불빛들.

곳곳에 자리한 기루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와 음악소리. 이곳저곳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과 험악한 눈매를 부라리며 검을 쥐고 다니는 사파 검객들까지.


별세계였다.


“도시가 엄청 크네.”


그 말 그대로였다.

곤륜산의 아래에 자리잡은 것은 마을 수준이 아니었다. 도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크기.

옆에서 따라 걷던 소홍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녕 다음.”


청해에서 가장 큰 도시가 서녕이다. 이곳이 서녕 다음으로 크다는 말.

이 도시에 얼마나 많은 세력과 재물이 몰려들었는지 대충 봐도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이름이 뭐야?”

“......옥수(玉樹).”

“특이한 도시 이름이네.”

“나쁜 뜻.”


그렇게 말하는 소홍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져 있었다.

백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옥수. 옥으로 된 나무라.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그러다 문득, 어떤 모습이 백연의 눈을 스쳤다.

그제서야 머릿속에 수(樹)라는 글자에는 다른 뜻도 존재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사형 말이 맞네. 도시 이름부터 썩었어.”


덜거덕 거리며 도시 중앙을 스쳐가는 수레.

천으로 덮여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쪽에는 철창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분명히 어린 아이였다.


“옥을 키워내는 거였군.”


옥이라는 글자. 뛰어난 외모의 사람을 일컬을때도 있다.

그것을 직접 길러낸다니.


백연의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도시는, 사람을 길러 사고파는 도시였던 것이다.


“사제.”


소홍의 부름에 백연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언젠가 이곳도 정리 해버릴 생각이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소홍과 백연은 왁자지껄한 옥수의 거리 사이로 섞여들었다.


“사형, 이 도시에 대해서 잘 알아?”

“응.”

“조금만 설명해줄 수 있어?”


소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부터 저기, 만금장. 저쪽은 하오문.”


소홍의 손이 휙휙 움직이며 주루와 전각들을 가리켰다.


“가장 큰 주루. 하오문. 그런데 위험해.”

“왜?”

“만금장 때문에.”


아하.

소홍이 짚어준 전각들을 확인하며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홍의 설명대로였다.

대로와 커다란 호수 주변을 따라 늘어선 기루들.

다 비슷해 보였지만 조금씩 차이가 존재했다. 홍등이 걸린 기루들. 주로 만금장의 것이었다.

하오문의 건물은 조금 달랐다. 작은 음식점부터 화려한 주루까지. 홍등도 거의 걸려있지 않았다.


개 중 가장 커다란 주루는 옥수의 중앙이라 할만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위로 층층이 쌓아 올라간 건물이 가히 거대하다 할만 했다.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목소리들이 끊이지를 않았다.


“저길 만금장이 노리는거야?”

“응.”


두 사파 조직간의 세력 다툼.

아직까지 전체적인 크기는 하오문이 밀리지는 않아 보였으나, 만금장도 만만치 않은 덩치였다.


‘오히려 세월을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데.’


개방만큼 오래된 세력이다.

백여년도 안된 상회에 밀리는 것 부터가 비정상적이다.


‘하오문이 검을 사들이고 있다더니.’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옥수 전체에 피바람이 부는 일도 있을 법 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당연히 곤륜파에까지 미칠 수 밖에 없다.


“우선은 하오문을 만나야겠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었다.

하오문과의 관계를 트는 것.


“돈 있어?”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한푼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게.”


백연이 소홍을 보고 싱긋 웃다가, 이내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돈은 없는데,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있거든.”

“아하.”

“그럼 어디 보자......저기로 가볼까.”


천천히 거리를 따라 걷던 백연이 걸음을 틀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구석진 자리에 있는 작은 객잔이었다.

주변의 다른 가게와 달리, 유난히 사람이 없는 모습.


그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백연이 객잔 안을 향해 외쳤다.


“계십니까?”


외치고 기다리길 잠시, 안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뉘시오?”

“객입니다. 장사 안하십니까?”

“허어.”


이윽고 객잔 안쪽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노인이 가면을 쓴 백연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시오. 별건 없소만.”


가게 안은 작았다. 기껏해야 열댓명이 들어오면 꽉 차버릴까.

그런데 그마저도 구석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점소이 하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자리에 앉은 백연이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볍게 쓸었다.

먼지가 묻어나왔다.


곁에 앉은 소홍이 백연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사제, 여기 아닌데.”

“응? 뭐가 아니야.”

“하오문. 저기.”


소홍이 커다란 주루를 가리켰다.

하지만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저기도 맞는데, 여기도 맞아.”


그때 부엌에 들어갔던 노인이 다시 나왔다.


“무엇을 시키겠소?”

“오향장육(五香醬肉), 금사연와(金絲燕窩), 그리고 여아홍(女兒紅)에 천일취(千日醉) 각 한병씩.”


노인이 백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건 없소.”

“없습니까? 허어.”

“이런 작은 객잔에 바라는게 많구려.”

“작은 객잔이어서가 아니라, 무영방(無影幫)의 사람이라 요리를 못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리오?”

“위장을 하려면 정리도 좀 하고, 객잔인 척은 해야할 것 아닙니까. 이리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손님 한명도 없으니.”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군. 제대로 된 주문을 할 생각이 없으면 나가시오.”

“지금도 대놓고 장사할 생각이 없잖습니까. 그리고......”


말하면서 백연의 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동시에 그의 옆에 놓여있던 젓가락 한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직후.


푸욱.


뒤편에서 피륙음과 함께 낮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백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그 소매 속에 숨겨놓은 거, 꺼내지 말아 주시지요. 하오문의 그림자랑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노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의 가면 쓴 사람을 살폈다.

잠자는 척 하던 점소이의 손등을 꿰뚫은 젓가락은, 언제 움직였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노인 또한 나름의 실력자였음에도.


“......그럼 왜 이곳에 와서 도발을 하는거요?”

“하오문을 만나야 하는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 저기 주루로 찾아가면 되지 않소? 무영방을 아는 이가 하오문을 만나는 법을 모를 리도 없고.”

“팔려는게, 비싼거라.”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주루에는 말단들 뿐이라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뻔히 아는데 말입니다.”

“급하신가 보군.”

“싫으면 만금장에 팔면 그만입니다.”

“......얘기해 보시오.”


백연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들을 급이 아닙니다.”

“허허. 얼마나 비싼 것을 들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혹 가치가 낮을 경우 각오해야 할 거요. 무영방은 그리 한가한......”

“신교대전. 무영방주. 월영비도.”

“......!”


그때까지 무표정에 가깝던 노인의 얼굴이 즉시 경악으로 물들었다.

손을 바르르 떤 노인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일명아, 나가라. 네가 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그에 아직까지도 앉아 끙끙대던 점소이가 젓가락을 뽑아내고는 객잔에서 나갔다.

객잔의 문이 닫히고, 조용해지자 노인이 숨을 깊게 내쉬었다.


“정말이오?”

“그럼 거짓이겠습니까. 죽고 싶어 환장한 것도 아닌데.”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즉시 방주 대리를 불러오리다.”

“방주 대리? 그런이가 지금 이 도시에 와 있습니까?”


이번에는 백연이 조금 놀랄 차례였다.

높은 사람을 부르라 했을때 방주 대리 정도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허나 놀란것과 별개로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그렇소. 현 세태가 흉흉해서. 조금만 기다려주시오.”


노인이 서둘러 객잔을 떠나고, 그때까지 조용히 앉아있던 소홍이 백연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얘기?”

“아, 비싼 정보를 팔겠다고 한거야.”

“그건 알아. 무슨 정보?”

“저들이 잃어버린, 아주 중요한 물건의 위치.”

“......어떻게 알아?”


그런걸 네가 어떻게 아냐는 물음이었다.

그에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니까.”


소홍이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백연.”

“응?”

“재수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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