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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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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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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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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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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사제(2)

DUMMY

다음 날 새벽.


운향관 앞에는 세 명의 인영이 모여 손을 비비며 떨고 있었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아침의 바람은 차가웠다. 완연한 봄날임에도 입김이 새어나올 만큼.

곤륜산이 지나치게 높은 탓도 있었다.


“......무진 사형. 이거 맞습니까?”

“낸들 어떻게 아냐. 나오라니까 나온거지.”

“어으, 추워 죽겠는데 아침부터.”

“단휘야. 너 어제 몇대 처맞았냐.”

“스무 대 정도......?”


무진이 고개를 홱 돌렸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단휘였다.

확실히 얼굴이나 몸태가 멀쩡한 것이 그다지 많이 맞지 않은 듯 했다.


“셀 수 있을 정도로 처맞으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는거다 이놈아.”

“아하하.”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라. 난 책임 못져.”


그만큼 작은 소년의 주먹은 무자비했다.

무진은 전날 밤을 떠올리며 몸을 살짝 떨었다. 추위보다 훨씬 무서운 공포였다.


“그 녀석, 눈빛이 달랐단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치고받고 싸울때 눈에 감정이 가득 담긴다.

감정을 담아 휘두르는 주먹은 날카로움이 떨어진다. 백연은 그렇지 않았다.

싸움 도중 언뜻언뜻 보이던 소년의 표정은 오히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으, 으앗!”


제풀에 놀란 무진이 허겁지겁 뒤를 돌아봤다.

그 자리에는 어느새 백연이 서 있었다.

무진보다 머리 두 개는 작은 체구건만, 무진은 자연스레 몸이 움츠러드는 기분을 느꼈다.


“제시간에 다 왔네.”

“크흠. 네가 말한대로 데리고 왔다.”


백연의 시선이 서 있는 세 사람의 면면을 살폈다.

무진 본인과 키크고 호리호리한 소년 하나, 그리고 졸린 눈을 한 소년 한명까지.


“잘했어.”

“여기 마른놈은 단휘라고 하고, 저기 특색없게 생긴 놈은 소홍이라고 한다.”

“반가워, 사형들.”


백연이 미소 지었다.

단휘는 어색하게 마주 웃었고 소홍은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그럼 바로 가자. 오전 수련시간 전에는 돌아와야 하니까.”

“그런데 대체 어딜 간다는 거냐?”

“어디긴. 저기지.”


백연은 팔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세 사람의 시선이 백연의 손끝에 따라붙었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구름과 안개로 둘러쌓인 곤륜산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데?”

“산이 있잖아. 안보여?”

“......아니, 잠깐만.”


백연을 내려다보는 무진의 얼굴에는 당황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너 설마 고기를 먹게 해준다는게.”

“당연하지. 산에 짐승이 얼마나 많은데.”


백연은 당황스러워 하는 사형들을 놔두고 걷기 시작했다.

한 시진안에 사냥을 마치려면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산에 오르며 본 바로는 짐승이 지천에 널려있긴 했지만, 그것을 모두의 입에 돌아갈만큼 사냥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였다.


“무진 사형. 이거 진짜 맞습니까?”

“......아니면 어쩔건데. 지금 와서 다시 들어가게?”

“그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문에서 사냥은 좀......”


무진과 단휘가 망설이는 사이였다.

그때까지 조용히 서 있던 소홍이 갑자기 걸음을 옮겼다.


“고기는 고기야.”



소홍이 두 사람을 지나쳐가며 툭 내뱉고 간 말이었다.

어느새 멀어져가고 있는 백연과 그 뒤를 성큼성큼 따라가는 소홍.

무진과 단휘 또한 짧은 시선 교환을 나누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만, 같이 가자!”


뒤편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목소리에 백연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고생길이 눈 앞에 훤했다.


‘할 일이 한 두개가 아니네.’


그래도,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다음 순간.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슴 한마리가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즉사였다.


“좋아, 사형들, 저거 가서 주워줄래?”


풀숲에 웅크리고 있던 무진과 단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사슴 사체에 다가갔다.


“이게 무슨......”


그들의 시선이 사슴 사체와 백연을 잠시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사냥을 하러 나온지 반 시진.

그 시간동안 그들이 본 것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수준의 기예였다.


자그마한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 자체도 충분히 놀라웠다.

일생 사냥이란 것을 해 본적이 없는 그들이 보기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흔적을 잘만 찾아 사냥감을 추적하는 백연의 모습은 신기 그 자체였다.


헌데, 그것은 뒤에 일어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참 동안의 추적 끝에 마침내 물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사슴을 발견했을 때, 백연이 손에 들어올린 것은 작은 돌멩이 하나였다.

대체 돌멩이 하나로 어떻게 커다란 사슴을 잡겠다는 것인지.

의문의 눈빛으로 쳐다보던 그들의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되었다.


“정확히 관통했는데?”

“하, 하하.”


단휘가 헛웃음을 지었다.

백연이 던진 돌멩이는 사슴의 왼쪽 눈을 지나 뇌를 관통한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거야?”

“내력을 실어서 던지면 돼.”


백연이 대수롭잖게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 간단한 행동 속에 들어간 기예는 간단하지 않았다.


다른 물체에 내력을 싣는다.

매우 단순한 행위이나 간단하지 않은 것이었다.


전신 혈맥으로 이어져 있는 신체는 한번 기를 회전시키는 방법을 깨우친 이후에는 어느 부위던 기를 싣기 쉬워진다.

허나 외부의 물건에 기를 담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검을 들고 휘두를 때에, 그 검의 날에 기를 싣는 것은 좀 더 높은 경지를 요한다.

검날은 신체와 세맥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검이 대우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구조 자체가 온전한 진기를 담아내기에 가장 용이한 형태로 주조되어 있는 검들이니.


헌데, 특정한 물체에 기를 담아 던진다? 그것은 말 그대로 한차원 위의 경지였다.

기를 담은 물체가 몸에서 떨어지는 순간, 기의 공급은 끊기며 무인이 그 물체를 다룰 수단도 요원해진다.

그렇기에 신체에서 멀리 떨어진 물체를 기운으로써 다룬다는 것은 특별한 경지였다.

천하 무림에 궁사(弓師)가 흔치 않은 연유도 마찬가지였다. 시위를 떠난 화살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고강한 무공 수위가 필요했기에.


물론, 백연에게는 전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이미 한번 다다랐던 경지를 낮은 수준에서 미약하게나마 재현하는 것.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사냥을 하기를 세 차례였다.

마지막 돌멩이를 던져 사슴을 잡아낸 백연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운향관의 아이들이 다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것도.”


그 사이 말없이 어딘가를 다녀온 소홍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통통한 토끼가 네 마리나 들려 있었다.

무진이 그것을 보고 놀란 목소리를 냈다.


“뭐야. 소홍 너, 사냥해본 적 있었어?”

“몇번.”


겉으로 보이는 외상도 없는 것으로 봐서 맨손으로 잡은 듯 했다.


“좋아. 그럼 슬슬 돌아가자.”


사슴 세 마리와 토끼 네마리.

짧은 사냥이지만 만족스러운 수확이었다.

덕분에 문파로 돌아가는 네 소년의 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저기, 백연아. 고맙다.”


뜬금없는 무진의 인사도 함께였다.

백연은 고개를 저었다.


“고마울 필요까진. 강도질만 하지 마. 두번은 안봐주니까.”

“그래. 정말 미안하다.”


백연의 철칙이었다. 두 번은 없다.

한번은 눈이 돌아 실수를 했다 한들 두번 부터는 실수가 아니었다.


다행히 자신의 사형들은 그럴 마음은 없어 보였다.


“사제, 그런데 궁금한게 있어.”


단휘였다.

백연은 말해보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어디에서 무공을 배운거야?”

“따로 배운 적 없는데. 여기 와서 배운거 말고는.”

“뭐라고? 하지만......”


단휘가 머리를 긁적였다.


“너 곤륜에 들어온지 사흘밖에 안됐잖아.”

“그랬나?”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 불가해한 그의 무공 수위를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허무맹랑한 이야기기도 했고.


“아까 돌에 내력을 담아 던지는 그거. 그런건 사숙조들도 보여준 적이 없는데.”

“연습이 부족해서 그래.”


사실이었다.

요 며칠간 곤륜에서 백연이 파악한 것은 그랬다.

신웅과 신유 사숙조 모두 잘 쳐줘봐야 삼류 무인. 강호에서 당당하게 이름을 내걸고 다닐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런건 사형들도 쉽게 할 수 있어.”

“......우리가 말이냐?”


무진이었다.

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고말고. 걱정하지마.”

“무엇을 걱정하지 말라는거냐.”

“내가 할 수 있게 만들어 줄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는 백연의 모습에 무진과 단휘가 잠깐 조용해졌다.


“그건 그렇고, 나도 궁금한게 있어.”

“아는 거면 다 대답해주겠다.”

“하오문이 검을 산다는 건 무슨 소리야?”


어제 저녁 무진이 언급한 말이었다. 산 아래 하오문이 검을 사들인다고.


백연으로썬 그다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하오문은 무력 단체가 아니다.

사도 문파중 거대한 세력을 자랑하는 편이긴 했으나, 하오문의 무력은 주로 하오문주(下汚門主)나 그 아래의 일곱 방주들에 집중되어 있었다.


되팔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 타 문파처럼 다수의 검을 사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들여도 쓸 사람이 없었기에.


“정확히는 알려져 있지 않다. 나도 돌아다니다가 귀동냥으로 들은거라.”


무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다만 요새 하오문의 영역에 만금장이 밀고 들어온다는 소리가 있어서, 그것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만금장?”


백연이 되물었다.


“아, 만금장은 사파 제일(第一)의 상회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지. 실상은 돈이 관련된 일이면 뭐든 다 하는 집단이다. 상회, 밀수, 표국, 대부업 등등......”

“들어봤어.”


첫날 운결과 신웅의 대화 속에서 어렴풋이 들렸던 이름이다.


“걔들, 여기서 행패부려.”


소홍이었다.

갑자기 끼어든 그 말에 무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문파도 만금장한테 돈을 빌린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며칠 전에 올라와서 난리를 치던데.”

“그렇군.”


그런 것인가.

보아하니 대충 무슨 구도인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파 무림의 세력 분쟁.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만금장이 그렇게 커? 하오문이 밀릴 세력은 아닐텐데.”

“엄청 커.”


이번에 끼어든 것은 단휘였다.


“만금장, 걔들 정파랑도 거래하거든. 사실상 중원에서 가장 덩치가 큰 상회중 하나라고 봐도 될거야.”

“단휘 사형도 되게 자세히 아네.”

“우리 아버지가 생전 만금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으니까.”


단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과거 일이지만. 지금은 더 커졌으면 커졌지 줄진 않았을거야.”


백연은 생각에 잠겼다.

그가 예상했던 것 보다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는 듯 했다.


‘안 그래도 한번 내려가보려 했는데.’


지금의 곤륜파를 살리기 위해서는 필요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오늘처럼 고기를 사냥해 먹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의 방법이었다.


문파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돈도, 무공도, 사람도 필요했다.


무공은 자신이 만들고, 사람은 지금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서 쓰면 된다지만 돈은 조금 달랐다.


‘이곳이 정파의 영역이 아니라는게 가장 큰 문제야.’


백연이 알아본 바, 지금의 청해는 사실상 무법지대에 가깝다.

곤륜파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짓밟으려 들 세력이 한 둘이 아닌 상황.


아무리 자신이 전생에 뛰어난 무인이었다 해도 본신의 무력을 회복하려면 아직 멀고 먼 세월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우선은 곤륜파에 우호적인 세력이 필요했다.


자신과 곤륜파가 성장해 강해질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세력이.


그리고 방금 사형들과의 대화 속에서 백연은 한가지 가능성을 발견했다.


‘하오문.’


조만간 곤륜산에서 한번 내려갈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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