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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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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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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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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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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엮어내다(4)

DUMMY

객잔의 문이 다시 열린 것은 오래지 않아서였다.

노인이 먼저 들어서 문을 활짝 열며 비켜선다.


“여기입니다.”


저벅.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머리 끝까지 장포를 뒤집어쓴 한 인영이 객잔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강하다.’


들어오는 순간, 짓눌리는 공기에서 느껴졌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내력, 걸음걸이의 균형.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


‘일부러 내보이는군.’


사파의 강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저 정도 경지에 이른 무인이 자신의 기세를 어느 정도 감추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인데.

저리 내보이는 것은 상대를 누르고 들어가겠다는 의미였다.

자주 사용되지만, 그만큼 쉬이 통하는 수법이기도 했다.


“당신인가? 월영비도(月影飛刀)를 감히 입에 담은 자가.”


때문에 방주 대리가 입을 열자 백연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어린데?’


무게를 실어 말하는 것과 달리 목소리가 너무 어렸다.


‘반로환동에 닿을 정도의 고수는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며 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겠지?”

“모르면 여기 왔을리가 있겠습니까.”

“모르고 오는 자들이 있지. 지금은 전부 없지만.”


드륵.

의자가 끌리며 방주 대리가 백연의 앞에 앉았다.

한 손으로 머리를 뒤덮고 있던 장포를 벗어 넘기자 냉막한 표정의 청년이 얼굴을 드러냈다.


“자네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군.”


어렸다. 기껏해야 갓 약관을 넘겼을까.

무공 수위가 연배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백연이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놀라웠다.

무영방의 방주 대리. 어중이떠중이의 직함이 아니다. 천하 중원에 퍼져있는 하오문의 크기를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한 직책.

방주가 없는 자리에서 방주 만큼의 권한을 지닌다. 결코 약해서는 안되는 위치였다.

허니, 그의 눈 앞에 앉아있는 방주 대리는 고강한 무인이다. 겉으로 가늠할 수 있는 무공 수위로도 그랬다.


‘......당장 붙는다면, 일 할? 어쩌면 그 이하.’


잠시 방주 대리를 가늠하던 백연이 입을 열었다.


“전 오래 살 생각이라.”

“그런 이가 무영방의 객잔에 쳐들어와서 당당하게 나를 부르는군. 재미있어.”


방주 대리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방주 대리급을 부른건 아닌데.’


백연은 생각했다. 속으로만.


“그래. 월영비도의 정보를 들고 왔다 주장하니,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들어보도록 하지.”

“그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방주 대리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자네가 나한테 질문을 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나?”


후욱.

공기가 무거워졌다. 단순한 표현이 아닌, 실제였다.

방주 대리가 말하며 손을 가볍게 움직이는 순간 강대한 기가 온몸을 짓누르듯 쏟아졌다.

옆에 앉아있던 소홍이 나직한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철컥.

맑은 소리와 함께 대기를 짓누르던 압박이 씻은듯이 사라졌다.

허리춤의 검을 반쯤 뽑아들었던 백연이 다시 납검하는 소리였다.

방주 대리의 표정이 볼 만 했다.


“......이 무슨.”

“질문할 위치에 있냐 묻는다면, 예. 그렇습니다. 월영비도는 그런 값어치가 있지요.”


백연은 싱긋 미소짓다가, 이내 자신이 가면을 썼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해냈다.


“무영방주를 상징하는 기물. 백여년간 잃었으니 하오문 내에서 무영방의 입지가 말이 아니겠군요. 무영방주의 자리도 굳건하지 못할테고.”

“......네놈은 누구지? 하오문의 일원이 아닌 자가 이런 내용을 그렇게 소상히 알 수 없다.”

“아, 그건.”


백연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월영비도보다 비싼 정보인데. 원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네놈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할 수도 있다만.”

“자신 있으십니까? 월영비도의 정보는 저밖에 모르는데.”

“네놈 대신 옆의 아이를 고문한다면 그래도 버티겠느냐?”

“해보십시오.”


백연이 소리내어 웃었다.


“방주를 상징하는 기물 대신 아무 의미없는 시체 두 구를 얻어낸 방주 대리라. 참으로 이득이겠군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방주 대리의 손이 가볍게 탁자를 두들겼다. 고민에 잠긴 모습이다.


‘여차하면.’


백연은 검파에 손을 올려두었다.


상대가 월영비도를 얻어낼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릴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허나 무림인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부류이다.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도 많다. 방주 대리의 위치에 앉은 이가 그럴 가능성은 낮으나, 없지는 않았다.


만일, 검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소홍부터 걷어차서 객잔 밖으로 탈출 시키고, 즉시 발검을......


그때, 방주 대리의 손이 멈췄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묻고자 하는게 무엇이지?”


순식간에 공기중에 감돌던 긴장이 풀렸다.

가면 아래에서 백연이 미소지었다.

검을 쥐고 있던 손을 놓은 그가 질문을 입에 담았다.


“도시 이름이 옥수더군요.”

“......그래서?”

“옥을 키우는 것이, 하오문입니까?”

“아니다.”


방주 대리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옥수는 옥을 키운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본디 우리가 처음 이 도시에 들어설 때만 하여도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지.”

“......옥나무?”

“그리 말하니 이상하다만, 맞다. 도시의 서편에 옥으로 된 숲이 있었다.”

“그건 또 뭡니까.”

“고강한 술법 무공의 흔적이라 하더군. 그것이 본디 도시 이름의 유래이다.”

“그럼 지금은?”


방주 대리의 미간이 불쾌한 듯이 찌푸려졌다.


“만금장의 짓이다. 하오문은 인신매매를 취급하지 않아. 애초에 하오문이 세워진 근본을 부정하는 일이거늘.”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질문은 그게 전부인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방주 대리가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제가 알기로 현 청해는 사파의 영역. 청해에 몰려든 사파들 중, 하오문은 얼마만큼의 입지를 지니고 있습니까?”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군.”


백연이 방주 대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작금의 하오문은, 충분히 강합니까?”


방주 대리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불쾌한 질문이군.”

“필요한 질문이지요.”


백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하다. 하오문이 힘이 없다면 지금 백연이 구상하고 있는 상황은 아예 시작조차 불가하다.

청해에서 살아남는 것은 줄타기와 같은 일이다. 곤륜이 일어서는데 필요한 시간. 하오문은 그 시간을 벌어줄 만큼 강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다면 의미가 없는 일.


“......현 청해에 자리잡은 사파 세력은 크게 넷. 천살문(擅殺門), 패흑련(覇黑聯), 하오문(下汚門), 그리고 만금장(萬金莊)이다. 개중 천살문은 살수 단체이니 제외하고, 패흑련이 가장 규모가 작으며 우리 하오문이 가장 크지.”

“규모는 의미 없습니다. 가장 강합니까?”

“일곱 방주와 하오문주께서 모인다면, 그렇다.”

“허면 만금장과의 세력 다툼에서 밀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방주 대리가 헛웃음을 지었다.


“자네는 참 목숨이 여러개인 것처럼 입을 놀리는군.”

“하나이기에 이러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으니.”

“......만금장은 사파이나, 대외적으로는 상회이지. 돈이 많고 정파와도 연을 트고 있으니 작정하고 적대할 수는 없는 집단이다. 또한 우리와 만금장이 무력으로 싸운다면 다른 쪽에서 움직이지 않을리가 없다.”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나?”

“충분하군요.”


당장 하오문의 무력이 밀리지 않는다는 것은 확인했다.

즉 만금장을 밀어내었을 때, 하오문이 적당히 모른척 비호해준다면 만금장 측에서도 무력으로 밀고 들어올 수는 없다는 소리.


‘그 정도면 충분해.’


옥수에서 만금장을 밀어내는 정도.

하오문 측에서도 반길 일이다.


“그러면, 이제 월영비도의 정보에 대한 댓가를 논해보지.”

“좋습니다.”

“무엇을 원하지?”


중요한 순간이었다.

백연은 망설이지 않았다. 미리 생각해둔 말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옥수에서 만금장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 하오문의 암야서고(暗夜書庫)에 출입할 자격.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후 삼 년간 곤륜파와 하오문의 조건없는 동맹.”

“......뭐?”

“이상이 제가 요구하는 댓가입니다.”


방주 대리가 백연을 지그시 응시했다.

이윽고 그가 말을 툭 내뱉었다.


“미쳤군.”

“안 됩니까?”

“자네가 요구한 것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는가?”

“잘 알지요.”


방주 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암야서고에 출입하는 것 정도는 그래. 충분히 가능하지. 헌데 만금장을 옥수에서 몰아낸다? 자네는 지금 우리 하오문을 이용해 만금장을 치워버리려는 생각이군.”

“예. 맞습니다.”

“감히.”

“그러면 이대로 옥수를 만금장에게 내줄 생각입니까?”


백연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만금장의 영역. 보아하니 하나 둘씩 거리를 먹어치우고 있더군요. 포위당한 형국이라 봐도 좋은데. 적대하는 세력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터.”

“......”

“먹힐 바에야 먼저 치는 것이 낫지요. 단지 저는 그 시기를 앞당기라는 겁니다. 어차피 곧 시작할 생각 아니었습니까? 검을 사들이고 있다던데.”

“호신용이지.”

“그렇다면 당신은 왜 여기에 와 있습니까? 무영방의 방주 대리가.”


무영방. 하오문의 검이다.

하오문을 구성하는 일곱 방 중에 유일하게 무공을 익힌 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방.

그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무영방주의 대리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곧 싸움이 예비되어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방주 대리는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허면, 마지막 조건은 무엇이지? 하필 곤륜파라니. 다 쓰러져가는 문파가 아닌가. 곧 망해도 이상하지 않거늘.”

“살아날 겁니다. 오히려 하오문에게 이득이 될 동맹이라 할 수 있지요. 만금장이 정파와 연이 있어 함부로 적대하기 어렵다 하였습니까? 곤륜파가 하오문의 연이 되어드리지요.”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간단합니다.”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댄 백연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가면 아래로 드러난 앳된 얼굴에 순간 방주 대리의 표정에 당혹이 스쳤다.


“제가, 곤륜을 살려낼 것이기 때문이지요.”

“......어처구니가 없군.”

“제 조건은 전부 말했습니다.”


방주 대리가 백연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눈에 기운이 몰려있다. 안법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백연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안 보일텐데.’


지금의 백연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힘도 없는 어린아이일 터.

실제로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직은 약했으니.

하지만 그는 완벽하게 무공을 감추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마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검귀의 잡기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방주 대리는 백연에게서 아무런 정보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반박귀진의 경지에 달했다고 착각할 터.


‘저보다 더 강한 녀석이 왔으면 조금 위험했는데.’


무영방주 본인이라면 몰라도, 눈앞의 청년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의 자신은 있었다.


이윽고 안법을 거둔 방주 대리가 입을 열었다.


“......도시 중앙의 주루. 봤나?”

“예. 매우 크더군요.”

“우리 하오문의 백야주루다. 그 안쪽에는 투기장과 도박장이 존재하지.”

“그렇습니까? 그건 몰랐군요.”

“그 투기장에, 거력부라는 작자가 있다. 근 육개월이 넘는 기간동안 투기장을 지배하고 있는 자이지. 그가 모든 도전자를 박살내고 돈을 쓸어가는 바람에 손해가 상당하다.”

“그것 참 안타깝군요.”

“만금장에서 고용한 자이다.”


백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하오문에서 치워버려야 할 일 아닙니까?”

“불가하다. 그자는 만금장 소속이 아니야. 함부로 하오문의 윗선에서 개입했다가는 거꾸로 상대가 꼬리를 물고 늘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보낼 수도 없다. 우리 무영방에서도 상당한 실력자가 나서야 제압 가능한 강자이니.”

“곤란한 상황이군요.”


하오문이 운영하는 투기장.

부러 만금장에서 거력부를 보내 손해를 유발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확실히 곤란할 법 했다. 하오문에 소속된 고수가 나서서 거력부를 제거한다면, 투기장을 이용하는 다른 손님들이나 만금장 측에서 역으로 시비를 걸 상황이 만들어진다.


‘만금장은 그걸 노리나보군.’


하오문의 고수들. 무공의 특색이 짙기에 정체를 숨기고 아닌 척 하기도 어려울 터.

여러모로 난해한 상황이다.


“그자를 제거하도록.”

“흐음.”

“자네가 말한 것, 그것을 장담할 만큼의 실력이 있는지 증명해보이게. 그리하면 자네가 말한 조건들을 받아들이지.”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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