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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5.08 01:14
연재수 :
9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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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88
추천수 :
2,348
글자수 :
812,223

작성
22.09.1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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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22쪽

신해독대(辛亥獨對)와 보길도 래방(來訪)

DUMMY

12년 전인 효종10년 기해년 같은 날에 효종이 송시열과 독대를 하였다.


그날은 효종이 희정당에서 소대(召對)하던 신하들을 물리고 사관들도 멀리 떨어져 있게 한 후 이조판서 송시열만을 남게 하여 독대하였다.


송시열은 효종의 북벌에 함께해 달라고 하는 정성 어린 부탁을 임금이 격물치지 성의정심을 해서 정사나 잘 돌보라는 틀에 박힌 성의없는 대답으로 거절의 의사를 보였고, 이후에도 여러차례 편지을 통하여 북벌을 위한 방책을 강구해 달라고 재촉하였지만 성이나 좀 쌓고 말이나 좀 기르고 근검 절약하라는 등 도움 안되는 방안만을 제시하였다.


그 비밀 편지는 그 당시 세자였던 현종이 전달을 하였기에 부왕인 효종의 크게 내색은 못하면서도 실망하던 미묘한 표정을 직접 보았던 현종으로서는 송시열의 독대 요청을 고깝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달라진 것은 12년 전에는 효종이 필요해서 송시열에게 독대 요청을 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송시열이 시급을 다투는 사안이라며 독대 요청을 해 온 것이었다.


현종이 자리를 고쳐 잡고 사관들을 멀리 물리고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래, 긴급히 알려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 무엇이오?”


“제주의 유림 중에 저에게 편지를 보내온 자가 있사옵니다.”


“흠, 그 내용이 무엇이오?”


“크게 두가지 이옵니다.

하나는 달포 전에 제주에 반계 유형원이 내려왔다고 합니다.”


현종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듯 약간 뚱한 얼굴을 하면서 물었다.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소만 유형원이 누구요?”


“부안에 은거하고 있던 처사인데 몇 해전 미수 허목이 천거를 하여 등용을 하려던 적이 있었사옵니다.”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오. 그런데 그때 본인이 고사를 하여 등용을 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소만...”


“그러하옵니다. 또한 그때 그의 사상이 급진적이다 하여 경계를 하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자가 제주도로 내려가 반란의 무리에 함께 하였다 하옵니다.”


“그자의 사상이 어떻길래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그자의 사상은 지금 고장군이 올린 상소의 내용과 많은 부분 결을 같이 하옵니다.”


“흠, 이미 나는 고장군을 만나볼 생각을 하였는데 그런 자가 한 명이 더 있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소?”


현종이 별것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자 송시열이 약간 실망하였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계속 고하였다.


“하오나 전하, 유형원은 태호 이원익의 조카이고 현 제주목사 노정은 예전에 이원익이 제주목사로 있을 때 판관으로 함께 일을 한 적이 있었고 그 뒤로도 교류하며 지냈 사옵니다.

소신이 저 어린 고장군이 어떻게 제주를 장악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나 의아해하였는데 만약 노정을 반란의 수괴로 놓는다면 그 그림이 그려지옵니다.”


현종이 약간 관심이 가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송시열이 계속 말했다.


“만약 노정과 유형원이 지난해부터 반란을 획책할 계획을 꾸몄다면 어떻겠사옵니까?

제주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몰래 군사를 기르기에 최적의 장소이옵니다.

지난해에 제주에 중국 선단이 표류해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노정이 한사코 그들을 청나라로 돌려보내지 말고 군사기술을 얻어내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결국 돌려보내지 않았습니까?

이미 그때부터 그자들이 계획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때는 조정에서도 돌려보내지 말자는 의견이 있지 않았소?”


“그런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오나 그 말이 처음 나온 것이 제주도가 아니옵니까?

또한 유형원은 이미 옛날부터 부안에서 명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명목으로 사사로이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배를 준비해 놓기도 하는 등 금지된 일들을 벌이곤 하였다 합니다.

그리고 지난해에 노정이 제주에 큰 물이 져서 섬에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고 있다 하였는데 아직까지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사옵니까?

그것 또한 군량을 얻기 위해서 거짓으로 고한 것일 수 있사옵니다.”


현종이 상당히 수긍해하고 있는 표정이 보이자 송시열이 더욱 열심히 말하였다.


“그동안 저들이 보인 행보를 보면 마치 사전에 계획을 해 놓은 것처럼 질서 정연하였사옵니다.

대기근으로 다른 도들은 구휼을 하기에도 급급한데 저들은 해적을 토벌하고 충청도로가서 역병을 다스리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사옵니다.

이제 약관을 갖 지난 고장군이 어찌 이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었겠습니까?

고장군이란 자도 이 일을 시키기 위해서 유형원이 처음부터 가르쳐서 준비해 놓은 자가 분명하옵니다.”


“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오만, 협상이 진척이 되어 그들이 군사를 물리면 확인할 수 있지 않겠소?”


“제주에서 올라온 편지에 다른 이야기가 또 있사옵니다.

저들이 화란의 상인에게 쌀을 가져다 달라고 하였다 합니다.”


현종이 깜짝 놀라 큰소리 되물었다.


“뭣이라!?”


“지난해 화란의 상인들의 배가 풍랑에 휩쓸려 제주로 온 적이 있다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실상은 저자들이 사람을 시켜서 데려온 것이라 하옵니다.”


“그것이 정말이더냐?”


“저들이 군사를 중지시키고 시간을 벌고 있는 이유가 화란의 배를 기다리기 때문이라 하옵니다.

군량과 무기가 들어오면 바로 협상을 중단하고 즉시 도성으로 진격할 것이라 하옵니다.”


“지금 사람을 보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제주의 주요 포구에 군사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불가능 하다 하옵니다.

이 편지를 몰래 보낸 자도 발각될까 두려워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사옵니다.”


“그렇다면 그자가 거짓으로 그런 정보를 보낼 것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기에는 정보가 너무 구체적입니다.

또한 지금의 정황과 너무 맞아 떨어지지 않사옵니까?”


“그런데 그자는 어찌 이런 사실을 이제야 알린 것이오?”


“지난해 제주목에서 고장군이 일으킨 봉기가 있고 나서 고장군이 재판을 열어 비리가 있던 향리들 다섯을 처형하였는데 고장군이 직접 죽이라 지시를 하였고 성난 군중들이 돌로 그자들을 쳐죽였다고 합니다.”


현종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로만 떠돌던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 하옵니다.

그때 이 편지를 보내온 유림도 그곳에 나와 상황을 지켜보았는데 사방에 피가 튀고 선혈이 낭자하던 그 모습이 눈에 생생해서 감히 알릴 엄두를 못내었다 합니다.

나중에 신여철이 고장군을 잡아 들이고 나서야 안도를 하였는데 다시 탈출을 하게 되자 어떻게든 제주의 상황을 알리고자 하다가 이제야 감시가 덜해져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때 제주목사 노정이 직접 옆에 앉아서 고장군이 사형을 지시하는 모습을 감시하듯 지켜보았다 하옵고, 오히려 고장군은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다 합니다.”


“내 노정 그자를 그리 보지 않았건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 법인데 어찌 그자가 그런 짓을 꾸밀지 알았겠습니까?

모두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책은 없겠소? 지금 바로 토벌군을 보내야 하는 것이오?”


“다행한 것은, 지금 저들의 대부분이 육지로 나와있어 제주에는 군사가 일천 밖에 없다 하옵니다.

그것도 여러 포구에 분산되어 있어서 한 곳에 이백이상은 없는 것 같사옵니다.

몰래 군사를 보내 제주에 있는 반란의 수괴 노정을 잡고 화란의 배가 들어오는 항구인 오조포구를 점령하여야 합니다.

오조포구를 우리가 장악을 하면 화란의 배는 돌아갈 것이고 군량을 확보하지 못한 반란군은 무너질 것입니다.”


“제주까지 보낼 군사가 어디 있소? 게다가 저들이 이미 제주도로 가는 뱃길을 장악하고 있지 않소?”


“소신이 선왕의 치세에 병조판서를 지낸 적이 있사옵니다.

그때 남도의 수로에 대해서 조사를 한 적이 있사온데, 저들이 장악하고 있는 강진과 제주의 뱃길이 제일 나으나 전라좌수영에서 거문도를 거쳐서 제주로 가는 뱃길이 있다 하였사옵니다.

그 뱃길을 이용하면 이틀이면 제주로 갈 수 있을 것이옵니다.”


“바닷길이 험하지 않겠소?”


“바닷길이 험하기는 하나 지금은 북서풍이 잦아들어 바다가 험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역도들이 군량을 확보하게 되는 급박한 상황에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여야 하옵니다.

이미 지난번에 팔도로 어명이 내려가 군사를 점검하라 하였기에, 지금 급히 어명을 내린다면 바로 출정이 가능할 것이옵니다.”


“그래도 조정에서 대신들과 상의를 하고 실행하는 것이 낫지 않겠소?”


“소신이 감히 독대를 청한 연유가 무엇이겠사옵니까?

노정과 유형원이 이미 지난해나 그 전부터 준비를 하였다면 이 곳에도 저들의 눈과 귀가 있을 것이옵니다.

어쩌면 전라감사 오시수도 저들과 한패일지도 모를 일이옵니다.

게다가 이것은 시급을 다투는 일이옵니다.

반란 수괴 노정을 잡고 화란의 상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에 성공하면 고장군은 항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 고장군을 버리든 중히 쓰든 맘대로 할 수 있을 것이 아니옵니까?”


마침내 현종이 마음을 정하였다.


“그리 해야겠소.”


“그리고 지금 백의종군 중인 신여철을 함께 보내서 제주를 치는 일을 도우라 하심이 어떠하온지요?”


현종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되오.”


그날 밤 현종의 지시로 선전관들이 전라좌수영, 통제영, 경상좌수영으로 달렸다.


* * *


허적과 박세당 일행이 돌아가고 난 후 고장군은 제주로 향했다.


앞으로 열흘 정도 시간이 있으니 그 전에 제주에 방문해서 오조포구의 상황도 점검하고 항파두리성에 벌여 놓은 사업들도 점검할 필요도 있었다.


노정이 많은 것들을 잘 처리하고 있긴 하였지만 제주 섬의 규모가 워낙 크고 처리해야 할 것이 워낙 많으니 모든 것을 챙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서 제주에 며칠을 머무르면서 이것 저것 점검할 필요가 있었기에 닷새 이상의 시간을 내기에는 지금이 가장 적합한 때였다.


제주에 내려간 장군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신산공원을 찾는 일이었다.


신산공원에는 공동 묘역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뭍으로 올라오기 전에 고홍진 등과 상의하여 이곳에 설치하기로 하였다.


삼성혈과 산지천을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있으면서 예전부터 신당이 있고 굿도 하던 신성한 땅이어서 전사자들을 모시기 적합한 곳이었다.


묘역 앞쪽에 설치된 검은색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제단 앞에서 장군이 향을 올리고 절을 두 번 하고는 묘소마다 찾아가서 예를 표하였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유족들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제일 마지막에 강기석이 묻혀 있는 묘역을 찾았다.


그렇게 의연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마른 떼만 덮여 있는 초라한 무덤을 보자 눈에서 눈물이 나면서 털썩 주저 앉았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있었다.


그래도 그동안 마음 훈련을 많이 해서인지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강기석의 어머니가 장군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고 장군이 마침내 일어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상심이 얼마나 크십니까?

제가 기석이를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기석이도 장군님이 살아 계신 것에 기뻐할 것입니다.”


장군이 다시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을 애써 참고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주위에는 많은 유족들이 따라와서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는 저의 사랑하는 형제가 묻혀 있습니다.


오늘 이 앞에 서서 마른 풀만 덮여 있는 초라한 무덤을 바라보니 다시 눈물이 앞섭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더이상 울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남긴 사명을 그토록 바라던 세상을 이뤄내는 그날까지 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 고장군은 이들을 이렇게 만든 신여철 그놈을 반드시 잡아 죽이고 그 피를 제단에 뿌려 이들의 영혼을 달랠 것입니다! “


* * *


잠시 후 장군이 제주목 관아로 가서 노정을 만났다.


“고초가 심했다 들었다.”


“이렇게 다시 제주로 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렇겠지.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 한달이 일년 같았을 것이다.”


“네, 생각하던 대로 된 것은 아니지만 원래 계획하던 첫번째 목표는 완수했습니다.”


“그렇지. 운부대사가 이끄는 당취 무리들이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구나.”


“그렇습니다. 토벌하려던 자들이 다시 우리편이 되어 도움을 주게 되다니 참으로 믿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운부대사라는 자는 믿을 만한 자 이더냐?”


“현재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일단 조선을 장악할 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래도 태생이 이곳이 아니니 조심하도록 해라.”


“물론입니다.”


“그런데 전라도를 달라고 한 것은 조정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 아니더냐?”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계속 협상이 이어진다면 저들은 협상안을 제시했는데 우리가 저들의 제안을 거절하는 셈이니 명분을 잃어 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역으로 우리가 제안을 한다면 거절을 저쪽에서 하게 될 것이니 명분이 우리에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저쪽에서 뭐라고 나오는지 두고 봐야겠지.

혹시나 토벌로 조정의 여론이 바뀔 수 있으니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모두들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운부대사와 이집 장군도 있으니 문제없을 것입니다.”


“유형원의 식솔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이제 유형원이 이곳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위험할 수 있다.”


“모두 나주로 옮겼습니다.”


“잘 했다. 그럼 내일은 항파두리로 갈 것이냐?”


“네, 새로 훈련받은 녹의군도 확인하고 공방의 상황도 점검해야 합니다.”


“신병들은 어찌 할 것이냐?”


“그들은 당분간 그곳에 주둔하게 할 것입니다.

통제영의 수군들이 건재하니 만에 하나 제주를 직접 치러 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설마 이곳까지 오겠느냐? 제주와 강진으로 가는 길목만 끊어버리면 될 것인데 먼바다를 건너서 올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신병들이라 크게 도움은 안되어도 방어군으로는 제 몫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므나. 그리고 알고 있겠지만 항구가 완성되었다.”


“그렇습니까? 처음 듣습니다.”


“큰 배 두 척은 포구 안에 정박이 가능 할 것이다.

다행히 그동안 파도가 심하지 않아서 공사가 잘 끝났나 보더구나.”


“잘 되었습니다.

이제 화란에서 배가 들어오기만 기다리면 되겠군요.”


“화란에서 배가 빨리 와야 할 것인데 걱정이다.

육지의 식량 상황은 어떠하냐?”


“굶주리는 사람들이 십만을 넘어가니 아껴서 먹는데도 창고에 쌓인 쌀이 줄어드는 모습이 눈에 보입니다.”


“허긴, 다른 도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들었다.”


“네, 하루에 수백씩 찾아옵니다. 다른 군현으로 보내는데도 광주읍성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빨리 화란에서 쌀을 보내오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구나.”


“북풍이 약해졌으니 곧 찾아올 것입니다.

열흘 이내에 안 오면 낙원상단에서 광동성 쪽으로 배를 여러 척 띄울 것입니다.”


“바다길이 험할 텐데 괜찮겠느냐?”


“이세훈 대행수가 얼마 전에 중국상단을 따라서 복건성 쪽으로 내려 갔습니다.

길만 확인되면 여러 척이 한꺼번에 내려가서 쌀을 실어 올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배도 제법 크기가 되니 한번에 몇 백석은 실어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긴, 그동안 중국에서 쌀이 조금씩이라도 들어오니 이나마 버틸 수 있었지.”


장군과 노정이 밤 늦게까지 여러가지 일들을 상의를 하였다.


* * *


보길도 낙서재(樂書齋)로 가는 길은 봄기운이 만연하여 나뭇잎이 푸릇푸릇 하였고 마을 어귀의 부용동 정원에는 수련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곳은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곳인데 요즘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나와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십대 중반 정도 된 서생이 장군을 안내하면서 정원을 소개하였고 장군도 감탄의 말로 답하였다.


“역시 조선 최고의 시성께서 직접 만드셔서 그런지 너무 아름 답군요.

정자와 연못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산수화와 같습니다.”


한참 정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 올라가니 아담한 집들이 여러채 옹기 종기 있는 마을이 나오고 가장 안쪽에 고산 윤선도가 머물고 있는 낙서재에 다다랐다.


장군이 보길도에 교과서에서 자주 보던 윤선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언제 한번 찾아가야지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있다가 이번에 제주에 내려왔다 올라가는 길에 잠시 들른 것이었다.


“이 늙은이가 죽을 날이 다가오는지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 콜록 콜록.”


“일어나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아닐세. 손님이 오셨는데 내가 일어나야지.”


장군과 함께 올라왔던 손자 윤이후가 윤선도가 일어나는 것을 도우며 말했다.


“할아버지께서 매일 이때 즈음에 정원도 거닐고 시도 짓고 편지도 쓰고 하십니다. 걱정 마십시오.”


여든이 넘어 나이도 많고 병에 걸려있다는 말이 있어서 혹시나 못 보게 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직은 가끔 일어나서 거동도 하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의관을 정제하고 서안 앞에 앉은 윤선도의 모습은 병으로 많이 여위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말이 가끔은 알아듣기 힘들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윤이후가 통역(?)을 해주어 대화하는데 지장이 없었다.


“조선 최고의 시성이신 고산 선생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장군이 진심을 담아서 말하자 윤선도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 이 나이 먹도록 남은 것이라곤 시조 몇 수가 다인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만.

그래, 듣자 하니 큰 일을 벌이고 있다고 하던데···”


“조선의 앞 날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허허허, 내 그대의 성공을 기원하겠네. 부디 초심을 잊지 말게나.”


너무 쉽게 격려까지 하자 장군이 자못 놀라워하면서 말문을 잊었다.


“···”


“그리고 얼마전 필암서원에서의 일도 전해 들었네.

서인 놈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지?

내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얼마나 기쁘던지 힘이 나서 하루 종일 정원을 거닐었다네.”


‘이분이 서인들한테 맺힌 게 많았었나 보구나.’


장군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윤선도는 서인들이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상당히 불만이 많이 있었고 그 주장이 과격한 면이 있어 남인들도 꺼려하기도 하였다.


“제가 아는 것 몇 마디 나누었을 뿐입니다.”


“남명 조식 선생께서 차고 다니시던 경의검(敬義劍)에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라 새기셨다 하네.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이다라는 뜻이지.

지금의 조선의 선비들은 안으로는 자기 학문이 최고인줄 알고 거들먹거리며 밖으로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재물을 긁어모으는 데 정신이 없지.

남명 선생께서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상소도 올리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네.

자네가 그것을 일깨워 주었으니 이 어찌 대단하다 하지 안겠는가?”


그 말을 하고 문득 종이를 꺼내더니 붓을 들어 시조 한 수를 썼다.



부용동 병든 몸이 낙서재에 누웠더니

부용정 연꽃소식에 풍문으로 듣는구나

마침내 속유(俗儒)누유(陋儒)야 하늘 높은 줄 알겠구나



“이 늙은이가 줄 것은 없고 이 시조라도 한 수 가져가게.”


‘이것은 정말로 가문의 영광이로군. 윤선도한테서 직접 시조를 받다니.’


장군이 진심으로 기꺼워하며 말했다.


“정말로 영광입니다.

자손 대대로 간직하겠습니다.”


그 후로도 장군과 윤선도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제가 예전부터 궁금해하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어부사시사라는 단가(短歌)에서 지국총지국총어ᄉᆞ와(至匊悤至匊悤 於思臥)라는 구절이 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특별한 의미는 없다네.

어느 날 바다에 나가 배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데 찌거덩 찌거등 하는 노 젓는 소리와 파도가 뱃전에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사공이 지르는 소리가 마치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이렇게 들리더구만.

한자를 오래 쓰다 보니 생각이 자연스레 그렇게 흘러가서 내 귀에는 그렇게 들리는 것이겠지.

그대는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을 쓰자고 한다 들었네.

그래도 한자를 너무 미워하지는 마시게.

한자를 오래 쓰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인데, 한자라는 것이 한나라에서 만든 것이 아니고 옛 조선과 중원 땅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만든 것을 한나라에서 잘 정리해서 쓰는 것뿐 일세.

문자라는 것이 필요하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듣고 보니 맞는 말씀입니다. 나중에 한자의 뿌리를 한번 연구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잠시 후에 장군과 윤선도가 밖으로 나와 정원을 거닐었다.


“정원이 아주 좋습니다. 돌 하나 나무 하나에도 정성이 느껴집니다.”


“좋아해 주니 다행일세.

이제 내가 죽고 나면 쓸모 없어질 것이니 그대가 좋은 곳에 쓰도록 하게나.

문인들이 모여서 시도 짓고 글도 쓰는 곳으로 될 수 있으면 참으로 기쁘겠네.”


“선생님의 높으신 뜻을 잘 받들겠습니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윤선도는 쉬어야 한다며 낙서재로 들어갔고 장군은 해군 기지가 있는 완도로 길을 떠났다.


나중에 이곳은 제주에 설립되는 대학의 인문학부와 예술학부의 별관으로 사용되었고 주변에 예술가 촌도 형성이 되어 문학과 사상, 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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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성동격서 +2 22.09.24 798 1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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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전라도를 내어주시지요. +1 22.09.10 982 15 25쪽
57 새로운 학문의 길을 보다 +3 22.09.05 890 15 21쪽
56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3 22.09.03 887 19 25쪽
55 형제를 위하여 +1 22.08.29 872 17 19쪽
54 신(新) 김영철전(金英哲傳) +2 22.08.22 925 19 16쪽
53 무혈입성 +2 22.08.20 983 16 14쪽
52 나주 방어전 2 +1 22.08.15 917 18 19쪽
51 나주 방어전 1 +3 22.08.13 955 17 14쪽
50 희생 +1 22.08.07 898 19 20쪽
49 대탈출 +1 22.08.04 928 18 16쪽
48 천라지망을 펼쳐라 +1 22.08.01 958 21 18쪽
47 공세 +3 22.07.31 986 21 24쪽
46 쫓는자와 쫓기는자 +1 22.07.31 1,023 17 22쪽
45 구출 2 +1 22.07.24 1,113 21 14쪽
44 구출 1 +1 22.07.22 1,054 21 19쪽
43 조선의 미륵 +1 22.07.20 1,130 21 19쪽
42 바람처럼 달려 추포하라 +2 22.07.05 1,130 20 19쪽
41 계략에 빠지다. +3 22.07.03 1,132 2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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