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5.19 15:2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113,560
추천수 :
2,353
글자수 :
829,177

작성
22.07.20 23:15
조회
1,132
추천
21
글자
19쪽

조선의 미륵

DUMMY

“장군님이다. 미륵의 화신이 오셨다.”


“어찌 장군님을 잡아 가는 것이오?”


“장군님을 풀어주십시오.”


장군을 호송하는 행렬이 정읍쪽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몰려드는 인파에 함거가 둘러싸였다.


“저는 미륵이 아닙니다! 다들 돌아가 주세요!”


장군이 목소리를 높여서 미륵이 아니라고 소리쳐 보지만 아니라고 하니 오히려 더 믿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처음 병영성에서 출발할 때에는 몰래 새벽에 나왔고 멀리 소문이 나지 않았던 터라 사람들이 많이 없었지만 나주에 접어 들자 갑자기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읍성 근처에서 둘러싸일 경우는 있었지만 소규모였고 이렇게 많은 수가 길을 막아서는 경우는 없었는데 갑자기 수백의 인파가 몰려 들자 기병대들이 칼을 빼어 들고 호령을 하였다.


“네 이놈들! 썩 물러가지 못할까?”


이전까지는 칼로 위협하고 장군이 미륵이 아니라고 하면 정리가 되곤 하였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장군님을 데려가려 거든 나를 죽이고 가라!”


“여기는 못 지나간다.”


괜히 막아서는 사람들을 상하게 하면 어떻게 될지를 아는 지라 쉽게 진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중에 장군이 나섰다.


“제가 한번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함거를 대열 앞쪽을 보내 주시지요.”


장군의 말을 전해 듣고 신여철이 다가와서 말했다.


“허튼 짓을 하면 너를 죽여서 미륵이 아님을 보이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미륵이 아니라고 계속 말해오지 않았습니까?”


신여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하들이 말을 몰아 수레를 앞쪽으로 이동시켰다.


이동하는 동안 장군이 눈을 감으며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 * *


다각 다각 다각


말의 편자가 바닥을 차면서 나는 소리가 단조롭게 울러 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장군등이 말 두마리가 끄는 함거에 앉아서 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과 위로의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였지만 이틀째 하루 종일 계속 단조롭게 길을 가고 있으니 다들 말없이 가고 있었다.


‘다른 마병들은 모두 흑전립(黑氈笠)에 흑전복(黑戰服)인데 이 자들은 붉은 전립에 홍전복을 입었군.

소속이 다른 것인가?’


장군도 양 옆에 말을 타고 가고 있는 기병들의 복식을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문득 앞에 앉은 윤기화를 바라보았다.


윤기화는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볼 수 있었는데 지난 압해도 해적에 공을 세운 이후로 기패관으로 종9품에서 정7품으로 승급이 되면서 서얼 출신 무관으로 큰 벼슬은 못해도 어쩌면 금군에 들어가는 혜택이라도 볼까 기대했는데 이번에 관련자로 찍히면서 부풀었던 꿈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한숨도 많이 쉬더니 이제는 말없이 멍하니 멀어져가는 산을 응시하면서 가고 있었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여러 번 미안함을 전했건만 달리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네.’


이대로 조정으로 잡혀 올라가더라도 실제로 혐의가 없으니 풀려날 가능성이 많겠지만 사건이 사건인지라 이리저리 부풀려지다 보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간다!”


신여철이 큰 소리로 외치자 다들 말에서 내려 여기 저기에 널브러져 쉬고 있었다.


한양에서 강진까지 며칠을 달려 내려와서 그날 하루를 쉰 뒤 다시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하루 삼십리이상을 강행하는 일정이 계속되니 쉽지 않을 터였다.


붉은 전립을 쓴 기병들도 함거에 기대어 목을 추기며 쉬고 있었다.


“자네들은 어영청 군대는 아닌 것 같은데··· 모두 금군 소속 뇌좌(牢子)들인가? 주상께서 죄인들을 호송하라 특별히 보낸 것인가?”


전라병사 이집이 말을 걸자 그중 대장인 듯한 자가 대답했다.


“금군소속은 맞지만··· 주상전하께서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대감과 고장군 등을 보호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이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보호하라고 했다고?”


“원래 어영군과 훈련도감의 기병만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특별히 저희들을 따로 더 보내셨습니다.”


“흠, 기사장겸선전관 신여철이 하는 것을 보니 이미 죄인 취급이던데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저희는 주상전하의 명을 수행할 뿐입니다. 어영군의 일은 모릅니다.”


“그렇겠지. 이해하네.”


멀리서 신여철이 지켜보다가 다가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왕명을 수행하는 금군들이지만 죄인들과 함부로 말을 섞지 마라!”


이집이 큰 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왕명이 무엇이길래 우리를 죄인 취급하는 것인가?”


“이미 금부도사가 말해 준 것을 듣지 않았소?”


“주상전하께서 다치지 않게 잘 데려오라고 하였다던데? 이렇게 굳이 죄인 취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조용히 따라 갈 것 일세.”


신여철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는 안됩니다. 전라병사 대감은 믿지만 저자들을 어찌 믿겠습니까?”


“고장군도 순순히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놈들은 고쳐 쓸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집이 조근조근 말하였다.


“제주의 백성들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아왔나?

그래서 그들이 불손한 생각을 품고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네.

하지만 그럴 수록 그들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고 나라에 힘을 보태게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네.

이번에 명화적 토벌에 함께하게 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한 것 일세.”


“불손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토벌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집이 목소리를 높혔다.


“신하들이 역모를 꿈꾸지 못하게 하는 것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네.

하나는 칼을 휘둘러 피를 보여서 두려움에 떨게 하여 감히 역모를 생각지도 못하게 하는 방법이지.

또 다른 하나는 신하들에게 능력에 맞게 일을 하게 하고 그 결과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해 주어 역모를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것 일세.

지금의 주상전하는 신하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네.

피를 보이는 것을 원하셨다면 십년전 예송논쟁에서 이미 그리하셨겠지.

그런데 지금 송시열과 그대들이 하려는 것은 결국은 당여를 나누고 서로를 공격하여 피를 보게 만들려는 것 아닌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것 아닙니까?”


“병영의 군관들 중 토착군관 다섯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옥에 가두지 않았던가?

그자들이 제주에서 온 군사들을 거칠게 다루는 것을 보고 그리한 것이겠지.”


“나머지 군관들은 이미 제주에서 온 자들에게 넘어가 손에 정이 보이니 그리한 것 아닙니까?

하지만 토착군관들은 불만이 많이 쌓인 것인지 죄인들을 아주 잘 다루지 않았소이까?

그러다가 반란이라도 나면 제주 놈들의 본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니 좋은 것 아니겠소이까?”


이집이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자네도 무인인데 어쩌다가 그런 당쟁에 발을 들이려고 하는 것인가?

그런 것은 글만 읽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지 무인이 갈 길이 아니야.

송시열 같은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이완 대감이 말해 주지 않던가?”


신여철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소리쳤다.


“그만 출발하겠습니다! 그만 쉬고 출발한다!”


그 후 이곳까지 이동하는 며칠 동안 장군이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제주에서 병영성으로 오기 전에도 여러가지 경우들을 상정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도 마련해 두었다.


‘지금쯤이면 이런 경우를 대비한 작전대로 움직이고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이곳에 온 군사들의 수가 너무 많고 모두 정예병들이라는데 있다.

그리고 지금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남쪽에서 구출작전을 수행할 군사들이 따라 오지를 못할 것 같다.

게다가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들이 계획을 꾸몄다면 결국 병영성에서 먼저 무슨 일이 터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전주성에서 움직이지 않고 조정에서 토벌군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겠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번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할 수도 있겠군.’


원래 계획은 전주에 도착하기 전에 구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이동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서 이대로 라면 전주에 도착하기 전에 작전을 수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생각 보다 많이 모여들고 있으니 어쩌면 적은 수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바람 방향이 잘 맞으면 배로 올라오는 군사들이 어떻게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괜히 병영성에 올라온 것이 아닌지 하는 자괴감이 드는군.’


올라오기 전 중대장급 이상들이 모여서 장시간 토론을 벌였는데 병영성에서 요청을 거부하는 것과 수락하는 것 두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잘못되면 큰 사단이 날 수 있으니 불가하다는 의견과 거절할 명분이 없고 명화적 토벌이 끝나면 병영성 근처에 눌러 앉았다가 병영성을 손쉽게 점령할 수 있다는 설전이 오갔고 마침내 장군이 병영성에 가는 쪽으로 결단을 내었다.


그때만 해도 괴문서가 도성 쪽까지 퍼져 내려오지 않았고 낙원상단을 통해서 들려오는 조정의 동향이나 병영성의 분위가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이어서 화란 상단이 쌀을 실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었다.


‘조선이 당쟁의 나라라는 것을 잊고 있었군.

이곳의 상황에 언제나 적응을 하려나···

여기서 죽으면 더이상 기회는 없는 것이겠지.

그래도 그 이후를 위해서 안배는 해 놓았으니 할 만큼은 했다.’


장군이 애써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여보려고 노력을 했고 그 상황에 맞춰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이곳에 온지 몇달이 지났건만 여전히 21세기에 살던 사람의 사고방식으로는 이곳 사람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고 아마 영원히 그렇게 되지 않을 지도 몰랐다.


장군이 감았던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 함거 밖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장사치들, 농민들, 승려들이 보였고 신분이 미천한 사람들 그리고 신분이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뒤쪽의 유민들 틈에 언뜻 제주에서 본 것 같은 사람들도 한 두명 보였다.


아마 이곳 상황을 정탐하러 온 사람들이리라.


장군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미륵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조선이 좀 더 나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처음 그런 말을 하였을 때에는 실망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미 여러 번 미륵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다들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미륵이 이세상에 오시기를 바라십니까?”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비록 미륵은 아니지만 미륵의 세상이 어떤 것인지는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라는 미륵은 이미 이백여년 전에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장군의 말에 사람들이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듯이 멀뚱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조선의 네번째 임금이신 세종대왕께서 조선의 미륵이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 조선의 백성을 위하여 글자를 만들어 내리셨습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훈민정음을 만드셨고 그것이 양반님네들이 여자들이나 상것들이 쓰는 것이라 천시하는 한글입니다.”


장군의 말에 제법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또한 남쪽으로는 대마도를 정벌해 왜적을 토벌하셨고 북으로는 여진을 정벌하여 조선의 이름을 만방에 떨쳤습니다.

불과 몇 십년전 왜란과 호란을 겪었던 요즘 시절에는 생각도 못하는 일입니다.

세종대왕께서 계실 적에는 작금의 사대부들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청나라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몰래 제단을 세워 섬기는 명나라도, 두번이나 조선땅을 유린하였던 왜놈들도 감히 조선을 넘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신여철과 기병들도 제지할 생각을 못하고 듣기만 하고 있었다.


조선의 임금을 미륵으로 치켜세우는데 그것을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른 것들은 어떻습니까?

조선의 하늘은 중국과 다르다며 칠정산이라는 새로운 역법을 만드셨고 측우기와 해시계, 물시계, 혼천의등 다양한 기구들을 만들어 치수를 하시고 천문의 이치를 밝혀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화약 무기를 만들어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님이 왜적들을 쳐부수는데 썼던 총통과 신기전 등을 만들어 내지 않았더라면 어찌 이 나라가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세종대왕께서 미륵이시라는 증거입니다.”


여기 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제 앞으로 조선은 미륵이 다스리던 그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미륵께서 조선의 백성을 어여삐 여기시어 손수 만드신 한글을 온 백성들이 사용해야 하며 모든 문서는 한글로 써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한글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 말과 완전히 다른 한자를 쓰겠다고 고집할 이유는 더이상 없습니다.


또한 기술을 천시하지 말고 계속 발전시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하며, 두번이나 쳐들어와 우리 백성들을 유린하였던 중국만 바라보고 살지 말고 다른 여러 나라들과 교류를 하여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며 종국에는 그들을 칭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륵의 나라를 이 조선에 이루어 내는 길입니다.”


장군이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미륵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미륵입니다.

양반도 상민도 천민도 노비도 모두 미륵입니다.

미륵의 세상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미륵임을 깨닫고 이백년전에 이미 현신하신 미륵이 남기신 유산을 이 땅에 실현시키면 그것이 바로 미륵의 세상입니다.


저는 어쩌면 얼마 뒤에 역적으로 몰려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음으로써 여러분들이 스스로 미륵임을 깨닫게 되어 진정한 미륵의 세계를 만들어간다면 그것으로 저의 소명은 다한 것입니다.


이번 대기근은 이 해가 지나면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이십년 하고 또 몇 년이 지나면 또다시 대기근이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미륵의 세상을 이루어 낸다면 그런 대기근은 우리 힘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곳에 계속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할 말은 끝났으니 이제 다들 돌아가셔서 각자의 소임을 다 하시기 바랍니다.”


장군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한참 뒤 함거가 움직였고 사람들은 길을 열었다.


* * *


전라 병영성 군기청 안쪽 담장에 군관과 군졸 몇 명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었다.


“야, 너. 남령초 한 대 장전해봐라!”


그중 상관으로 보이는 자가 아래 군졸에게 명령을 내리자 군졸이 무릎을 꿇고 능숙하게 곰방대에 담배를 꾹꾹 눌러 담고 큰 소리로 말했다.


“거발 준비 완료했습니다!”


군관이 발을 높이 들어 군졸을 발로 차며 소리쳤다.


“이놈아! 개화문을 먼저 해야지. 총은 잘 쏘더만 이런 건 이렇게 굼떠서 어디다 써먹나?”


“아하하하!”


군졸이 어이쿠 소리를 내면서 땅바닥에 한바퀴 구르자 주위에 있던 다른 군관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구르던 군졸이 벌떡 일어나 다른 군졸 몇 명 옆에 가서 함께 꿇어 앉았다.


“너 이새X 곰손(古音孫)이! 밑에 애들 관리 똑바로 혀라.

총 좀 잘 쏜다고 전라병사가 어여삐 해주니 너그 세상인줄 알았냐?”


옆에 있던 다른 군관도 한마디 했다.


“제주놈들이랑도 친한 것이 너도 제주 출신인 줄 알것다잉?”


“아 됐고, 곰방대에 불이나 땡겨봐라.”


군관이 몇 마디 훈계를 하다가 귀찮다는 듯이 불을 붙이라 지시하자 군졸이 재빨리 무릎걸음으로 담배대 앞으로갔다.


“거발(擧發)!”


부싯돌을 꺼내며 큰 소리로 외치고는 재빨리 불을 붙이자 고참 군관 이성달이 한 모금 크게 빨아들이며 말했다.


“아X발! X나 좋네. 이 좋은 걸 병사 새X는 왜 금지시켜 가지고.”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구관(知彀官) 나으리. 저희들도 한 대 괜찮겠죠?”


지구관(知彀官)은 훈련도감이나 지방의 병영에 있던 군관직으로 양반의 후예들이 주로 임명되었으며 고참 군관으로 대우를 받았다.


이성달은 그 중에 무과를 급제한 출신 군관이 아니라, 향반으로 과거를 응시할 능력은 부족하여 군포 등을 많이 바치고 들어 앉은 토착 군관중에 오래된 고인물이었다.


“어 그래, 다들 한대씩 빨어.”


다들 이성달의 담뱃대 보다 짧은 담뱃대를 꺼내 들자 군졸들이 와서 담배를 채우고 불을 붙여 주었다.


이 시대의 곰방대의 길이는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라 상관보다는 길이가 짧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나 저나 제주 놈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만큼 갈궜으면 욱하는 놈들이 제법 있을 텐데···”


“지은남 그놈을 직접 손봐줄까요?”


“아서라. 잘못하다가 목 달아나는 수가 있다. 그러다 우리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


군관들이 신여철과 몇 합을 밀리지 않고 주고받은 지은남의 무용을 떠올린 듯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가 이렇게 해도 나중에 탈이 없겠지요?”


“기사장께서 나만 따로 불러서 이야기했으니 걱정 말아라. 다른 군관들은 죄다 잡아넣고 우리만 남긴 것 보면 모르겠느냐?”


“그래도 나중에 병사 대감님 돌아오시면 난리 날까 봐 그렇지요.”


이성달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한번 가면 못 돌아올 것이라 했다.

뭐 돌아와도 우리한테 어쩔 것이냐?”


“그리고 우리한테도 뭐 좀 떨어지는 것이 있겠지요?”


“이번 일이 잘 되면 한자리씩 주신다고 했으니 걱정말아라.”


“그럼 제대로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그래, 좋은 생각있으면 한번 내놔봐라.”


한참을 담배를 태우며 제주 병사들을 어떻게 괴롭힐까를 논의하였다.


“이 곰방대는 길어서 좋기는 한데, 빨려니 겁나게 힘드네···. 불 한번 터는데도 쉽지 않어.”


이성달이 길다란 담뱃대를 들어 벽에 탕탕 쳤다.


“엇 뜨거!”


불티 하나가 날라가 옷 소매에 붙자 이성달이 깜짝 놀라서 털어 내었다.


“아 X발, 옷 탈 뻔했네.”


이성달이 호들갑을 떠는 사이에 갑자기 군관 하나가 좋은 생각이 난듯 말했다.


“막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뭐 다냐? 한번 읊어 봐라.”


군관이 한쪽에 꿇어 앉아 있는 군졸들을 스윽 보더니 이성달 가까이로 다가가 귓속말로 뭐라 말했다.


“너 이 새X 머리 좋은데. 그 놈들도 똥줄 한번 타 봐야 제대로 기어오르겠지.”


“잘 하면 지은남 그 놈도 어떻게 해결될 겁니다.”


“좋아. 제주놈들한테 불만이 많은 놈들로 몇 놈 뽑아 봐라.”


작가의말

동네에 네트웍이 죽어서 며칠 작업을 못하고 난 뒤 다시 시작하렸더니 갑자기 현타가 와서 글을 한 참 못썼습니다.

글을 쓸때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해서 글을 써야 글이 잘 써지는데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토리 전개가 되지 않더군요.


다른 일도 해야하는 초보작가라 그런 것이니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연재관련 공지를 다시 올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44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72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34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29 13 18쪽
67 흔들리는 민심 +1 22.10.16 822 17 16쪽
66 공세의 시작 +1 22.10.11 809 16 18쪽
65 강남 소식 +1 22.10.09 804 16 20쪽
64 제해권 장악 +1 22.10.03 850 15 20쪽
63 중학생 강호동 +1 22.10.01 795 14 17쪽
62 복수혈전 +2 22.09.24 867 15 21쪽
61 성동격서 +2 22.09.24 799 14 19쪽
60 부대각 설화 +3 22.09.19 824 15 24쪽
59 신해독대(辛亥獨對)와 보길도 래방(來訪) +2 22.09.17 923 14 22쪽
58 전라도를 내어주시지요. +1 22.09.10 984 15 25쪽
57 새로운 학문의 길을 보다 +3 22.09.05 891 15 21쪽
56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3 22.09.03 888 19 25쪽
55 형제를 위하여 +1 22.08.29 874 17 19쪽
54 신(新) 김영철전(金英哲傳) +2 22.08.22 926 19 16쪽
53 무혈입성 +2 22.08.20 985 16 14쪽
52 나주 방어전 2 +1 22.08.15 918 18 19쪽
51 나주 방어전 1 +3 22.08.13 956 17 14쪽
50 희생 +1 22.08.07 899 19 20쪽
49 대탈출 +1 22.08.04 929 18 16쪽
48 천라지망을 펼쳐라 +1 22.08.01 960 21 18쪽
47 공세 +3 22.07.31 988 21 24쪽
46 쫓는자와 쫓기는자 +1 22.07.31 1,025 17 22쪽
45 구출 2 +1 22.07.24 1,115 21 14쪽
44 구출 1 +1 22.07.22 1,056 21 19쪽
» 조선의 미륵 +1 22.07.20 1,133 21 19쪽
42 바람처럼 달려 추포하라 +2 22.07.05 1,132 20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