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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5.19 15:2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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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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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전라도를 내어주시지요.

DUMMY

광주목 읍성에 자리를 잡은 후 전라도 사람들은 물론 인근 도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근인 상황이라 먹을 것이 부족해진 이유도 있고 평소에 신분에 불만이 가진 자들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그 중에 무과 급제를 하고 놀고 있는 한량들이나 나름 무리를 모아서 찾아오는 자들은 전라병사 이집이 맡아서 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 이외에 상인들, 무속인, 종교인, 지관, 사대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부류의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었는데 장군과 운부, 유형원이 나눠서 맞이하였다.


사대부 등은 유형원이 주로 맞이하였고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싶어하는 쪽은 장군이 맡고 있었고 지관이나 무속인 같은 사람들은 운부가 처리하였다.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면 밑에 있는 사람들을 시킬 수 있겠으나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어서 세명이 직접 수고를 하고 있었다.


더구나 다른 지역의 민심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어쩌다 훌륭한 인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이날도 수학에 관심이 지대한 젊은 서생들이 왔다기에 장군이 시간을 내었다.


“와, 이것은 천원술이 아닌가? 이걸 이렇게 쓰니 너무 쉽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따로 이름을 두지 않고서도 이렇게 승수를 둬서 표현이 가능하다니 놀랍습니다.”


“산가지를 쓰지 않고도 이런 계산이 가능하다니···”


장군이 들어와서 인기척을 내었는데도 중급 수학책을 펴 놓고 토론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장군이 한참을 기다리자 그제서야 인기척을 느끼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장군이 가까이 다가가면서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고장군이라고 합니다.”


“저는 최석만이라고 합니다. 충청도의 진천에서 왔습니다.”


“저는 박두세라고 합니다. 충청도의 예산에서 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을 오셨군요.”


“새로운 학문을 배울 수 있다는데 이정도야 먼 길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습니까? 여기에 와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박두세가 대답하였다.


“사람들이 많아서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는 듯하지만 질서가 잡힌 것이 대단합니다.”


최석만은 그런 것 상관없이 수학책에 꽂힌 듯 말했다.


“이 책을 직접 쓰신 것입니까? 이런 수의 개념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박두세가 최석만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이 형님은 완성부원군이신 최명길 대감의 손자입니다.

워낙 수학을 좋아해서 이러는 군요. 하하하”


‘최명길이라면 이병헌?!’


장군이 아는 사람이 나오자 반가워서 말했다.


“오, 최명길 대감이시라면 남한산성?”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알고 계시는군요.

저의 조부께서 남한산성을 나가 청나라에 화의를 제안했다고 욕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아무도 못하고 있는 일을 하여 나라를 보존하게 한 것 아닙니까?

조부님 같은 분이 몇 명만 더 있었어도 나라가 오랑캐들에게 짓밟히는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장군이 할아버지를 두둔하자 최석만이 감읍하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먼 길을 오셨군요. 오시는데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이 나라에도 큰 인물이 나서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많습니다.”


최석만의 말에 박두세도 한마디 거들었다.


“한편으로는 혹시나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최명길의 손자인 최석만은 숙종대에 영의정을 일곱번이나 하는 최석정으로 수학에 조예가 깊어 영의정을 하면서도 구수략(九數略)이라는 수학책을 지을 정도로 이과생 유전자가 출중한 사람이었다.


특히 직교라틴방정식을 오일러보다 60년 일찍 발견하는 등 조선의 오일러로 칭송을 받고 있지만 장군으로서는 알 수는 없는 일이었고 양반 출신 괴짜 이과생이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는 중이었다.


양반이라 하면 공자왈 맹자왈만 외우면서 조선을 말아먹은 자들로 인식되고 있지만 어린 나이에 과거를 급제를 하려면 지금으로 치면 서울대에 입하하는 것 보다 몇 배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 중 일부는 진짜로 천재중의 천재라고 보아도 무방하였고 거기다 직접 찾아 올 정도로 열정이 있는 이과생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자라니 장군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최석정은 몇년전 생원과 진사시를 합격하고 올해 치러질 문과 정시를 준비하고 있다가 기근으로 연기된다는 소식에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박두세의 아버지인 박율이 얼마전 쓴 수학책인 산학본원(算學本原)을 구경하러 갔다가 박두세와 의기가 투합되어 이곳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최석정은 선천적으로 수를 좋아하였고 박두세도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연구하는 것을 즐겨하였고 둘 다 양반인체 하면서 유식을 자랑하는 자들을 싫어 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어 당여가 다름에도 서로 잘 맞았다.


최석정이 다시 흥분을 하면서 말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로 획기적입니다. 이 숫자며 기호들까지 며칠 밤을 세워도 즐겁겠습니다.”


‘수백년동안 축적된 수학의 진수가 녹아 들어가 있으니 당연하겠지.’


“그렇습니까? 더 깊이 들어가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증명할 것도 많아서 개념 정도만 간단히 쓴 것입니다.”


“아니 이것보다 더 갚은 단계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연구하고 있는 것이 좀 있습니다.”


최석정이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저도 나중에 거기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연구 노예가 되겠다는 말에 장군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아닌 척 하면서 말했다.


“사대부로서 품위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까?”


“고장군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조선의 미륵인 세종대왕의 치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세종대왕께서도 누구보다도 수학을 좋아하셨습니다.

직접 산학계몽을 공부하시고 양휘산법이라는 수학책을 신하들에게 하사하시었고, 산학계목이란 책은···”


최석정이 한참을 이야기하였다.


‘오호 세종대왕께서 수학을 직접 공부하셨구나. 허긴 수학은 모든 공학의 기초이니···’


“곧 여기에 중급 학당을 세울 것입니다.

그때 참가하여 여러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토론도하고 연구도 하면 좋겠군요.”


이제 제주에서 교육을 담당할 사람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어서 각 군현에서 인재들을 교육하고 영재들을 이곳으로 모아서 중등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함께 온 하인을 바로 집으로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런데 신분이 낮은 천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학문에 신분의 높고 낮음이 있겠습니까?”


‘오호, 자기 할아버지를 닮아 상당히 사고가 유연하군.’


실제로 최석정은 중인 신분이었던 경선징을 최고의 수학자라 칭하면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바 있는데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 행보를 보일 만큼 수학에 진심이었다.


“이 책의 방정식이라는 말은 구장산술의 방정(方程)에서 따온 말입니까?”


“딱히 그런 것은 아니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서 지은 이름입니다.

구장산술이라는 책에 그런 것이 있습니까?”


장군이 수학책을 쓸 때 산학관련 책을 좀 읽어보려 하였으나 아직 한자에 울렁증이 있던 때라 조금 보다가 때려 치웠었다.


“네, 방정이란 수들을 네모로 늘어놓고 계산하는 것으로 가령 소 2마리, 양 5마리를 팔아서 돼지 13마리를 사면···”


최석정이 종이에 그려가면서 설명을 하였다.


‘아니, 이것은 행렬이 아닌가?’


장군이 고급 수학책에 행렬부분도 넣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면 점점 범위가 늘어나니 이번에는 미분 적분, 삼각함수 같은 곳에 집중하고 행렬과 확률은 좀 나중에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옛 서적에 그런 개념이 있는 것을 보니 이 친구를 잘 꼬드기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번에 행렬이라고 이런 개념을 다루는 수학을 연구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걸 맡아서 연구를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오, 역시 이미 훨씬 앞서 나가는 군요. 알려주신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후로도 최석정이 여러가지 수학책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왔다.


최석정이 한참을 수학에 대해서 물어보다가 어느정도 해소가 되었는지 문득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실례되는 질문이라 물어도 될런지···”


“뭐든지 물어보시지요.”


“고장군께서는 지금 사사로이 군사를 일으키고 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따로 새로운 왕을 추대하지 않는다 하고 있습니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지 오래 되지 않았고 지금은 대기근으로 팔도의 백성들이 신음하고 있으니 난세까지는 아니라도 환란 수준은 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렇게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과한 것이 아닌지요?

또한 새로운 왕을 추대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를 조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십니까?”


‘한참 수학을 토론하다가 말고 이런 질문을 하다니···

후드티만 입고 다닐 것 같은 이과생이 아니었단 말인가?

원래 이 질문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던 것인가?’


장군이 훅 들어오는 질문에 당황한 것보다 수학에 관심이 많은 천재를 하나 영입하나 했는데 다른 곳에 관심을 보이자 실망감에 휩싸이다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아니지, 지금은 오히려 행정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것은 훌륭한 인재일 수도 있겠는데···’


장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하였다.


“지금은 난세가 맞습니다.

우리 조선은 중국과 그 주변의 나라들만 바라볼 줄 알지만 이 세상은 훨씬 더 큽니다.

서쪽으로 가면 천축 땅에는 청나라보다 큰 무굴제국이 있고 더 서쪽으로 가면 오스만 제국이 있는데 그 또한 청나라 보다 강성합니다.

그리도 다시 서쪽으로 가면 화란, 불란서, 영길리라는 나라가 있는데 이 나라들이 백년 이내에 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청나라는 종이 호랑이만도 못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사대부들은 중국만을 상국으로 알고 섬기고 있으니 이 어찌 난세가 아니겠습니까?”


박두세가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리고 고장군께서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지배할 것이라 했다는데 그것 또한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폭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볼 줄 안다면 누구나 다 알게 되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화란과 무역을 하여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발전하고 있고, 이미 인구와 경제력에서 조선을 넘어선 지 오래 되었습니다.


일본이 발전하는 동안 조선은 양반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것만 연구하고 있겠지요.

백골징포, 삼정문란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그때는 기근이 없어도 굶어죽는 자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백골징포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헌데 그게 더 심해지다니 정말로 큰일입니다.”


장군이 계속해서 말하였다.


“그리고 조조란 자는 난세의 영웅이라 하기 전에 서주에서 대학살을 일으킨 자가 아닙니까?

사사로운 원한으로 살육을 일으켰으니 제가 본받을 이유가 전혀 없지요.”


장군이 일단 조조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평가했고 최석정과 박두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석정을 회유할 생각도 있었고 실제로도 강기석의 일을 사사로운 원한으로 하여 대사를 그르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또한, 제가 왕을 세우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앞으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왕이 아니라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될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 누가 왕이 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최석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군림은 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왕은 있으되 통치는 하지 않고 백성들이 스스로 몇 년마다 나라의 대표자들을 뽑고 그 사람들이 백성들을 대신해서 정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조선에서도 의정부라는 곳이 있어서 삼정승이 왕을 대신해서 정치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인의예지를 바탕으로 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있고요.”


“지금 조선이 하는 정치는 양반들이 그저 권력을 나눠 먹는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말로는 인의예지를 말하면서 자기들도 이해를 못하고 관념에만 빠져 사는 자들이지요.

그런 것 말고 차라리 직업윤리라는 것으로 하면 더 나을 것입니다.

정치를 하는 자는 정치인으로서의 윤리, 의술을 하는 자는 의원으로서의 윤리, 장사를 하는 자는 상업 윤리, 이렇게 자기 직분에 맞는 윤리를 가지고 있으면 될 것을 굳이 어려운말로 이가 뭐니 기가 뭐니 하니 본인들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게 되고 결국 아무렇게나 정치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들어보니 사실인데다 논쟁을 하러 온 것이 아닌지라 둘 다 말이 없었다.


"..."


“지금의 왕께서는 성군이십니다.

당쟁만 일삼으며 일부러 사화를 일으켜 상대편을 쳐내려는 유림들을 함부로 죽이려 들지도 않고,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 안 듣는 신하들을 데리고 백성들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성군이 계신데 다른 왕을 세울 이유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최석정과 박두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연유가 있었군요.”


‘이제는 내차례인가?’


“그럼 제가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청나라에서는 명나라에서 녹을 먹던 자들이 강희제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옛날 조조를 위해서 일하던 자들처럼요.

그 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석정이 대답하였다.


“조조의 신하 문약(文若)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간의 사람들은 문약이 조조의 간사함음 몰랐다고 하는데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잠시만요. 문약이 누구입니까?”


“아, 조조의 모사인 순욱을 말합니다.”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문약이 조조를 따르자 황실은 그대로 존재하였고, 그 때에는 조조의 적란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 조조가 한나라를 찬탈하려는 마음이 드러났을 때 한나라를 위하여 죽었으니 옳다고 하였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약보다 아래에 있던 사람들도 조조가 간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하물며 문약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갑작스레 독약을 마셨으니 꼭 절의를 위해 죽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건 뛰어난 지혜가 다하여 염려가 끝에 다다라 결국 용납하지 못하여 부끄러운 생각에서 나온 일일 것입니다.


즉, 문약의 죽음은 한나라를 돕기에는 부족했던 그의 자질 때문인 것이고 또한 인(仁)을 이루는 데에도 부족했던 것 때문입니다.


그 잘못의 근원은 조조를 처음부터 잘 알고 있음에도 그를 위해 재주를 썼으니 참으로 경솔히 자용하였다 할 것입니다.”


‘어렵구만. 결국은 본인이 순욱이었으면 간웅인 조조를 섬기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말인가?


아직은 나를 조조로 본다는 것인가?

쓸만한 사대부들은 어느정도 그 부분을 경계를 하고 있을 것이니···


생각 같으면 싹 갈아 엎고 평민, 노비들로 꾸려가고 싶지만 그들을 가르쳐서 제대로 일을 하게 만들려면 최소 5년은 잡아야 하니 참아야 한다.


조정의 관리들을 싹 갈아 엎으면 당장 청나라에 사신으로 보낼 사람도 잘 없을 테니 청나라와의 관계부터 어그러지지 않겠는가?’


장군이 웃으면서 물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계속 머물 것입니까?”


최석정이 뭔 일이 있었냐는 듯 웃으며 말했다.


“당연합니다. 이 수학책은 너무 흥미롭군요. 그리고 어묵과 소세지도 맛있고요.”


장군도 천천히 호감도를 올릴 요량으로 흔쾌히 머무는 것을 수락하였다.


"좋을 대로 하시지요."


* * *


“오 이것 참 맛있습니다. 고소한 것이 술 한잔이 생각나는 군요.”


첫 만남 이후 사흘이 지나 허적과 박세당 그리고 장군 등이 협상테이블에 앉아서 땅콩을 까먹으며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허적의 말에 박세당이 한마디 하였다.


“이게 땅콩이라고 하는 것이랍니다. 땅속에서 자라는 콩이라서 땅콩으로 부른답니다.”


“그러고 보니 볶은 콩과 맛이 비슷하구만. 이것은 어디에서 구했습니까?”


그 전날 장군과 따로 만나서 색경 집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장군이 새로운 작물이 있다고 소개를 했던 터라 박세당이 대답을 하였다.


“중국에서 구해왔다고 합니다. 절강성이라고 했던가요?”


“네, 절강성 섬지역에서 온 상인이 구해다 준 것입니다.”


중국에서 여러 작물들을 구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절강성에서 온 상인이 땅콩을 구해다 주었다.


중국에 땅콩이 전래된 지 좀 되긴 했지만 아직은 널리 재배하고 있지는 않았고 섬 같은 척박한 곳에서 점점 재배하고 있는 중이었다.


감자 같은 작물들도 구해왔는데 그리 많이 구하지 못해서 이번에 제주에서 재배에 성공을 하면 널리 보급할 계획이었고 땅콩은 제법 많이 구해와서 박세당에게도 주어 재배법을 연구해 보라고 하였다.


장군이 농사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만 알지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기에 많은 것은 말해 줄 수 없어서 이런 것이라도 줘서 환심을 사보려는 방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청국상인들이···”


허적이 무심코 말을 하자 박세당이 말하였다.


“기근이 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못들은 것으로 하시지요.”


허적이 이해를 한다는 듯이 장군을 보고 말하였다.


“의주나 동래에서도 공공연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함구할 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땅콩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니 구황작물로 이것 만한 것이 없습니다.

특히 섬이나 해안가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지요.”


“주상전하께서 소식을 전해 들으면 좋아하시겠습니다.”


허적의 말에 농사 좀 지어 봐서 농사의 어려움을 아는 박세당이 말했다.


“재배에 성공하면 말씀을 드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세나.

이것도 대단하지만 사실 유처사님의 반계수록이라는 책이 너무 훌륭합니다.”


허적은 이번에 유형원이 혁명군 측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많이 놀라워하였다.


특히 허적과는 안면이 있던 터라 하루 전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반계수록도 전해주기도 하였는데 읽어 보았는지 덕담을 하였다.


“부끄럽습니다. 많은 보완할 점이 있는 책입니다.”


“시간이 없어 많이 읽어보지는 못하였지만 첫 권만 읽어도 그 경지가 느꺼진다네.


비록 우리가 성리학으로 왕도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방안만은 옛 제도를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방안들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있으니 주자의 책들보다 훨씬 낫다고 감히 말하겠네.”


예전에는 감히 주자의 그림자 조차도 밟을 생각조차 못하였는데 장군이 서원 깨기를 시전한 결과로 이런 말이 쉽게 나왔다.


“스승님의 책은 우리가 진행할 개혁의 근본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사정에 맞게 약간씩은 수정을 해 갈 것이지만 이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필사본을 몇 권 드릴 것이니 주상전하께 바칠 수 있으면 합니다.”


“이런 훌륭한 책을 쓴 신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시면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시작부터 화기애애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고 반계수록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후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니 전라도를 달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허적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혔고 운부가 담담히 말했다.


“아시다시피 조정에서 보내온 안은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말과 같지 않습니까?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다가 결국은 흐지부지 될 것이 뻔한데 우리가 군사를 해산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차라리 전라도를 저희들에게 주어 자치를 하도록 해 주면 우리가 하려는 개혁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직접 보여 드릴 것이오.”


조정에서 보내온 안을 받아 들고 이틀동안 토론을 거듭하였다.


이미 조정에서 상소에 올린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어느정도 짐작하였지만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장군이 20년 동안 전라도에서 자치를 하도록 허락을 받아 개혁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직접 보여주는 안을 내었다.


전라도에 와서 수차례의 전투를 치루면서 벌써 수십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면 최소 수백은 죽을 것이고 근왕군을 포함하면 수천은 죽을 수도 있는데 아직은 그 정도를 쉽게 받아들 자신이 없었다.


처음부터 왕이 되어 조선을 통치하겠다 마음먹었으면 모르겠으나 아직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여전히 현대인의 사고방식이 남아있는 장군으로서는 그런 동족상잔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비록 얼마전 형제 같은 사람을 잃었다 하나 그것은 개인적인 복수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런 결정에 끌어들이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보니 기근의 참상이 생각했던 것 보다 심했고 화란에서 들여오는 십만석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지도 미지수였고 이제 날이 따뜻해지면 구제역 같은 병들이 창궐할 것이고 역병도 다시 번질 것인데 그것까지 해결하면서 전쟁을 해나갈 수 있을 지도 걱정이었다.


더구나 수군을 보강하고 신형 대포를 시험하고 있지만 통제영과 전라 좌수영의 수군전력은 혁명군 수군의 두배를 넘기 때문에 잘못하여 장기전이 되는 것보다 전라도를 자치를 하는 것이 나은 방안이라 판단하였다.


물론 쉽게 설득이 될 리는 없겠지만 의미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보다 적극적인 안을 내어서 의지가 있는 것을 보이는 것도 좋다면서 운부가 동의했고 유형원도 괜찮다고 하였다.


박세당도 불가함을 말했다.


“취지는 잘 알겠으나 그게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지 않습니까?”


유형원이 대답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불가능한 일일세.

그건 좌상대감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허적이 수염을 비비 꼬면서 말했다.


“허허허, 우리를 보고 돌아가서 사약을 받으라는 말이시구만.

안 그래도 서인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고 있는 판국에!”


허적이 서인인 박세당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장군이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잘만 되면 이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토록 바라던 청나라에 복수도 하고 사대부의 소원이라는 제조지은도 갚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운부가 말했다.


“조정에서 관리들을 보내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확인을 하면 될 것이 아닙니까?

서인들 중에도 여기 온 박서계와 같이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소이까?”


박세당이 답하였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제안입니다.”


“이십년간만 한시적으로 할 것입니다. 그 정도면 개혁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판가름이 날 것이 아닙니까?”


장군이 이십년이란 기간을 잡은 것은 이 시대 기준 대략 한세대가 바뀌는 시간이니 잘 하면 인구를 두배로 늘릴 수 있고 그 정도 되면 무역을 통해서 조선 팔도의 경제는 충분히 장악이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다.


물론 그걸 앞당겨 십년내에 조선을 장악할 생각이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일이 잘 안되어도 그 뒤 몇 년 뒤면 길게는 오년이나 지속되었다 하는 을병대기근이 버티고 있으니 적절한 기간이었다.


허적이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이십년이면 강산이 두 번 변하는 기간인데 그것을 조정에서 허락 하겠소?

십년도 안될 것이오.”


장군이 말했다.


“신분보장만 확실히 해준다면 제가 가서 주상전하를 설득하겠습니다.”


유형원과 운부가 깜짝 놀랐다.


“아니 그것은 안될 말이다. 이건 계획에 없던 것 아니었느냐?”


“그래도 신하된 도리로 주상전하께 직접 나아가 아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상전하께서 신분을 보장하겠다는데 다른 누가 감히 저를 해하려 들겠습니까?”


“그건 그러하다만···”


허적이 말하였다.


“고장군이 직접 주상전하를 뵙고 허락을 받는 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허나 전라도 전체를 다 달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오.”


“그래도 한번 개혁을 하면 한 개 도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제가 직접 가서 설득을 해 보겠습니다.”


“알겠네. 내가 가서 주상전하께 직접 아뢰고 살아 돌아온다면 함께 가도록 하세.”


허적도 원래 조정의 안을 장군등이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원래 반란군이라는 것이 체계도 잘 없고 약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 잘 설득하면 어쩔 수없이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와서 보니 실상은 달랐고 군사들도 질서가 있어서 어떻게 해 볼 틈이 없었는데, 협상에 진척이 없었다고 보고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안을 받아가는 것이 어쩌면 나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그럼 열흘 후에 뵙겠습니다.”


* * *


장군과 허적등이 열심히 만남을 가지고 있는 동안 송시열이 홀로 희정당에 들었다.


현종이 뜨던 뜸을 물리면서 말하였다.


“어서오시오. 어쩐 일로 독대를 청하셨소?”


송시열이 급히 바닥에 엎드리며 말하였다.


“소신이 긴급히 아뢸 것이 있어 이렇게 감히 독대를 청하였사옵습니다.”


작가의말

추석 잘 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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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73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34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29 13 18쪽
67 흔들리는 민심 +1 22.10.16 822 17 16쪽
66 공세의 시작 +1 22.10.11 809 16 18쪽
65 강남 소식 +1 22.10.09 804 16 20쪽
64 제해권 장악 +1 22.10.03 851 15 20쪽
63 중학생 강호동 +1 22.10.01 795 14 17쪽
62 복수혈전 +2 22.09.24 867 15 21쪽
61 성동격서 +2 22.09.24 799 14 19쪽
60 부대각 설화 +3 22.09.19 824 15 24쪽
59 신해독대(辛亥獨對)와 보길도 래방(來訪) +2 22.09.17 923 14 22쪽
» 전라도를 내어주시지요. +1 22.09.10 985 15 25쪽
57 새로운 학문의 길을 보다 +3 22.09.05 891 15 21쪽
56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3 22.09.03 888 19 25쪽
55 형제를 위하여 +1 22.08.29 874 17 19쪽
54 신(新) 김영철전(金英哲傳) +2 22.08.22 926 19 16쪽
53 무혈입성 +2 22.08.20 985 16 14쪽
52 나주 방어전 2 +1 22.08.15 919 18 19쪽
51 나주 방어전 1 +3 22.08.13 956 17 14쪽
50 희생 +1 22.08.07 899 19 20쪽
49 대탈출 +1 22.08.04 929 18 16쪽
48 천라지망을 펼쳐라 +1 22.08.01 960 21 18쪽
47 공세 +3 22.07.31 988 21 24쪽
46 쫓는자와 쫓기는자 +1 22.07.31 1,025 17 22쪽
45 구출 2 +1 22.07.24 1,115 21 14쪽
44 구출 1 +1 22.07.22 1,057 21 19쪽
43 조선의 미륵 +1 22.07.20 1,133 21 19쪽
42 바람처럼 달려 추포하라 +2 22.07.05 1,132 2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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