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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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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5.2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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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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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부안 읍성 전투 1

DUMMY

“무위자께서는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초립을 쓴 사내가 익숙하게 안사랑채로 들어오며 말을 건네자 곽세건이 반가이 맞았다.


“어서오게. 오늘은 날이 차니 안으로 들어오게나.”


사내가 자리를 잡자 곽세건이 간단한 요기거리를 내어오게 하고 인사를 건넸다.


“먼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금방 온 것을 보니 산을 넘어온 것은 아닌 것 같네만···”


“산쳥쪽에 있다가 바로 왔습니다.”


“벌써 그곳까지 진출을 한 것인가?”


“아직은 아니고 북쪽의 함양까지는 진출을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과 덕유산에 당취들과 도인들이 많이 있으니 동쪽으로는 거창, 북쪽으로는 무주까지는 세력권이라 볼 수 있지요.

지금 경상 우도 북쪽에 우역과 여역이 창궐하여 저희들이 나서서 돕고 있습니다.”


충청도에서 여역이 돌았을 때 장군이 나서서 잘 막아서 전라도 쪽은 더 이상 전염병이 크게 돌고 있지는 않았지만 비누가 전해지지 않고 먹을 것이 없는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 산간지방에서는 여전히 전염병이 많이 돌고 있었다.


특히 함경도 지역은 우역과 여역이 한꺼번에 창궐하여 많은 피해를 입혔고 경상 우도 쪽에서도 전염병이 돌아 남원 지역까지 역병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마침 그쪽을 막 점령이 된 터라 급히 지역을 봉쇄를 하고 사람들을 급히 보내서 역병 치료를 하면서 쌀을 나눠주면서 함양과 장수 거창 합천 쪽까지 영향권에 넣고 있었다.


“소문은 들었네만 심하지는 않은겐가?”


“몇 해전에 우역이 크게 돈 뒤로는 우역에 걸려도 죽어 나가는 소는 많이 없어졌습니다.

비누로 깨끗이 씻기고 석회를 뿌려서 길과 외양간을 소독을 하고 있어서 조만간 진정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당시 조선 반도 전역에 우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병자호란 즈음에 만주쪽에서 전염된 우역으로 조선에서는 9할의 소가 전멸하여 몽고에서 소를 사오기까지 하였다.


그후 한참 우역이 잦아 드는가 하다가 몇 해 전부터 우역이 전국적으로 크게 돌았고 다행히 바이러스가 약해진 것인지 면역된 소가 많아서 그런 것인지 예전보다는 죽어 나가는 소는 적은 편이었다.


“그것 참 다행이군.

비누와 석회로 우역을 막는다니 생전 처음 들어본 방법일세.”


“고장군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입니다.

전염병은 병균에 의해서 옮겨 지는데 비누로 씻기고 석회를 구워 물에 타서 뿌리면 병균을 죽일 수 있다 합니다.

신발로도 전해질 수 있다하여 우역이 돈 우사 근처에서 나갈 때에는 신발까지 잘 씻으라 합니다.”


“비누도 만들고 역병을 막는 방법도 안다니 과연 하늘이 내리신 장군일세.

여역도 그렇게 없앨 수 있다는 것인가?”


“여역은 비누를 집집마다 나눠줘서 손발을 깨끗이 씻게 하고 약을 처방하고 있습니다.

마침 그 동네에 유이태라는 젊은 의원이 있는데 어려서 스스로 마진을 치료한 자가 있습니다.

지금의 여역은 마진과는 조금 다르 긴 한데 그 의원이 여역을 위한 약도 만들고 병든 소에게도 먹일 약을 만들어 많은 차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가져온 약도 함께 쓰니 조만간 여역이 없어질 것 같습니다.”


“그것 참 다행한 일이로군.”


“이곳은 그래도 여역이 퍼지지는 않았군요.

허긴 청학상인께 직접 도를 전수받으신 무위자께서 있으신 데 역병도 피하가겠지요.”


“직접 전수를 받은 것은 아니고 금강산에 갔을 때 몇 번 찾아간 적은 있네.

나야 그때에는 워낙 어렸고 유학자라 그저 먼 발치에서만 뵈었을 뿐일세.”


백여년 전 청학 상인이 해동칠선(海東七仙)을 데리고 청학동에 자리 잡았을 때 지리산 주위에 도교가 크게 발달했는데 임진왜란 즈음에 금강산으로 옮겨 가게 되면서 도교의 중심이 금강산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남쪽에서는 유학과 혼합이 된 도교 문화가 형성이 되어 있었고, 지리산 주위의 유학자들도 약간씩 도교의 영향을 받고 있었는데 특히 조식의 학맥을 잇고 있는 영남우도의 유학자들은 타 학문을 배척하지 않아서 도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무위자 곽세건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한참을 역병이야기와 도학이야기를 주고받고나서 드디어 청운자가 운을 떼었다.


“이렇게 저를 부르신 연유는 드디어 결심이 서셨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네. 며칠 전 의령에서 남명 조식의 학맥을 잇는 우도의 유림들이 모여서 결의를 모았네.

이곳 진주를 비롯하여 경상우도는 이미 서인들의 표적이 되어 저쪽 당여로 옮겨가는 자들이 많네.

갖은 방법으로 안과 밖에서 공격을 하고 있으니 몇 십년 뒤에는 남명선생의 학통이 끊길까 걱정일세.

게다가 경상 우병사 정영은 성품이 거칠고 야비하여 오로지 자기 살찌우기에 여념이 없으니 이대로 두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를 것일세.

하여 우리 영남 우도의 유림들도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여는데 동참하기로 하였네.”


“잘 하셨습니다.

영남 우도의 유림이 직접 나서 준다면 경상도는 한시름 놓았습니다.”


얼마전 병영성에서 전략회의에서 경상도 유림들을 회유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제 그 다리 하나가 놓이려고 하고 있었다.


* * *


“휴유~!”


부안읍성 북쪽 상소산(성황산)의 장대에 올라 서북쪽에 있는 가야포(加耶浦)를 바라다보며 부안현감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야포는 부안읍성에서 십여리 밖의 위치한 포구로 지금은 간척지가 조성이 되어 육지이지만 이 시기에는 갯벌이 십오리 밖 계화도까지 넓게 펼쳐져 있었고 동진강과 주상천의 물길이 깊게 이어져 썰물이면 제법 큰 배가 들어올 수 있었다.


하루 전 역도들의 수군이 가야포로 상륙하여 진지를 구축하더니 이날은 아침부터 배를 들여와 대포를 내리고 있다는 첩보를 듣고 부랴부랴 장대위로 올라와 확인을 하는 중이었다.


“역도들이 오늘 대포를 내리고 나면 내일부터 공격을 시작할 것 같습니다.”


함께 올라온 전주부 중군 별장 동첨절제사의 말에 부안현감이 힘없이 대답했다.


“읍성은 크고 지켜야 할 사람들은 많은데 군사는 부족하니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부안읍성은 규모가 전주읍성의 세배나 되지만 현감이 수령으로 있는 특이한 고을이었고, 변산반도 서쪽에는 인조때 지은 격포행궁(부안행궁)이라는 행궁도 있었다.


이 행궁이 있는 격포진은 바닷길로 청나라로 가는 사신행렬의 출발지였고 임경업 장군이 명나라로 망명할 때에도 이곳 근처의 섬에서 배를 타고 떠나기도 하였다.


인근의 가야포 역시 삼한시대에 남원, 임실까지 진출해 있던 가야국 사람들이 중국으로 무역을 할 때 배를 띄웠던 포구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듯이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런 연유로 조선 초에는 인근 7개 고을을 관할하는 거진(巨鎭)의 역할을 하여 부안읍성이 크게 지어진 것인데 공도정책과 상업을 장려하지 않은 조선의 정책상 이후로는 중요성이 크게 떨어져 이제는 현감이 부임하는 곳이 되었다.


“차라리 성을 내어주고 전주부로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서천포까지 역도들에게 점령되고 나니 이곳이 아주 고립무원이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부안현감의 말에 별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이곳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군사들이 칠백이나 되니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서천포가 함락되고 난 뒤 전라 후영(後營)의 군사들을 서쪽으로 보낸다 하지 않았습니까?

전라감영에 전령을 보내 두었으니 곧 지시가 내려올 것입니다.”


부안현감이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것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로구나!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꼬?”


그동안 남쪽의 여러 고을의 수령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북쪽으로 도망을 오면서 전주부쪽으로 피난 행렬들이 이어졌는데 전주읍성은 정유재란때 부서지고 난 후 복구가 안되었고 협소하기 때문에 성이 넓은 부안으로 보내고 있었다.


얼마전에는 필암 서원에서의 일로 서인 유림들이 대거 올라온 데다가 최근에는 고창쪽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있던 역도들이 북쪽으로 진격해오면서 고부, 정읍, 태인 등 고을들에 있던 뒤가 켕기는 탐관오리며 양반들과 지주들이 대거 몰려오면서 부안 읍성에는 수천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종6품 현감이라 다른 고을 수령들에 비해 품계에서 밀리는데다 꼬장꼬장한 사대부들이 대거 들어와 있다 보니 부안현감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는데 이제 공격이 임박해 있으니 안팎으로 우환이 겹친 격이었다.


원래 성의 방어에는 군과 민이 합심을 해야 하는데 성안의 주민들은 일천 오백 정도 되고 보통 성민들은 성직군으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나머지는 무기나 돌을 나르는 등 쓰임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읍성 내의 상황은 주변 지리를 잘 아는 성민들의 일부는 이미 도망을 갔고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이천이 넘었지만 대부분 양반들이나 지주들이라 도움이 안 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성안에 피난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비축해둔 쌀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역도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걱정입니다.”


“성안에 있는 자들 중에 저놈들과 내통하는 자들이 있을 테니 이미 알고 있겠지요.

게다가 야밤에 도주하는 가족들이 많은데 오늘밤 자고 나면 또 어떨지 걱정입니다.”


별장은 무관인데 현감은 문관이고 품계도 다르지만 두명의 처지가 비슷한 지라 서로 넋두리를 주고받으며 위로를 하고 있었다.


그 시각 부안 현 오리 밖에 진을 치고 있는 혁명군 진지에서는 연대장 허현이 작전 설명을 하고 있었다.


혁명군의 1연대가 종정산(시어산)에 걸쳐서 진을 치고 있었는데 포를 가지러 간 3대대를 제외한 2개 대대 천이백 정도의 군사가 주둔해 있었다.


“지금 가야포에 대포를 내리고 있고 내일이면 부안읍성 공략에 나설 것이다.

이제 오후가 되면 대포를 이곳으로 옮겨올 것이니 그전에 부안읍성의 서쪽 신안산(고성산)을 점령해야 한다.

신안산 정상에는 옛 산성이 있는데 군사 오십 정도가 주둔하고 있다 한다.

3대대가 포를 가져오는 동안 1대대는 서문 쪽에 있는 개천 앞에 진을 치고 혹시나 있을 요격을 대비할 것이다.

2대대는 군사를 둘로 나누어 1,2중대는 이곳에 남아 본진을 사수하고 3,4중대는 신안산을 공략한다.”


며칠 전 병영성에서 있었던 작전회의에서 1연대의 연대장으로 임명된 허현이 상기된 목소리로 작전을 설명하였다.


그 전에도 신병들이 훈련을 마치면 바로바로 충원을 하여 규모가 커지고 있었지만 체계는 잡히지 않았는데 이번에 군제를 개편하면서 연대를 신설하였고 특별히 1연대을 허현이 맡게 되었다.


군사 경험이 아직 부족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많은 공을 세우기도 하였고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높은 지위에 올라갈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이는 측면도 있다는 취지에서 장군이 제안을 하였고 모두들 동의하였다.


“지금 내려와 보셔야 겠습니다. 역도들이 서문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부안 현감과 별장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에 군관 한 명이 장대위로 뛰어올라와 급히 알렸고 부랴부랴 서문쪽으로 향했다.


“지금 상황이 어떠한가?”


바로 서문의 누각인 개풍루로 달려오자 성문위에서 역도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던 군관이 말했다.


“지금 개천 건너편에 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공격을 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만 삼백 정도의 군사들이 신안산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음, 적들이 대포를 옮겨오기 전에 신안산 위의 토성을 점거하려는 것일 수 있다.”


“어떻게 할까요? 군사들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사를 더 보냈다가 협공을 당하면 되려 당할 수 있다.”


“역리토성에는 군사가 오십밖에 없습니다. 저대로 두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별장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명령을 내렸다.


“군사를 한명이라도 아껴야 한다. 전령을 보내 철수하라 하여라.”


잠시 후 전령이 말을 달려 토성위의 군사들에게 전달하였고 모두 산에서 내려와 상소산 위의 고개에 있는 북문쪽으로 퇴각하였다.


‘휴~’


허현이 속으로 몰래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이전까지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에 맞추어 전투에 임하면 되었으나 이제 군 조직체계가 정비가 되고 연대장이라는 직책이 주어지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휘관들이 부족하다는 사정을 감안해도 아직 나이도 어린데다 지난해 까지는 그저 갑사에 불과한 일개 병졸 급이었었는데 몇 달 만에 군사 이천이상을 지휘하는 정3품 영장급의 지휘관이 된 셈이니 그 무게감이 어마어마하였다.


게다가 장군이 말하는 능력위주의 인재 등용의 본보기인 셈이니 더욱 부담이 되었는데 다행히 큰 어려움 없이 토성을 점령하였다.


“전령을 보내어 대포를 옮겨와도 된다고 하고 주위에 척후병들을 보내 혹시 모를 요격에 대비하라!”


* * *


다음날 아침이 되어 종정산 아래의 혁명군 진영에는 중대장급까지 모여서 성을 공략할 전술을 공유하였다.


허현이 먼저 말을 시작하였다.


“어제 큰 어려움 없이 대포를 가져왔고 오늘 드디어 성을 공격할 것이다.

이번에 부안 읍성을 함락시키면 전주 서쪽이 모두 우리 수중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전주 공략에 나설 수 있다.

자세한 전술은 작전 참모부에서 나와서 설명을 할 것이다.”


특전1대 대장 삼동이가 나와서 설명을 하였다.


특전대는 작전사령부 소속이지만 이렇게 연대의 지휘아래 척후 등의 임무를 맡으며 작전 수립에 일조를 하였고 장기적으로는 연대 자체에 비슷한 부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지금 부안읍성에는 군사들이 칠백이 있고 성안의 백성들은 원래 주민이 천이백 정도가 있고 여러 군현에서 피난 온 자들까지 합하면 삼천 정도가 있습니다.

이번 공격은 군사들을 둘로 나누어 서문과 남문을 공격할 것이며 대포는 서문에서만 사용할 것입니다.

남문쪽에는 공격하는 시늉만 할 것이고 서쪽 성벽이 무너지면 동시에 협공을 하여 성을 점령하는 것으로 할 것입니다.

남문 쪽은 1대대와 2대대의 1, 2 중대가 공격을 할 것이고 서문 쪽은 2대대 3,4 중대와 3대대가 포병과 함께 공격을 할 것입니다.”


한참 동안 작전을 설명을 마치자 1대대장 김재홍이 질문하였다.


“성안에는 중화기가 별로 없고 우리 군사들이 이천이 넘으니 바로 공성을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성안에 심어 놓은 간자가 보낸 정보에 의하면 지자총통 몇 문을 제외하면 특별히 중화기는 없다고 하였는데 지난번 나주방어전에서는 병영성에서 가져온 비격진천뢰도 있었고 나주성에는 불랑기포 등도 있었지만 이곳은 변방의 성이라 그런 것은 없는 듯 보였다.


“그래도 되겠지만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첫번째로는 우리 군사들이 숫자는 많지만 신병들이 많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관군들의 수준이 지금까지의 우리가 맞서 싸웠던 군사들 보다는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속오군들이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하였지만 이곳의 군사들은 주변의 여러 군현에서 들어온 군관급들이 많이 배속되어 있으며 출신군관들도 많아 개별 역량이 훨씬 높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이번에 새로 가져온 대포들의 위력을 실험해 볼 계획이 있어 오늘 하루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공격을 할 것입니다. “


“적들이 도망갈 때에는 너무 쫓지 말라는 명령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도 우리 병사들이 신병이 많아서 실수하여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이곳에는 주로 사대부들이 많이 있는데 너무 심하게 쫓다가 그들이 상하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서인계열이고 그 중에 악덕관리들이나 지주들도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두드려 패서 잡아 가둬야 하는 것아닙니까?”


“죄가 많은 자들은 이미 더 북쪽으로 도망을 갔고 남아 있는 자들은 다른 곳에 연고가 없거나 우리에게 잡혀도 큰 문제가 없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심하게 몰다가 죽는 자들이 나온다면 민심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항복을 하면 모르나 일부러 달려들어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북쪽 동진강으로 정찰을 나갔던 특전대원 두 명이 급히 들어와서 말했다.


“지금 북쪽 포구인 동진강의 줄포(茁浦) 쪽에 관군들이 상륙하고 있습니다.”


허현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뭐라고?! 규모가 얼마나 되고 어디에서 오는 군사들이냐?”


“군사는 칠팔백정도 되어 보이고 깃발로 보면 전라 후영(後營)의 군사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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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부산진과 진주성 +1 22.11.01 630 14 19쪽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45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74 13 20쪽
»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36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31 13 18쪽
67 흔들리는 민심 +1 22.10.16 823 17 16쪽
66 공세의 시작 +1 22.10.11 810 16 18쪽
65 강남 소식 +1 22.10.09 805 16 20쪽
64 제해권 장악 +1 22.10.03 852 15 20쪽
63 중학생 강호동 +1 22.10.01 796 14 17쪽
62 복수혈전 +2 22.09.24 868 15 21쪽
61 성동격서 +2 22.09.24 800 14 19쪽
60 부대각 설화 +3 22.09.19 825 15 24쪽
59 신해독대(辛亥獨對)와 보길도 래방(來訪) +2 22.09.17 924 14 22쪽
58 전라도를 내어주시지요. +1 22.09.10 986 15 25쪽
57 새로운 학문의 길을 보다 +3 22.09.05 892 15 21쪽
56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3 22.09.03 889 19 25쪽
55 형제를 위하여 +1 22.08.29 875 17 19쪽
54 신(新) 김영철전(金英哲傳) +2 22.08.22 927 19 16쪽
53 무혈입성 +2 22.08.20 986 16 14쪽
52 나주 방어전 2 +1 22.08.15 920 18 19쪽
51 나주 방어전 1 +3 22.08.13 957 17 14쪽
50 희생 +1 22.08.07 900 19 20쪽
49 대탈출 +1 22.08.04 930 1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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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공세 +3 22.07.31 989 21 24쪽
46 쫓는자와 쫓기는자 +1 22.07.31 1,026 17 22쪽
45 구출 2 +1 22.07.24 1,116 21 14쪽
44 구출 1 +1 22.07.22 1,058 21 19쪽
43 조선의 미륵 +1 22.07.20 1,134 2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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