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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월광풍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목로
작품등록일 :
2022.02.16 20:35
최근연재일 :
2022.05.02 09:35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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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05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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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10,686

작성
22.02.16 20:54
조회
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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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
11쪽

제1화. 귀신인가 신선인가.

DUMMY

중국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해 있는 장가계는 한나라 때 장량(張良)이 모든 관직을 버리고 도망 와 은거해 살던 곳이다.


장량은 토착민들한테 벼 심는 기술, 의학 등 많은 것을 전수 해 주었는데, 예전부터 살던 토가족이 모두 장량의 성씨를 따랐다.


그래서 장씨의 집안인 장가계(張家系)라고 한다.


장가계는 울창한 숲과 높이를 알 수 없는 기암절벽, 붓대를 세워놓은 것 같은 까마득한 봉우리들을 짙은 운무가 휘감아 돈다.


조물주가 만든 신비한 장관을 어찌 인간의 필설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마는, 당나라의 시인 이백이 신선이 사는 곳을 노래한 ‘산중문답(山中問答)’이란 시에는···,


묻노니,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웃을 뿐, 대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흘러가나니,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신선들이 사는 세계인 무릉도원과 같은 장가계는 가고 싶어도 험준한 지형 때문에, 일반인들은 갈 수도 없었지만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먼 옛날부터 터전을 잡고 살아오던 소수 부족들과 나라에 죄를 짓고 도망 와 숨어사는 죄인들, 그리고 흉악한 도적들만이 여기 저기 흩어져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장가계에 사는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은 사냥과 농사를 업으로 삼고 산에서 나는 버섯과 진귀한 약재 등을 캐어 그날그날을 살아갔다.


이곳 높은 산 입구,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양지바른 곳에 이십여 호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은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 한쪽에 겨우 비바람과 추위를 막을 정도의 허름한 움막에서 갑자기 호통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걸 글씨라고 썼느냐? 지렁이가 기어가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거적을 깐 방안엔 변변한 살림살이도 없었고 흙 담에 휑하니 구멍만 내놓은 창문아래 십여 살로 보이는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이는 얼굴이며 손에 먹물을 잔뜩 묻힌 채 자신이 써놓은 글씨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 앞에는 사십여 세의 깡마른 이가 아이를 나무라고 있었다.


병색이 짙은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부라리고 있는 걸 보니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사방에는 종이가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는데 쓰여 있는 글자는 정말로 지렁이가 기어간 듯이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한 참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리가 없자 아이가 살그머니 눈을 들고 흘깃 쳐다보았다.


벽에 기대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무라던 사람의 눈가엔 눈물이 번져있었다. 아이는 놀라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키우느라 지금껏 고생만 하며 홀로 살아왔는데, 오늘도 자신에게 상심하여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니 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느새 소년의 눈에서도 눈물이 맺히더니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종이를 적시고 있었다.


흘러내린 눈물로 글씨가 번지자 아이의 눈에도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기침을 억지로 참으며 벽에 기대어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노삼은 십여 년 전에 갓난아이를 안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궁벽한 장가계로 왔다.


비록 배운 것도 없고, 재산도 없이 미천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풍속과 인정은 순수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 알았다. 갓난아이를 안고 떠도는 홀아비 노삼을 안쓰럽게 여긴 마을 아줌마들이 젖을 나눠주었고, 남자들은 터를 잡도록 도와주었다.


노삼이라는 위인은 어려서부터 남의집살이를 하여 눈치가 빠르고 싹싹하였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물불을 마다않고 발 벗고 나섰기에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노삼을 한 식구처럼 여기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삼은 깊은 산속에서 약초를 캐다가 커다란 산돼지를 만나는 위기에 처하였다.


노삼은 몸을 돌려 달아나다가 등허리를 받혔으나 가까스로 바위로 기어올라 겨우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폐를 심하게 다쳤는데 약방이 없는 오지산골이라 산에서 채취한 약초가 전부라 제대로 낫지 않았다.


그 뒤로 잦은 기침 때문에 더욱 몸이 허약해져서 집안에만 있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의 이름은 노소자로 노삼과는 달리 근골이 튼튼하고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머리도 영특하여 그 또래 다른 아이들보다 생각이 깊었고 하는 행동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노소자를 보고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노삼을 놀릴 때가 많았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노삼은 바보처럼 웃기만 했는데, 돌아서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노소자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사냥도 하였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버섯과 약초를 캐어 병든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그렇지만 노소자가 잘못하는 것은 딱 하나, 글씨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노삼 역시 글을 조금 읽을 줄은 알았지만 쓰는 것은 형편없었다. 남의집살이를 하느라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십여 호 되는 마을에는 제대로 배운 사람이 없었다. 외부에서 혹 편지라도 오면 노삼이 띄엄띄엄 읽어줘야 할 판이니 노소자를 가르칠만한 선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결국 노소자는 혼자서 책을 보고 글씨를 그려야 했다. 기초가 없으니 붓만 쥐고 있다고 글씨가 늘 턱이 없어 매번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마치 지렁이가 기어간 듯 썼으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일이었다.


노삼은 죄 지은 듯이 머리를 푹 숙이고 꼼짝도 않는 노소자를 보니 정말 안쓰러워 가슴이 막히고 목이 메어왔다.


애비가 되어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자식을 나무랐으니 얼마나 못난 인간인가? 자괴감에 가슴이 미어져왔다.


실눈을 뜨고 가만히 보니 노소자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눈물까지 흘리고 있지 않은가.


설령 잘못한 일이 있어서 종아리를 때려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아이였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더욱 가슴이 미어져 참을 수가 없었다.


헛기침을 크게 한 번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노소자의 마음을 위로해주려고 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됐다, 꼴도 보기 싫으니 썩 나가거라!”


노삼은 말해놓고 아차!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라 담을 수가 없어서 속으로 끙끙대며 냉가슴만 태울 뿐이었다.


노소자는 나가라는 소리에 얼른 눈물을 훔치고 후다닥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냅다 뛰었다.


마음이 꽉 막힐 것 같아 산꼭대기에 올라가 세상을 굽어보며 큰소리를 질러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울창한 숲속을 정신없이 뛰어가는데 선명한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짐승의 핏자국 같아서 쪼그리고 앉아 살펴보니 피가 아직 굳지 않았다.


짐승이 지나 간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서 드문드문 떨어진 핏자국을 따라서 계속 산위로 달려갔다.


높고 험준한 산 중턱까지 와선 핏자국이 끊어졌는데 근처 어디에도 핏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핏자국을 찾고 있었는데, 밑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내려다보니 산 밑에서 세 명이 달려오고 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이곳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눈 깜작할 사이에 벌써 노소자 근처에 나타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산 아래에 있는 걸 봤는데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나자 노소자는 놀라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은 검은 경장차림으로 하나같이 괴상하게 생겨먹었다.


그중에 키가 제일 큰 사람은 주지교로 살집은 거의 없어서 말라빠진 당나귀 같이 생겼고.


중간 사람은 저어량으로 좀 뚱뚱한 편이었는데 돼지 코에 머리털이 듬성듬성해서 살찐 돼지와 같았고, 나머지 사람은 체구가 왜소한 자로 이름은 서유속이었다.


쥐 눈에 뻐드렁이가 튀어나와 쥐새끼처럼 교활하게 생긴 서유속이 인상을 쓰면서 물었다.


“야! 이 시꺼먼 놈아! 중놈, 봤지? 그놈이 어느 쪽으로 달아났냐?”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야? 뭐 같이 생긴 것들이.)


노소자는 그들을 골려주려고 일부러 깊은 낭떠러지가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들이 급히 그 쪽으로 달려가 보니 낭떠러지 가에 희미하나마 핏자국이 보였다.


그 밑은 아득한 낭떠러지인데 이미 떨어졌다면 필경 죽어서 시체조차 찾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주위를 살피며 흔적을 찾아봤으나 행적이 딱 끊겼기에 꼬마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보게! 중놈이 낭떠러지에 떨어진 것 같으니 내려가서 찾아보세!


어둡기 전에 그놈이 갖고 있던 물건을 찾아야지 늦으면 위 당주에게 혼쭐이 날걸세.”


바로 그때, 언제 어디서 귀신같이 나타났는지 새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그들 뒤에 서 있었다.


“아, 위 당주님!”


이들은 저승사자라도 본 듯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굽실거렸다.


쥐처럼 생긴 서유속이 고양이 앞에 쥐처럼 쩔쩔매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아래위로 새빨간 옷을 입은 남자는 대략 이십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빨간 옷과는 대조적으로 얼굴은 분칠을 한 듯이 새하얗고 입술은 연지를 바른 듯 새빨갰다.


거만하게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무표정한 얼굴엔 눈만 가늘게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은 위청적, 별호는 홍의귀수(紅衣鬼手)로 강호에서 악행을 일삼는 만무방의 여섯 두령가운데 넷째였다.


홍의귀수란 명칭은 항상 붉은 옷을 입고 다녔고 손놀림이 악귀처럼 악랄하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십 대로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누구도 몰랐다.


여자처럼 희고 예쁜 얼굴로, 음탕한 여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으나 홍의귀수는 웃으며 살인을 하는 무서운 살인귀였다.


“중상까지 입은 놈을 잡지도 못하면서 거들먹거리다니···, 밥만 축내는 버러지들아, 뭘 꾸물대고 있는 거냐?”


홍의귀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 사람은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날렸다.


홍의귀수는 노소자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마치 붉은 꽃 한 송이가 두둥실 바람에 날려가는 듯 그 몸놀림은 가볍고 매우 경쾌하였다.


노소자가 밑을 내려다보니 먼저 간 세 사람은 나뭇가지를 잡으며 힘들게 내려가고 있었으나 홍의귀수는 가지를 사뿐히 밟고 그 반동을 타며 여유 있게 내려가고 있었다.


노소자는 위험한 곳을 나비처럼 날아 사뿐히 내려가는 홍의귀수를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노소자가 보기엔 말로만 듣던 귀신이나 신선의 모습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나뭇잎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소리가 들려 왔다.


작가의말

노소자,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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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제82화. 노소자여 안녕히 +12 22.05.02 541 17 12쪽
81 제81화. 회자정리 會者定離 거자필반 去者必返 +2 22.05.01 445 14 11쪽
80 제80화. 제 버릇 개 주랴 +4 22.04.30 456 13 11쪽
79 제79화. 산중수복(山重水複) 갈길은 먼데 길은 보이지 않고 +3 22.04.29 491 15 11쪽
78 제78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투를 벌이다 +4 22.04.28 498 13 11쪽
77 제77화. 못된 제자와 사부의 결투 +2 22.04.27 467 15 12쪽
76 제76화. 또다시 스승을 배반한 신군 갈단 +4 22.04.26 485 15 11쪽
75 제75화. 용호상박 龍虎相搏 +2 22.04.25 504 15 11쪽
74 제74화. 무림의 운명을 결정짓는 비무대회 +2 22.04.24 504 12 12쪽
73 제73화. 갈단의 사부, 구유귀왕(九幽鬼王) 뇌진성 +2 22.04.23 493 12 11쪽
72 제72화. 화산 성채를 접수하다 +2 22.04.22 512 12 12쪽
71 제71화. 불구대천의 원수 +4 22.04.21 561 16 11쪽
70 제 70화. 금면악동(金面惡童) 상관마, 상관해 +2 22.04.20 625 18 13쪽
69 제69화. 파렴치한 갈단의 과거 +2 22.04.19 549 15 13쪽
68 제68화. 신군 갈단의 과거 +4 22.04.18 566 17 12쪽
67 제67화. 마침내 신비의 인물, 신군과 만나다 +4 22.04.17 578 15 12쪽
66 제66화. 사나이 대장부의 길 +2 22.04.16 580 12 14쪽
65 제65화. 노소자 사로잡히다 +4 22.04.15 578 11 13쪽
64 제64화. 흑랑채의 채주 금안랑군(金眼狼君) 호대랑 +2 22.04.14 577 14 12쪽
63 제63화. 인생이란 결국 빈손,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4 22.04.13 588 15 12쪽
62 제62화. 위기일발 (危機一髮)의 순간 +4 22.04.12 605 16 13쪽
61 제61화. 독 안에 든 쥐 +4 22.04.11 618 13 13쪽
60 제60화. 결국 꼬리를 밟히다 +2 22.04.10 623 16 14쪽
59 제59화. 도화곡(桃花谷)에서 +2 22.04.09 648 15 14쪽
58 제58화.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 +2 22.04.08 617 13 13쪽
57 제 57화. 태행산으로의 잠행 潛行 +2 22.04.08 661 16 14쪽
56 제56화. 솔바람 그늘아래 벽계수 흐르는데 +4 22.04.07 709 18 14쪽
55 제55화. 화산파의 멸문지화 滅門之禍 +2 22.04.06 715 19 13쪽
54 제54화. 갈소군의 과거 +2 22.04.05 697 17 13쪽
53 제53화. 이 파렴치한 놈아 +4 22.04.04 709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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