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목로 님의 서재입니다.

제월광풍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목로
작품등록일 :
2022.02.16 20:35
최근연재일 :
2022.05.02 09:35
연재수 :
82 회
조회수 :
89,199
추천수 :
1,653
글자수 :
510,686

작성
22.05.02 09:35
조회
540
추천
17
글자
12쪽

제82화. 노소자여 안녕히

DUMMY

주위 사람들은 넉살을 떨며 웃기던 전불원이 갑자기 입을 벌린 채 석상처럼 서있자 무슨 일인가해서 전불원과 갈소군의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봤다.


한사람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한사람은 입을 벌리고 눈을 왕방울로 만들며 꼼짝 못하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야 전불원의 말문이 트였는지 더듬거리며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소, 소연이지?”


“혹시 오라버니?”


갈소군 어머닌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전불원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얼른 뛰어가 갈소군의 어머니, 손소연의 손을 덥석 잡고 눈물부터 떨어뜨렸다.


“아이고, 이게 몇 년 만이야.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났겠다.”


“난, 오라버니가 죽은 줄 알고···.”


손소연도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여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모든 사연을 아는 노소자가 다가와 전불원에게 말했다.


“형님,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방으로 들어가 말씀을 나누시죠?”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본 전불원이 머리를 긁으며 계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전불원이 손소연과 갈소군을 데리고 옆방으로 들어가자 노소자는 전불원과 갈단의 악연을 대충 말했다. 그러자 양백송이 치를 떨며 욕을 했다.


“이런 쳐죽일 놈이 있나, 그놈은 사람 탈을 쓴 악마야.”


다른 사람들도 전불원과 손소연의 애달픈 사연에 동정을 금치 못했다.


잠시후 전불원과 손소연, 갈소군이 방에서 나와 여러 사람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오늘 같이 좋은 날 부끄러운 꼴을 보여 흥을 깼으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알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봐요.”


양백송의 물음에 전불원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알고 봤더니 갈소군이 내 딸이지 뭡니까?”


“네에? 그 그것이 정말입니까?”


모두들 깜짝 놀라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갈소군이 노소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있었다.


갈단이 아버지가 아니고 전불원이 아버지라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놀랍고 기분 좋은 소식에 침울하던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서로 덕담을 나누면서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아무리 좋은 잔치라도 결국엔 끝나는 법,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잔치를 끝내고 작별을 하였다.


금 보주는 식구들을 마차에 태우고 금가보로 돌아갔다. 청영은 노소자, 설하, 갈소군과 헤어지는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눈물을 머금고 연신 뒤를 돌아보며 떠났다.


설하 또한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갔다. 마음 저 깊은 곳에 노소자의 모습을 새기면서···.


기약 없는 만남은···,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좋았다. 이 넓은 땅에선 인연이 닿지 않으면 다시 만난다는 것은 기적일 것이다.


설하는 발자국마다 떨어지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고 할아버지의 뒤를 쫓아갔다.


그 어떤 말로도 설하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주진원도 말을 삼키고 착잡한 심정으로 묵묵히 앞만 보고 갔다.


무영문의 규칙은 목적을 완수하면 모든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무영문이 무림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연기처럼 사라져, 죽은 자들만이 무영문의 존재를 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노소자의 마음도 청영이나 설하의 마음처럼 서운하고 착잡했다.


노소자와 갈소군, 아니 전소군은 설하가 탄 말이 저 멀리 한 점이되어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전불원은 그동안 애타게 찾던 첫사랑의 여인을 찾았고,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어여뿐 딸까지 얻었으니 그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가족을 만난 전불원은 이제 거지꼴로 방황할 필요가 없었다.


목욕을 하고 머리를 단정히 빗어 상투를 틀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전불원의 모습은 일파를 영도하는 우두머리가 부럽지 않았다.


노소자는 어머니와 키워준 아버지 노삼 앞에서. 아버지 위패 앞에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이름을 장천상으로 고쳤다.


한차례 거센 폭풍이 지나간 듯, 가을 하늘은 티 없이 맑았고 바람은 상쾌했다.


노소자 아니 장천상은 이제 마음에 평안을 찾고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어머니를 만나 꿈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 제가 듣기론 어머니가 예전에 이름난 여협객(女俠客)이였다고 하던데 그때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런 말 하지 마라, 여협객은 무슨···,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철딱서니가 없었지.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고 하니 정말인 줄 알았단다. 지금의 청영처럼 천방지축이었지.”


장천상의 어머닌 그때를 회상하고 부끄러운지 얼굴에 홍조를 띠며 말을 이었다.


“하루는 산속의 도적들이 마을을 습격해 어려운 사람들의 곡식을 강탈한 일이 있었지. 난 의분을 참지 못하고 산적들의 소굴로 향했단다.


내 생각엔 도적의 우두머리와 만나 단둘이서 단판을 질 생각이었지.


그러나 놈들은 말도 꺼내기도 전에 다짜고짜 떼거리로 달려들어 난 결국 큰 부상을 입고 도망쳤지.


놈들이 끝까지 추격해왔지만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을 따돌리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단다. 그때 다 죽어가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바로 네 아버지였단다.”


“그럼, 아버지도 무술을 배우셨나요?”


“네 아버진 나라에서도 알아주는 선비라 무공을 배운 적이 없단다.


내가 네 아버님 서당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여,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어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


어머니와 차를 마시면서 기억에도 없던 아버지를 기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지난 일을 회상하며 조용히 말했다.


“얘야,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내가 헛되이 나이만 먹은 것 같다.


그동안 갈단의 말만 믿고, 너를 직접 찾아보지 못한 게 정말 후회가 되는구나. 참으로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어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어머니가 힘든 세월을 버티며 절 기다려주셨기에 오늘처럼 좋은 날을 만난 게 아니겠습니까? 전 지금 매우 행복합니다.”


“나는 아직도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단다. 하늘이 도우셔서 우리 모자를 만나게 해주셨으니, 앞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착하게 살아야겠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네가 그동안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주위에 좋은 분들이 많아 너를 많이 도와주신 걸 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남의 도움만 받을 수는 없으니 이제부터는 네가 많은 경험을 쌓아 모든 걸 네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물론 남의 의견도 경청해야 하지만 전적으로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장천상은 어머니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었다. 철썩 같이 믿었던 갈단이 그동안 내내 속여 온 것을 말씀하신 건지도 몰랐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항상 웃는 얼굴로 좋은 말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좋은 사람이라곤 말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어울려봐야 상대하는 사람의 됨됨이와 진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장천상이 깊은 생각에 빠져있자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이곳의 생활도 안정이 되었고, 갈소군 아니 전소군이구나. 소군의 어머니도 가까이 있으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앞길에 대해 생각해 봐라.


아직 한창 때인데 이곳에서 책만 읽으며 인생을 보낼 생각은 아니겠지?”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때 시녀가 들어와 밖에 사람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나가보니 전풍문의 수하 설호청이었다.


“문주님, 전 대협의 서찰을 갖고 왔습니다.”


서찰에서···, ‘낙양에서 하룻밤 사이에 50여 명의 청년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관아에서도 그들의 행방을 쫓고 있는데 전연 단서가 없어 오리무중입니다.


관아에선 결국 저에게 부탁했습니다만, 제 힘만으로 어려우니 문주님께서 꼭 도와주십시오.’라는 내용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같이 떠납시다.”


“네, 문주님. 잘 알겠습니다.”


장천상은 하인들에게 설호청을 부탁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에게 사정을 말하자 어머닌 웃으며 말했다.


“힘든 일이 되겠지만 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구나.


젊은 혈기에 경거망동하지 말고 매사를 순리에 따라 해결하면 될 것이다. 객지에서 몸조심하고,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을 구해주길 바란다.”


해는 이미 져서 주위는 짙은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장천상은 전불원과 전소군이 있는 대나무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엔 휘영청 밝은 달이 대나무 숲에 부드러운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아담한 이층집으로 다가가자 비파를 타는 소리와 함께 시를 노래하는 전소군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홀로 그윽한 대숲 속에 앉아

현을 튕기다 휘파람 부나니.

깊은 숲을 사람은 알지 못하고

밝은 달만 와서 비추인다.


獨坐幽篁裏 독좌유황리

彈琴復長蕭 탄금부장소

深林人不知 심림인부지

明月來相照 명월래상조


고즈넉한 대숲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는 전소군의 마음을 대변하는지 느긋하고 여유가 있었다.


그동안 번민에 시달리던 전소군이 비로소 가정의 안락함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 같았다.


장천상이 헛기침을 하며 기척을 내자 안에서 전불원이 나왔다.


“동생, 그렇잖아도 술친구가 없어서 적적하던 참인데 마침 단비(時雨)처럼 찾아와 주었군. 고맙네, 어서 오게.”


장천상은 안으로 들어가 소군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잠시 후 전소군이 웃으며 술상을 들고 왔다.


“형님, 전 내일 잠시 낙양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래서 인사차···.”


“무슨 일이 있는가? 혹시 같이 가자고 온 건가?”


전불원은 요 근래 방랑벽이 도졌는지 발바닥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는데, 마침 장천상이 낙양에 간다고 하자 같이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정말 몇십 년 만에 기적처럼 만난 식구들에게 먼저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장천상이 부탁을 하면 못이기는 체하며 집을 나설 생각이었다.


“아닙니다. 그동안 오매불망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을 만나셨는데 훌쩍 떠나신다면 어불성설이고 도리에도 맞지 않지요.


형님께 제가 없는 동안 이곳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러 왔습니다.”


전불원은 잔뜩 기대했다가 자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자 잔뜩 풀이 죽어 애꿎은 술만 들이켰다.


전소군도 속으로는 장천상을 따라 나서고 싶었지만 차마 말할 수 없어 애만 태우고 있었다.


전불원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빠져 나갈 수가 없자 체념하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동생이 같이 가자고 할까봐 걱정했다네, 안심하고 다녀오게.”


인사를 하고 나오자 전소군이 따라 나왔다. 장천상은 품속에서 무형검의 비급을 꺼내 주면서 말했다.


“내가 올 때까지 이 비급을 연마해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우리가 강호에 나가게 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네, 이제 마음도 안정되었으니 열심히 연마할게요.”


전소군은 장천상이‘나중에 우리가 강호에 나가게 된다면’이란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얼른 승낙하고 웃었다.


-제 1 부 끝-


그동안 제월광풍을 사랑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제월광풍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제82화. 노소자여 안녕히 +12 22.05.02 541 17 12쪽
81 제81화. 회자정리 會者定離 거자필반 去者必返 +2 22.05.01 445 14 11쪽
80 제80화. 제 버릇 개 주랴 +4 22.04.30 456 13 11쪽
79 제79화. 산중수복(山重水複) 갈길은 먼데 길은 보이지 않고 +3 22.04.29 490 15 11쪽
78 제78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투를 벌이다 +4 22.04.28 498 13 11쪽
77 제77화. 못된 제자와 사부의 결투 +2 22.04.27 467 15 12쪽
76 제76화. 또다시 스승을 배반한 신군 갈단 +4 22.04.26 485 15 11쪽
75 제75화. 용호상박 龍虎相搏 +2 22.04.25 504 15 11쪽
74 제74화. 무림의 운명을 결정짓는 비무대회 +2 22.04.24 504 12 12쪽
73 제73화. 갈단의 사부, 구유귀왕(九幽鬼王) 뇌진성 +2 22.04.23 493 12 11쪽
72 제72화. 화산 성채를 접수하다 +2 22.04.22 512 12 12쪽
71 제71화. 불구대천의 원수 +4 22.04.21 561 16 11쪽
70 제 70화. 금면악동(金面惡童) 상관마, 상관해 +2 22.04.20 625 18 13쪽
69 제69화. 파렴치한 갈단의 과거 +2 22.04.19 549 15 13쪽
68 제68화. 신군 갈단의 과거 +4 22.04.18 566 17 12쪽
67 제67화. 마침내 신비의 인물, 신군과 만나다 +4 22.04.17 578 15 12쪽
66 제66화. 사나이 대장부의 길 +2 22.04.16 580 12 14쪽
65 제65화. 노소자 사로잡히다 +4 22.04.15 578 11 13쪽
64 제64화. 흑랑채의 채주 금안랑군(金眼狼君) 호대랑 +2 22.04.14 576 14 12쪽
63 제63화. 인생이란 결국 빈손,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4 22.04.13 588 15 12쪽
62 제62화. 위기일발 (危機一髮)의 순간 +4 22.04.12 604 16 13쪽
61 제61화. 독 안에 든 쥐 +4 22.04.11 618 13 13쪽
60 제60화. 결국 꼬리를 밟히다 +2 22.04.10 623 16 14쪽
59 제59화. 도화곡(桃花谷)에서 +2 22.04.09 647 15 14쪽
58 제58화.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 +2 22.04.08 617 13 13쪽
57 제 57화. 태행산으로의 잠행 潛行 +2 22.04.08 661 16 14쪽
56 제56화. 솔바람 그늘아래 벽계수 흐르는데 +4 22.04.07 709 18 14쪽
55 제55화. 화산파의 멸문지화 滅門之禍 +2 22.04.06 715 19 13쪽
54 제54화. 갈소군의 과거 +2 22.04.05 697 17 13쪽
53 제53화. 이 파렴치한 놈아 +4 22.04.04 708 18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