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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올런스 퍼펙티드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SF

c61
작품등록일 :
2024.04.02 20:36
최근연재일 :
2024.05.19 22:53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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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79

작성
24.04.0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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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위한 소의 희생

DUMMY

서큐버스 사이에는 인간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암묵적 규칙이 있었다. 자기들이 먹는 음식인 데다, 자꾸 죽였다간 경계심을 높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서울은 1000만 가까이 바글대는 거대한 도시이니 서큐버스 퀸이 보기엔 한 100명쯤 죽여봤자 티도 안 날 것 같았다.



‘근데 딱 하나 죽였다고 이 난리야? 믿을 수가 없네.’



어딜 가도 사람 죽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TV나 라디오 소리였다. 서큐버스 퀸에게도 익숙한 물건들이었다.



‘어쨌든 탐지 마법은 피한 것 같아. 큰일 날 뻔했어.’



몸을 숨길 장소가 필요했다. 마법이 쉽게 닿지 못하는 깊은 곳, 정기 공급원으로 삼을 남자가 자주 어슬렁거려도 의심받지 않는 위치. 바로 지하철이었다.



‘여기 괜찮네. 숨기 좋겠어. 기차 타고 이동할 수도 있고. 왜 진작 못 찾았을까?’



화장실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먹잇감이 알아서 찾아와준다는 점도 최적이었다. 여왕의 체면이 엉망이 됐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서큐버스 퀸은 지하철 노숙 생활을 하며 힘을 키워나갔다. 믿음직한 하수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천 대표도 자기 일을 알아서 잘 수행했다.



“강령술 같은 건 모르십니까?”



열흘 뒤, 신단수 마법학교. 정치계 위주로 펼쳤던 조사는 소득 없이 끝났다. 남은 건 전에 확보한 서큐버스의 다리뿐이었다. 장 도사는 다리를 조종해 본체를 찾을 심산으로 강령술을 언급했다.



“알지만 하고 싶지 않아요. 미안해요.”



늘 새싹같이 맑은 데스비아의 얼굴에 잠시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 괜찮습니다. 그럼 요 녀석을 이용할 방법이······흠.”


“있긴 있어요.”


“어떤 겁니까?”


“노스는 신체 일부를 제물로 삼아서 상대방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마술을 할 줄 알아요.”


“빅토리아 노스 총리가요? 그런 마술도 하는군요.”


“노스 가문에만 전해지는 마술이래요.”


“오오. 그런데 서큐버스의 꿈속으로 들어가다니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남자한테는요.”


“아하. 그럼 가서 얘기해봐야겠네요. 엄청 바쁘던데 부탁을 들어주려나 모르겠습니다.”


“괜찮아요. 그 부분은 준오에게 맡기면 돼요.”


“흐, 사람 쓰는 솜씨가 탁월하십니다.”


“칭찬으로 들을게요.”


“궁금한 게 있는데 노스는 어느 쪽을 좋아하는 겁니까?”


“잠자리는 준오와 가지려 해요. 친구로서는 유노도 똑같이 좋아하고요.”


“잠자리를······실제로 가진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노스가 짝사랑 순정파였다니 놀라운데요.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옛날엔 그랬답니다. 자기 방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바람에 바뀌었고요.”


“그 사람이 유노였겠군요.”


“맞아요. 준오한테는 도사님이 얘기하실래요? 자주 어울리는 편이 좋잖아요.”


“그럼요. 다녀오겠습니다!”



장 도사는 바로 레이타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알겠습니다. 한 시간 안에 마법학교로 가겠습니다.”


“영국으로 가기 전에 저희 둘이서만 잠깐이라도 대화를 좀 나눴으면 싶은데 어떠십니까.”


“그러시죠.”



서큐버스 때문에 한동안 미뤄졌던, 우주의 위기를 논하는 만남이 마침내 성사됐다. 마법학교에서 가장 전망 좋은 방을 데스비아가 내주었다.


신경 쓰이니까 바로 문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유노를 멀리 떼어놓느라 잠시 곤욕을 치렀다.



“그럼······혹시라도 우리 주인공이 엿들을지 모르니 에둘러 말하겠습니다.”


“뭘 말입니까?”


“준오랑 같이 바깥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이번에 발생한 우주의 위기는 준오한테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준오 본인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누구한테 들으셨죠?”


“교장 선생님입니다.”


“데스비아가요? 그 사람도 밖에서 왔다고요?”


“모르셨군요.”


“전혀······짐작도 못 했습니다. 제가 아는 건 준오, 저, 그리고 소미랑 관리자까집니다.”


“소미랑 관리자는 누굽니까?”


“소미는 가능성의 여신의 본명이고 관리자는 소미를 만든 존재입니다. 소미가 아빠라고 부르더군요.”


“아 그래요? 이번 일은 여신조차 해결하기 어렵다 했으니 일단 넘어가고, 혹시 준오가 죽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고요.”


“준오는 인간으로 살다 죽을 생각이라던데요.”


“그 얘길 대체 왜 하십니까?”



연인의 죽음 얘기에 레이타가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준오가 죽어서 사라져야 우주의 위기가 해결되니까요.”


“그걸······저보고 받아들이라고요? 100% 확실한 겁니까?”


“솔직히 저도 확신은 없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추측입니다.”


“흥, 추측이요.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뭡니까?”


“때가 되면 준오의 결정을 존중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싶지만 장담은 못 합니다. 그때 가서 제가 어떻게 될지 저도 모릅니다.”


“9천만 우주의 미래가 걸린 일입니다. 준오가 이걸 알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아시잖습니까.”


“그럼 가서 얘기하시든가요.”


“아뇨······그건 너무 심하지요. 아무리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곤 해도······이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제일 낫지 않겠습니까.”



그 말은 진심이었다. 장 도사는 실로 마음속 깊이 상대방을 동정하고 있었다. 이는 레이타에게도 전해졌다.



“······아깐 거짓말이었습니다. 준오는 자기가 죽었을 때 어떻게 될지 알고 있습니다.”


“부디 말씀해주십시오.”


“변신이 해제되지 않는 순간이 올 거라고 했습니다.”


“예? 아니 그럼 준오의 우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긴데······허허, 이를 어쩌나······으음······.”



고뇌 섞인 신음을 낸 장 도사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유노가 다른 우주를 다 지워버릴 리 없습니다. 준오도 유노도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놔두자는 말씀입니까?”


“어차피 위기라는 것도 확실한 게 아니잖습니까. 당장 사라진 우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그럼 그냥 놔두십시오. 준오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요. 그 뒤에 일어날 일은 그때 걱정하시고요.”


“만약 준오의 힘이 한계가 있고 그 한계가 우주를 넘어서지 않을 정도라면······괜찮을지도 모릅니다.”


“그건 정말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저희 모두요.”


“현재 준오의 한계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유노의 한계요.”


“······.”



레이타는 대답하기 전에 오랫동안 고민했다. 유노 본인의 의향도 있고, 따로 준비가 필요하기도 했다.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일단 말로 설명해주셔도 됩니다. 어찌 됐건 직접 보긴 봐야겠지만요.”


“유노는 소미의 화신이라는 존재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그걸로 섹스 머신을 패배시키기도 했습니다.”


“소미의 화신이라······좀 더 구체적으로는······?”


“소행성만큼 큰 거인입니다. 하루에 60초만 활동할 수 있고요.”


“소행성이라. 엄청나게 크군요.”



‘아무리 자기 우주라고는 해도 준오 성격으로 그런 거인을? 이상한데.’



“혹시나 해서 드리는 질문인데 화신이 섹스 머신을 어떤 식으로 쓰러뜨렸습니까?”


“섹스 머신에 감염된 행성을 불바다로 만들어서 약화시켰습니다.”


“행성 표면 전체를요? 한번에요?”


“네.”


“어떻게든 제 눈으로 꼭 확인해야겠습니다. 유노 좀 불러주십시오.”



남대문 시장으로 호떡 심부름을 보내 떼어놨던 유노는 10분 정도 걸려 돌아왔다.



“어······분위기 왜 이래요? 무슨 일인데요?”


“아 뭐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화신 얘기가 나와서요. 저한테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아뇨, 안 돼요.”


“꼭 좀 보고 싶은데 정말 안 되겠습니까? 우주의 위기를 해결할 단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지구에서는 절대 안 돼요. 사람들이 그거 보면 진짜 난리 나요.”


“그러시다면 달 뒷면은 어떨까요? 지구에선 절대 안 보이는 곳이니까요.”


“그건······괜찮겠네요.”


“좋습니다. 서큐버스 마무리하는 대로 다녀옵시다. 아 그렇지, 그 서큐버스 때문에 노스 총리님을 만날 일이 생겼는데 가는 김에 길버트 선생님께 우주복도 부탁하면 되겠군요.”


“빅토리아는 왜요?”


“앉으시지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해야 할 일 두 가지를 정리한 세 사람은 빅토리아가 깨어 있는 시간에 맞춰 차원문을 탔다. 길버트가 금방 마중 나왔다.


화신 얘기를 접한 길버트는 우주복만으로는 달까지 다녀올 산소가 부족할 거라고 지적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캡슐을 준비해주겠네. 유노가 운반하기에도 그게 편할 테지. 물론 우주복은 착용하시고.”


“아이고 이렇게까지 선뜻 도와주실 줄이야. 감사드립니다.”


“공짜일 리가 있나. 올 때 달 암석이나 넉넉하게 챙겨주시게. 우리 과학자들이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군.”


“하하하하! 꽉꽉 채워 오겠습니다!”


“암석 담을 실린더도 몇 개 있어야겠지. 준비에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어떤가?”


“아주 좋습니다.”



길버트는 그 길로 아는 과학자들을 만나러 갔다. 유노와 레이타, 장 도사도 다음 볼일을 보러 출발했다.


오늘도 바쁘다던 빅토리아는 준오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타났다. 고상한 몸가짐과 도도한 표정이 한결같았으나 어디에 마음이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거 동대문 호떡인데 좀 가져왔어.”


“처음 듣는 음식이다만 잘 먹으마.”


“엄청 뜨거우니까 조심해.”



빅토리아는 팬케이크처럼 납작한 호떡을 접시에 담아 칼로 썰어 먹으려 했다.



“그렇게 먹으면 내용물 다 흘러내려. 내가 보여줄게.”



준오가 종이컵을 써서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는 레이타에겐 고문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둘이 어울리는 꼴이, 뭐라 하기엔 별것 아닌데 두고 보기는 괴롭기 때문이었다.



“이건 밀크티가 잘 어울리겠구나. 잠깐만 기다려라. 너희 것도 타주마.”


“아이고 총리님께서 직접 타주신다니 이거 영광입니다.”


“후후. 차 대접할 줄 모르는 영국인은 무시해도 된다.”



빅토리아 말대로 담백한 밀크티가 달콤하고 고소한 호떡과 알맞게 조화를 이루었다.


차 마시는 데서 서큐버스 다리 같은 징그러운 것을 꺼내놓을 순 없었기에 본론은 잠시 뒤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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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힘 싸움은 안 돼 1 24.04.05 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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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속성교육 24.04.02 2 0 11쪽
9 인큐버스였다면 24.04.02 3 0 11쪽
8 소심함 24.04.02 3 0 11쪽
7 검은 사랑 24.04.02 3 0 11쪽
6 권력보다 폭력 24.04.02 2 0 12쪽
5 아빠는 마법소녀가 꿈이야 24.04.02 1 0 11쪽
4 선물 24.04.02 4 0 11쪽
3 도사와 마법사 24.04.02 3 0 12쪽
2 첫인사 24.04.02 3 0 12쪽
1 프롤로그 24.04.02 7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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