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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올런스 퍼펙티드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SF

c61
작품등록일 :
2024.04.02 20:36
최근연재일 :
2024.05.12 20:28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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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1,100

작성
24.04.0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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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랑

DUMMY

현 대한민국 여당인 열혈보수당의 대표 천시윤은 늦은 저녁까지 동료 의원들과 술자리를 갖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40대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표가 된 이 남자에겐 작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바로 마법전사 유노의 팬이라는 것이었다. 창피한 줄은 알아서 여태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시윤은 생각날 때마다 아이리스 채널을 확인하곤 했다. 아주 드물게 유노가 출연하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문득 떠올라 새로 업로드된 방송을 훑어봤다.



“뭐야? 아이리스 방송 쉰다고? 그럼 유노도 못 보잖아! 이 쓸모없는 버튜버가······!”



원래부터 잘 나가는 정치인이었던 시윤은 5년 전 유노가 나타났을 때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이 여자에 걸맞은 남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후로 미친 듯이 달려왔다.



“웬 마법학교? 아 소백산에 생긴······어? 유노도 위치 아네?”



2년 전, 데스비아는 한국 정부와 접촉해 마법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엔 극한진보당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때문에 시윤은 데스비아와 면식이 없었다.



“데스비아랑 아는 사이라 이거지. 이제야 유노랑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겠네. 흐흐.”



열심히 쌓아 올린 권력을 마침내 원하는 대로 쓸 시기가 왔다. 신이 난 천 대표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거렸다.


시윤은 그날 잠을 설쳤다. 꿈에 그리던 여자를 만날 생각에 흥분해서가 아니었다. 자정부터 뭔가 스산한 기운이 집안에 감돌기 시작하더니, 새벽녘이 되자 냉장고처럼 싸늘해졌다.



“스읍, 갑자기 왜 이렇게 추워······에어컨 켜놓고 잤나?”



하지만 에어컨은 꺼져 있었다. 리모컨으로 켰다 껐다 확인까지 했다.



“안녕~. 노총각 아저씨.”



갑자기 방 저편 어둠 속에서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시윤은 일어나 불부터 켰다. 하얘졌던 시야가 회복되자 불청객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 누구야? 어떻게 들어왔어!”



방안을 꽉 채우는 웅장한 박쥐 날개. 왕관 같은 뿔과 악마 꼬리. 그리고 큰 가슴. 시윤에게는 너무나 낯선 인상이었다.



“그게 중요해? 춥지 않아? 같이 잘래? 따뜻하게 해줄게.”



시윤은 핸드폰에 손을 뻗으려 했지만, 몸이 제멋대로 움직여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침입자는 뿔부터 벗어 곱게 내려놨다. 진짜 왕관이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내가 누군지 알아!”


“응! 천시윤 대표님이잖아.”


“뭣······너, 너 뭐 하는 여자야!”


“서큐버스······.”



어느새 이불 속까지 따라 들어온 서큐버스가 귓바퀴에 대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퀸이야. 넌 이제부터 내 종이고.”


“나, 나한테 이러고도 그냥 넘어갈 줄 알아······!”


“발기해라 얍♥”



서큐버스 퀸이 허벅지로 시윤의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문지르며 말했다. 인간의 몸으로는 당해낼 수 없는 존재. 더구나 남자이기에 이 상황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기분 좋지?”


“기, 기분 나······나쁘······좋······아.”


“우린 드래곤 슬레이어를 사로잡을 거야······할 수 있지? 너 엄청 잘나신 분이잖아.”


“유노를······사로잡는다고······.”



서큐버스 퀸이 온몸을 비벼 마력을 불어넣으며 천시윤의 정신을 빠르게 오염시켰다.



“그게 본명이야? 만나봤어?”


“아직······만난 적 없어······곧 만날 생각인데······.”


“만나러 가자······최대한 빨리.”


“최대한 빨리······.”



시윤의 마음을 쥐어짜 부숴버리려던 서큐버스 퀸은 한 줌 사랑을 발견했다. 뜻밖의 횡재였다. 이것만 타락시키면 일일이 조종해야 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완전한 하수인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귀여운 대표님~. 얼른 타락해버리자~. 타락하면 편해요~.”


“헛, 허억······허어······.”



거짓말처럼 길고도 짧았던 밤이 지나갔다. 아침 해가 막 떠올랐다. 천 대표는 팬티가 축축하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허겁지겁 일어났다.



“이야~. 이 나이에 몽정을 다 해보네. 역시 아직 팔팔해. 근데 무슨 꿈이었지?”



밤에 있었던 일은 무엇 하나 기억하지 못한 채, 천 대표는 평소대로 출근을 준비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비서실장, 오늘 소백산 가야 하니까 차 대기시켜요.”



마법학교까지는 차로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산세 때문에 길이 워낙 꼬여 있어서였다. 천 대표는 자기가 이런 일로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이 짜증 났다.



“아 이거 헬리콥터를 탈 걸 그랬네. 너무 오래 걸렸잖아.”


“죄송합니다. 돌아가실 때 부르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자길 탓하는 듯 구시렁대는 게 못마땅했다. 그래도 높으신 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렇게 해요.”



굽신거리는 비서실장을 내버려 둔 채, 천 대표는 하차감을 만끽하며 최고급 중형차에서 느릿느릿 내렸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중은 왜 없어? 내가 왔는데.”



직접 학교 대문까지 가서 쿵쿵 두들기자 그제야 몸종 한 명이 문을 빼꼼 열었다. 인형처럼 귀여운 얼굴을 보니 잡스러운 불만이 솜사탕처럼 사르륵 녹아 사라졌다.



“천시윤 대표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귀여워라. 교장 선생님 어디 계시니?”


“따라오세요!”



데스비아는 준오 아버지를 가르치던 중이었다. 수업 중이니 기다리라는 둥 헛소리가 나오면 권력자로서 한 마디 해주자고 벼르고 있었는데, 데스비아가 둘로 나뉘더니 한 명이 이쪽으로 왔다.



“이야~. 진짜 마법사시네.”


“대마법사랍니다.”


“허허, 대마법사, 그럼요.”


“자리 옮길까요.”


“가시죠.”



데스비아가 안내한 곳은 작은 연못가를 앞에 둔 정자였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천 대표가 앉자마자 어디선가 몸종들이 나타나 수정과와 한과를 차려줬다. 만만한 손님한테 주려고 적당히 쟁여둔 기성품이었지만 데스비아는 굳이 알려주지 않았다.



“학교 분위기가 참 예술이네요! 지난 정부가 조금 억지를 부렸던 것도 같은데 이렇게 한국 분위기가 잘 녹아 있으니 칭찬을 안 드릴 수가 없습니다.”



천 대표는 전 정부를 비난하면서 자기 입장을 살리는 뱀 같은 화술을 썼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국회도서관에 자료가 많았거든요. 어렵지 않았어요.”



땅을 줄 테니 학교 이름을 포함해 한식으로 지어달라, 그게 2년 전 정부가 데스비아에게 요구한 첫 번째 조건이었다.



“여기서 거기까지 꽤 먼데 왔다 갔다 불편하지 않으셨습니까?”


“한 번으로 충분했어요. 시간 들일 가치도 있었고요.”


“진심 어린 성의를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기 터는 마음에 드십니까?”


“한적하고 좋아요. 뭐가 폭발해도 주변에 피해 없을 거고요.”


“무슨 위험한 마법을 쓰시기에 뭐가 막 폭발하고 그럽니까?”


“아직은 그럴 일 없지만, 장차 학생이 늘어나면 실수도 늘어날 거예요. 내가 잘 관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당장 내년부터 저희가 광고도 하고 지원자도 받아서 조금씩 입학시킬 예정입니다. 진짜 문제없는 겁니까?”



한국 정부가 입학 희망자를 보냈을 때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거절해선 안 된다는 게 두 번째 조건이었다. 이 조건은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한데도 데스비아는 군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난 이미 500년간 마법학교를 운영한 경험이 있어요. 내가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는 누구도 대처하지 못해요.”


“아니, 못 믿겠다는 게 아니라······500년이라고요? 아무리 봐도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스물다섯이에요.”


“예?”



천 대표는 황당해하며 되물었지만 데스비아가 더는 말하지 않았기에 추궁하길 포기했다.



“······아무튼, 제가 오늘 이렇게 멀리까지 온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탁 하나만 드리고 싶어서요.”


“말해봐요.”


“혹시 유노를 아십니까?”


“그럼요. 가끔 만나는 사이에요.”


“아 역시! 제가 왜 그걸 몰랐을까요! 진짜 팬이라서 그러는데 연락처라도 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례는 꼭 하겠습니다.”


“난 휴대전화가 없어요. 용건이 있을 때 유노가 직접 와요.”


“아 그러면······제가 유노랑 만날 수 있게 약속 한 번만 잡아주십시오. 천시윤 대표가 만나길 원한다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든 제 사무실로 찾아와달라고 말씀 좀 해주시면 꼭 보답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답한다는 건가요?”


“세금 혜택은 어떠십니까? 최대한 학교 쪽에 유리하게 해드리겠습니다.”


“괜찮네요.”


“그렇지요? 학비를 꽤 많이 받으시던데 이 나라 세금이 좀 무섭거든요. 거기다 이 땅이나 학교를 국가 소유로 지정하면 부동산 관련 세금은 일체 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직접 지은 학교예요.”


“물론 운영권은 교장 선생님이 계속 갖고 계시고 소유자만 대한민국으로 하자는 겁니다. 언제든 부담 없이 이전하실 수도 있으니 나쁜 점이 하나도 없는 얘깁니다.”


“여긴 나만 사는 곳이 아니에요. 신단수도 사람처럼 지능이 있거든요. 여기 몸종들 전부 신단수의 일부랍니다.”


“아······그건 몰랐는데요.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허가 없이 대한민국 영토를 점유하는 건 곤란합니다.”


“그래서 신단수도 이 나라 국민으로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식물이라는 특성에 맞게 땅도 할애해 주면 어떨까요?”


“숲 만들 땅도 필요하다고 그러셨던 이유가 이거였습니까? 어차피 산속인데 웬 숲 타령인가 했더니······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학교는 내 학교, 땅은 신단수 땅. 약속해주면 유노에게 대표님 꼭 찾아가라고 전해줄게요.”



들어오기도 힘든 소백산 땅 조금 양보하는 것쯤이야 아깝지도 않았다. 마법학교 건물을 포기하는 건 아쉬웠지만, 그런다고 건물이 어디로 달아나는 것도 아니었다. 천 대표는 결정을 내렸다.



“까짓거 그럽시다! 대마법사님 약속인데 믿고 해드려야죠!”


“고마워요. 대표님이 융통성 있는 분이라 좋네요.”


“그래서 이 젊은 나이에 당 대표가 됐죠! 하하하하!”



자만심 섞인 웃음을 쏟아낸 천 대표는 헬리콥터가 올 때까지 좀 더 시간을 보내다가 떠났다. 비서실장은 혼자 차를 끌고 돌아갔다. 오히려 편안한 귀갓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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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심함 24.04.02 2 0 11쪽
» 검은 사랑 24.04.02 3 0 11쪽
6 권력보다 폭력 24.04.02 2 0 12쪽
5 아빠는 마법소녀가 꿈이야 24.04.02 1 0 11쪽
4 선물 24.04.02 4 0 11쪽
3 도사와 마법사 24.04.02 2 0 12쪽
2 첫인사 24.04.02 2 0 12쪽
1 프롤로그 24.04.02 5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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