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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61 님의 서재입니다.

바이올런스 퍼펙티드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SF

c61
작품등록일 :
2024.04.02 20:36
최근연재일 :
2024.05.19 22:53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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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179

작성
24.04.0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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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함

DUMMY

마침내 그날이 왔다. 오늘 버킹엄궁에서 치러진 훈장 및 작위 수여식엔 유노 말고도 꽤 많은 사람이 시상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영국 여왕이 몸소 식을 주도했다.


다른 행사 없이 수여식만 치러진 후, 빅토리아가 유노를 따로 불러냈다.



“오늘 널 부른 데엔 다른 이유도 있다. 생명의 등불은 갖고 있느냐?”


“응. 왜? 여왕님 어디 아프시대?”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말이다.”


“아~. 이거 때문에 여왕님이 네 말 들어주신 거야?”


“그래. 그리고 널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도 하셨다.”


“알았어. 가자.”



그렇게 만난 영국 여왕은 유노를 크게 환대했다. 신이 만든 보물인 생명의 등불이 내뿜는 부드러운 초록 광채가 여왕의 고장 난 육신을 건강하게 고쳐주었다. 젊음까지 주진 않았다.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여왕은 질문을 잔뜩 쏟아냈다. 심각한 얘기는 없었다. 초인으로 살아가는 건 어떠냐는 둥, 친구들이랑은 어떻게 지내냐는 둥 일상적인 것들뿐이었다.


건강해진 여왕이 수다를 끝내질 않는 바람에 유노는 치료를 끝내고서도 한참 잡혀 있다가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맙다. 이걸로 당분간은 안심해도 되겠구나.”


“걱정했구나. 근데 너 여기 여왕님이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잖아. 그냥 점수 따려고?”


“어쨌든 난 영국인이다. 점수는 덤이고.”


“네 그런 면을 좋게 봐주신 것 같네. 여왕님 건강하게 오래 사시면 좋지. 또 생명의 등불 필요해지면 불러.”


“그러마. 이제 돌아갈 게냐?”


“응. 튀르키예도 잠깐 들렀다가 집에 갈 거야.”


“거긴 왜?”


“어머니께서 손님용 과자 사 오라고 하셔서.”


“그 나라 과자는 너무 달다.”


“그래서 손님이 많이 못 먹으니까 좋대.”


“쯧쯧. 손님 놀리면 못 쓴다.”


“아 놀리긴 뭐가! 과자 공짜로 대접하는 게 얼마나 부담인데. 어머니 손님 많단 말이야.”


“그럼 나도 좀 보태마. 좋은 홍차가 있으니 가져가라.”


“고마워! 잘 전해드릴게.”



참석자라는 입장 상 유노와 빅토리아가 친밀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던 레이타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절 놔두고 그딴 말라비틀어진 흡혈귀랑 노닥거리시는 겁니까! 크으으······빨리 좀 오세요!’



그러다가 유노가 이쪽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바로 표정이 풀어졌다. 옆에서 지켜본 장 도사는 둘이 얼마나 가까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두 시간 뒤, 풀사이드 캐슬.



“그럼 저는 먼저 가 있겠습니다.”


“네. 아버지께 안부 전해주세요.”


“예. 소맥이나 한번 말아드려야겠네요!”


“또 오시게, 장 도사.”


“신세 많았습니다, 길버트 선생님!”



장 도사는 차원문을 이용하며 다시 한번 데스비아의 실력에 감탄했다. 시공 왜곡이 주변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고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이거 참 자기 우주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우리 단체에 영입하고 싶어질 정돈데? 뭐 그건 나중 일로 하고.’



반대편으로 나오니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장 도사는 가까이 있던 몸종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천시윤 대표님이에요. 방금 떠나셨어요.”


“아 그 사람이 직접 왔었다고요? 열혈보수당 대표······맞지요?”


“네! 맞아요. 유노를 만나고 싶다 하셨어요.”


“갑자기 유노를 왜요?”


“팬이래요!”


“하하.”



‘진짜 팬이라서 여기까지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왔을 리가? 당연히 없지. 사실이라면 웃기긴 하겠지만. 어쨌든 교장 선생님이 맞이하셨을 테니 얘기나 들어봐야지.’



“정말로 팬으로서 만나러 온 거였어요.”



데스비아는 만나자마자 장 도사의 질문을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 그래요?”


“나도 조금 놀랐답니다.”


“하하하하! 재밌는 사람이네요. 그나저나 유노, 그러니까 준오는 정치인을 꺼리는 편이던데······쉽게 만나줄지 모르겠습니다.”


“보상을 걸고 설득하면 될 거예요. 언제 돌아올지 아나요?”


“글쎄요, 쇼핑 좀 한다고 그랬으니 내일이나 모레쯤 오겠지요.”


“그럼 시간이 약간 있네요. 하나만 도와줄래요?”


“물론입니다.”


“준오한테 이주현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마법학교 입학 희망자지만 돈이 없어요. 재능은 충분하고요. 데려와 줘요.”


“그거야 어렵진 않습니다만 특별히 저를 보내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림 마법을 하려는 친구라서요.”


“오~. 그런 친구라면 저도 무시하기가 어렵지요. 이주현을 미끼로 준오를 움직이시려는 겁니까?”


“맞아요. 주현이 본인이랑 얘기부터 해보고요.”


“알겠습니다. 단김에 쇠뿔 뽑아오겠습니다.”



그때쯤 이주현은 방에 누워 있었다.



“아아······.”



원래 남자였던 주현은 죽어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 우주급 미소녀로 환생했고, 우여곡절 끝에 준오의 도움을 받아 지구로 돌아왔다.



“······아아으······.”



돌아온 이후 생활은 그다지 순탄치 않았다. 친구들은 준오 빼고 다들 서먹서먹해져 연락도 안 하게 됐으며 가족도 은근히 거리를 뒀다. 다니던 미술대학은 간신히 졸업장만 받았다.


그나마 성전환을 했다는 식으로 이주현 본인으로 인정받게 된 것만은 다행이었다.



“방송 시작만 하면 무조건 잘 될 줄 알았는데······.”



인터넷 그림 방송은 처음엔 괜찮았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인 주현은 점점 시청자들 눈치를 보게 됐고, 그런 모습이 방송에 나타나자 시청자들은 빠르게 냉담해졌다.


결국은 구독자 수를 100명도 채 넘겨보지 못하고 이렇게 방에 누워 있게 된 것이었다.



“계십니까-.”



누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사람을 찾았다. 가족들은 다 나가서 없는 대낮. 주현은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해서 손님이 지쳐 떠날 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남자 목소리인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주현 양, 계십니까-.”


“어? 나?”



이름을 부른 건 예상외였다. 자기가 최근에 뭘 잘못했는지 머릿속으로 검색해보고 아무것도 찾지 못한 주현은 마지못해 일어나 인터폰 앞으로 갔다.



‘뭐야 누구지? 웬 한복. 절에서 왔나?’



“누, 누구세효.”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한 탓에 잠겨 있던 목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창피해진 주현은 상대방의 표정을 살펴봤다. 다행히 신경 안 쓰는 눈치였다.



“도사 장동수입니다.”


“도······도사요?”


“장 도사라고 불러주십시오.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데스비아 교장 선생님 부탁으로 왔습니다.”



아는 이름, 심지어 반갑기까지 한 이름이 나오자 주현의 마음에 걸려 있던 빗장이 한 꺼풀 벗겨졌다.



“교장 선생님이요? 저, 저한테 무슨 일로요?”


“입학에 관해서 상담을 좀 하시겠다던데, 지금 외출 가능하신지요.”


“입학이요? 아, 외출······네! 잠깐만요, 아직 안 씻었는데······안에서 기다리길래요?”



입학 소리에 다급해진 주현은 혀가 꼬이고 말았다.



“밖에서 기다릴 테니 천~천히 준비하고 나오셔도 됩니다! 너무 천천히는 말고요, 하하하.”


“네, 금방 나갈게요!”



긴 머리 다 감고 말리고 하다 보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주현은 그냥 세수만 하고 나왔다.


주현이 받은 장 도사에 대한 첫인상은 보따리장수였다. 어디 주막 한구석에서 주모를 찾는 모습이 딱 어울릴 듯했다. 영화 속 도사처럼 보이진 않는 게 조금 실망이었다.


반면 장 도사는 이주현이 낯을 많이 가리며 숫기가 없어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옷차림과 태도를 통해 간파했다. 평소보다도 유해진 모습으로 공략할 때였다.



“아이고, 이거 참······연락도 없이 갑자기 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핸드폰이 없어서, 하하하.”


“아······괜찮아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뇨.”


“저도 안 먹었습니다. 일단 배부터 좀 채웁시다. 뭐 좋아하십니까? 제가 사겠습니다.”


“어······괘, 괜찮은데요. 근데 돈은······.”


“사실 교장 선생님이 주현 양 밥부터 먹이고 오라고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아 진짜요? 그럼······햄버거요.”



장 도사는 주현의 개인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재빨리 파악한 후 그 공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요령 좋게 거리를 뒀다. 몸에 손만 안 대면 딱히 신경 안 쓰는 유노에 비해 공간이 넓은 편이었다.



‘이런 친구들은 거리감만 잘 유지해 주면 충분하지.’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주현이 눈치를 보기 전에 장 도사가 알아서 주문하고 받아왔다.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편해졌다.



“이걸 고르시다니, 햄버거 좀 드실 줄 아시네요.”


“저······똑같은 거네요.”


“장 도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냥 도사님도 괜찮고요.”


“네, 도사님.”


“저도 이거 좋아합니다. 이게 한국 지사에서 개발해서 본사로 수출한 메뉴라고 하더라고요.”


“와 진짜로요? 몰랐어요.”



좋아하는 햄버거 얘기가 나오자 주현은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건 그렇고 여기가 다른 데보다 좀 비싼 편이잖아요. 혹시 교장 선생님 돈이라 여기로 고르셨습니까?”


“······네.”


“하하하하! 그래서 저도 고민 없이 들어왔지요. 근데 교장 선생님 요리 실력이 상당하시던데 햄버거도 만드실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아······맛있었어요.”


“교장 선생님 수제 햄버거를 드셔보셨다고요?”


“네, 옛날에 해주신 적 있어요.”


“오 그렇군요. 아이고 음식 놔두고 잔소리가 너무 길었네. 얼른 먹어봅시다.”



주현은 장 도사가 먹는 모습을 보며 의외로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옷은 낡았고 얼굴은 구수하지만, 행동에선 현대인 같은 예절이 엿보였다. 그래서 첫인상에 추가 점수가 붙었다.


식사를 마친 후, 장 도사는 주현을 근처 공원으로 데려갔다. 도술 부릴 평평한 장소가 필요해서였다.



“뭐 하시려고요?”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장 도사가 보따리에서 사람 다리만 한 붓을 꺼내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뭉게구름 그림이었다.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완성된 구름이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우와!”



그림을 실체화하는 마법을 습득하는 게 꿈인 주현에게는 꿈 그 자체가 눈앞에 나타난 것과 같았다. 얼른 달려가 먹물 구름을 매만지고 두들겨보며 신기해했다.



“도사님! 저도 이거 하고 싶어요!”


“하하하, 마음에 드셨습니까?”


“네!”


“우선은 이거 타고 마법학교부터 갑시다.”



주현은 망설임 없이 구름으로 기어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장 도사도 펄쩍 뛰어 올라섰다.



“출발하겠습니다, 손님. 도착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 계세요.”


“네!”



구름은 자동차보다 느린 대신 흔들림 없는 편안함을 제공했다. 길 따라가는 것도 아니라서 두 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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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인큐버스였다면 24.04.02 3 0 11쪽
» 소심함 24.04.02 3 0 11쪽
7 검은 사랑 24.04.02 3 0 11쪽
6 권력보다 폭력 24.04.02 2 0 12쪽
5 아빠는 마법소녀가 꿈이야 24.04.02 1 0 11쪽
4 선물 24.04.02 4 0 11쪽
3 도사와 마법사 24.04.02 3 0 12쪽
2 첫인사 24.04.02 3 0 12쪽
1 프롤로그 24.04.02 7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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