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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219
추천수 :
893
글자수 :
532,633

작성
21.07.26 14:05
조회
608
추천
13
글자
11쪽

다른 차원의 힘

DUMMY

아버지가 ‘다른 차원’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주동화는, 반 정도는 믿고 반 정도는 믿지 않았다.


사실 믿으면서도 언제나 허풍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없애지 않았고, 믿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아버지의 말이니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면서 들었다.


그렇게 반 정도 믿고, 반 정도 불신했던 ‘다른 차원’의 증거가, 이 캡슐에 담긴 액체라고 아버지는 주장하고 있었다.


사실 아버지는 그 다른 세계에서 다이아몬드도 가져왔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지구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주동화는 아버지가 지구 어딘가 발견되지 않은 땅, 예를 들어 해저나 산속 깊은 곳을 다녀왔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다이아몬드는 확실히 지구에도 있는 물건이었고, 아버지는 다이아몬드를 가져온 것으로 다른 세계를 증명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액체에 대해서는 확고했다. 이것이 다른 세계의 증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가 영민한 과학자였다면 아버지가 내민 증거품을 보고 ‘대단하네요!’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고등학교 과정도 못 뗀, 과학자라기에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 아버지의 증거품 획득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기가 어려웠다.


별다른 대답도 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는 주동화에게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그쪽 세계의 사람들은 과학이 우리보다 못해도 한두 세기는 발전해 있단다. 그들은 이 원소를 발견했고, 인간의 의식과 연결하는 기술을 알아낸 거야."


다른 차원에도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다.


아버지의 말에 주동화는 눈이 아주 크고 머리통은 사람의 두 배 정도 되는, 그렇지만 팔다리는 무척 가느다란 외계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간의 의식에 이걸 연결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나처럼 되는 거야."


아버지가 양손을 펼쳐 몸을 보여주며 말했다.


폭탄을 온몸으로 방어하고도 몇 군데 상처만 입은 육체, 두 사람을 한꺼번에 들어서 메치는 근력,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염동력.


그것들은 룩시온이라는 원소의 힘을 빌린 것이었다.


"원리는 간단하단다. 신경계에 퍼진 룩시온은 사람의 의지대로 작동해서 그 사람을 둘러싼 필드에 영향을 미쳐."


이렇게 말하고서 아버지는 손끝에 작은 스파크를 일으켰다.


"이렇게. 사람이 원하는 그대로 자연계가 움직이는 거야. 그래서 그쪽 세계의 사람들은 어린 나이부터 그것을 훈련해."


아버지는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은 허공을 불바다로 만들기도 하고 도시 하나를 통째로 얼려 버리기도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겨우 몇 분 정도 날 수 있을 뿐이지만, 숙련된 사람은 지구를 몇 바퀴나 돌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다이아몬드는 산처럼 가져왔지만 룩시온은 고작 이게 전부였어. 이것도 목숨을 걸고 구한 거야."


이렇게 말하고서 아버지는 잠깐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역시... 룩시온이 거부하는구나. 내 몸을."

"괜찮으세요?"

"룩시온은 사람에 맞추어 개조를 해야 돼... 지금까지 동화 네 몸에 맞추어 연구를 했거든. 그래서 내 몸이랑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단다."

"왜 아버지 몸으로 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가져온 룩시온은 겨우 두 사람 몫이었거든. 그리고 한 번은 테스트를 해야 하잖니."


아버지는 숨을 쉬기가 불편한지 말을 쉽게 뱉지 못했다.


"당연히 테스트는 내 몸으로 해야 했어. 너와 가장 가까운 유전형질을 가졌으니까."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겨우 눈만 웃음 지을 뿐 표정은 너무나 괴로워 보여서, 주동화는 서둘러 아버지를 눕혔다.


"아버지!! 누워 계세요!! 말하지 말고요!!"

"나는 저쪽 세계 사람들이 다른 차원의 세계를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는 걸 안 순간부터, 룩시온을 너에게 주입할 생각만을 했다. 네 세대에 반드시 그들이 침략해올 테니까."


아버지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마치 마지막을 앞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토해내는 것처럼.


주동화는 누군가의 임종을 본 적이 없지만 꼭 그런 느낌이 들어서, 아버지가 말을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그만 하세요!!"

"나는 하나뿐인 아들을 지켜야 했어. 그때는 얼굴도 본 적 없고 이름도 몰랐지만..."


아버지는 주동화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침략자가 가진 모든 것을 내 아들에게 주고 싶었어. 그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그리고 이 세상을 지킬 수 있게."


주동화는 아버지의 말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침략자, 지구, 세상, 무슨 영화도 아니고 이런 말들은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주동화는 제발 아버지가 말을 그만하고 쉬기를 원했다. 아버지의 피부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 보였다. 주동화는 아버지의 손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분명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동화야."


아버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주동화는 아버지의 호흡이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을 느꼈다. 정말 끝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한 숨, 한 숨을 천천히 내어 쉬고 있었다. 심장이 기능을 서서히 멈춰가는 것처럼.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서도, 아버지는 손을 움직여 주동화와 어머니 곁에 유리로 된 보호막 같은 것을 만들었다. 주동화는 투명한 벽 뒤에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내 몸과 결합이 이 정도까지 가능했으니... 아마 동화 네 몸에는 문제 없이 적응할 거다. 언젠가 룩시온이 필요한 날이 올 거야. 그때가 되면 엄마한테 이야기하렴. 네 엄마가 방법을 알게 될 테니까."

"아버지!!"

"명심해. 혼자서 룩시온과 결합하는 건 위험할 거야."

"그냥 아버지가 해 주면 되잖아요! 아버지가 해 주세요!!"


주동화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러자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20년간 낯선 세계에 살면서... 아빠는 집에 돌아갈 생각밖에 안 했어."


아버지는 눈을 감고 말을 이어갔다.


"그깟 연구가 뭐라고 혼자 프랑스를 가서 아내와 아들과 헤어지게 되었는지... 후회를 하고 또 했지."


주동화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유리막 때문에 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피부가 점점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의 몸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얼굴의 형체도 차차 망가지기 시작했다.


"네가 태어나는 걸 옆에서 보고, 네가 학교에 가는 걸 보고, 네가 어른이 되는 걸 축하해줬을 거다."


결국 아버지의 온몸이 밝은 빛과 함께 폭발하듯 흩어지고, 목소리만이 남았다.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강렬한 폭발이 몇 번이나 계속되었지만 주동화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유리막 덕분에 안전했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그를 지켜 주었던 것이다.


"아버지!!"


주동화는 허공으로 흩어진 아버지를 향해 울부짖었다. 그의 외침은 폐허가 된 건물에 외로이 울렸다.



***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났다.


어머니는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장례식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그 탓에 건강이 더 악화되어 장기 입원을 하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유언과 관련해 변호사가 어머니를 찾아왔었다고 들었다. 회사와 관련된 일이라는 이야기 외에 어머니는 별다른 말씀을 해 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죽음을 준비했던 것 같았다. 이미 1년 전에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리를 끝내 놓았고, 연구 노트를 안방 금고에 놓아뒀다고 한다. 유출 위험이 없는 종이 형태로.


지하 연구실은 모조리 폭파되어 있었다. 이제 금고의 연구 노트 말고 아버지의 연구에 대한 자료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버지는 룩시온과 결합해서 자신이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고, 미리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2명분의 룩시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그 순간부터.


이런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릴 수 없어서 지하 연구실은 쭉 비밀로 했던 것이고.


회사는 현재 대표이사 부재 상태라 이사회가 회사의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틸엘은 새로운 대표가 선임될 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제3연구실의 연구원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진심을 담아 위로해 주었다. 그것 말고는 변한 것이 없었다. 연구원들은 여전히 회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전과 다름없이 성실하게 일했다.


다만 임이섭은 더 이상 연구실에 없었다. 자연히 회사에서는 무단결근으로 처리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해고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부터 주동화는 연구실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지만, 조금도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3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입원해 있으며, 사수는 행방불명이다.


그리고 주동화는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임이섭을 따라 칭다오로 가지 않았다면, 아버지를 믿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몇 번이나 이 비극을 막을 기회는 있었다. 그런데 눈치도 없이 뭔가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던 걸까.


가만히 있었으면, 아버지가 어련히 알아서 어머니를 구했을 거고, 아버지가 룩시온과 결합할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주제도 모르고 나서는 바람에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어머님은 좀 어떠셔?"


김충민 주임이 다가와서 물었다.


"많이 좋아지셨어요. 다음 주에는 퇴원하실 것 같아요."

"다행이다. 기운 내, 동화씨."

"고맙습니다."


김충민의 격려에 주동화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은 갈가리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지금 여기에 앉아있는 것조차 벅찼다. 칭다오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숨이 가빠져서, 몇 번이나 연구실을 뛰쳐나가 숨을 고르고 들어왔다.


이 모든 것이 꿈이라면 좋겠지만, 잠에서 깰 때마다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가기만을 기도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노바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걸 수 있다면 마음이 조금 나을 것 같은데, 그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칭다오에서 돌아온 다음 날, 신성건설 공사 중 건물 총격전은 중국 흑사회의 짓이라고 기사에 났다. 신성건설 측이 피해자로서 뻔뻔하게 인터뷰를 한 것을 보며 주동화는 주먹을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핸드폰에 영상통화가 녹화되어 있지만 그들이 노바 그룹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노바 그룹에 복수도 할 수 없고, 괴롭고 답답한 시간만이 천천히 흐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동화는 아무런 표정도, 생각도 없이 정해진 일을 하고, 때가 되어 밥을 먹고, 다시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었다.


넋 놓고 앉아있으니 더딘 시간은 결국 흘러 퇴근 시간이 되었다. 주동화는 힘없는 발자국을 하나씩 떼어 움직이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회사를 나오니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지내셨나요?"

"임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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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침입자 (2) +2 21.07.14 689 12 12쪽
18 침입자 (1) 21.07.13 723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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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기자 회견 21.07.10 777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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