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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218
추천수 :
893
글자수 :
532,633

작성
21.07.13 14:05
조회
722
추천
14
글자
12쪽

침입자 (1)

DUMMY

"하지만 양재준 저놈은 국방부 일 때문에 온 게 아니야."

"그럼요?"

"어제 기자회견에 대한 항의를 하러 온 거다."


어제 기자회견이라면, 아버지가 '아주 큰 회사'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말을 했던 그것을 뜻하는 것이다. 암 연구를 하는 것에 항의를 하러 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안 그래도 어제부터 그 큰 회사가 어디냐를 놓고 인터넷이 시끌시끌했었다. 그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노바그룹이었다. 노바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지만.


정말 그 일 때문에 일부러 찾아와서 불편함을 표시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아까 양재준이 기자회견을 한 번 언급했었다.


이쯤 되니 주동화는 진실이 궁금해졌다.


"정말 노바가 틸엘을 위협하고 있는 거예요?"

"응. 노바일렉트릭에서 지속적으로 해킹 시도를 하고 있어.“


주동화는 얼마 전에 보안프로그램을 인스톨하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럼 119가 출동하지 않았던 것도 노바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확실하진 않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노바와 정부가 손을 잡았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아버지가 화재 때 구급차에서 통화하며 소리를 지른 상대는 노바그룹이었을 것이다.


"자기들은 119와 상관없다고 발뺌하지만 믿을 수 없어."

"노바일렉트릭이 그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게 뭐죠? 이미 업계 탑이잖아요."

"꼭대기에 있는 자들일수록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얻으려 한단다."


그때 주동화는 양재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높은 곳으로 가는 길은 험한 법이지요.' 이 말은 틸엘에게 한 말일 것이다.


더 성장하고 싶다면 수단을 가리지 말고 국방부든 어디든 허리를 숙이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는 의미.


"꼭대기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으니까."


그리고 '높은 곳에 머무는 일은 더욱 고되다고 합니다.' 이것은 나라의 요구에 순응하고 틸엘의 기술을 훔쳐내야 하는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대변이었다.



***



오늘 주동화는 아버지의 비밀 연구실에 가보고, 노바일렉트릭의 속내를 알게 된 긴 하루를 보냈다. 지친 몸으로 퇴근을 해 보니 방 안에 못 보던 책장이 들어와 있었다.


엄청난 크기의 책장이 벽 한쪽에 서 있고, 어머니가 책을 계속해서 나르고 있었다. 창고에 오래 있었는지 먼지가 쌓인 책들을 꺼내와서 먼지를 닦고 책장에 끼워 넣고 있는 것이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공부 좀 해 보려고."

"설마 엄마... 회사 들어올 거야?"

"아직 머리가 안 굳었으면 말이야."

"굳었을 리가 없잖아. 내가 살면서 본 사람 중에 엄마보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없는데."

"네가 겨우 24년밖에 안 살아서 그래."


어머니는 칭찬이 듣기에 싫지 않았는지 웃음 섞인 농담을 하고서 책을 가지러 창고로 들어갔다. 주동화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창고로 달려갔다.


"이제 다 옮겼어. 사실 너 오기 전에 다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책이 많네."


어머니의 말처럼 벽면을 꽉 채운 책장에 책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주동화는 책장으로 걸어가 어머니가 꽂아 놓은 책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말로 된 게 이렇게까지 없는지. 겨우 한국어로 된 책을 찾아서 꺼내 보니 생물학 책이었다. 주동화가 몇 장을 넘겨서 보고 있자 어머니가 말했다.


"너희 아빠한테는 네가 보는 책이라고 말해야 된다? 엄마가 빌려줬다고 해. 알았지?"

"왜?"

"이런 거 멋 없잖아."

"뭐... 알았어."


이 책들을 내가 보는 거라고 하면 아버지가 퍽도 믿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주동화는 토를 달진 않았다.


아버지한테 공부하는 걸 보여주기 싫어서 애써 아들 방에 공부방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아들한테야 상관없지만 아버지한테는 언제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동화가 보기에 공부를 하는 어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멋있었다. 물론 그의 눈에 어머니는 언제나 멋있었지만.


어머니는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하실 생각인지 주동화의 책상 옆에 자그맣게 책상도 하나 가져다 놓았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해볼까..."


어머니는 책장으로 걸어가 책들을 하나씩 살폈다. 그 얼굴에는 어딘가 기쁨과 즐거움이 비쳤다.


공부할 책을 고르면서 저렇게 즐거운 표정이라니, 주동화는 자신이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들이 맞나 싶었다. 어머니는 책들 중에 두꺼운 책 하나를 뽑아서 가져왔다.


어머니가 공부를 하는데 아들이 놀 수는 없어서, 별수 없이 주동화도 가방에 있는 생명과학 참고서를 꺼내 책상에 앉았다.


주동화의 책상과 어머니 책상에 나란히 놓인 얇은 참고서와 두꺼운 영어책은 민망할 만큼 극명히 대비되었다.


어머니 책상에는 틸엘의 카탈로그도 놓여 있었다. 주동화는 이런 책자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 회사에서 봤다 한들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는 일단 뭔가를 읽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살아오면서 읽었던 것보다 더 많은 글자를 고작 두 달 만에 소화하고 있어서 이미 용량초과 상태고.


"회사 카탈로그네?"

"응. 내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회사인데 잘 알아봐야지."

"이걸 어디서 받았어? 나도 본 적이 없는데."

"너희 아빠가 갖다 줬어. 보여주면서 회사 사옥 자랑하더라고. 뭐 유명한 보안회사가 공들여 만든 거라나..."


아버지의 자랑이 눈꼴 시렸는지 퉁명스럽게 말하는 어머니가 재미있어서 주동화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보는 회사 카탈로그를 훑어보았다.


카탈로그는 회사 소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건물 외형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 들어있고, 외부인에게 공개가 되어 있는 1층은 내부 모습도 꽤 자세히 나와 있었다.


"이거 규성이도 하나 가져다줘야겠다."

"규성이? 맞아, 규성이도 서울에 있다고 했지."

"응, 예전부터 우리 회사 구경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못 시켜줬거든."


회사에 보안 문제로 비상이 걸린 탓에 약속을 취소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생각이 난 김에 주동화는 한규성에게 전화를 해야지 싶었다.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 그러면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


어머니가 카탈로그를 펼쳐서 보여주며 말했다.


"일요일에 회사 견학 프로그램이 있던데, 이걸 하면 좋지 않을까?"

"회사에 그런 게 있어?"


주동화는 회사에 주말 프로그램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학교 단체 견학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개인 단위로도 견학이 가능할 줄이야.


이거라면 공식적인 프로그램이니 보안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담당 직원이랑 견학에 참가한 사람들도 다 같이 이동할 테니 보안 문제도 없을 것이었다.


주동화는 곧바로 한규성에게 연락을 했다.



***



주동화는 한규성과 함께 회사 견학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회사를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언제나 사회공헌에 신경을 썼으므로 회사 1층은 전부 외부인에게 공개되어 있었고, 2층 전체가 비지터 센터로서 방문객을 위한 체험과 안내관이었다.


비지터 센터에서는 바이오 기기를 직접 보고 체험도 할 수 있었고, 룩스미터로 건강을 진단해보는 것도 가능해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벌써 예전에 예약이 마감되었는데, 다행히 주동화는 임직원 우대 정책 덕분에 정원외 인원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견학 프로그램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많이 오는 편이었다. 가족 단위로 방문한 사람도 있었고 친구와 함께 온 중학생도 있었다.


성인 남자 둘이 참여한 건 주동화와 한규성이 유일했다. 하지만 주동화는 이 회사 직원이니 민망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견학을 다니면서 회사 홍보를 사람들과 함께 보는 것이 더 민망했다.


대외 프로그램이라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지구의 모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목표를 띄워주는 홍보 영상은 얼굴이 다 새빨개질 정도였다.


주동화는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일을 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목적이 회사를 창립한 아버지의 목적이고, 연구원들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체스 말 정도로 본다면, 직원들이 일하는 행위 또한 높은 곳의 시선에서 본다면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었다.


시계 속 부품들은 그저 뱅뱅 돌아갈 뿐이지만, 위에서 시계를 내려다보는 사람의 눈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비지터 센터의 바이오기술 체험은 주동화에게도 꽤 흥미로웠다.


그는 제3연구실에서만 근무했고 다른 부서의 직원들과는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바로 옆 연구실에서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틸엘에서는 룩스미터와 같은 의료기기뿐만 아니라 의약품, 심지어 건강식품까지 만들고 있었다. 제3연구실이 연구하는 분야 말고도 신체 보조기기, 건강식품 등 다양한 영역의 제품들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어서 주동화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작 회사를 구경하고 싶다던 한규성은 프로그램에 집중하지 못했다. 계속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고 하긴 하는데, 인솔 직원의 안내도 듣지 않고, 홍보 영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워낙 산만한 놈이라 그러려니 내버려 두는 것도 정도가 있지, 참다못한 주동화는 한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비지터 센터에서 체험에 참여할 생각도 없고 체험 인원들 바깥으로 겉돌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주동화는 뒤쪽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하는 한규성을 붙잡고 말했다.


"야, 저거 한번 해 봐. 건강 검진 해주는데."

"나 건강해서 괜찮아. 그것보다 나 좀 나가면 안 되냐."

"혼자 어딜 가려고? 너 계속 집중도 안 하고 뭐 하러 왔는데."


이럴 거면 그냥 PC방을 가든지 공부를 하러 가는 게 나았을 텐데 말이다.


"친구네 회사 궁금해서 온 거지~"


그리고서 한규성은 주동화의 눈치를 한 번 보고 그제서야 체험을 해 보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등을 떠밀어야 마지못해 참여한다니, 주동화는 맥이 풀렸다. 이럴 거면 왜 회사를 구경시켜달라고 졸랐는지 모르겠다.


주동화가 한소리 한 다음에 한규성은 딴짓하지 않고 인솔에 잘 따랐다. 1층을 둘러보고 2층의 비지터 센터를 모두 체험한 뒤, 인솔 직원은 프로그램이 끝났다고 말했다.


외부인에게는 여기까지만 공개가 가능한 모양이었다. 한규성에게 근무하는 곳을 보여줄 수는 없어진 셈이다. 주동화는 한규성에게 말했다.


"연구실은 개방이 안 되나 봐."

"괜찮아. 나는 그냥 회사 구경하러 온 거니까."

"하나도 관심 없는 것 같은데?"

"어 좀... 배고파서 그래."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내가 뭘 숨겨!"


발끈해서 소리친 한규성은 한숨을 쉬더니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 건물 말이야. 우리 업계에서 전설이거든."

"왜?"

"여기가 원래 가디언 사옥이었는데, 경영이 악화되어서 어쩔 수 없이 틸엘에 건물을 판 거야."

"맞아. 나도 들었어."


아버지가 좋은 건물을 사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가디언은 보안회사잖아. 그들이 가진 모든 지식과 기술을 이 건물에 쏟아부은 거야. 건축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지. 그 엄청난 액수를 지불하고 이 건물을 사들인 틸엘도 대단하지만.“


그리고서 한규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제어실 한 번만 구경해도 될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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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버지의 비밀 (2) 21.07.17 688 13 10쪽
21 아버지의 비밀 (1) 21.07.16 699 13 11쪽
20 침입자 (3) 21.07.15 662 13 11쪽
19 침입자 (2) +2 21.07.14 689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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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비밀 연구실 21.07.11 760 13 11쪽
15 기자 회견 21.07.10 777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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