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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598
추천수 :
895
글자수 :
532,633

작성
21.08.05 14:05
조회
488
추천
9
글자
12쪽

축지법

DUMMY

"일단 바람을 일으키는 것부터 연습해 보자."


박사가 말했다. 어제 룩시온 모드의 비밀을 풀고 나서 첫 훈련이다.


주동화는 룩시온을 켜기 전에 물었다.


"바람을 어떻게 만들어요?"

"공기를 움직이는 거야. 정확히는 질소와 산소, 이산화탄소 같은 물질을 움직이는 거지."


질소, 산소, 이산화탄소. 이것들은 공기를 구성하는 주요 분자들이다. 어제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서 산 화학 참고서에서 봤다.


참고서를 쓱 훑어봤는데 영어로 된 어려운 말도 많고 계산하는 것도 있고, 여러모로 복잡해 보였다.


"아마 룩시온 모드에서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안전하고 간단할 거야."


주동화도 박사의 말에 동의했다. 분자를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라면 사고가 날 위험도 없을 것이다.


"바람을 불게 하면 되는 거죠?"

"그래. 최종 목표는 축지법으로 하자."

"축지법이요?"


축지법이라니. 주동화는 뭘 잘 못 들었나 했다. 바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축지법이 웬 말인가.


무엇보다 축지법은 소설 속에 나오는 홍길동이 쓰는 스킬인데. 그걸 목표로 연습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몸 뒤로 바람을 일으켜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거야. 순풍의 힘으로 달리면 돼."


그러나 박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원리를 설명했다. 물론 주동화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가능해요?"

"그럼."


어째서 박사가 저렇게 자신 있게 대답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주동화는 일단 잠자코 박사의 말을 들어보았다.


"축지라는 게 말 그대로 풀이하면 땅을 축소하여 달린다는 것인데."


박사는 축지라는 단어의 말뜻을 설명했다.


"사실 바람을 타고 빠르게 달리는 자들을 보고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란다. 멀리서 보니 그렇게 보였던 거지. 땅을 줄였다 폈다 하는 건 불가능한데 말이야."


축지의 어원이 바람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었다는 말이었다. 주동화는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게 정말이에요?"

"믿을 수 없다면 직접 해보면 되지."


박사는 자신만만했다.


"일단 바람을 네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는 게 중요해."


이 말에는 주동화도 동의를 하는 바였다. 전에 혼자 훈련을 할 때도 몇 번인가 산들바람 같은 것을 만들어내긴 했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가벼운 바람이 느껴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분자들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


"그럼 시작할게요."


주동화는 룩시온 모드로 들어갔다. 눈앞에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시야가 완전히 바뀐다.


"어제 질소와 산소를 찾아냈던 것 기억하니?"

"네."

"그것들을 모두 한 번에 움직이는 거야."

"이.. 이걸 다요?"

"그래. 전부 움직일 수 있다면 해볼래?"


사실 룩시온 모드에서 보면, 이 공간은 질소와 산소가 대부분이다.


박사의 몸으로 추정되는 저 복잡한 도형 집합을 제외하면 이 실험장은 비어있는 장소.


그러니 당연히 공기로 차 있을 테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질소와 산소로 꽉 차있는 셈이다.


이 수많은 질소와 산소를 전부 움직일 수가 있을까. 주동화는 일단 집중을 해 보았다.


"네 오른쪽으로 천천히 움직여 보렴."


박사의 지시에 따라 주동화는 분자들에 영향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룩시온 모드에서는 모든 것이 생각으로 움직인다.


그러니 방법은 간단하다. 컨트롤을 원하는 모든 질소와 산소를 감각으로 인지한 뒤 그것을 움직이면 된다.


"으으..."


하지만 곧 주동화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이를 악물어야 했다.


분자의 수가 너무 많아 감각으로 인지할 수가 없다.


즉, 목표물 설정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게임에서 캐릭터를 이동시킬 때 캐릭터를 선택한 뒤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처럼, 이동시킬 분자를 선택해야 되는데 선택해야 할 분자가 너무 많아 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후아!!"


결국 주동화는 분자 인지를 멈추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산소가 모자라는 기분이다. 본능적으로 심호흡을 내쉬었다.


옆에서 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니?"

"네, 분자가 너무 많아서 선택이 안 돼요."

"당연히 그럴 거야. 처음부터 어떻게 다 되겠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렴."


심호흡을 몇 번 한 뒤 머릿속이 맑아진 주동화는 다시 분자들을 인지했다.


할 수 있을 만큼만 선택해 보기로 했다.


한 개는 쉽다. 두 개도 괜찮다. 주동화는 빠른 속도로 주위의 질소와 산소 분자들을 인지해 나갔다.


그가 인지한, 즉 선택한 분자들은 그의 영향력 하에 놓인다.


일단 집중력이 허용하는 만큼의 분자를 선택해 보았다.


이제 오른쪽으로 움직일 차례. 주동화는 인지한 분자들을 한꺼번에 오른쪽으로 밀어냈다.


"어? 무거운데...?"


속도가 나질 않는다. 분자 한 개는 휙 하고 던지듯이 움직일 수 있는데 이 분자 덩어리들은 마음처럼 움직여 주질 않는다.


무겁다는 느낌이었다. 빠르게 이동을 시켜야 바람이 될 것 같은데, 이렇게 느리게 밀어내서야 바람이 불까 싶다.


"이거 쉽지 않네요."


주동화는 무겁게 버티는 분자들을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룩시온 모드를 종료했다.


"대량의 분자를 움직일 수는 없나 봐요."


이건 근력이나 체력의 문제도 아니었다. 힘으로 밀어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사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글쎄,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지."

"하지만 너무 무거워서 움직이지 않아요."

"불가능할지 가능할지는 연습을 해본 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아."


주동화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근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라면 인정한다. 그건 운동을 할수록 강해지기 때문이다.


무거운 것을 못 들던 사람이 몇 달간 훈련을 하면 들어 올리게 되듯이 말이다. 하지만 룩시온 모드에서 물리적인 힘은 소용이 없다.


모든 것을 제어하는 것은 오직 그의 생각.


"하지만 이건 생각으로 하는 거예요. 연습을 한다고 해서 생각을 더 잘할 수 있을까요?"


생각에 연습이 유의미한 일인가에 대해 주동화는 자신이 없었다.


"그럼, 사람은 무엇에든 익숙해진단다."


박사는 확신에 찬 눈으로 말했다.


"룩시온을 끄고 켜는 일도 처음에는 못 했었잖아?"


주동화는 가만히 몸속의 룩시온을 느껴보았다. 이제 원할 때에 그것을 깨워서 모드를 전환할 수가 있다.


생각해 보면 그가 처음부터 잘했던 일이 무엇인가.


게임도 셀 수 없는 시간을 투자해서 잘하게 된 것이고, 틸엘에 지금껏 다니고 있는 것도 공부를 한 덕분이다.


"너는 방법과 원리를 모두 알고 있잖니. 능숙해지는 일만 남은 거야."


박사의 말에 주동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량의 분자 도형을 움직일 수 있고 그 원리도 안다.


지금까지 주동화가 새벽에 혼자 이 실험장에 와서 했던 일은 엄밀히 말해 훈련이 아니었다.


도형들의 정체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움직여 보던 것은 룩시온 모드의 원리를 찾아내기 위한 탐구였을 뿐이다.


훈련이란 갈고 닦는 것. 방법과 원리를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이제서야 준비가 것이다.


"지금부터가 진짜 훈련이네요."



***



룩시온 모드를 컨트롤하기 위한 훈련이 시작되고, 주동화는 매일 아침마다 녹초가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남양주의 레이젯으로 갔다가, 다시 강남의 틸엘로 가는 것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다. 


연습이 끝나고 회사로 가는 버스에서는 거의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잤다.


혼자서 훈련할 때는 그냥 이것저것 움직여 보는 게 고작이라 에너지 소모가 별로 없었는데,


박사를 만나고 룩시온 모드의 원리를 깨우친 다음에는 훈련이 너무 고됐다.


겨우 3일을 훈련했을 뿐이지만, 아침에 운동을 하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주동화는 억울한 부분도 있었다. 그는 몸을 격렬히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피곤한 것이었다. 


그가 실험장에서 하는 일은 가만히 서서 룩시온 모드를 켜고, 생각으로 분자들을 움직이는 일이다.


이렇게 힘든 데도 몸에 근육 하나 붙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한 일이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데도 얼마나 지치는지, 30분 정도 하고 나면 힘이 들어서 주저앉고 싶었다.


하지만 앉아버리면 축지법을 연습할 수가 없기에 꼿꼿이 서 있어야 한다.


"잡았어요. 제 뒤에 있는 분자들 다 잡았어요."


그리고 이제 분자를 잡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며칠 전에는 분자에 영향력을 주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이제 꽤 능숙하게 잡을 수 있게 됐다.


"잘했다. 움직일 수 있겠니?"


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동화는 잡은 분자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꽉 붙잡은 채 그것들을 움직여 보았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등 뒤의 분자들을 움직여서 몸을 앞으로 밀어내야 하는데, 꼼짝도 하지 않는다.


분자들은 무쇠처럼 무겁다. 주동화는 그것들을 움직여 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안 움직여요. 어떻게 공기가 이렇게 무겁죠?"


"대량의 분자를 억지로 움직이려니까 그렇지. 당연한 거란다."

"차라리 힘으로 밀면 밀릴 것 같은데."


하지만 룩시온 모드에서 그는 어떤 물리력도 사용할 수가 없다. 


별 수 없이 주동화는 다시 집중을 하고 분자의 움직임을 상상했다. 


그러면 분자들은 그의 상상을 읽고 그것대로 움직인다. 


분자들이 하나하나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느리고, 아예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는 분자들까지 있다.


어째서 이렇게 죽어라고 말을 듣지 않는지. 주동화는 열이 받아서 콱 소리를 질렀다.


"으으... 아악!!"


그 순간, 갑작스러운 바람과 함께 몸이 앞으로 슉 밀려났다.


"뭐, 뭐야."


생각지도 못하게 분자들이 움직였다. 어리둥절해 하는 주동화에게 박사가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분노는 꽤 커다란 에너지구나."

"제가 화를 내서 움직인 건가요?"

"그런 셈이지. 순간적으로 정신 에너지가 증폭되었을 거야."


정신 에너지. 박사는 룩시온 모드를 컨트롤하는 힘을 그렇게 불렀다.


"이렇게 몸이 밀려나는 게 축지법인 거죠?"

"맞아. 이제 느낌을 알았지?"

"네... 조금 알 것 같아요."


분명히 이렇게 뒤에서 바람을 불어주면 나는 것처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람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정신 에너지를, 


즉, 열 받아서 폭발했던 방금만큼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공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집중력이 필요했다.


다시 한번 해보려고 룩시온 모드로 들어가자, 갑자기 당 떨어지는 기분이 들며 눈앞이 팽팽 돌았다.


주동화는 현기증이 나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힘들면 쉬었다가 하자."

"네."


주동화는 룩시온 모드를 끝내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박사가 물을 건네며 말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참 놀라운 원소야."

"룩시온이요?"

"응, 이걸 대체 어디에서 찾아낸 건지 궁금하구나. 우주라도 나갔다 온 건가..."


박사는 우주라고 말했다. 


룩시온을 지구에서 발견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아예 배제한 듯했다. 


아버지가 룩시온을 '다른 차원'에서 가져온 것을 알고 있는 주동화는 박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구에는... 있을 수가 없나요?"

"이런 원소는 자연계에 존재할 수 없고, 인류의 기술력으로 만들 수도 없어. 즉 지구에서는 발견도, 발명도 불가능. 절대로 존재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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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버지의 비밀 (1) 21.07.16 703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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