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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305
추천수 :
895
글자수 :
532,633

작성
21.07.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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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추천
12
글자
13쪽

새로운 시작

DUMMY

"괜찮으세요?"


귓가에서 들린 목소리에 주동화는 눈을 떴다. 119 구급대원이었다. 웬일로 119에서 출동을 했나 싶었지만, 그는 주변 상황을 보고 곧 이해를 했다.


사람들이 그의 주위를 빙 둘러싸고 구경을 하고 있고, 박살 난 건물을 올려다보며 놀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이렌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경찰차도 보였다.


대낮에 서울 강남에서 일어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주동화는 여기에서 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구급대원에게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병원에 가 보는 게 좋겠어요. 빌딩에서 떨어졌잖아요."

"아니요. 안 가도 돼요."


산산조각 나는 줄 알았던 몸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주동화는 다친 곳도 없었고 아프지도 않았다. 룩시온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임이섭은 다르다. 주동화는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 저 말고 다른 사람 없었나요?"

"아니요. 못 봤어요."


구급대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동화는 당황스러웠다. 같이 떨어졌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임이섭이 아니었다면 그는 룩시온과 결합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대로 몸이 부서져서 허공에 흩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살려줘서 고맙다고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임이섭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주동화는 일단 도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곳에는 그가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일어났다!!"

"일어났어요!! 빨리!!"


기자가 못해도 오십 명은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경찰이 쳐 놓은 선 밖에서 주동화를 불렀다.


"주동화씨! 누구의 공격을 받은 겁니까?"

"같이 추락한 사람은 누굽니까?!"


인터뷰 열기가 엄청났고 살아오면서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주동화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무척 피곤해서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기 때문에, 그냥 멍하니 질문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안 됩니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경찰이 말리는데도 기자들은 수로 밀어붙이며 계속해서 주동화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주동화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누가 한 짓이냐는 물음에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세계를 움직이는 마스터들이요. 라고 말하면 믿어 줄까.


같이 추락한 사람은 누구냐고 한다면 예전 직장 동료라고 해야 하나.


일단 대낮 서울 한복판에서 이 난리를 친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우리 아버지가 지구에 없는 물질을 찾아내는 바람에... 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 구급대원이 구급차에 탑승할 것을 권유했고 그렇게 하면 당장은 기자들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퇴원을 하면? 아니, 병원까지 따라오면? 그때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중국의 흑사회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순간, 날카롭게 파고 들어온 질문이 있었다. 주동화는 고개를 들어 그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았다. 그 질문을 던진 남성 기자의 얼굴이 정확하게 보였다.


너무나 의도가 뻔한 질문이었다. 칭다오에서의 사건을 흑사회와 연관 시켜 회피한 노바그룹이 물타기를 하려는 것이었다.


주동화는 언론이라는 게 이런 식으로 사실을 자신들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는 것이구나 싶었다. 기자들은 점점 사납게 목소리를 높였다.


"대답 하세요!! 시민들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흑사회와 틸엘이 관련이 있는 겁니까?"


주동화는 이러다가 틸엘이 신성건설 건까지 모든 것을 뒤집어쓸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저들 앞에 나설 용기도, 지혜도 없었다.


회사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그러면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답을 그는 알지 못했다. 당장 이곳을 피하고만 싶었다.


그때 구급대원이 그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고, 주동화는 잔뜩 몸을 움츠린 채 말없이 따라갔다.


"틸엘이 단기간에 성장한 이유가 중국 자본 때문입니까?"

"중국과 손을 잡은 겁니까?!"


뒤에서 야유와 성난 외침이 들려왔지만 뒤를 돌아볼 자신이 없었다. 주동화는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다.


"그쪽이 아닙니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들이 두려워 호흡까지 가빠왔는데, 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주동화는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어머니의 목소리다. 주동화는 정말이지 길 잃은 아이가 엄마를 찾았을 때처럼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엄마..?"


그런데 어머니의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봐 왔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머리를 위로 올려서 묶고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주동화가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위압적인 눈빛으로,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제가 틸엘의 대표이사입니다. 제가 설명하죠."


어머니가 기자들에게 임명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임명장의 내용은 주동화의 눈에도 또렷하게 보였다.


틸엘의 대표이사는 옥소원으로 한다. 옥소원에게 틸엘의 경영권을 전임한다. 와 같은 임명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바로 기자들은 어머니에게 우르르 달려가 질문을 퍼부어댔다.


어머니는 기자들의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고, 흑사회 관련 질문에는 사실무근입니다. 라는 단호한 한 마디로 끝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주모자로 노바 그룹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기자들 앞에서 노바 그룹을 언급했다.


당연히 기자들은 난리가 났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고, 어머니는 그들에게 하나씩 답변을 해 나갔다.


주동화는 그런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대로라면 가장 먼저 그에게 달려와 괜찮냐고 물었을 어머니가, 지금은 그에게 눈길도 한 번 주지 않고 기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어머니는 주동화 엄마가 아니라 틸엘 대표였으니 말이다. 어머니 덕분에 그는 조용히 구급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



"돌아가신 제 남편, 주은표 회장은 오직 사람을 살리기 위해 틸엘을 설립했습니다."


오늘은 어머니의 틸엘 대표로서의 첫 강연 날이었다. 그에 걸맞게 수많은 기자가 참석했고, 화환도 수십 개가 늘어서 있었다. 주동화도 맨 앞줄에 앉아 어머니의 강연을 들었다.


이렇게 어머니가 대표로서 대외 활동을 하게 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틸엘 대표이사로 정식 임명되었고, 일선에서 은퇴했던 할아버지가 다시 한빛 그룹 회장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틸엘 사옥 총격전에 대한 정리는 예상외로 노바의 책임으로 마무리됐다.


놀랍게도 틸엘 사옥으로 사격을 한 스나이퍼들의 총알에서 노바 그룹의 흔적이 나온 것이다.


임이섭이 속한 조직인 피스메이커의 소행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바가 튀어나와서 주동화도 적잖이 당황했었다.


그러나 증거가 너무나도 명확한 탓에 주동화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대표실로 쏟아진 실탄의 공급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노바 관련자가 구입을 한 정황이 드러났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공급처가 국방부에 실탄을 공급하는 업체라서 자칫 국방부에까지 혐의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미리 인지한 국방부는 순식간에 꼬리자르기를 했고 전적으로 노바 그룹이 모든 것을 떠안게 되었다.


이미 아버지가 기자회견으로 '큰 회사'를 언급한 사실까지 있었기 때문에 뉴스에는 연일 비겁한 기술 도둑질이라는 제목으로 노바를 때려댔고, 그 덕분에 틸엘은 더 유명세를 탔다.


주동화는 사옥에 총격을 한 상대가 피스메이커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칭다오 일을 회피한 노바가 죗값을 치르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편 총격전 이후 그에게는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


"아, 안 돼..."


주동화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 변화가 지금 그를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신호가 오게 되면 그의 몸에서 빛이 발산되었다. 그리고 번쩍하고 빛이 시야를 지나는 순간, 그는 다른 세계로 진입한다.


틸엘 건물에서 추락할 때 봤었던, 도형으로 이루어진 세계.


주동화는 룩시온과 결합한 이후 수시로 그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몸에서 번쩍하고 빛이 나면서 시야가 달라진다.


다행히 강연장이라서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난 빛을 카메라 플래시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전에는 길거리나 회사에서 번쩍거리는 바람에 사람들을 당황시켰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시야만 달라지지 청각이나 촉각, 후각은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소리는 들리고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촉감도 잘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때문에, 적당한 곳에 앉아서 기다리면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그때까지 기다리기가 영 심심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럴 때마다 주동화는 눈앞에 보이는 작은 도형들을 움직이곤 했다. 세모, 네모, 육각형 등의 다양한 도형들은 주동화의 생각을 따라 움직였다.


그것을 이것저것 움직이고 도형끼리 합쳐 보기도 하다 보면 시간이 곧잘 갔다. 이번에는 여러 개를 한꺼번에 이동시켜 보려고 생각을 집중해 보았다.


"어? 어어?!"

"갑자기 왜 그러지?"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틸엘은 다시 지구의 모든 생명을 지키는 일에 열중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황급히 연설을 끝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눈앞에 정체 모를 도형들 뿐인 주동화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주 작게 들렸다.


"동화야, 네가 그랬어?"

"어? 뭐를?"

"갑자기 단상에 있던 화환이 쓰러졌어."

"아... 내가 그랬나 봐."


주동화는 아차 싶었다. 가끔씩 도형을 움직이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어머니가 옆 의자에 앉으며 손을 잡았다.


"지금 또 앞이 안 보여?"

"응."

"불편해서 어쩌면 좋니."

"아니야.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져."

"그래도 계속 이러면..."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때, 다시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 돌아왔다."

"그래, 다행이다."


어머니는 안심하고 다시 기자와 관계자들에게로 걸어갔다. 주동화도 열심히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몇몇 사람은 주동화에게 다가와서 자신을 소개하고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 주동화는 그들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표의 외동아들이니 틸엘의 다음 수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명함을 주는 사람들에게 '저는 틸엘을 이어받을 일 없습니다.' 하고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이 자리에서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지 못하는 게 답답할 뿐이었다.


대표는 못 되겠지만 틸엘 직원이기는 해서, 주동화는 요즘 생명과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제3연구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서울대나 연희대는 못 가더라도, 연구실에서 일을 하려면 공부는 계속해야 할 것이었다.


"단체 사진 찍겠습니다!"


사람들을 모으는 사진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때 주동화의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꺼내 보니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주 동화님께. 피닉스 에서 드립니다. 우리는 당신의 레포트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특별 채용을 제안합니다. 면접 일자는...]


번역체의 말투, 그리고 피닉스라는 단어는 주동화를 설레게 했다.


언제 보냈는지도 까마득한, 수개월 전의 입사 지원서에 대한 답신이었다.


주동화는 피닉스의 문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토록 꿈꾸던 게임 회사에서의 면접 제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지만 우스운 일이었다. 어째서 머릿속에 생명과학 참고서가 떠오르는 것인지. 마치 '너한테 필요한 건 나잖아.' 하고 참고서가 우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동화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더 필요한 것은 과학이었다.


생각해보니 게임을 안 한 지 몇 달이 지난 것 같았다. 처음에는 과학 공부를 하느라 억지로 끊었던 건데 이제 생각도 나지 않는다.


진짜 현실을 마주한 그에게, 더 이상 게임 속의 가상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주동화 연구원님도 이쪽으로 오셔서 같이 찍으시지요."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주동화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사진 촬영 중인 단상을 보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사는 그를 기다리며 잠시 렌즈를 살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짓고서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주동화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현실로 걸어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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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책임 전가 21.07.31 528 11 10쪽
35 다음 단계로 +1 21.07.30 561 13 6쪽
» 새로운 시작 +1 21.07.29 589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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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지구상에서 가장 새로운 것 21.07.27 587 12 13쪽
31 다른 차원의 힘 +1 21.07.26 610 13 11쪽
30 최고의 보물 +2 21.07.25 610 14 10쪽
29 적인가 아군인가 +2 21.07.24 599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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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구출 작전 (2) 21.07.22 595 10 13쪽
26 구출 작전 (1) 21.07.21 621 12 11쪽
25 스파이 +1 21.07.20 652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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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친구 +2 21.07.18 689 13 11쪽
22 아버지의 비밀 (2) 21.07.17 690 13 10쪽
21 아버지의 비밀 (1) 21.07.16 700 13 11쪽
20 침입자 (3) 21.07.15 665 13 11쪽
19 침입자 (2) +2 21.07.14 690 12 12쪽
18 침입자 (1) 21.07.13 724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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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비밀 연구실 21.07.11 763 13 11쪽
15 기자 회견 21.07.10 780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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