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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596
추천수 :
895
글자수 :
532,633

작성
21.07.12 14:05
조회
743
추천
13
글자
12쪽

불청객

DUMMY

주동화는 연구원님이라는 호칭이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았다. 물론 예전에 도련님보다야 훨씬 낫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니, 그, 노바게임..아, 아니 노바 그룹에서 왔던데요."

"네, 노바일렉트릭입니다."

"아하."


노바게임즈가 아니라서 김이 새버린 주동화는 자그맣게 탄식을 뱉었다. 하기야 노바일렉트릭이라면 충분히 찾아올 이유는 있다.


룩스미터도 결국에는 전자제품이니 기술 제휴든 부품 공급이든 협력이 가능한 영역이고, 다른 기업들은 틸엘과 기술 제휴를 하려고 온갖 애를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국내 최대 전기회사라고 해도 헛걸음이 될 게 뻔했다. 아버지가 노바와 업무 협력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와도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 민간기업과 손을 잡을 리가.


주동화는 이미 노바게임즈가 아니라는 것에서 흥미가 사라져 연구실로 돌아가려고 발을 돌리는데, 갑자기 대표실 문이 열렸다.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미팅이 끝난 걸까. 주동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을 열고 나온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그때, 주동화는 아버지의 눈동자가 전에 본 적 없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는데 왠지 입 다물라고 말하는 듯했다.


주동화는 아버지가 왜 인상을 쓰는지는 몰라도 일단 분위기가 안 좋아 보여서 조용히 물러섰다. 하지만 그를 반갑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하, 아드님이신가요? 주동화 군이죠?"


아까 접견실에서 봤었던, 얼굴만 보고 대장으로 추측했던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과 동시에 주동화는 아버지가 이마를 짚으며 이를 악무는 것을 보았다.


"반갑습니다. 노바일렉트릭 양재준 이사입니다.“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주동화는 저렇게 웃으면서 계약서를 내밀면 얼굴만 쳐다보다가 싸인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더는 할 이야기 없으니 돌아가세요."


아버지는 시종일관 기분 나쁜 표정이었다. 그러나 양재준은 여전히 미소를 띤 채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의 직원은 뒤쪽에 굳은 얼굴로 서 있었고, 가만히 보고 있자니 주동화가 보기에 그들은 노바일렉트릭의 직원이라기보단 경호원에 가까워 보였다.


양재준은 다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애국 하셔야죠. 주 회장님."


그 말에 아버지는 질렸다는 듯 성의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국방부가 언제부터 의료기기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는지요? 제품 공급은 얼마든지 가능하니 구매 입찰 공고를 내라고 하세요.“


국방부라니. 주동화는 귀를 의심했다. 과학기술부도 아니고 국방부라니.


게다가 상대는 노바일렉트릭이 아닌가. 아버지가 왜 노바일렉트릭을 상대로 국방부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동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 사이에도 대화는 계속 오갔다.


"대한민국의 돈으로 회사를 운영하시면 대한민국에 대가를 치르셔야죠."

"나랏돈으로 회사를 운영한 적 없어요."

"이 회사가 서 있는 땅도 대한민국이고, 대표님의 고객들도 대한민국 사람인걸요."

"나라의 개가 따로 없네요."

"높은 곳으로 가는 길은 험한 법이지요."


양재준은 아버지에게 한 마디를 지지 않고 대답을 했다. 게다가 얼마나 목소리가 평온하고 부드러운지 분명히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인데 조금도 적의나 분노가 느껴지지를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점이 아버지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대꾸도 하기 싫다는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양재준은 하던 말을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높은 곳에 머무는 일은 더욱 고되다고 합니다. 저라고 대표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겠습니까. 제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어른이신데요.“


그리고는 그 조각 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 것이었다. 주동화는 이제 저 남자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를 몰아세우는 것을 보면 나쁜 사람인데,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말을 하며 해맑게 웃는 것이 거짓말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저게 거짓으로 연기하는 거라면 지금 당장 배우를 시작하거나 정치판에 나서야 할 것 같았고.


"대한민국이 틸엘에게서 등을 돌리기 전에 결정하세요.“


이 말을 할 때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되면 어제 같은 기자회견도 못 열게 될 테니까.“


주동화는 여전히 노바일렉트릭과 국방부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바일렉트릭 사람이 국가기관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양재준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양재준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대표실을 걸어 나왔다.


그가 움직이자 목석같이 서 있던 두 명의 남자는 그림자처럼 따라 나왔다.


양재준은 대표실 문 앞에 서 있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다. 물론 인사를 받는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지만.


"아, 그리고...."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든 양재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선이 주동화에게로 향했다. 주동화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양재준은 주동화를 보며 생긋 웃고선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희가 아드님 얼굴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그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말도 못 하게 일그러졌고, 양재준은 주동화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고 그가 한 말에는 그 어떤 위협도 없었는데도, 주동화는 등 뒤가 쭈뼛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



노바일렉트릭이 돌아간 후 주동화와 함께 대표실로 들어온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한숨부터 쉬었다.


양재준을 상대하는 것이 피곤했던 것처럼 보였다. 아들의 얼굴을 이미 알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식으로 협박 비슷한 것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한 주동화는 아버지에게 아까 찾아온 사람들이 국방부에서 온 사람인지 노바일렉트릭에서 온 사람인지부터 물었다.


이에 아버지는 ‘국방부 일을 돕는 노바 사람이야.’라고 한 마디로 혼란을 끝내주었다.


"노바 그룹이 왜 국방부 일을 도와요?"

"나라에서 이것저것 받아먹었으니까 그렇지."


돈깨나 있는 재벌이 뭘 그렇게 받아먹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주동화는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국방부가 우리 회사에 무슨 볼일이 있는 거예요?"

"룩스미터 기술을 군대에 도입하기를 요구하고 있어."

"룩스미터를요? 군 병원에서 쓰려고요?"


주동화는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군 병원에서 룩스미터가 필요하면 그냥 제품을 구입하면 간단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아까 아버지도 공고를 내라는 식으로 말을 했던 거고.


제품이 필요한 거면 뭐하러 이렇게 바쁜 시간 내서 찾아와서 미팅까지 한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언제부터 군 병원 인프라에 그렇게 신경을 썼다고...


"병원에서 쓰려는 용도가 아닌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아 주동화는 다시 물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장병들의 신체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려는 거야."

"신체 정보를요?"

"병사에게 룩스칩을 붙여 놓으면 신체 상태를 한눈에 알 수 있잖아. 얼마나 단련이 되었는지, 누가 상처를 입었는지, 누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도."

"하긴 군대에서 다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기술을 도입하면 좋은 거 아니에요?"

"그래. 국방부도 장병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나를 설득하고 있지만... 그게 만약 실전에 쓰이게 되면 어떻게 되겠니."


실전이라면 전시상황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된다면 아마 룩스미터가 더 위력을 발휘할 것이었다. 부상을 입은 병사를 바로 확인해 치료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아버지의 말에 주동화는 이 생각이, 룩스미터를 ‘의료기기’로만 생각하고 있던 그의 오판이었음을 깨달았다.


"생존한 병사 수를 실시간으로 파악 가능한 건 당연하고, 전력에 어느 정도까지 한계가 왔는지, 어디는 더 버틸 수 있는지. 심지어 누가 비겁한 생존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지."


아버지의 이야기는 실로 충격이었다. 주동화는 룩스미터가 그런 식으로 사용될 수 있으리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룩스미터를 개발한 아버지는, 그리고 그와 다르게 천재인 아버지는, 룩스미터가 이용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그것이 불러올 파장을 추측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룩스미터가 의료 외의 목적으로 쓰인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군사력 강화에는 군사기술이나 군사 장비 같은 게 중요하겠지만 결국엔 사람이 싸우는 것이니 병사들의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전력 증강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유리한 거잖아요. 효율적으로 전략을 운영할 수 있으니까."

"대한민국에서 그 기술을 도입하면, 다른 나라는 가만히 있겠어? 미국에서 내놓으라고 하면 안 줄 수 있을까? 당연히 러시아나 중국에서도 압박이 들어오겠지?"


아버지의 말에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보다 국력이 강한 강대국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마음을 먹으면 기술 독점은 어려워질 것이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룩스미터가 모든 군대에 적용되면, 그 순간부터 병사들은 인간이 아니게 되는 거야."

"인간이 아니면..."

"수치화된 자원이지."


그리고서 아버지는 곧 말을 정정했다.


"뭐,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최소한의 인권이라는 게 있으니까."


아버지는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가끔 아버지는 과학자 특유의 이성적인 태도를 보일 때가 있었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차가운 느낌 말이다.


대체로 기술이나 연구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그랬다. 그럴 때는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책이나 논문과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룩스미터가 도입되면 병사들은 로봇과 다름없어지는 거야. 배고프다고 울부짖어도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식량 조달이 안 되고, 아파서 기절해도 전투가 가능할 정도의 처치만 하고 다시 전장으로 내보내져. 전투 불능이 된 병사를 손쉽게 축출해서 총알받이로 쓰겠지. 기갑으로 무장한 적진에 보병을 내보내서 사살되는 속도와 피격 유형을 보고 상대의 전력을 파악할 거야."


마치 전쟁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가 말했다. 주동화는 전쟁을 겪어보지도 못했지만,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상상을 하는 것도 관두었다.


아버지는 이런 말을 어떻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룩스미터가 초래할 모든 가능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예측했을 것이었다.


아마 지금 말하는 것은 그 가능성들 중에 가장 실현될 확률이 높은 결과일 것이고.


"나는 사람을 지키려고 연구하지 죽이려고 연구를 하는 게 아니야."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에 주동화는 안심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이렇게 강경한 태도를 취할수록 회사가 불리해지는 셈이 되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미 119는 틸엘에 등을 돌렸고, 경찰이라고 입장이 다를 것 같지 않으니.


"하지만 양재준 저놈은 국방부 일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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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버지의 비밀 (2) 21.07.17 691 13 10쪽
21 아버지의 비밀 (1) 21.07.16 703 13 11쪽
20 침입자 (3) 21.07.15 666 13 11쪽
19 침입자 (2) +2 21.07.14 693 12 12쪽
18 침입자 (1) 21.07.13 725 14 12쪽
» 불청객 21.07.12 744 13 12쪽
16 비밀 연구실 21.07.11 766 13 11쪽
15 기자 회견 21.07.10 784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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