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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84
추천수 :
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4.0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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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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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3쪽

13. 말코

DUMMY

“..........”

“..........”



숨막힐 듯한 정적 속에서 두 남성이 대치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푸릉이를 바라보는 괴한과, 왼팔이 반쯤 잘려나갔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푸릉이. 두 사람의 대치는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눈보라치는 소음만이 가득 울려퍼지는 그곳에서 오두막의 낡은 문이 끼이익거리며 열렸다.


“이게 무슨 소란··· 푸릉아!”

“하부지···”

“...음?”



노인은 기겁하며 곧바로 몸을 일으켜 푸릉이의 상태를 살폈다.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상처와 팔의 절단면에서 뚝뚝 흐르는 체액. 노인은 떨리는 눈으로 주변을 살폈고, 그 시선에는 떨떠름하게 코를 긁적이는 괴한이 있었다.


“하부지, 저 사람 무서워··· 도망가야···”

“말코 네놈 짓이렷다?”

“으음··· 그, 그게 아니라··· 음, 자, 자네는 잘 지냈나?”

“말···코?”


노인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졌고, 말코라 불린 괴한은 손사레를 치며 덜덜 떨었다. 상황을 알지 못해 말코와 노인을 번갈아 보던 푸릉이의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 일어났다. 노인의 서슬퍼런 안광에 괴한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미안하네. 자네 제자인 줄은 대련 중간에 알았네만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걸 변명이라고 말하는 건가?”

“정말 미안하이!”

“......되었고 어서 이 아이를 치료해주게.”

“알았네. 휴우! 자네는 아직도 눈빛이 안죽었구만?”



말코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훑으며 천천히 푸릉이에게 다가왔다. 푸릉이는 깜짝 놀라며 검을 겨눴으나 노인이 손을 뻗어 검을 거두었다.


“괜찮다 푸릉아. 저리 생겼어도 일단은 내 친우니까.”

“저리 생겼다니 말 참 곱게 하는구만 그래. 크하핫!”

“...내가 몸이 성했더라면 말코 네놈의 팔 한 쪽을 가져갔을 텐데.”

“한 번 해보시지. 뒷방 노인네처럼 골골거리지 말고, 크하핫!”



서로 날선 대화가 오갔으나 푸릉이는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틱틱거리기는 해도 두 사람이 정말 친구가 맞구나. 말하는 것은 험악했으나 말투와 분위기는 푸근하고 그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으니···


“아···”

“푸릉아? 푸릉아! 괜찮느냐! 말코 녀석아 뭐라도 좀 해봐라!”

“아악! 그만 좀 보채라! 네놈의 급한 성격은 아직도 못 고쳤··· 이봐, 꼬마야. 꼬마야!”

“이러다가 잘못되면 네가 책임···”

“일단 지혈부터···”



무어라 열심히 목청껏 소리치는 노인과 괴한의 대화. 그러나 푸릉이의 귓가에 그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의식이 꺼지며 눈꺼풀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는··· 일전에 내공을 너무 많이 써서 탈진했을 때와 똑같은 느낌.


‘그래도··· 지켜냈구나.’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의 위험한 싸움이었다. 상대는 애초부터 자신을 해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 같지만 그래도 푸릉이는 뿌듯한 속내를 숨길 수 없었다.


처음이었다. 자신이 노인을 외부인에게서 지켜내는 것은. 항상 하나부터 열까지 노인의 그늘 아래에 숨어 그 배려를 받아먹기만 하였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검으로, 노인에게서 배운 무공으로 침입자를 상대할 수 있었으니.


푸릉이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로 그렇게 눈을 감았다.



* * *



적막이 감도는 오두막 안. 겨울이라 해가 짧아 어느새 어둠이 드리워진 낡은 집 내부에서는 촛불 하나가 광원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촛불은 그늘진 노인의 얼굴을 비추었고, 이불에 고이 누워 숨을 색색거리는 푸릉이를 비추었다. 노인은 푸릉이의 손을 잡고 열심히 진맥을 보고 있었다.


촛불이 비춰지지 않는 그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혈도 멎었고 내공도 안정적이야. 알면서 뭘 그리 계속 보고 있는 게야?”

“···만약도 있지 않나. 말코.”

“말코는 무슨 언제적 별명이냐.”

“한 번 말코는 영원한 말코지.”

“참나···”



말코라고 불린 늙은이는 코웃음쳤지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푸릉이를 살피는 노인의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 없었다. 자식 하나 없이 살아온 생활이 길었기 때문일까, 꽤나 애틋해보였다. 말코는 둘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딱 보니 네 자식은 아닌것 같네만.”

“주웠지. 이 화산 어딘가에서.”

“일반인은 엄두도 못낼 이 험한 산에 누가 아이를 버린다는 말인가.”

“아이가 아닐세.”

“...?”

“가까이 와보게나. 말코.”



말코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노인의 말에 따라 푸릉의 옆에 앉았다. 노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푸릉이의 옷매무새를 잠시 풀어헤쳤고, 그에 따라 상처 입은 푸릉이의 왼어깨가 드러났다. 그 안에는···


“무, 뭔가 이 기분 나쁜 상처는···!”

“진정하게.”

“진정하게 생겼나? 거기에 상처도 조금씩 아물고 있구만··· 어쩐지 상처약을 쓰지 말라더니.”



말코는 경악한 얼굴로 푸릉이의 상처를 살폈다. 왼어깨와 팔이 맞닿는 부위가 반쯤 잘렸었다. 그러나 푸릉이의 상처는 이미 반쯤 아물어 있었고 거기에 조금씩 스멀스멀 상처부위가 서로 맞닿고 있었으니··· 평범한 인간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할 기현상이었다.


“자네, 이 아이는 대체··· 뭔가?”

“......”



이 아이는 무엇인가. 헛숨을 삼킨 말코의 물음에 노인은 쉬이 대답해줄 수 없었다. 아무리 막역한 친우라고는 해도 음양의 조화와 자연을 귀하게 여기는 도사한테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있을까··· 허나 노인의 고민은 짧았다.


“이 아이는 인간이 아닐세. 내가 주운 영물이지.”

“영물이라면···”

“그래, 사람이 아니란 말일세.

“허어!”


노인은 차근차근 푸릉이와 만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멧돼지 소리에 발걸음을 옮겨보니 있었던 작고 둥글둥글한 반투명 생명체. 변덕으로 생명체를 오두막에 데려와 지낸 일과 어느날 아이로 변해버린 모습. 자식처럼 키우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작고 소소한 이야기와, 무공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까지 모두 말코에게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라네. 어떤가, 자네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그야 당연히···”



심각한 눈으로 푸릉이를 바라보는 말코의 눈. 푸릉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꿈나라를 헤메고 있었다. 말코는 손을 뻗어 푸릉이의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묘하게 서늘하고 차가운 감각에 말코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손을 떼지 않고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매만지던 말코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걸세.”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만.”

“나도 이 아이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닐세. 음양의 조화도 느껴지지 않는 괴이한 존재. 그것도 이제껏 한 번도 중원에 나타난 적이 없는 것이니까.”


노인은 속으로 놀란 마음을 숨겼다. 도사인 주제에 매일 술을 마시는 묘한 녀석이었으나 다른 부분에서는 어느 도사보다도 냉정했으니. 말코의 시선이 푸릉이에게서 노인에게로 향했다.


“그래도 자네 제자가 아닌가? 그것도 꽤나 아끼는.”

“제자는 무슨···”

“이사람아. 저 아이가 화산파의 무공을 사용하는데, 누가 그걸 알려줬을거라 생각하나?”

“크흠.”


노인은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흘렸다. 푸릉이와 마주 검을 휘둘러본 말코의 눈은 정확했다. 덕분에 처음에는 푸릉이가 노인을 죽이고 검을 탈취한 것이라 생각했으나, 중간부터는 그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손속에 사정을 두었던 말코였다. ···그래도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려는 전법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하고 말았지만.


말코는 노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가 그런 표정을 짓게 되었으니까, 그걸로 되었네.”

“···내가? 무슨 표정을 말인가.”

“자네는 모를걸세. 정사대전이 끝나고 난 뒤, 자네의 흉신악살같은 얼굴을··· 그 표정을 생각해보면 중원에 매화광검이라고 소문나는 것도 이해가 될 정도지. 크하핫!”

“웃을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네만.”

“자네는 똥씹은 얼굴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웃긴걸 어찌 하나?”

“여전하구만 말코 자네도···”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말코의 모습에 노인의 입꼬리도 살포시 올라갔다. 원리원칙에 있어서는 절대 고집을 굽히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친우가 푸릉이의 존재를 덮어주었으니··· 어찌보면 큰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그나저나, 그래서 왜 나를 부른 건가? 딱 봐도 저 아이 때문인 것 같은데, 아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네. 다행히 푸릉이가 자고 있으니 여기서 말해도 되겠지.”

“···미리 말해두지만 이상한 부탁은 들어줄 수 없네. 나도 이제는 쉬이 움직일 수 없는 위치에 올랐으니까.”

“나도 알고 있다네.”



노인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촛불을 벗삼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하는 노인.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 말코의 표정은 점점 썩어들어갔고, 마침내 노인의 말이 끝나자 말코는 물었다.


“···자네 미친사람인가?”

“매화광검이라고 말한 것은 자네가 아닌가?”

“그렇긴 하네만··· 역시 자네는 제정신이 아니야. 자식이 생겨서 좀 나아진 줄만 알았더니.”

“그래서 내 부탁을 들어주는 건가? 안 들어주는 건가?”

“···친우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생떼를 그리 부려대는데 어찌 내가 거절할 수 있겠나. 에잉, 죽어서까지 귀찮게 굴려고?”

“허허.”



노인은 빙그레 미소지었고, 말코는 불쾌하다는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말코의 반응에도 노인이 미소지을 수 있었던 것은··· 친우인 말코의 속내를 어느정도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먼저 죽을 친구에게 복잡한 감정이 들었겠지.


“말코.”

“···왜 부르나, 미친 늙은이.”

“고맙네. 내 부탁을 들어줘서···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주어서.”

“무당산에서 화산까지 멀다니, 중원인들이 코웃음치겠구만.”

“부탁을 들어주어서, 고마우이.”

“하, 됐네. 자네 몸이 성하지 않다고 했지? 몸이 안좋을 때에는 술이 제격이지. 어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자네가 그걸로 괜찮다면야.”



말코는 더 이상 못듣겠다는 듯이 손사레를 치며 허리춤의 술병을 꺼내었다. 산길을 오르는 중에 얼마나 마셨는지 절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나, 노인도 말코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안주도 없이 오두막에 놓인 두 잔의 술잔에 서로 술을 비워댔다. 안주는 옛날 이야기를 푸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이제는 내가 왜 그리 혼인을 강조했는지 이해하겠군? 크하핫!”

“···언제는 잡혀 산다고 객잔에서 하소연하더니만. 어딜 목소리를 높이는가?”

“어허, 꼭 이런데만 기억력이 좋아가지고는. 그러는 자네는 내가 아낙네를 소개시켜줬던건 기억하나? 얼마나 쑥맥인지 내 망신도 그런 망신이—”

“크흠··· 말코 자네는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아.”

“크하핫! 그럼 비긴걸로 하자고.”



좋은 술과 좋은 친구가 함께 있으니 한 잔은 두 잔이 되었고, 두 잔은 넉 잔이 되었다. 밤이 깊어져 오고 양초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을 무렵, 오랜만에 과음하여 거나하게 취한 노인이 쓰러지듯 푸릉이의 옆에 누우며 말했다.


“말코··· 고마우이···”

“딸꾹, 취했으면 곱게 잠이나 잘 것이지.”

“역시 내게는, 자네 밖에 없구만··· 뭐, 다른 친우들은 모두 정사대전 때···”

“나는 이만 가보겠네.”

“배웅해야 할—”

“됐네. 환자한테 그런 부탁까지 해서 쓰겠나. 누구랑은 달리 멀쩡한데.”



말코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깊기는 하였으나 무당파와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으니 경공술을 펼치면 금방 도착할 터. 말코는 그런 생각에 삐그덕 거리는 오두막 문을 열었다.


“푸릉이를··· 부탁하네.”

“············원, 늙은이 잠꼬대도.”


힘겹게 말한 노인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말코는 문을 닫았다. 겸사겸사 거의 꺼져가는 아궁이에도 장작 몇 개를 집어넣어주었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설산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숨처럼 입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수증기에 말코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뭣 하나 남기고 가니 다행이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노인에게 남은 것은 정사대전의 영웅도 아닌, ‘매화광검’이라는 수치스러운 이명 뿐. 그것도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의 중원에서는 잊혀진지 오래니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말코는 노인에게서 푸릉이를 뺏어갈 수 없었다. 기이한 외형과 인간이 아님에도 인간의 탈을 쓴 이상한 생명체. 무릇 도사라면 음양의 조화를 잃어버린 그 생명체를 좌시할 수 없었겠으나··· 아내도, 자식도, 내공도, 명예도 없는 친우에게 남은 그 마지막 희망마저 가져갈 자신이 없었다.


“친구를 잘 부탁하지.”


오두막을 물끄러니 바라보던 말코는 그 말을 끝으로 쏜살같이 산을 내려 갔다. 노인을 지키기 위해 팔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을 무찌르려 했던 그 자그마한 아이. 본인도 모르게 시험을 하고 말았지만 그 마음가짐이라면 친우를 두고가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말코의 신형이 이리저리 나무를 타고 움직이며 오두막에서 멀어졌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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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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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80 3 14쪽
» 13. 말코 23.04.08 76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2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3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9 3 12쪽
7 7. 심법 23.03.27 114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8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50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2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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