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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85
추천수 :
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3.30 16:02
조회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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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9. 깨달음과 성장

DUMMY

동물들도 잠을 자고 있을 이른 새벽. 노인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일어나 눈을 비볐다. 여름이어도 밤에는 쌀쌀한 산 정상이기에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떤 노인은 비척거리며 오두막을 나섰다. 그 앞에는 갓 일출한 듯 맑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 해가 반쯤 고개를 내밀었다.


그 광활한 빛을 묵묵히 받아내며 검을 휘두르는 조그만 아이가 있었다.


“오늘도 열심히구나. 허허.”

“푸릉!”

“나는 신경쓰지 말려무나.”


아침잠이 없는 노인보다도 일찍 일어난 푸릉이가 오두막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일출의 여린 빛이 산봉우리를 비추며 푸릉이와 노인을 감쌌다. 노인은 열심히 검에 매진하는 푸릉이가 그저 대견할 따름이었다.


‘인간도 저렇게 열심히 하기가 어려운 법이거늘.’


푸릉이의 외견과 비슷한 나이 또래 아이들은 물론, 어지간한 무인들도 푸릉이의 살인적인 수련 일정을 따라갈 수 없으리라.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검을 잡고 지내는 푸릉이였으니까.


즉흥적이고 인내심이 부족한 어린아이의 특성상 그러한 인내심은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푸릉이에게 검을 다루는 것은 일종의 놀이에 가까웠다. 휘두르면 그 만큼 실력이 증진된다. 심법을 운용하면 내공이 차곡차곡 쌓인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는 노력은 일종의 오락처럼 푸릉이를 중독시켰다. 기분 좋은 중독의 울림이었다.


“푸릉아 재미있느냐.”

“웅! 검 재미써.”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러면 슬슬 새로운 검술도 가르쳐볼까.”

“우와아~”



자고로 가르침 받는 이가 이렇게 열심히 수련하는데, 스승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노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 푸릉이를 가르쳤다. 사소한 실수도 잡아서 지적하고 예리한 호흡의 정돈까지 지적했다. 푸릉이는 군말없이 그 지적 하나하나를 실천에 옮겼고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푸릉이가 인간이었다면 여름날 그가 흘린 땀방울을 모두 모아서 항아리를 가득 채울 수 있으리라.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고 그동안 푸릉이는 많은 것을 배웠다. 새로운 심법, 검법, 장법, 권법 등등··· 삼대제자의 수준을 넘어 어느새 이대제자가 배울 만한 무공의 성취를 이룩하는 푸릉이였다.


어느덧 여름이 한 꺼풀 꺾이고 나뭇잎들이 옷을 단장하는 기미가 보이는 어느 날.


“핫! 하앗!”



푸릉이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놀이도, 서적도 없는 외딴 시골의 오두막에서 검술은 푸릉이에게 최고의 오락이었다. 예전처럼 한눈 판 사이 사고를 치는 경우도 적어 노인도 마음 편히 자리를 비웠다.


푸릉이는 연신 칼을 휘둘렀다. 그가 붙잡은 목검은 1년도 되지 않아 벌써 색이 바라고 이곳저곳 금이 갔다. 그럼에도 푸릉이는 열심히 검을 놀렸다. 검을 휘두르는 그 순간에는 어떠한 잡념도, 기이한 열망도 사라진 채 오직 세상에 푸릉이와 검만 있을 뿐이었다.


‘수련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갔다와야 겠군.’


노인은 푸릉이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혼자 냅둬도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고, 지금까지 배웠던 내용을 종합하면 산에 돌아다니는 멧돼지 정도야 혼자 처리할 테니.


노인은 부리나케 움직여 산 곳곳을 돌아다녔다. 민간인은 절대 출입할 수 없는 화산의 숨겨진 봉우리. 산세가 험하여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말 그대로 천혜의 자연이 유지되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만큼 몸에 좋고 무인에게는 더더욱 좋은 영약을 찾을 가능성도 높았다.


‘스승으로서 가르치기도 버거우니 이런 일이라도 해야겠지···’


무한정으로 검을 휘두르는 푸릉이의 체력에 노인은 이미 두손 두발 다 든 상황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무공을 가르쳐주고, 그것을 다루는 과정에서 몇 마디 말을 거들어줄 뿐. 심지어 배움이 빠르고 말한 것을 바로바로 고치는 푸릉이에게는 지적할 거리도 얼마 없었다. 한 번 지적한 것은 기억하고 체화하는 것이 웬만한 무재라고 불리는 아이들보다도 나았다.


“옳거니. 하수오구나.”



노인은 심마니가 된 심정으로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던 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이라 역시 산 곳곳에 영약이라고 불릴 만한 자연의 산물이 널려 있었다. 노인은 즐거운 마음으로 푸릉이를 생각하며 열심히 산을 돌아다녔다.


제자를 사랑하는 늦깎이 스승의 마음은 그토록 깊은 것이었다.



* * *



한편 푸릉이는 노인이 자리를 비운지 오래되었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압··· 핫!”



노인이 있으나 없으나 푸릉이에게 무공은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도 재미있는 하나의 놀이이자 유흥.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이전의 자신과 달라지고, 어제의 자신보다 오늘의 자신이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보이니 그 중독성에 푸릉이는 팔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처럼 근육통을 느끼는 것도, 땀에 절어 몸이 피곤해지는 법도 없었으니.


아무런 생각없이 무념무상으로 휘두르던 푸릉이의 앞에 새로운 기척이 등장했다.


“푸릉?”


푸릉이는 화들짝 놀라 검을 바로쥐며 검무를 멈추었다. 검로가 길을 잃자마자 귀신같이 사라져버린 기척. 푸릉이는 황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제서야 푸릉이는 노인이 어디론가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가끔 있는 일이라서 그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이어서 푸릉이는 다시금 검을 쥐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검을 그만두기에는 평안한 시골은 매우 심심했으니. 다시금 검이 휘둘러지자 이번에는 더욱 강렬하게 기척이 느껴졌다. 푸릉이는 아랑곳않고 검을 휘둘렀고 그제서야 기척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상상의 적이었다. 자신의 반대편에 서서 똑같은 검을 들고 똑같은 외형을 가진 분신. 눈을 강하게 감았다 뜨면 그 정체는 사라지지만 검을 휘두르면 다시금 나타나는 환영과도 같은 존재. 그는 푸릉이가 검을 휘두르면 맞받아치고, 회피하며, 역공을 펼치는 하나의 역동적인 생명체였다.


“푸릉!”



푸릉이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괴이한 존재의 등장에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전보다 빠르고 강하게 휘둘러보지만 상대도 똑같이 휘두를 뿐. 실체가 없는지라 물리적으로 검이 부딪치는 느낌은 전혀 없었으나 푸릉이의 마음에는 당황이 피어올랐다.


노인을 만나서 무력하게 멧돼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던 과거의 자신은 없었다. 노인의 가르침 아래 멧돼지를 만나도 싸움 끝에 승리를 쟁취할 자신이 있었던 푸릉이. 그의 앞에 나타난 미지의 적에 푸릉이는 더욱더 오기를 냈다.


내게 더 많은 힘을, 눈 앞의 적을 이겨낼 수 있는 강대한 힘을, 힘없는 노인을 지킬 수 있는 상냥한 힘을. 푸릉이는 바라고 또 바랐다. 이어서 그의 정신에 감응하듯 푸릉이의 신체가 전체적으로 울렁이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가슴 정중앙에 있는 마석에서는 미칠듯이 내공을 뿜어대며 순환시키고 있었고, 심법을 운용하기 위해 예비로 만든 혈로에서는 전력의 혈로가 재빠르게 순환하였다. 푸릉이의 발걸음에 흙바닥이 패이며 검을 휘두르는 옆에서는 검풍과 함께 날선 소음이 뒤따랐다. 점점 더 빠르게, 더 강하게.


푸릉이의 보석은 빛났고,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내공에 따라 팔다리는 길어지고 몸은 더욱 단단해졌다. 눈 앞의 적을 베어넘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검을 휘두르고 있던 푸릉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변화였다. 마침내 그 변화의 끝자락에서 종지부가 찍혔다.


“하아아앗!!”



푸릉이의 외침과 함께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검이 움직였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사선베기. 스스로 하고도 믿지 못할 만한 불의의 일격에 반대편의 적이 그대로 가슴이 크게 베였다. 거무튀튀한 환영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하늘의 공기처럼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구나.”



전혀 기척도 못 느낀 노인의 등장. 푸릉이는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노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괜히 푸릉이는 자신이 혼날 만한 짓을 한 것이 아닐까 마음이 뜨끔하였다.


이윽고 한 가지 의문이 푸릉이의 마음 속에 피어올랐다. 노인의 키가 이렇게 작았었나? 당황한 듯한 푸릉이의 모습에 노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다가올수록 노인의 키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이 높아졌음을 깨달았다.


“네 자신을 돌아보려무나.”

“아···”



푸릉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노인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커진 것이었다. 대여섯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아기자기한 모습에서 급격히 성장하여, 충년의 나이에 이른 푸릉이. 아직 본격적으로 후기지수의 반열에 오르는 지학의 외형까지는 오르지 못했으나 노인은 그저 웃었다.


“너의 검로를 보았단다. 마지막에 담긴 미약한 검기. 너는 분명한 일류 무인이다.”



푸릉이는 노인의 말에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근육통을 못느낌에도 바들바들 떨리는 손. 쥐고 있던 목검이 쩌저적- 하고 갈라지더니 바닥에 비산했다. 과격할 만큼의 내공을 담아 휘두른 탓에 목검이 부서진 것이었다. 틀림없는 검기 발현의 증거였다.


푸릉이는 그제서야 노인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빠···”

“축하한다 푸릉아. 이제 너는 훌륭한—”

“아···빠!”


노인이 감격에 젖어 말을 하려는 차에 푸릉이가 먼저 노인에게 신형을 날렸다. 노인을 힘껏 끌어안는 푸릉이의 모습에 노인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푸릉이의 한 마디는 아내도 자식도 없었던 그의 마음 속에 하나의 파문을 남겼다. 몸집이 커지더니 말도 유창해진 것일까.


“하하하, 그래, 푸릉아. 축하한다!”

“아빠···”

“그래그래, 장하다.”



노인은 울컥한 심정을 애써 삼켜내며 푸릉이의 서늘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죽은 것도 아니고 고작 일류에 도달했다고, 아빠라는 한 마디를 들었다고 눈물을 보일 쏘냐. 노인은 일부러 모진 말로 스스로를 달래며 억지로 눈물샘을 잠재웠다.


그럼에도 비어나오는 물기에 노인은 푸릉이를 꽉 안아주었다. 자기보다 작은 아이가 눈물을 보지 못하도록. 노인의 비루한 눈물에 푸릉이의 들뜬 마음이 걱정에 잠기지 않도록. 그렇게 노인은 따사로운 햇살이 자신의 눈을 메마르게 해주길 빌며 오래토록 푸릉이를 안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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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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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80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6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2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3 3 11쪽
»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3 3 11쪽
8 8. 검법 23.03.28 99 3 12쪽
7 7. 심법 23.03.27 114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8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50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2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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