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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75
추천수 :
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3.24 19:09
조회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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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6. 스승과 제자

DUMMY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인가···”

“푸릉?”


노인의 앉은자리에 턱 하고 앉아있는 푸릉이. 그가 노인의 말에 반응하듯 힐끗 노인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해맑고 순수한 것이 그 나잇대 어린아이들과 다를바 없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듣는데.’


사파의 무리 중에서 사람의 거죽을 벗겨 얼굴을 갈아치우는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쓰는 이가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었다. 허나 사람의 모습을 따라하는 영물 혹은 마물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전혀 없었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새로운 지식들만 쌓일 뿐이구나.”

“뿌···릉!”

“허허.”


노인의 말을 따라하는 것일까? 그의 얼굴을 흉내내며 입을 오물조물 움직이는 푸릉이였다. 푸릉이라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사람의 몸을 갖게 되었으니 말도 할 수 있을 터. 노인은 그에게 말을 가르치기로 하였다.


“저기 드높은 하늘을 보거라.”

“푸릉?”

“저것이 바로 ‘하늘 천’이니라. 천.”

“추···릉!”


노력하는 모습은 가상하나 말하는 것들이 죄다 ‘푸릉’에 가까운 말들 뿐이었다. 곧잘 발음하지 못하였음에도 노인은 웃어보였다. 아이라는 생물은 본디 하루아침만에 말을 깨우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해보자꾸나. 으음··· 일단 공부하는 서적이 조금 필요할 듯 한데. 천자문이라도 있었으면···”



노인의 고민이 깊어졌다. 구체 모양의 형태였을 때에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아이 형태로 변했기에 말을 가르칠 서적, 입힐 옷, 식기도구 등등 필요한 것이 꽤나 많았다. 노인은 오두막에 앉아 오랜만에 먹물을 갈며 필요 물품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안 본지도 꽤 오래되었으니 한 번 부를 필요도 있겠군. 너무 많이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다만···”


노인은 혼잣말과 함께 편지를 고이 접어 창가에 두었다. 이윽고 창가에 놓인 고급진 문양의 상자에서 향 하나를 꺼내 피워올렸다. 모래가 담긴 그릇에 향을 꽂아두고, 그 옆에 편지지를 접어둔 상황.


얼마 지나지 않아 푸드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둘기 한 마리가 창가에 앉았다. 새하얀 깃털을 뽐내는 비둘기는 잠시 창문을 두리번거렸다.


“이리오거라. 매달아주마.”

“꾸?”



노인은 전서구의 발목 부분에 편지를 묶어주었다. 한 차례 발을 툭툭 차던 전서구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올랐다. 멀어지는 비둘기의 세찬 날갯짓을 바라보며 노인은 상념에 사로잡혔다.


‘이런 식으로 계속 부려먹기만 하니 양심이 아프구나···’


전서구까지 동원해 편지를 보낸 대상은 다름 아닌 노인의 제자였다. 못난 스승이 무에 좋다고 매번 챙겨주는지, 1주일에 한 번은 와서 얼굴을 보고가는 녀석. 너무 자주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오지말라고 하자, 필요할 때마다 연락하라며 이렇게 피울 수 있는 천리향을 주었다.


필요물품을 적어 보내주어도 그 이상을 꾸역꾸역 들고 오는 놈이었기에 자주 부르지 않았다. 푸릉이를 데려오고 나서는 한 번도 제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오랜만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어차피 바로 근처에 살고 있기도 하였으니···


“푸릉?”

“하하, 한 발 눚었구나. 이미 가버렸단다.”

“푸릉 푸릉!”



푸드덕 거리는 날갯소리가 이미 저편으로 사라졌거늘, 푸릉이는 그제서야 오두막에 들어오며 눈을 반짝였다. 이미 점처럼 작아진 전서구의 모습을 손가락질하며 무언가 감상을 표하는 모습.


“푸릉, 푸릉푸릉!”

“그래 그래. 많이 신기했구나.”

“푸릉!”

“다음에 전서구를 부를 때는 잊지 않고 옆에 있게 해주마.”



길바닥에 무리지어 이동하는 개미 떼, 혹은 하늘을 수놓은 구름의 움직임과 같이 하찮은 자연의 광경에도 푸릉이는 항상 호기심을 불태웠다. 비둘기는 푸릉이의 머릿 속 도감에 꼭 넣고 싶은 미지의 생명체이리라. 노인은 푸릉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저 허허로이 웃었다.



* * *


다음날.


여름의 초입에 다다라 나뭇잎들이 생기가 넘치는 계절. 무럭무럭 자란 풀과 잡초들이 산에 무성하여 산길을 오르내리기 쉽지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늘 하던 산행을 휴식하며, 노인은 한가로운 오후에 평상에 앉아 산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런 노인의 오두막에 손님이 찾아왔다.


“스승님, 계십니까!!”

“아직 귀는 안 멀었다, 욘석아.”

“하하하! 계셨군요.”


산이 진동할 정도의 목청을 가진 사내가 등장했다. 노인과 똑같은 문양의 무복을 입은 근육질의 중년 남성. 외공을 단련했는지 척 보기에는 사파나 산적 무리처럼 험악해보였으나 그 얼굴은 순박하기 그지 없었다.


“여기 부탁하신 물품입니다!”

“슬슬 더워오는데 이런 산 꼭대기 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여기 물이라도 한 잔 마시거라.”

“아유, 스승님 만나러 오는데 고생은요. 물 감사합니다!”



노인이 내민 물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남성. 노인은 그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띤 채로, 또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공사가 다망한 제자를 한낱 짐꾼으로 부리고 있다는 죄책감이었다. 물론 그의 제자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말씀하신건 바로 구해왔는데 당최 스승님께서 어느 방면에 이것들을 사용하실지 감도 안잡힙니다. 하하하!”

“그래,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



노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내가 자신의 몸집만한 짐보따리를 오두막 앞 평상에 풀었다. 그곳에 나온 것은 남아용 무복이 크기 순으로 놓여 있었고, 천자문, 술병, 양질의 고기까지. 무언가 혼잡하고 괴이한 물품들의 조합에 절로 고개를 갸웃거릴만 하였다. 사정을 알고 있는 노인은 그저 허허 웃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내가 직접 보여주마.”

“네? 보여준다니 그게··· 어어?”

“푸릉?”


노인의 등 뒤에 숨어있던 작은 생명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고, 사내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어린아이용 물품들을 대거 요청한 것에서 설마 설마 하기는 했으나 정말로 아이를 키우고 계셨을 줄이야.


“이, 이게 웬 아이입니까?”

“으음··· 설명하자면 길다만 시간이 괜찮느냐?”

“아유, 저야 남는게 시간 아닙니까?”

“말이나 못하면··· 마침 술도 가져왔으니 술이나 한 잔 하면서 말하자꾸나.”

“좋습니다! 하하하!”



사내는 호탕하게 웃으며 곧바로 술상을 준비했다. 사내가 가져온 지방 가득한 소고기를 굽고, 시중에 파는 고급 술을 마련하니 금새 훌륭한 술자리가 완성되었다. 평상에 마주앉아 술잔을 서로 기울이며 노인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사내가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저 아이가 그렇다면 마물이란 말씀이십니까?”

“아직 모를 일이다. 저 아이에게서 마기는 느껴지지 않으니. 너도 알다시피 영물과 마물은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더냐.”

“그건 맞습니다만··· 허어.”



사내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노인의 옆에 찰딱 붙은 푸릉이를 바라보았다. 새롭게 등장한 낯선 이의 등장에 의기소침해진 푸릉이. 노인의 옷자락을 조막만한 손으로 꼬옥 쥐며 사내를 불안한 눈빛으로 올려다 보았다. 색목인처럼 푸른 눈과 푸른 머리카락을 가졌다는 점만 빼면 영락없는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도 한 번 밑의 제자들을 시켜 정보를 수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 형태로 변할 수 있는 반투명한 구체의 생물···”

“뭐 급한 것은 아니니까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이 아이와 같이 살면서 만족스러우니 말이다. 만약을 대비하여 너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노인은 그리 말하며 푸릉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고목과도 같은 주름진 손이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고, 노인의 얼굴에는 선선한 미소가 걸렸다. 제자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행복해보이시는군.’


제자는 한 달 정도 전에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때를 떠올렸다. 잎이 모두 떨어진 채로 죽음을 기다리는 나목(裸木)처럼 제자가 무엇을 말해도 무미건조하게 반응했던 노인이었다. 꺼져가는 불씨처럼 사그라드는, 하늘같은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며 제자는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그 이면에는 폭발적인 기세로 단전을 고치려 들었던 과거가 있었다. 정사대전에서 단전과 선천지기를 잃고서 미친사람처럼 치료법을 찾았던 노인. 오두막에 별채를 마련해 정양하기 전에는 중원 곳곳을 돌아다녔으니··· 명예와 위신을 중요시하는 주변의 시선이 따가운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리 문파의 드높은 위세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소!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버렸으니 이 기회에 파문을 하는 것이 어떠하오?

-차라리 집 안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정사대전의 영웅이다, 문파의 자랑이다 라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송하던 문파의 원로와 무인들. 노인의 광기어린 기행에 그들은 곧바로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었다. 노인이 쫓겨나듯 오두막에 숨어 사는 것은 그들의 입김이 어느정도 반영된 결과였다.


모두가 노인에게 등을 돌렸을 때에도 사내는 노인의 제자를 자처했다. 모두가 보지 못했으나 노인의 제자는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파를 주름잡는 마교, 그 천마신교의 우두머리이자 천외천이라고 불리는 천마를 상대로 노인이 벌인 처절한 전투를.


무인들은 단전과 선천진기를 잃어버리고 목숨을 겨우 건진 노인을 욕하였으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노인이 한편생 무인으로서 쌓아올린 모든 것을 내던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평화로운 중원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었기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제자는 그저 노인의 뒤를 묵묵히 보필할 뿐이었다.


하늘 아래 모든 이가 노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제자는 그 옆을 지켰다. 제자된 도리로서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구해준 구원자에 대한 예의로서. 사내는 노인에게 존경심을 항시 품고 있었다.


“푸릉?”

“욘석, 술은 안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음주가무를···”

“푸릉···”

“그런 표정 지어도 안되는건 안되는 것이니라.”

“푸릉······”



술병을 꼬옥 잡고 웅얼거리는 푸릉이, 그 옆에서 노인은 엄한 표정으로 푸릉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하의 천마마저 쓰러뜨린 노고수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 세상 그 누구도 이 광경을 보지 못하리라.


“어쩔 수 없구나··· 그런 딱 한 잔만 주겠느니라.”

“푸릉!”

“하하하!”


짐짓 져주며 술 한잔을 쪼그맣게 따라주는 노인. 그 모습이 과거의 자신과 스승의 모습과 겹쳐져 제자는 호탕하게 웃었다. 따사로운 햇볕과 산산히 불어오는 바람을 안주삼아 그렇게 스승과 제자는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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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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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79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1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2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9 3 12쪽
7 7. 심법 23.03.27 113 3 10쪽
» 6. 스승과 제자 23.03.24 128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49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1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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