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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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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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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6,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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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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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 지키기 위한 검술

DUMMY

어느 화창한 여름날. 푸릉이와 노인이 있는 곳은 햇볕이 내리쬐는 숲 속 어딘가였다. 울창한 나뭇잎들이 햇빛을 막아주어 그렇게 덥지는 않았으나, 푸릉이는 조심스럽게 노인의 옷자락을 잡았다. 노인은 푸릉이에게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어디가?”

“오늘은 특별한 경험을 할 생각이란다.”

“경···험?”



더 이상 품 속에 안고 다닐 수 없는 크기가 되어버린 푸릉이. 노인과 푸릉이는 나란히 산 속을 거닐었다. 경공술도 어느정도 가르쳤기에 속도는 일반적인 산행에 비해 빨랐다. 빠른 발걸음 속에서 도착한 그곳은 익숙한 장소였다. 푸릉이의 몸이 절로 바르르 떨렸다.


“여기는···”

“그래. 너를 처음 만난 장소란다.”

“으음···”


푸릉이는 두려운 시선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완연한 가을을 맞이해 여기저기 알록달록하게 색을 물들인 나뭇잎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 점을 제외하면 이전과 완전히 똑같은 장소였다. 푸릉이는 저 수풀 사이에서 멧돼지가 튀어나올까 걱정이었다.


노인의 따스한 손길이 푸릉이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옆에 있으니.”

“...응!”



푸릉이는 노인의 옷자락을 꼬옥 쥐며 마음을 추스렸다. 그 때에도 겁에 질려 발발 떨고 있던 자신을 구해준 사람. 그것이 눈 앞의 노인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푸릉이였다. 노인의 옆에 찰싹 붙은 채로 푸릉이는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오늘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멧돼지 때문이란다.”

“멧돼지? 멧돼지···”

“혼자서 검을 휘두른들 실력은 늘지 않는 법이지. 그것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응.”



푸릉이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에는 휘두르는 만큼 실력이 차곡차곡 쌓여 눈에 보이는 즐거움이 있었으나 요즈음에는 그런 것을 느끼기 어려웠다. 하루를 수련해서 얻을 수 있었던 성장의 모습이, 시간이 흐를수록 이틀, 사흘을 해도 얻기 힘들었으니.


점차 수련의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그저 재미있기에 검을 휘둘렀는데, 재미가 없어지니 검을 휘두를 이유는 없었다. 백지장이 되어버린 이유에 훈련은 더욱 지지부진하였고, 옆에 있던 노인은 그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다행인 점은 노인이 제자들을 여럿 길러낸 좋은 스승이었다는 점이었다.


의미를 잃어버린 푸릉이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노인은 푸릉이를 데리고 이곳에 돌아왔다. 처음 왔던 장소를 통해 초심을 얻는다, 라는 단순한 이치였다.


“너의 검은 그저 재미를 위한 검이 아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검이고, 그것을 위해서 남을 해치기도 하는 검이다. 그 검의 무게를 알려주려고 한다.”

“으응···”



푸릉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노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노인은 그저 웃으며 푸릉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의 말을 전부 이해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본래 어른들의 염려 섞인 이야기가 귀에 안들어올테니.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백문이불여일견이었다.


“저 앞을 보거라.”

“읏···! 메, 멧돼지···”

“그래, 멧돼지란다.”



얼마간 걸어가자 보이는 것은 바로 멧돼지였다. 푸릉이를 처음 만났던 멧돼지보다도 더욱 크기가 크고 강해보이는 멧돼지. 생명의 위기를 겪었던 푸릉이는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어깨에 올린 노인의 손이 푸릉이를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의 너는 저런 짐승보다도 훨씬 강하단다. 무공이란 자신을 지키기 위한 힘임을 깨달았으면 하는구나.”

“아, 아빠···”

“어서 가보거라. 위험해 보이면 내가 끼어들테니 큰 걱정은 하지 말고.”



노인은 엄한 표정으로 푸릉이의 등을 살포시 떠밀었다. 푸릉이는 떨리는 눈으로 노인을 뒤돌아보았으나 엄동설한과도 같은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겨우 검을 쥐고 앞을 돌아본 푸릉이의 앞에는 콧김을 내뿜는 멧돼지가 있었다.


“크으응! 킁킁···”


멧돼지의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푸릉이는 순간 등골을 타고 소름이 쫙 돋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멧돼지와의 대면은 아무리 사람으로 외형을 바꾸었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영혼, 혹은 정신에 각인되어 있는 사냥당하는 개체의 두려움.


“후우··· 후우···”


두려움을 애써 무시하며 푸릉이는 검을 고쳐쥐었다. 휘두르던 목검이 없어진 뒤로 그는 노인에게서 받은 진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무게의 차이에 곤혹을 치렀으나 점차 익숙해져서 지금은 완전히 목검처럼 휘두를 수 있는었다. 푸릉이는 긴장한 채로 검을 언제든 휘두를 수 있게 몸의 긴장을 높였다.



“크릉?”


아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멧돼지에게 다가간 푸릉이. 마침내 멧돼지가 푸릉이의 존재를 눈치채었다. 멧돼지는 몸을 일으켜 푸릉이의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이전에 만났던 흉폭한 개체와는 느낌이 달랐다. 명확히 자신을 경계하고 상황을 살피려는 영악한 움직임. 덕분에 푸릉이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노련한 사냥꾼인 멧돼지의 전략이었다.



푸릉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던 찰나의 시간, 멧돼지는 그 틈새를 노려 순식간에 돌격했다. 어떠한 전조도 없는 동물적인 기습에 푸릉이는 당황했다. 그러나 당황한 정신과는 별개로 푸릉이의 육체는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움직였다. 몇백 몇천번 휘둘러졌던 ‘내려치기’가 푸릉이의 손에서 펼쳐졌다.


쐐액!



“꽤액!”

“어라···”



눈을 질끈 감고 휘둘러버린 검격. 아무렇게나 휘두른 검격인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육합의 묘리가 담겨 있었고, 심법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강화된 검격에 멧돼지는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멧돼지의 거칠고 어두운 등가죽이 검붉게 물들었다. 물론 이것이 치명타가 되지는 않았지만 비틀거리며 물러난 것이 꽤나 충격을 먹은 듯 보였다.


푸릉이는 자신의 검을 고쳐쥐며 호흡을 정돈했다. 목검의 끝이 파르르 떨리고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힐긋 쳐다본 뒤편에서는 노인이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푸릉이는 노인의 눈빛에서 기대감을 읽었다.


그리고 푸릉이는


“하, 하아아앗!!”



공격 성공으로 자신감이 조금이나마 붙은 푸릉이. 그는 경쾌한 발놀림과 함께 먼저 공격을 나섰다. 멧돼지는 거대한 체구에 맞지 않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그 공격을 피해냈다. 한 번 공격하고 나서 푸릉이의 무력을 확인했다는 듯이 이전보다도 더욱 수비적인 움직임이었다.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푸릉이의 마음 속에 그러한 가정이 전신에 스며들었다. 1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른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멧돼지와 눈을 마주한다. 그 시선은 자신의 시선보다도 낮았다. 원래의 동그란 몸이었다면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였던 멧돼지가, 자신을 분명히 경계하고 있었다.


동그란 구체가 아닌 사람의 신체를 얻었다. 좋은 밥을 먹고 자랐다.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전한 보금자리를 얻었다. 가르침을 얻었다. 그 가르침을 갈고 닦아 충분한 힘을 길렀다. 그리고··· 지금도 뒤에서 지켜봐주고 있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믿어주는 이가 있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기에 푸릉이는 검에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킁킁···”



멧돼지는 코를 씰룩이며 푸릉이의 주변을 차분히 돌았다. 푸릉이 역시 검법의 기본 자세를 취한채로 멧돼지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몸을 계속 틀었다. 서로의 숨소리와 발에 채이는 나뭇잎 소리만이 감도는 적막한 산속. 그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멧돼지와 푸릉이는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꽤애애액!”

“흐아앗!”



무의식적으로 이 공격이 서로의 마지막이 될 것을 알았다. 멧돼지는 땅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한 도약력으로 푸릉이에게 이빨을 드러냈고, 푸릉이 역시 전신의 내공을 그러모아 검에 응축시켰다.


마침내 뛰어오른 멧돼지의 둔탁한 엄니가 푸릉이의 여린 어깨에 닿기 직전. 그보다도 먼저 푸릉이의 예리한 검날이 멧돼지의 입 안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근육과 지방이 갈라지는 살벌한 소음이 이어지고, 이윽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멧돼지의 육신이 바닥에 진동했다.


“꾸에···엑···”

“헉··· 허억······”



도약은 그대로 멧돼지의 자충수가 되어 검날을 더욱 파고들게 만들었고, 멧돼지의 무게는 검에 그대로 실려 녀석의 살결을 자비없이 갈라냈던 것. 내공으로 미약하게나마 둘러댄 푸릉이의 검은 마치 버섯을 자르는 것처럼 부드럽게도 멧돼지를 양단했다. 검격이 끝난 자세 그대로 서있는 푸릉이 아래에는 입부터 꼬리까지 절반으로 갈라진 멧돼지가 사후경직으로 꿈틀거렸다.


푸릉이는 그제서야 남은 숨을 토해냈다. 정말로··· 정말로 자신이 이겨낸 것이었다.


“장하구나, 푸릉아.”

“으응··· 무, 무서웠어···”

“옳지. 수고했다.”


피분수를 정통으로 맞아 피로 얼룩진 푸릉이. 노인은 그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가가 푸릉이를 안아주었다. 전투의 희열과 멧돼지를 향한 두려움이 뒤섞여 푸릉이의 몸은 덜덜 떨렸으나 노인의 품에서 금방 사그라들었다.


왜소하고 딱딱하지만 그 어떤 보금자리보다 따스한 노인의 품 속. 푸릉이는 그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정말로 해냈다. 멧돼지를 만나면 꼼짝없이 머릿 속으로 죽음을 바라보았던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일격에 멧돼지를 잡을 수 있는 강한 존재가 되었다. 그 사실이 푸릉이는 기꺼웠다.


또한, 노인이 말한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른다’라는 개념을 인지했다. 푸릉이는 노인의 품속이 어느새 작아졌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커진 것이었으나 노인도 근육이 점점 빠지고 체중이 줄고 있었으니···


푸릉이에게 노인은 어떤 존재인가. 먹을 것을 찾아 기어다니던 도중 만나버린 멧돼지. 그 앞에서 몸을 움츠리기밖에 할 수 없었던 자신을 지켜주었던 것은 바로 눈 앞의 노인이었다. 노인의 밑에서 먹을 것, 잘 곳, 입을 것 등을 제공받았고 심지어 강해지는 방법까지 배웠으니.


푸릉이는 노인의 등에 팔을 둘러 강하게 끌어안았다. 푸릉이는 어렸지만 멍청하지 않았다. 눈 앞의 노인이 생명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자신이 있음으로써 노인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기에 푸릉이는 마음을 새로 고쳐먹었다.


‘지키기 위한 검술···’


멧돼지에 맞서기 전 노인이 했던 말이 화두가 되어 푸릉이의 마음에 안착했다. 검술에 흥미가 떨어져가던 푸릉이에게 새롭게 주어진 사명이자 목표. 그것은 노인을 지키기 위한 검을 연마하겠다는 것이었고···


“검술 열심히 할게!”

“허허허··· 좋은 생각이구나. 일단 멧돼지의 핏물을 빼서 가져가자꾸나. 오랜만에 고기를 먹어야지.”

“꼬기!”



푸릉이는 노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노인은 갈라진 멧돼지의 절반을 한 손으로 들었고, 푸릉이는 그 옆에서 나머지 반쪽을 낑낑거리며 끌고갔다. 나란히 옆을 걸어가는 푸릉이와 노인이 얼굴에는 웃음꽃이 떠나가지 않았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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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80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2 5 12쪽
»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3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9 3 12쪽
7 7. 심법 23.03.27 114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8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50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1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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