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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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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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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4.0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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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DUMMY

산의 겨울은 사무치게 춥다. 특히 바람을 막아줄 나무도 없는 산의 정상 부근은 더더욱.


“하부지, 죽드세요.”

“고맙구나.”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노인. 푸릉이는 그 옆에서 숟가락으로 죽을퍼 후후 불어주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숟가락을 노인의 입에 넣은 푸릉이. 다행히도 노인은 푸릉이가 먹여주는 죽을 열심히 먹었다.


“하부지, 갠차나?”

“그래 괜찮단다. 푸릉이가 만들어준 죽을 먹으니 더더욱···”

“웅, 그럼 다행.”


푸릉이는 환하게 웃으며 빈 죽그릇을 들고 부엌을 나섰다. 부엌에서 받아놓은 차가운 물로 그릇을 씻고 헝겊으로 박박 닦아대는 모습. 근 며칠 사이에 집안일을 거의 도맡아하는 푸릉이의 손길은 억센 주부와도 같았다.


‘밥은 먹었고··· 앗, 아궁이에 장작이.’


오두막을 뜨끈하게 뎁혀줄 아궁이의 불길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푸릉이는 급하게 미리 패다놓은 장작을 넣으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장작은 얼마 없었고. 푸릉이는 급한대로 산을 내려가 나무를 팼다. 아니, 팼다기에는 베었다고 표현하는게 맞으리라.


쐐애액—!


내공을 가득 담은 검격이 일격에 나무 밑동을 잘라내었다. 15세 정도 외형을 가진 푸릉이가 나무를 안았을 때 손과 손이 맞닿지 않을 만큼의 두꺼운 나무였음에도. 노인에게서 물려받은 푸릉이의 검은 마치 껍질을 둘러싼 것처럼 푸르게 빛났다.


미약한 검기가 아닌 완전한 검기의 형상, 그것은 푸릉이가 절정의 경지에 올랐음을 시사했다.


“히얏!”



푸릉이는 기합성과 함께 잘린 나무를 여러 개의 통나무로 등분하여 오두막에 가져갔다. 부엌에 있는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패고, 몇 개를 아궁이에 넣어주자 금방 불길이 살아났다. 푸릉이는 이마를 훔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작도 준비되었고, 밥은 아까 먹었고, 식량도 아직 많이 남았구··· 그 다음에는···’


푸릉이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더 생각했다가는 머리가 지끈거렸으니까. 그러면서 동시에 노인의 생각이 간절했다.


‘하부지는 어떻게 지금까지 이걸 혼자 다 한거지.’


항상 고목같이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모든 것을 도맡아 했던 노인이었다. 빨래, 식사 준비, 장작 관리, 청소, 환기, 식량 관리 등등··· 고려해야할 수많은 요소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척척 해내었던 노인의 듬직하고 널따란 등이 생각났다. 이렇게 무력한 자신을 마주보고 있노라면.


“하부지!”

“그래, 추운데 고생했다. 이리 오너라.”

“웅!”



노인이 이불을 조금 열어주었고 푸릉이는 곧바로 노인의 곁에 찰싹 붙어 누웠다. 겨울의 초입이라고는 해도 밖이 무척 추웠기에 푸릉이의 귀와 코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노인은 손으로 코와 귀를 어루만져주었고, 푸릉이는 금방 따스함을 느꼈다. 가슴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따스한 감정이었다.


“하부지, 오늘은 내가 안마해주께!”

“허허, 안마라. 부탁하마.”

“웅!”



잠시 몸을 녹이던 푸릉이는 곧바로 일어났다. 이대로 더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긴 하였으나 천금같은 쉬는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는 법. 등을 보인 채 앉아있는 노인의 어깨를 푸릉이는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딱딱해··· 그리고 얇아.’


푸릉이는 마음 속으로 감상을 삼켰다. 크고 듬직해보였던 노인의 등은 실제로 만져보니 근육이 적어 뼈가 그대로 드러나는 듯 했다. 팔다리는 근육은 커녕 거죽과 뼈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푸릉이는 그런 감상을 숨겼다.


“하부지, 시원해?”

“허허, 그래 시원하구나. 통 움직이질 못하니 뻐근했는데 아주 시원해.”

“다행이다··· 히히.”


푸릉이는 내색하지 않고 어깨와 등, 팔, 다리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노인을 안마했다. 조막만한 손으로 이곳저곳 주무르고, 때로는 주먹을 쥔 채 통통 두들기기도 하였으며, 노인의 부탁대로 등을 조심스레 체중을 실어 밟기도 하였다.


“하부지 이게 진짜 시원해?”

“그래그래, 아주 시원하구나.”

“...그렇다면 다행이구.”


멀쩡한 등을 왜 밟아달라는 것인지 의문이었지만 푸릉이는 말 없이 노인의 등을 밟았다. 자신이 항상 바라봤고, 또 듬직하게 생각했던 노인의 등은 푸릉이의 발 아래에서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푸릉이는 노인의 등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이제는 내가 하부지를 지켜줘야 해··· 내가 하부지의 등을 바라봤던 것처럼.’


안마가 이어지면서 푸릉이는 생각을 고쳤다. 노인이 힘이 빠진 것에 실망감도 있었으나, 그것은 이내 지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바뀌었다. 노인이 자신을 길러주었고 또 지켜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이 노인을 지켜줘야 한다는 다짐. 푸릉이는 홀로 생각을 다듬었다.



* * *



겨울이 찾아오고 어느 날, 푸릉이는 여느 때와 같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눈이 바닥을 뒤덮고 푸릉이의 파란 머리카락 위에도 살포시 쌓일 정도의 추운 겨울날. 노인은 조심스레 오두막의 문을 열어 푸릉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푸릉아··· 그만하고 이리 오너라.”

“하부지, 추우니까 문 닫어!”

“그치만 할 것도 없지 않느냐. 허허.”

“얼릉!”

“···알았다.”



노인은 푸릉이의 검술을 지켜보고 싶은 눈치였으나, 밖이 찬 까닭에 푸릉이는 오두막의 문을 닫았다. 보고 싶은 것을 못 보게 하는 것에 죄책감도 일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노인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으니.


‘내가 더 강해져야 해··· 좀 더···’


푸릉이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절정의 경지에 이르기는 했으나 사실상 일류나 다름없는 초입에 불과했고, 검기 또한 불안정했다. 푸릉이의 불안한 마음을 대변하듯 검기는 일렁거렸고, 푸릉이의 마음대로 조절될 수 없었으니··· 푸릉이는 더욱 조급했다.


‘이익··· 왜 안되는 거야.’


무엇을 배우든 으레 그러하듯이,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던 푸릉이의 성장에는 제동이 걸렸다. 벤 만큼 착실하게 쌓이던 검술의 경지도, 호흡하고 운기하는 것에 따라 눈에 보이게 쌓이던 내공도 이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좀 더, 좀 더 강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음에도.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누, 누구냐!”


뽀득거리는 정체불명의 발자국 소리. 눈이 내려 고요한 산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고, 푸릉이는 칼을 겨눈 채 긴장을 끌어올렸다. 눈에 가려 안보이던 괴한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하부지···’


노인과 비슷해 보이는 연배. 특이한 점이 있다면 짐승의 털로 만들어진 옷을 입어 방한 처리를 단단히 하였고, 그럼에도 툭 튀어나온 코가 새빨갛게 물들어 마치 술에 거나하게 취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옆구리에 거대한 술병이 걸려있는 것을 보니 술에 취한 것은 맞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푸릉이는 다가오는 괴한의 허리춤에 칼이 걸쳐 있는 것을 확인했다.


“더 이상 다가오지마세요!”

“으잉? 이건 누구여··· 딸꾹, 처음 보는 얼굴인디.”



마침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그제서야 괴한은 푸릉이를 바라보았다. 술에 취한듯 비틀거리던 걸음걸이로 봤을 때 단순한 주정뱅이로 볼 수도 있었지만 푸릉이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푸릉이가 그러거나 말거나 괴한은 턱을 문지르며 푸릉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흐음··· 머리카락과 눈색이 기이한 것을 보아하니, 딸꾹! 색목인인가 싶은데··· 별 이상한 놈이 다있구만.”

“하부지는 누구··· 세요?”

“나? 크하핫! 나를 모르는 구만, 그래 나도 이제 유명세가 없기두 하지.”



괴한은 웃긴 이야기라도 들었다는 듯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아무런 위기감도 긴장감도 없어 보이는 괴한의 모습에 푸릉이는 순간적으로 정말 자신의 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단 말이지···”

“네.”

“흐음, 글쎄다. 일단 한 가지는 말해주마.”


직후 노인의 기세가 일변했다.


“그 검을 들고 있는 이상 너와 나는 적이라는 것을.”

“그건··· 읏!”



멀리 떨어져 있던 괴한이 순식간의 거리를 줄여왔다. 푸릉이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으나 괴한의 검격에 금새 나가떨어졌다.


“흠, 절정 초입인가··· 딸꾹, 이런 애송이한테 죽을 정도로 나약한 녀석은 아닌데 말이지···”

“아니 하부지는 살아있···”

“뭐, 단전도 잃었으니 별 수 없나.”

“저기요!”



아무래도 노인의 친구인 것 같은데 말을 전혀 들어주질 않았다. 푸릉이는 답답했으나 괴한은 단호했다. 무차별적으로 날려대는 검격에 겨우겨우 받아치는 것이 최선이었다.


“호오, 그래도 꽤나 움직임이 좋군 그래.”

“으으···”

“그럼 이건 어떨까?”

“!”



푸릉이와 괴한의 싸움은 길게 이어졌다. 얼핏 보면 비등비등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달랐다. 푸릉이는 괴한의 공격 하나하나 받아내기 급급했다. 비틀거리는 보법과 그에 맞추어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검술은 이제껏 푸릉이가 전혀 상대해본 적이 없는 검술이었다.


“허억··· 허억···”

“호오, 따라오는구만. 괴물같은 놈.”


푸릉이는 내공을 쥐어짜 괴한을 공격을 막아내었고 점차 괴한의 공격에도 익숙해졌다. 괴한의 몸짓, 손짓, 눈짓, 발짓 모든 것에 집중하여 공격을 막아내고 있자 점점 승기가 보였다. 변칙성에 적응한 순간 승부는 끝이었으니까.


“장난은 여기까지다. 애송이, 딸꾹.”

“윽···!”



평범한 공격을 주고받던 중 푸릉이는 갑작스레 실린 무거운 검격에 뒤로 나가떨어졌다. 곧바로 자세를 잡았으나 푸릉이의 머릿 속은 어지러웠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그제서야 푸릉이의 눈에 괴한의 검이 들어왔다.


검은 기운과 하얀 기운이 조화를 이루며 둥글게 검을 감싸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경지이자, 노인에게서 들었던 그것.


‘검강···!’


푸릉이는 이를 악물었다. 절정에 이르러 겨우 검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는데 검강이라니. 검기와 검강의 싸움은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기 때문에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 평범한 결투라면.


“으아아···!”

“이걸 보고도 달려들다니··· 크하핫! 재미있구나!”



괴한은 호탕하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검강이 일렁이는 검격이 우상단에서 비스듬히 내려왔다. 그대로 검을 맞대면 검이 잘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그렇기에 푸릉이는 검을 맞대지 않았다.


“뭣이!”



괴한이 기함하였으나 푸릉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몸을 비틀어 최대한 장기나 급소를 피한 것이었다. 대신 푸릉이의 왼어깨가 검의 사정거리에 있었다.


푸슉—


끔찍한 소리와 함께 푸릉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연유인지 괴한이 힘을 줄였기에 완전히 잘리지는 않았으나 왼팔이 덜렁거렸다. 그 말은 죽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히얏!”



짧은 기합성과 함께 오른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도 몇 번이고 연습했던 탓에 어렵지는 않았다. 곧바로 온몸의 내공을 검에 실어 강력한 검기를 만들어낸 푸릉이. 그의 검이 정확히 상대의 가슴팍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뿐.


‘···검로가!’


푸릉이가 펼친 회심의 일격은 먹히지 않았다. 곧바로 검을 내려놓은 괴한이 손으로 검로를 비틀어버린 것이었다. 물이 흐르는 듯 유한 움직임으로 푸릉이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직후 날아온 장법에 푸릉이의 신형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커헉!”



평상 위에서 날아간 푸릉이는 오두막 벽에 몸을 부딪쳤다. 순간적으로 폐의 모든 공기가 쥐어짜내지듯 밖으로 토해내졌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푸릉이는 검을 놓지 않았다.


“안···돼···”

“허어, 저 나이에 어찌 저리 독할꼬···”



푸릉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팔에 감각은 없고 무언가 피와 같은 것이 흘러 무복을 적셨으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바닥에 쓰러지듯 눕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푸릉이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부지는··· 내가··· 지켜···”

“.........”



오두막 문 앞에 선 푸릉이, 한쪽 밖에 남지 않은 팔로 괴한에게 검을 겨눴다. 검을 잡은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이미 내공은 대부분 소모해버렸으나 상관 없었다. 자신은 이곳을 지켜야 했으니까.


그렇기에 푸릉이는 뒤를 보일 수 없었다. 눈보라가 푸릉이와 괴한의 사이에 몰아치며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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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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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4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79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1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2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8 3 12쪽
7 7. 심법 23.03.27 113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7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1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4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49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1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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