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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80
추천수 :
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3.2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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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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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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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7. 심법

DUMMY

제자가 떠나고 또 며칠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이 되었다. 그동안 노인은 푸릉이를 위해 구해온 물건들로 삶의 질을 높였다. 푸릉이를 위한 옷, 음식, 공부용 서적 등등. 푸릉이는 그 많은 것들을 체화하는 시간을 가졌고 어느덧 뜨문뜨문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빨래!”

“그래. 빨래를 하자꾸나.”

“쪼아!”



빨래를 하자는 노인의 말에 푸릉이는 우다다 달려가서 이불을 들었다. 노인과 푸릉이가 같이 덮는 낡은 이불이었다. 푸릉이가 몸 안에 넣어 세탁하기에 너무도 크기 때문에 이불은 샘물에서 세탁을 해야만 했다. 푸릉이는 낑낑거리며 자신의 몸만한 이불을 들고 비틀거리며 노인에게 다가왔다.


“허허, 그렇게 하면 앞이 안 보이지 않느냐.”

“푸릉···”

“품속에 들어오거라. 샘물로 가야하니.”

“응!”



푸릉이는 폴짝 뛰어 노인의 무복 안을 파고들었다. 이전에 비해 몸집이 많이 커지긴 하였으나 간신히 몸을 욱여넣어서 옷 안에 쏘옥 들어가는 녀석이었다. 노인은 겨울이불과 여름이불을 동시에 들고 경공을 펼쳐 산 속 깊은 곳의 시냇물을 향했다.


“물! 물!”

“욘석, 놀러 온 것이 아니거늘···”

“짜가워!”


물가에 오기가 무섭게 푸릉이는 품 속에서 뛰쳐나와 물 속으로 들어갔다. 해맑은 미소와 함께 참방거리며 물장구치는 모습에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행동을 바라보는 것만큼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이 없었다.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푸릉!”

“네, 라고 해야지?”

“느에!”



푸릉이는 노인의 발치에 서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아직 ‘푸릉’이라고 대답하는 일이 잦았으나 며칠 사이에 글자를 많이 외우고 사용하는 녀석이었다. 영물이라 그런 것인지 영특한 아이라서 그런 것인지 노인은 알지 못했으나 신경쓰지 않기로 하였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넓직한 돌판에 옷을 펼쳐놓고 이불을 세탁하는 노인은 그저 웃었다. 평소라면 움직이기 귀찮아 때가 꼬질꼬질하게 올라오고 나서야 비로소 빨래를 하러 왔을 텐데. 푸릉이가 같이 쓴다고 생각하니 조금의 더러움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노인의 삶은 분명히 푸릉이를 만나고 나서 바뀌었다. 그것은 식구가 한 명 더 늘어난 것 이상의 노동을 노인이 감내해야함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노인의 얼굴은 더욱 생기가 넘쳤다. 노인이 푸릉이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하는 만큼, 푸릉이는 노인에게 삶의 즐거움을 주었기에.


“후우··· 이정도면 되었나.”


노인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훑으며 흡족한 얼굴로 이불을 내려다 보았다. 혼신의 방망이질로 먼지 한 올 없이 깨끗해진 이불. 남아있는 물기를 어느정도 쥐어짜낸 뒤에 비로소 노인의 시선이 푸릉이를 찾았다. 푸릉이의 모습을 본 노인은 속으로 기함할 수 밖에 없었다.


‘내공을 사용하고 있다니?’


푸릉이는 눈을 감고 빵실한 볼살을 바르르 떨며 집중하고 있었다. 물 속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은 언뜻 보면 어린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귀여운 기행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기감이 예민한 노인의 눈에는 분명한 기의 흐름이 보였다.


푸릉이의 가슴팍 부근에서 푸른 빛이 일렁거렸다. 필시 정중앙에 있던 자그마한 보석 같은 것에서 내공을 돌리고 있는 것이리라. 노인의 기감에는 위협적으로 소용돌이치는 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윽고 졸졸 흐르던 물살에 소용돌이가 일어날 무렵.


“진정하거라!”

“푸릉?”


쏜살같이 푸릉이에게 다가간 노인이 내공을 모두 흩어버렸다. 푸릉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천진난만하게 노인을 올려다보았으나, 노인은 심장이 철렁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자꾸만 입에 온갖 것들을 집어넣는 신생아 아이들처럼 자꾸만 내공을 움직이는 걸까.


“안되겠구나··· 이대로라면 위험하겠어. 그러니 너에게 가르침을 주겠다.”

“가···루찜?”

“그래, 가르침이란다. 기의 흐름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가르침이지.”



노인은 푸릉이를 물 밖으로 데려왔다. 과연 지학(志學)의 나이도 되지 않아보이는 푸릉이에게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맞는가 고민이 많았던 노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꾸만 아무런 경각심 없이 기를 움직이려는 푸릉이의 모습에 노인은 결심을 굳혔다.


“지금부터 너에게 심법을 가르쳐주겠다.”

“심뻡!”

“그래, 심법이란다. 쉽게 말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지. 가부좌를 틀어보겠느냐?”

“웅!”

“···가부좌 먼저 알려줘야겠구나.”



노인은 어찌저찌 너른 돌판 위에 푸릉이를 앉혔다. 자그마한 어깨에 두 손을 올린 노인은 두 눈을 감았다. 지금부터 할 심법의 가르침은 단전이 부서진 그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기에.


“호흡에 집중하거라. 나의 말에 따라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우···”



노인의 말을 고분고분 들으며 푸릉이는 호흡을 안정시켰다. 노인은 곧바로 푸릉이의 몸에 미약하게나마 내공을 불어넣었다.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으나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참아낸 노인. 노인의 내공이 부드러이 푸릉이의 몸에 녹아들어 마침내 그 안의 보석에 닿았다.


‘혈로가 없구나··· 흐음 이를 어찌할꼬.’


본디 심법의 가르침이란 호법을 서는 스승의 인도에 발맞추어 대주천의 혈로를 기억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정해진 혈로를 따라 내공을 순환시키고 호흡을 통해 공기 중의 기운을 단전에 토납하는 것이 핵심. 문제는 푸릉이의 몸 자체에는 혈로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혈로가 얼추 구현은 되어 있으나 인간과 다르게 유동적으로 계속 움직이고 바뀌어 산만하였다. 사람이 숨을 쉴 때마다 가슴과 배가 오르내리듯, 푸릉이의 몸은 피와 살, 뼈 모두가 끊임없이 변화하며 푸릉이의 모습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일단은 대주천을 시켜보겠다. 순서를 잘 기억해두어라.”



혈로가 비정상적이지만 노인은 도박수를 던져보기로 하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더라도 막겠다는 각오. 자신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내공을 순환시키다가 객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행운에 기대어 푸릉이의 가르침을 증진시키는 것이 나으리라.


“푸···릉!”


노인이 조심스럽게 보석 근처에 모인 기운을 움직이자, 푸릉이의 여린 목덜미가 바르르 떨렸다. 어린아이를 어루만지듯 느릿한 속도로 내공을 순환하는 움직임. 다행히도 푸릉이의 혈로가 노인이 가려는 방향마다 열려있어 혈로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노인의 무복에도 땀이 알알이 모습을 드러낼 무렵, 마침내 몇 차례에 걸친 심법의 전수가 완료되었다.


“후우··· 고생많았구나.”

“푸릉···”


푸릉이는 흐물흐물거리며 노인의 푸근한 품에 기대어 숨을 색색 몰아쉬었다. 아무리 정파의 명문세가라고 한들 지학이 되지 못한 나이에 가문의 심법을 가르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푸릉이 또래의 아이들 중에서는 단 한 명도 없으리라 다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노인이 심법의 전수를 단행했던 것은 뛰어난 푸릉이의 내공 운용에 있었다.


‘방법을 모른다면 어린아이의 몸에 칼을 쥐어주는 것과 마찬가지··· 그래도 잘 되어서 다행이군.’


영산에서 잘 먹고 잘 커서 그런지 푸릉이의 몸 안에는 이미 10년 정도 정양해야지 쌓일 만한 내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점점 몸집이 부풀어오는 내공과는 달리 푸릉이의 정신은 어린아이에 그쳐있었으니. 한눈을 팔면 내공을 운용하는 통에 여간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노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푸릉!”

“허허, 그래 잘 하는구나. 그 순서를 절대 잊지 않도록 하거라.”

“느에!”



기운을 회복한 푸릉이는 씩씩한 얼굴로 단전호흡을 통해 심법을 운용했다. 혈로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내공. 또 다시 마구잡이로 내공의 소용돌이가 일지 않을까, 혈로가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했던 노인이었지만··· 그런 노인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푸릉이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이제 가자꾸나. 이불을 챙겨보거라.”

“푸릉!”

“호오.”



푸릉이의 몸놀림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라면 아장아장 비틀비틀 보는 사람이 위험할 정도로 걸어다녔던 반면, 심법을 계속 운용하는 탓에 더욱 몸에 힘이 실리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노인은 푸릉이의 타고난 적응력과 응용력에 순순히 감탄했다.


‘아무리 사람이 아니라 영물이라고는 해도 심법을 빠르게 배우는 것이 아닌가?’


인간 아이의 겉모습이라고는 해도 속은 기이한 영물. 그러나 푸릉이는 글자나 심법과도 같은 인간의 가르침을 받는 족족 흡수하는 것이 인간으로 따지면 천재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노인의 삶에서 푸릉이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심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없어도 걱정은 없겠구나.”

“누에?”

“하하, 아니다. 어서 돌아가자꾸나. 출출하니 밥이나 먹어야 겠어. 제자놈이 가져온 고기가 맛이 꽤 좋지?”

“꼬기!”


푸릉이는 신났는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이불을 들고왔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불을 들고서 위태로이 비틀거렸는데, 굳건히 두 다리로 선 것이 꽤나 의젓해보였다. 노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불 째로 푸릉이를 안아들었다.


“자, 가자꾸나.”

“꼬기! 꼬기!”

“그래 그래, 맛있는 고기를 양껏 먹을 수 있느니라. 그러니 꽉 잡고 있거라.”

“웅!”



노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금 오두막에 향했다. 푸릉이를 품에 안으며 그 안에서 이뤄지는 심법이 고스란히 심장의 박동처럼 쿵쿵 노인을 때렸다. 그 기분좋은 박동에 노인은 속으로 미소지었다.


‘심법을 이리 잘 소화해내니 후에 가르칠 무공들도··· 어쩌면 새로이 중원에 나서 꽃을 피울 재목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노인은 알고 있었다. 이미 선천지기를 저버린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이미 꽃과 잎을 다 잃어버리고 부끄러운 가지만 남아버린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자그마한 새싹을 피워내는 일이리라. 적어도 노인은 그렇게 다짐했다.


작가의말

주말동안 휴식했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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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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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80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2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2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9 3 12쪽
» 7. 심법 23.03.27 114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8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49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1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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