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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79
추천수 :
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4.06 14:54
조회
81
추천
5
글자
12쪽

11. 겨울의 초입

DUMMY

단풍이 산을 물들이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게 치솟았다. 노인과 푸릉이가 지내는 오두막에도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는 거야?”

“허허, 그건 도착했을 때의 즐거움으로 남기자꾸나.”



한동안 때아닌 멧돼지 요리를 즐기던 어느 날, 노인은 푸릉이를 데리고 또 다시 산행을 나섰다. 지금까지는 산 정상에서 중턱 부근까지를 경계로 멀리 내려가지 않았던 노인이었으나, 이번에는 등산로가 보일 정도의 산기슭까지 하산하게 되었는데···


“이상해.”

“조금만 참거라.”



노인이 앞장서서 걸었지만 푸릉이의 표정은 의아함만 가득했다. 수풀이 우거진 곳은 물론이요, 둘이서 간신히 지나갈만한 좁은 길을 지나거나 폭포 위를 올라가는 등 꽤나 거친 산행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경공술도 출중하였기에 푸릉이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왠만한 심마니도 힘들어할 만한 길이 이어진 끝에 노인은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 보거라.”

“우와아··· 열매다!”



그것은 신비한 장소였다. 주변이 돌산으로 감싸진 것에 비해 너무도 평평한 자그마한 곳. 절 하나 세울 수 있을까 싶은 장소에는 햇빛이 따사롭게 비추고 있었고, 그 위에 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자라나 있었다.


“과일이다!”

“잘 자랐구나. 수확을 해보자꾸나.”

“응!”



푸릉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바구니를 들고 뛰어갔다. 처음에는 왜 이런 커다란 바구니를 가져가야 하냐고 궁시렁거렸던 것에 비해 푸릉이는 너무도 행복해보였다. 노인은 뒷짐을 진 채로 허허롭게 웃으며 푸릉이를 뒤쫓았다.


“마시써!”

“누가 안 뺏어가니 천천히 먹거라.”

“웅!”



나무에 열린 것은 각양각색이었다. 사과, 포도, 잣 등등 원래라면 한 곳에 자라기 힘든 작물들도 한데 뒤섞여 풍작을 이루고 있었으니. 푸릉이는 여러가지 과일을 맛보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글자인지 그림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그려진 낡은 종이였다.


“하부지! 이상한게 있어!”

“그건 부적이니라. 이곳에 풍년을 들게 하고, 또 낯선 이의 침입을 막아주는 진법이지.”

“진···뻡?”


노인은 웃으며 푸릉이의 손에서 부적을 가져갔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심하게 탔지만 아직 진법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진법을 전문으로 하는 제갈세가의 꼬맹이에게서 받은 것인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지 몇 년이 가도 진법이 상하는 일이 없었다.


“혹여 고장나면 안되니 조심하거라.”

“네에~”

“너무 먹지만 말고 바구니에 담기도 하고.”

“네에~”

“욘석.”



노인은 관심도 없는지 연신 손을 바쁘게 움직이는 푸릉이. 열심히 이 나무 저 나무를 쏘다니며 과일을 입에 넣는 모습이 다람쥐와 같았다. 볼살이 삐져나올 정도로 한가득 집어넣은 과일이 참으로 복스러웠다.


“쿨럭··· 크흠.”



감상에 젖기도 잠시 뒤에 빠져있던 노인이 옷소매에 기침을 하였다. 늙으면 으레 하고는 하는 평범한 기침처럼 보였으나 그 속내는 달랐다. 노인은 푸릉이가 보지 못하게 옷소매를 몰래 닦았다.


깨끗하게 닦지 못한 옷소매에는 붉은 기가 살짝 남아 있엇다.



* * *



“맛있는거 엄~~청 많았다!”

“그래, 다음에 또 오자꾸나. 오늘 다 수확할 수는 없을테니.”

“웅!”



노인과 푸릉이는 서로 바구니 한 가득 과일을 들고 산행을 나섰다. 푸릉이는 자기 상체만한 무게의 과일바구니를 들고도 힘든 기색 없이 산을 올랐다. 마침내 도착한 오두막에서 푸릉이는 평상에 대자로 뻗었다.


“우아··· 힘들다!”

“너도 힘든게 있기는 하구나.”

“응! 가슴이 두근두근해.”



산행이 꽤나 고되었던 탓에 내공을 많이 쓰고 말았는지, 푸릉이는 평상에 가만히 누워 눈을 감았다. 노인은 조용히 푸릉이가 놔둔 과일바구니를 가져갔다. 중구난방으로 담았기에 부엌에 정리할 공간이 필요했다. 노인은 푸릉이가 가져온 과일을 정리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전부다 한 입씩 먹은 흔적이 있다니··· 이게 대체.’


노인의 고운 눈썹이 조금 휘어졌다. 푸릉이가 따온 과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그맣게라도 깨문 흔적이 보였다. 이렇게 겉에 상처가 나면 과일을 오래 보관할 수는 없었다. 겨울이 되면 먹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과일은 소중한 식량이 될텐데···


“푸릉아 잠시 이리 와보거라.”

“네에~”



노인은 생각 끝에 푸릉이에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좋게 잘 타이르면 말을 안 듣는 아이도 아니니까. 푸릉이는 노인의 부름에 곧바로 몸을 일으켜 쪼르르 다가왔다. 노인은 푸릉이가 잘 볼 수 있도록 과일을 들이밀었다.


“여기 자그마한 이빨 자국이 있는데 혹시 네가 한 것이냐?”

“웅!”

“···혹시 왜 그랬는지 알 수 있느냐?”



너무나도 당당한 반응에 노인은 주춤했다. 푸릉이는 노인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품속을 뒤졌다. 품 안에서 나온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과일이지 않느냐?”

“웅! 이게 제일 맛있어서 하부지 줄려고 가져왔어!”

“이게 제일 맛있다니 그걸 어떻게 알 수··· 아.”



푸릉이가 따온 모든 과일에 있던 조그마한 이빨자국. 그리고 푸릉이가 웃으며 내민 과일에도 당연히 크고 작은 이빨자국이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가장 맛있는걸 주려고 하나씩 맛본 것이었구나.”

“웅··· 시러?”



노인이 바로 기뻐하지 않자 푸릉이는 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 불안해하며 올려다보는 푸릉이. 노인은 말없이 그의 머리카락을 헝클어주었다.


“고맙다 푸릉아. 다만 깨물어버리면 오래 보관할 수 없으니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거라.”

“아, 웅! 미안··· 깨무러서.”

“괜찮단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



노인은 푸릉이가 건넨 과일 하나를 입에 물었다. 아삭 하고 퍼지는 기분 좋은 사과의 울림. 노인은 말 없이 한 입 더 과육을 베어물며 생각했다.


‘정말 가장 맛있는 과일이구나.’



노인은 말없이 사과를 음미했고, 다른 한 손으로는 푸릉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푸릉이는 그 손길이 기쁘다는 듯이 노인의 곁에 달라붙었다. 가을바람에 단풍잎이 흩날리며 푸릉이의 머리에 살포시 올라왔다.


노인은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심장을 옥죄었다. 좀 더 자신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더 성장해나가는 푸릉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쿨럭···!”

“하부지?”


노인의 손에서 사과가 힘없이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기침에 노인은 급히 옷소매로 입가를 가려보려 했으나··· 이미 떠나버린 분비물은 푸릉이의 얼굴에 후두둑 떨어졌다. 푸릉이는 눈을 한 차례 깜빡이더니 자신의 얼굴을 닦았다.


“피···?”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하부지? 하부지!”



노인의 몸이 스르륵 바닥에 떨어졌고, 푸릉이는 그것을 급히 받아내었다. 마치 공기와도 같이 가볍고 얇은 몸에 푸릉이는 잠시 눈을 떨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노인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푸릉이는 곧바로 노인을 데리고 오두막에 들어갔다.


“하부지!!”


푸릉이의 애탄 음성. 그러나 노인의 눈은 힘없이 감겨버렸고 그를 위로해줄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푸릉이는 오두막에 얼른 들어가 이부자리를 퍼며 노인을 눕혔다. 다행히 노인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병간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푸릉이는 그저 그 앞에서 안절부절 못할 뿐이었다.


“하부지···”



노인의 안색이 어두웠다. 푸릉이는 그저 노인의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 조심스럽게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줄 뿐. 지금까지 너무도 행복한 일만 가득했는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되어버린걸까. 대체 왜···


꿈이라면 지금에라도 깨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자신이 아픈거였다면 이렇게 불안하지도 않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있다면 내가 치료해줄텐데···


푸릉이는 노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와 동시에 품 속에 넣어두었던, 아직 노인에게 전해주지 못했던 과일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방안에 과일이 뒹굴거렸으나 푸릉이는 그자세 그대로 멈췄다. 제발 이 순간이 끝나길 기도하면서.



* * *



“허허허, 고맙구나.”

“웅···”



노인은 푸릉이가 전해주는 물잔을 받았다. 노인은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물을 마셨고, 다시 푸릉이에게 잔을 내밀었다. 녀석은 말 없이 잔을 받았다.


“항상 미안하구나.”

“......”


푸릉이는 말 없이 오두막을 나섰다. 단풍잎이 거의 다 떨어져 나무들이 앙상한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을도 거의 끝나갈 무렵, 노인은 아직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강해져야해.’


푸릉이는 오두막 앞 평상에 홀로 선 채로 검을 들었다. 노인이 쥐고 있던 진검을 휘두르는 푸릉이. 그의 마음에는 한 가지 일념만이 존재했다.


지키기 위한 검을 휘두른다.


재미가 떨어졌던 검을 들어 검술을 연마한다. 내공을 사용해 온몸의 혈로를 사용한다. 가슴 안의 보석을 쥐어짜 모든 내공을 사용할 기세로. 머지 않아 평상 바닥에 놓인 단풍잎들이 푸릉이의 검술에 들썩거렸다.


푸릉이의 뒤에는 노인이 있다. 자신을 지켜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길러주었던 노인이. 그러니 물러설 수 없고, 더욱이 자신이 쓰러질 수도 없다. 자신이 없으면 노인을 돌봐줄 이는 없으니까. 푸릉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멈추지 않는 연격을 허공에 쏟아부었다.


노인은 열린 오두막의 문으로 푸릉이의 검술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저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거늘···’


푸릉이의 얼굴은 해맑은 미소를 잃어버렸다. 이를 꽉 깨물고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는 무인의 얼굴만이 존재할 뿐. 노인은 푸릉이가 그런 얼굴을 하지 않기를 빌었다. 사람도 고민도 없는 이 외딴 산 속에서 항상 웃음만을 간직하고, 세상의 좋은 점만 겪었으면 하길 바랐다.


노인은 조용히 자신의 심장 부근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절반도 안남은 선천진기와 반쯤 망가진 단전을 사용한 대가는 처참했다. 단전에 겨우 그러모은 한 줌의 내공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선천진기도 모래시계처럼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으니. 지금껏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버틴 것은 오직 푸릉이를 위해서 였으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는 확실하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록 원했던 무인으로서의 죽음은 이루지 못하였으나, 푸릉이의 보호자이자 아비로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었기에··· 노인은 만족했다.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쿨럭, 쿨럭···”

“하부지!”


노인의 기침 소리에 푸릉이는 곧바로 검을 내려놓았다. 쏜살같이 달려온 푸릉이의 걱정어린 표정에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오늘따라 야속했다.


“저것··· 서책을 내게 주려무나.”

“웅!”



노인이 힘겹게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서책과 붓이 있었다. 푸릉이는 곧바로 그것을 건네주었고, 노인은 침상에 반쯤 걸터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마. 이제 괜찮으니 어서 가보거라.”

“그치만···”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도 할 일을 해야지. 나도 할 일을 할테니.”



노인은 짐짓 엄한 표정으로 푸릉이를 오두막 밖으로 보냈다. 푸릉이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으나 노인의 말에 따랐고, 이어서 부엌 쪽에서 맛있는 내음이 흘러들어왔다. 노인이 움직이지 못하니 요리라도 하려는 것일까.


‘미안하구나 푸릉아···’


미안한 감정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죄악감으로 심장을 옥죄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인은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붙잡은 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제목도 내용도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빈 책. 노인은 책의 제목을 써내려갔다.


‘매화비급.’


평생을 생각하였으나 결국 쓰지 못했던 비급서가, 노인의 손에서 지금 작성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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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80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 11. 겨울의 초입 23.04.06 81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2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9 3 12쪽
7 7. 심법 23.03.27 113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8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49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1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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