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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83
추천수 :
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3.1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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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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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2. 푸릉이

DUMMY

“푸릉!푸릉!”

“그게 그리 맛있더냐.”

“푸릉?”



노인의 말에 항아리에서 투명한 물체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이 괜한 말을 했다며 손사레를 치자 그제서야 다시 항아리로 들어간 녀석. 푸릉이는 지금 노인이 항아리에 모아둔 음식물쓰레기를 먹고 있었다. 그것도 누구보다 맛있게.


“허어···”



노인은 조용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는 것 같지도 않았다. 씰룩거리는 놈의 육체만 보아도 그것은 쉬이 유추할 수 있었으니. 정말로 저런 것들이 식사가 되는지 의문이었다.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 겠구나.’


노인은 발걸음을 돌렸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곤란했던 차였다. 땅의 묻기에는 오염이 걱정되었고 아무 곳에나 버리기에는 자연을 막 대하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항아리에 넣어둔 채로 썩히고 있었다. 그걸 푸릉이가 처리해준다면 그야말로 좋은 일이다.


치이익-


녀석이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해주는 사이, 노인은 아궁이 위에 놓인 돌판에 고기를 올렸다. 오늘 아침에 푸릉이를 구해주면서 살생한 멧돼지 고기였다. 먹기 좋은 부위를 한 입 크기로 썰어 올리자 금새 지글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고기를 먹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노인은 딱히 살생과 육식을 금하는 불교의 수도승이 아니었다. 단지 자연을 벗삼아 은거하고 있기 때문에 고기를 먹기 위한 살육을 하지 않을 뿐. 당연히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꺼웠다.


“푸릉?”

“하하, 냄새를 맡을 수 있느냐.”


기름에 노릇노릇 고기가 구워지자 푸릉이가 항아리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고소한 기름 내음을 맡은 것인지, 자글자글 구워지는 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푸릉이는 항아리에서 나와 슬며시 노인의 옆으로 기어왔다.


“고기를 먹고 싶은 것이로구나.”

“푸릉!”

“오냐, 한 점 주마.”


어차피 자신이 먹기에 고기의 양은 턱없이 많았다. 노인은 고기 한 점을 집어 푸릉이의 위에 떨어뜨려 주었다. 척 하고 정중앙에 떨어진 고기. 그것이 느릿하게 푸릉이의 몸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늪지대에 빠진 것처럼 느리게 이동하는구나.’


끈적한 늪에 빠진 것처럼 고기는 매우 천천히 푸릉이의 안을 유영했다. 중력에 따라 밑으로, 또 밑으로 떨어지는 고기. 고기의 주변에서 기포가 일었다. 이윽고 고기는 푸릉이의 몸을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몸 한 가운데 있는 보석을 기점으로 둥글게 회전하는 고기. 그것의 크기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독이나 산성을 머금고 있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의 형상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윽고 완전히 소멸한 고기. 그 자리에 보글보글 남아있는 기포만이 고기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을 뿐. 고기는 처음부터 없었던 양 모습을 감추었다.


‘신기하구나. 마치··· 미묘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노인의 예리한 기감은 푸릉이의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흐름을 포착했다. 고기에서 빠져나온 미세한 양의 기운이 천천히 푸릉이의 몸 중앙에 자리잡은 보석으로 흘러들어갔다. 보석은 일순 빛을 뿜어대더니 금새 기운을 갈무리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바깥에서 들여온 기운을 갈무리하여 자신의 몸 속 중앙에 체화시킨다. 푸릉이의 식사 방법은 마치 영약을 먹은 무림인이 그 기운을 온전히 받아내는 과정과 흡사했다. 과연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치일까? 아무리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다한들 이러한 방식은···


생각이 많은 노인은 말없이 푸릉이를 바라보았고, 그 사이에 푸릉이는 폴짝폴짝 뛰며 노인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푸릉! 푸릉!”

“가만히 있거라. 대체 왜 그렇게 소란을··· 앗차.”


노인은 그제서야 아궁이를 살폈다. 허나 이미 불판 위에 올라간 고기들은 너무 익다 못해 검게 그을려버렸다. 푸릉이의 식사를 관찰하다가 그만··· 한 점도 먹지 못한 노인은 결국 타버린 고기들을 한데 모았다.


“···자 이거라도 먹으려무나.”

“푸릉!”


탄 고기를 푸릉이에게 양도한 노인은 새로운 고기를 불판위에 올렸다. 노인의 속도 모르고 푸릉이는 새로운 먹이를 열심히 소화시켰다. 다시 보아도, 그것은 능숙한 무인의 운기조식과 닮아 있었다.



* * *



잠시 고기를 태우는 등의 소란이 있었던 식사 시간이 끝나고, 노인은 오두막 앞의 산 정상을 거닐었다. 나무도 자라지 못해 주변이 뻥 뚫려 탁 트인 광활한 시야는 매번 보아도 새로운 정취를 선사하였으니. 산 정상 특유의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노인은 칼을 출수했다.


지이잉-


기분좋은 진동음과 함께 칼이 공간을 수놓았다. 어떠한 형도, 초식도 보이지 않는 단순한 휘두름. 불어오는 바람과 노인의 움직임에 그저 따라가는, 어찌보면 검술이라고 볼 수 없는 일련의 몸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불규칙하고 막무가내로 보이는 검의 형식에서도 서서히 새로운 정취가 깃들었다. 노인의 몸은 자유롭게 공중을 거니는 나비처럼 유하게 흐르다가도,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강하게 직선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유하다가도 강하고, 변하다가도 환하는 예측불가능한 움직임. 그 안에서 새로운 검의 경지를 목도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검기나 검강, 검환과 같은 내공에 의한 기예가 아닌 순수한 육체와 검의 대화. 어느새 노인의 이마는 땀이 가득했고 품이 넉넉한 무복의 등부분은 땀이 흥건했다. 숨이 차오르던 노인의 움직임은 서서히 느려졌다. 검무를 보는 듯 칼과 함께 한 바퀴 돌며, 노인은 끝내 납도했다.


‘역시 회복되지 않는구나.’


노인은 자신의 단전 부근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쿵쿵 뛸 때마다 욱신거리는 단전. 마치 굳어버린 듯 아무런 내공도 뿜어대지 못하는 단전의 모습이 노인은 그저 답답했다. 벌써 몇 년이나 흘렀으나 잃어버린 단전은 다시금 제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니. 각종 명의와 황의,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신의까지 만나보았으나···


선천진기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단전이 봉해진 이가, 다시금 내공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푸릉?”

“이런, 거기 있었느냐.”

“푸릉! 푸릉!”


노인이 뒤를 돌아보자 오두막 문앞에 푸릉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폴짝폴짝 뛰며 노인의 앞까지 다가왔다. 노인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다른 이가 무공을 수련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크나큰 결례란다.”


의와 협, 그리고 명예를 중요시하는 무인 사이에서도 해선 안되는 금기 중 하나. 그것이 바로 문파가 다른 이가 수련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는 행위였다. 무인의 무공은 목숨과도 같은 것으로, 타인에 의해 그것이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푸릉?”


물론 무인이 아닌 푸릉이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노인은 손을 뻗어 녀석의 탄력적인 육체를 쓰다듬었다. 선선한 감각이 손가락을 스며들었고 노인의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담겼다.


‘쓸쓸할 테지. 혼자 지내는 것도.’


어떤 생물인지는 아직도 모르는 노인이었으나,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심심하고 외로운지는 잘 알고 있었다. 고강한 정신을 가진 자신도 그러할진대 눈 앞의 생명체는 어찌할까. 노인은 넓은 마음으로 푸릉이를 이해해주기로 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거라. 내가 검을 휘두를 동안에는 멀리서 지켜보는 것은 허락하마.”

“푸릉! 푸릉!”

“자, 검을 휘두를 테니 멀리 가있거라.”


푸릉이는 뽈뽈뽈 뛰어 오두막의 문 앞에 안착했다. 마치 이곳이 노인의 검무를 보기 좋은 장소라는 듯이. 푸릉이 덕분에 잡념없이 휴식을 마친 노인이 다시금 검을 들었다. 어떠한 형식에도 얽메이지 않은 자유로운 검무가 다시금 펼쳐졌다.


내공 한 줌 담기지 않은, 노인의 육체로 벌이는 검과 인간의 교류. 육체의 힘만으로 검을 잇는 과정은 내공이 조금이라도 있는 동네 무림인이 본다면 코웃음을 칠만한 것이었다.. 노인이 달밤의 체조라도 하는 것이냐고 힐난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녀석은 그 모든 과정을 눈에 담았다.


푸릉이는 못에 박힌 듯 그 자리에 가만히 노인의 움직임을 시야에 담았다. 연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구해준 노인이 펼치는 검무에 홀린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심심해서 그러한 것인지···


다만 그 과정 중에 푸릉이의 몸에 새로운 변화를 일어나고 있었다. 범인이라면 절대로 눈치챌 수 없는 미묘한 기운의 변화. 일정한 속도로 몸을 흐르던 미약한 기운에 힘이 실리고,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마치 노인의 움직임을 따라하듯이.


노인의 검무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 * *



“후우··· 지치는 구나.”

“푸릉! 푸릉!”


노인은 무복이 땀으로 흠뻑 젖고 나서야 검을 납도했다. 근육이 줄어 비쩍 마른 손이 덜덜 떨릴 정도의 고강도 운동. 노인은 옆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푸릉이를 제쳐두고 아궁이로 향했다.


“저녁을 먹어야 겠지. 오늘따라 술이 당기는 밤이로구나.”

“푸릉!”


노인은 아궁이를 피워 다시금 멧돼지 고기를 구웠다. 굽는 사이에 해는 저물어 보름달이 휘영청하고 노인을 비추었다.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산을 뒤덮고, 달빛이 오두막 곳곳을 푸르게 물들었을 무렵.


노인은 고기와 함께 술상을 차려 오두막 앞의 평상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라면 먼지가 쌓여 평상을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겠으나, 푸릉이가 언제 닦아놓았는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였다. 노인은 기분 좋게 평상에 반쯤 누운 채로 풍류를 즐겼다.


산 정상에 있다보면 정말로 손을 뻗으면 달이 닿을 것처럼 가까워져 온다. 그 옆에 수줍게 드러낸 별빛은 또 어떠하랴. 낮에는 땀을 식혀주던 바람이, 밤이 되자 기분 좋게 노인의 수염을 쓸어주었다. 노인은 자연의 손길을 받으며 술 한 잔을 입에 넣었다. 오늘따라 술 맛이 달았다.


“술맛이 참으로 좋구나.”

“푸릉?”


옆에서 고기 몇 점을 주워 먹던 푸릉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술병을 툭툭 치는 것이 ‘술맛’이 궁금한 모양.


“술을 한 잔 마셔볼테냐?”

“푸릉!”


녀석은 위아래로 통통 튀며 긍정의 표시를 보였다. 노인은 술잔에 술병을 따라 푸릉이의 위로 살짝 부어주었다. 술도 취했겠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심 궁금했던 것이다. 이윽고 푸릉이가 몸을 부르르 떨며 술을 흡수했다.


“푸릉? 푸릉?”

“하하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구나.”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푸릉이는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듯 자꾸만 왼쪽으로 기울어진 채로 기어다녔다. 이상함을 깨닫고 오른쪽으로 가려 해도 이미 몸은 갈 지자로 휘청거렸다. 그것이 마치 술주정뱅이와 같아서 웃음을 자아냈다.


“녀석. 너도 술에 취하나 보구나.”

“푸릉···”


푸릉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자 반쯤 누워있던 노인의 곁에 찰싹 붙었다. 기댈 곳이 마땅히 없어서 그런가 보다, 노인은 생각했다. 한 손에는 술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푸릉이를 쓰다듬으며 노인은 혼자 중얼거렸다.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노인의 입가가 자연스러운 호를 그렸다. 은거를 하고 나서부터는 미소라는 것을 얼굴에 품어본 적이 드물었는데. 괴생명체를 만나고 나서는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이렇게 자주 웃게 되다니. 세상 참 모를 일이다.


“들어가자꾸나. 밤바람이 차다.”

“푸릉···”


바르르 몸을 떠는 푸릉이를 보며 노인은 몸을 일으켰다. 아직 몸을 가누지 못해 손바닥으로 푸릉이를 들어주며, 노인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을 품에 안고 이불 안으로 들어간 노인. 선선하게 느껴지는 푸릉이의 품이 괜히 따스하게 느껴지는 착각을 느끼며, 노인은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푸릉이와의 첫 번째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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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80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2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3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9 3 12쪽
7 7. 심법 23.03.27 114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8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50 3 14쪽
» 2. 푸릉이 23.03.19 162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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