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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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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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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3.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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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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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심마(心魔)

DUMMY

“하하··· 몸이 조금 무거울 뿐이란다.”

“푸릉!”


낡은 오두막집. 노인은 한낮임에도 이불을 펴고 누웠다. 열이 올라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앙상해진 팔다리는 자꾸만 후들거렸고, 몸은 열이나 뜨겁지만 이불을 덮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으슬으슬 추웠다.


“푸릉!”

“고맙구나, 조금 낫다.”


푸릉이는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노인의 이마 위로 풀썩 뛰었다. 푸릉이의 차가운 촉감에 노인의 열이 조금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노인은 자신의 병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마인가···’


심마(心魔). 보통 깨달음을 얻으려 하거나 수련을하는 젊은 무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며, 그것은 말 그대로 마음의 병이다. 건강한 육체에는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무인의 경지는 그저 외공과 내공에 뛰어나기만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올곧은 마음과 뚜렷한 정신이 없으면 그것은 반쪽짜리 검술일 뿐더러,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없으니.


그렇다면 무공을 쓰지 않는 노인이 대체 왜 심마에 걸렸단 말인가. 그것은 자신의 단전과 푸릉이, 그것에 관련이 깊었다.


노인은 불의의 사고로 단전이 봉해지고 선천진기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주변인들의 발빠른 대처로 간신히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으나 조각난 단전에는 내공이 깃들이 않았고, 빠져나간 선천진기는 그저 훵덩그레하게 생기를 앗아가 되돌아오지 않았다. 기가 쇠하자 단련했던 근육과 몸은 순식간에 노인의 것으로 변했고, 흉하게 주름지고 일그러졌다.


노인은 자신을 툭 하면 부서질 것 같은 유리세공품처럼 대하는 주변인들의 대우를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은 무인이었고, 또 무인이어야 했다. 병상에 누워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형수로 생을 마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얼마 남지 않는 기력으로 중원을 들쑤시고 다니며 명의나 신의를 만났고, 관무불가침의 조약을 깨고 황궁에 찾아가 고서를 뒤적이기도 하였다.


그 결과 중원의 오악 중 하나라는 이곳에 오두막을 짓고 은거생활을 하며 기력을 보충했다. 과연 영산인지라 나고 자라는 동식물들에 생기가 가득하였고, 공기도 맑아 몸에 절로 기운이 솟았다. 처음에는 전혀 변치 않던 단전과 한 줌도 남지 않은 선천진기도 서서히 차올라 가까스로 ‘무인’이라 칭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물론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자신보다도 살 날이 많이 남았을, 한 식구나 다름없는 푸릉이를 위해 사용한 것이었으니. 그러나 뼛속깊이 후회하지 않음에도 마음 속에 남는 공허와 허탈감은 노인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게 왜 그토록 바라던 것을 희생했느냔 말이야. 누가 알아준다고··· 멍청하네.


마음 속의 무언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평생 바다를 간 적은 손에 꼽았으나 자신이 위치한 곳은 어두컴컴한 바다 깊은 곳이었다. 저 멀리 손이 뻗어도 닿지 않을 곳에 수면이 푸른 빛을 내뿜었으나, 노인의 주변에는 온통 시커먼 어둠만이 자리했다.


-10년이었어. 무려 10년! 과연 몸이 쇠약해진 지금은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10년? 20년? 그 때까지 과연 네가 살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거기 남았다면 호의호식하면서 제자들 밑에서 웃으며 생을 마감했겠지. 네가 바란 네 삶의 결말이 겨우 이런거였어?

-무인으로서 이미 죽었다. 너의 오기와 탐욕이 너를 망쳤고, 결국 네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구나. 참으로 잘한 짓이다.


주변을 맴도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노인을 갉아 먹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듣기 싫어 귀를 막으려 해도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노인의 시선이 일렁이는 푸른 수면을 향했다.


‘나의 삶은 의미가 없던 것이 아닐까.’


홀몸으로 태어나 홀몸으로 바스라지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는 하지만, 노인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돈과 명예를 좇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주변에 의와 협을 가진 형제들, 그리고 제자들을 잃었다. 가끔씩 오두막을 들러 먹을 것을 챙겨주던 제자들의 발걸음도 끊긴지 오래. 자신에게 남은 것은 그저 희망이었고, 그것은 며칠 전 사그라들었다.


노인의 눈꺼풀이 서서히 닫혔다. 어쩔 수 없는 삶이었다. 엎지른 물이었고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 잘못된 선택의 연속으로 노인은 지금까지 살아왔고, 열심히 이어가던 발자국은 이제는 막다른 길을 만났다. 노인은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그 순간이었다.


-푸릉!


힘없이 감기던 노인의 눈이 다시금 빛을 받아들였다. 작고 볼품없는 소리, 제대로 된 발성 기관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라 어찌 보면 잘못 들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노인은 분명히 들었다.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는 작은 생명체의 외침을.


-네놈이 그토록 꿈꾸던 것을 하루아침에 말아먹은 장본인이다. 가증스러운 생물이고, 은헤를 모르는 짐승이지.

-설마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생물의 부름에 눈을 뜨려는 것은 아니지? 얼마나 더 간이며 쓸개고 떼어주려는 거지?


다급한 것처럼 속사포로 들어오는 목소리의 핀잔. 목소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바라던 것을 푸릉이를 살리기 위해 잃었다. 말 그대로 푸릉이가 억지로 뺏어간 것이 아니라, 노인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놓친 것이었다. 푸릉이라는 소중한 생명체를 손에 잡기 위해서.


‘푸릉이의 잘못이 아니다. 내 선택의 결과였을 뿐.’


목소리의 유혹적인 말에 도리어 노인은 깨달았다. 푸릉이를 탓하던 마음을 갖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놓고 말도 못하는 짐승을 탓하다니. 이기심도 이런 이기심이 없었다. 노인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슬 하나가 끊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푸릉푸릉!


저 멀리 잔잔한 수면에 파문이 일었고, 무언가 기포를 열심히 흩뿌려대며 이쪽으로 수영해 오고 있었다. 푸릉푸릉 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져옴을 통해 녀석이 푸릉이라는 사실을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노인은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가락을 푸릉이에게로 뻗었다.


-정녕 저 미물을 위해서 망가진 삶을 더 살아가겠다고?

-네 앞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숨을 쉴 때마다 단전에서 고통이 일어날 거고, 더욱이 빠져나간 선천진기는 네놈의 피를 말리고 살거죽에 주름을 만들어 내겠지.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울 삶을 더 이어나갈 자신이 있나?


‘물론이다.’


노인의 마음은 굳건했다. 심마라는 파도에 흔들리던 노인의 조각배는 어느새 잔잔한 호수 위에서 조용히 항해하고 있었으니. 목소리의 음량도 서서히 멀어지는 것처럼 줄어들었다. 마침내 코앞까지 온 푸릉이는 노인의 손을 만졌다.


이윽고 노인은 눈을 떴다.



* * *



“푸릉! 푸릉!”

“이녀석, 흔들지 말거라. 머리가 아프다.”

“푸릉···”


노인은 어지러운 시야로 주변을 살폈다. 노인이 몸을 일으키자 이마에 놓인 물수건이 바닥으로 철벅하며 떨어졌다. 물을 제대로 짜지 않아 물기를 잔뜩 머금은 물수건. 그 미지근한 물기의 감촉에 정신을 차린 노인의 시야가 점점 선명해졌다.


그 앞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푸릉이의 변화였다.


“푸릉이···가 맞느냐?”

“푸릉!”


푸릉거리는 말과 함께 노인의 품에 폴짝 뛰어든 푸릉이. 허나 그것은 일전의 구체의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여섯 살 정도로 추정되는 자그마한 체구에 옷을 입은 남자아이. 푸른 머리카락과 푸른 눈은 이전에 몇 번 본 적있는 색목인처럼 원래 그랬듯 잘 어울렸다.


푸릉이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 아아.”


품에 달라붙은 푸릉이를 토닥여주며 노인은 그제서야 방을 둘러볼 수 있었다. 옷이며 약재며 이것저것 어질러져 있었고, 아까의 물수건을 짜려고 대야를 방에 들였는지 방 안이 온통 물바다였다. 즉, 구체의 몸으로는 병간호에 한계가 있다보니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것이 틀림 없었다.


“나를 위해서 변신한 것이더냐?”

“푸릉!”

“그래··· 고생을 끼쳐 미안하구나.”


푸릉이는 노인의 옷을 꾹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몸이 가뿐해진 노인은 몸을 일으켜 오두막 바깥을 돌아보았다. 푸릉이는 노인의 옷자락을 자그마한 손으로 꼬옥 잡은 채 대롱대롱 매달려 노인과 함께 오두막을 나섰다.


“허어··· 웬 사냥을 해온 것이냐.”

“푸릉~”


푸릉이는 만족한다는 듯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며칠 쓰지 못한 아궁이 옆에는 죽은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잡은지 얼마 안되어 싱싱해보이는 토끼 몇 마리와 너구리로 추정되는 넓뚱한 시체. 다만 피를 제때 빼지 못하고 해체가 안되어 있어 엉망이었다.


“하하, 사냥을 어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고맙다.”

“푸릉~”

“그래, 장하다. 당분간 고기를 먹으면서 정양하자꾸나.”

“푸릉! 푸릉!”


노인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손질했다. 다행히 신선하여 고기를 버리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버린다고 해도 푸릉이가 알아서 흡수해 양분으로 삼겠지만 하여튼 좋은 일이었다.


‘몸이 가뿐하다.’


앓아누웠던 것이 거짓말처럼 노인의 몸은 새것같이 멀쩡했다. 분명 목소리의 말대로라면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이 되어야 했을 텐데, 오히려 앓기 전보다 지금이 훨씬 생기가 넘쳤다. 잘은 모르지만 목소리가 생을 포기하도록 거짓말을 했던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자, 간단하게 요기나 하자꾸나. 벌써 밤이니 자야겠지.”

“푸릉~”


푸릉이는 쪼르르 달려와 앉아있는 노인의 품 속에 쏙 들어갔다. 가슴께를 머리카락으로 간질이며 손으로 고기를 집어먹는 푸릉이. 그것이 정말 인간 아이와 같아 노인의 얼굴에 괜스레 웃음꽃이 피었다.


“고맙다.”

“푸릉?”


푸릉이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보였지만 노인은 허허롭게 웃었다. 한 손으로 푸릉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노인은 생각했다. 생사의 길에 서있던 자신이 삶을 포기하기 직전, 푸릉이가 불러주지 않았다면 다시 일어날 일은 없었을 터였다. 노인은 그점에 푸릉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앞으로 내 힘이 닿는대로 너를 보살펴주마.”

“푸릉!”


목소리는 노인의 삶에 의미가 없음을 힐난했다. 하지만 돈과 명예, 제자와 스승, 친우와 무공을 잃었음에도 웃었다. 모든것을 잃었다며 심마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동안, 자신을 걱정해주고 위해주는 하나의 생명이 옆에 있었기에.


“술맛이 좋구나.”


죽다 살아나서 그런지 술맛이 더욱 좋았다. 제자들이 보내준 선물에 포함되어있던 선물이라 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오늘같은 날에 마시지 않으면 언제 마시랴. 푸릉이가 사냥해온 토끼 고기를 한 점하며 구름을 벗삼아 술을 마시니 그야말로 천하일미였다.


“푸릉!”


여느 때처럼 눈을 빛내며 달려드는 푸릉이. 술잔으로 가감없이 손을 뻗어들어오는게 훤히 보였다. 평소였다면 못 이기는척 한 잔이라도 푸릉이의 몸 위로 부워줬을 터.


“미안하지만 술을 줄 수는 없겠구나.”

“푸릉?!”


그러나 노인은 술잔을 푸릉이에게서 앗아갔다. 충격에 어린 푸릉이의 볼살이 부르르 떨렸지만 애써 못 본척 했다. 구체 모습이 아니라 어린 아이의 모습이라서 술을 주는 것이 괜히 양심에 찔린 탓이었다. 푸릉이는 잠시 노인의 가슴께를 뒤통수로 두들기며 항의하였으나 이내 사그라들었다. 노인이 토끼 고기 2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푸릉이의 입으로 넣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죽다 살아난 노인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변한 푸릉이와 고기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작가의말

본격 육아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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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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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79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1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2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8 3 12쪽
7 7. 심법 23.03.27 113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7 4 11쪽
»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49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1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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