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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74
추천수 :
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3.28 20:10
조회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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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8. 검법

DUMMY

“바람이 선선하니 기분이 좋구나.”

“빠람, 빠람!”

“그래, 바람이란다.”



노인의 무복이 살랑이는 바람에 흩날렸고, 기분 좋은 선선함이 볼가에 스쳤다. 오두막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언덕. 그곳에는 나무가 없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 여름이 되면 노인은 이곳에서 땀을 식히곤 했다.


“씨원해~”

“시원하구나.”



언덕까지 오느라 등에 꽤 땀이 났던 노인이었다. 둘은 나란히 선 채로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노인은 옆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 푸릉이를 품에 안았다. 말랑말랑했던 과거의 육신은 그대로였는지, 푸릉이의 몸은 한겨울의 석빙고처럼 서늘하여 여름에 특히 기분이 좋았다.


“수염 시러!”

“허허허, 이 할아비의 수염이 싫으냐?”

“꺼슬꺼슬해!”



노인은 푸릉이의 톡 튀어나온 볼살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턱 아래로 길게 나있던 노인의 수염이 푸릉이의 살갗에 마찰했고 푸릉이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노인의 품속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노인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채, 볼살을 톡톡 털어대는 푸릉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일반적인 무인보다도 내공이 빠르게 차오르는구나.’


푸릉이의 몸 안에 내재된 내공의 크기는 심법을 가르치고나서 꾸준히 성장했다. 푸릉이의 모든 호흡이 심법에 기반하였기 때문에, 영산의 맑은 기운이 푸릉이의 단전··· 아니 보석에 차곡차곡 토납되었기 때문이었다. 높은 경지의 무인이 아니라면 심법을 하루종일 유지하는 것은 고역과도 마찬가지인 일이기에 내공이 빨리 쌓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합!”


지금도 푸릉이는 언덕 옆에 서있는 댠 한 그루의 소나무를 상대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심법을 몸에 두르고 있기에 단단한 거목은 어린아이의 몸짓에 작게 진동하며 잎을 토해냈다. 대여섯살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의 소행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공의 축기가 이리 빠른 것은 필시 혈도와 관련이 있으리라.’


한 번은 노인이 시험을 위해 푸릉이의 몸에 점혈을 해본 적이 있었으나, 당연하게도 푸릉이에게 점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극히 위험한 혈을 제외하고 단순한 마비가 오는 혈도들을 건들였으나, 푸릉이는 멀뚱히 노인의 손길을 받아들였을 뿐. 거골혈, 호구혈, 백해혈 등등 노인의 지식으로 여러 혈도들을 점하였으나 푸릉이는 그저 간지러워했다.


푸릉이의 가장 큰 장점인 유연한 육체는 혈로를 자유자재로 바꾸어 더욱 효율적인 내공의 운용을 가능케했다. 복잡하고 심오하며 세밀한 핏줄들 속을 움직이는 내공은 필연적으로 속도가 높아지거나 기운이 난폭해지면, 혈도에 상처를 입기 일쑤였다. 그러나 푸릉이의 몸은 혈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으니 그런 문제점에서 자유로웠다.


일반적인 무인들에 비해 난폭한 기운을 빠르게 몸에서 대주천할 수 있으며, 끊이지 않고 심법을 운용하여 내공을 토납한다. 그러한 푸릉이의 몸에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리라.


“우아앗!”



노인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푸릉이가 몸을 휘청거렸다. 아마도 소나무를 치다가 제 힘에 나동그라진 것이 틀림 없었다. 소나무의 옆은 자그마한 절벽이 있었는데, 어린아이의 몸으로 떨어진다면 충분히 크게 다칠만한 높이였다.


“이런. 푸릉아!”


노인은 쏜살같이 달려가 푸릉이의 옷깃을 잡아채려 하였으나 워낙 멀리 떨어져 있엇던 탓에 노인이 손을 뻗어도 닿지 못했다. 노인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절벽에 겨우 걸쳐 푸릉이를 내려다보았다. 푸릉이는 눈을 껌뻑이며 노인과 자신이 떨어질 땅을 번갈아보고 있었으니···


“안된다··· 푸릉아, 푸릉아!”



지금이라도 뛰어내려서 푸릉이를 잡아채야 할까, 아니면 내공을 써서 경공을 펼쳐야 할까, 푸릉이라면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 한들 살아남지 않을까. 머릿 속에 온갖 생각들이 펼쳐지며 노인은 끝내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평소 생각이 많은 그의 성정이 걸림돌이 되어 노인의 행동을 방해한 것이었다.


마침내 푸릉이의 육신은 그대로 곤두박질치며 바닥에 닿았고.


“푸릉!”



위기의 순간 푸릉이는 원래의 동그란 구체의 모습으로 변해 바닥에 통통 튀었다. 마치 탱탱한 공처럼 바닥을 연신 튀기던 녀석은 바닥에 데구르르 굴렀고, 직후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변했다.

푸릉이는 두 손을 위로 쭉 뻗으며 우다다다 절벽 아래를 빙글빙글 돌았다.


“재미따!”

“......휴우.”



노인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노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푸릉이는 꺄르륵 웃으며 흙먼지 투성이가 되어버린 옷을 입고 팔딱팔딱 뛰어다녔다. 노인은 절벽아래로 향하는 완만한 경사길을 통해 푸릉이를 찾아나섰다.


“이녀석, 조심해야지.”

“쪼심···”



노인의 엄한 표정을 읽었는지 푸릉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노인은 한숨을 삼키며 푸릉이의 머리카락을 헝클어주었다. 어린 아이는 눈만 떼면 사고를 치니 피곤하다고 했던 제자의 푸념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아무래도 푸릉이의 장난기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군.’


또래 아이를 생각하면 푸릉이가 이리저리 쏘다니고 장난을 치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하였다.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산은 천혜의 놀이터요, 하늘은 따사로이 감싸주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이니. 그러나 쇠약해진 노인이 넘쳐나는 체력의 푸릉이를 상대해주는 것은 여간 요원한 일이 아니었다. 힘들다고 방치하면 어디가서 큰 사고를 쳐서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노릇이니.


“푸릉아, 올라가서 이 할애비랑 재미있는걸 하자꾸나.”

“째미? 째미!”

“그래 그래, 아주 재미있는 것이란다.”



흙투성이의 푸릉이를 옆구리에 낀 채로 오두막에 돌아가면서, 노인은 괜히 칼집을 만지작거렸다. 원래였다면 이런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안되었지만, 푸릉이가 평범한 아이도 아니니 장난기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주어야 하니까. 노인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푸릉이를 오두막에 데려갔다. ···일단 흙먼지가 묻은 옷을 세탁해야 했다.



* * *



“저번에 심법을 가르쳤으니 오늘은 검법을 가르치도록 하겠다.”

“검뻡!”

“원래라면 명문정파의 무공을 외인에게 함부로 발설하면 안되겠지만··· 뭐 정확히 너는 인간이 아니니 상관없겠지.”



노인이 항상 검무를 펼치는 오두막 앞. 노인은 검을 들고 서있었고, 그 앞에서 푸릉이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조막만한 목검을 들고 있었다. 제자에게서 부탁한 물건 중 하나였다.



“원래라면 검결을 들려주었을 테지만··· 곧잘 따라하니 상관없을테지.”

“푸릉?”

“내 움직임을 잘 보거라.”


본래 검법은 스승의 시범과 함께 검법의 구결을 들으며 이뤄지는 것. 다만 푸릉이가 구결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것은 힘든 일이었기에 노인은 그저 검로를 보여주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말로 하는 것보다 몸으로 옮긴 것이었다.


“내가 행하고 있는 검법은··· 화산파의 기초적인 검법인 육합검법(六合劍法)이다.”

“유캅···검뻡?”

“그래. 어디가서 볼 수 없는 화산파만의 독문무공이지.”



노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검을 바로잡았다. 한 때는 떠오르는 신흥강자로서 강호를 유랑하며 화산파의 이름을 떨치고 다녔으나, 지금은 뒷방 노인네 신세가 되어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으니. 문파에서도 버림받아 오두막에 반쯤 유배당한 자신이 화산파를 논하는 모습에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나는 화산파의 검수다.’


비록 화산의 아들들이 나를 내쳐 이곳에 가두었음에도, 노인은 화산을 버리지 않았다. 무인으로서 쌓아온 모든 경지를 잃어버렸음에도, 오두막에서 홀로 삶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손가락질 한들 그 사실은 결코 변치 않으리라.


“육합(六合)이란 천지(天地)와 사방(四方)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상, 하, 좌, 우, 전, 후의 여섯방면을 의미하지.”



노인의 검이 매섭게 공간을 갈랐다.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전에서 후로. 어지러이 움직이는 검로 속에서도 노인의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채 그대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가만히 서있음에도 노인이 일으키는 검의 파도에, 멀리 있는 푸릉이의 옷깃이 바람에 팔랑거렸다.


“바람에 떨어지는 매화꽃잎이 소리없이 모든 방면을 점거하는 것처럼, 육합검법이란 자신의 육합을 지킴과 동시에 적의 육합을 봉하는 검법이니라. 내 말 뜻을 이해하겠느냐?”

“푸릉···”

“허허, 괜찮다.”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검을 납도했다. 푸릉이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손에 쥔 목검을 꼬옥 쥘 뿐. 노인은 한 번에 푸릉이가 이해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 숟갈로 배부를 수는 없는 이치지. 실망하지 말고 이리 오너라. 내가 움직임을 하나씩 알려줄테니.”

“누에!”



푸릉이는 쪼르르 노인의 품속에 안겼다. 노인은 허허롭게 웃으며 푸릉이의 움직임을 보조해주었다. 노인의 움직임은 화려하고 연속적이어서 일련의 검무가 난해해보였으나 실상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검술이란 다른 것이 아닌 형식과 형식의 움직임. 즉, 하단막기와 상단막기 동작을 연결시킴으로써 공격을 하는 것처럼 점과 점으로 이어지는 선의 무술이었다.


“하단막기, 중단막기, 상단막기. 이 3개의 종류를 왼쪽과 오른쪽에서 수행할 수 있으면 그것이 육합이다. 6가지의 자세를 서로 변동하는 그 과정이 바로 육합검법의 기본이니라. 이해하겠느냐?”

“푸릉!”


구결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노인은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검법을 말로 풀어 설명했다. 한 차례 시연을 마친 노인은 푸릉이에게서 떨어진 채로 아이의 행동을 관찰했다. 6가지 기본 태세를 한 번씩 시연해보던 푸릉이. 이윽고 심법이 활발이 돌아가며 검법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호오.”



쉭쉭 바람가르는 소리가 약하게 들리며 푸릉이의 목검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툭툭 끊기고 힘이 일정치 않아 검로가 들쭉날쭉한 것이 초보자의 검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노인은 잠시 손으로 얼굴을 쓸며 생각을 바로했다.


‘너무 기대치가 높았던 것이야. 어린아이에게 내가 무슨 짓을···’


심법으로 이미 무인으로서 장성하리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던 노인이었다. 그러나 눈 앞에서 목검을 요리조리 움직여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장난감 칼을 가지고 노는 아이가 아닌가. 노인은 스스로의 조급함과 과신을 반성하였고···


“으음?”



노인의 의식이 수면위로 올라오자 점차 푸릉이의 이상한 점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잡념이 많은 노인의 특성상 이미 시간은 일각 조금 못 미치게 지났을 텐데. 푸릉이의 검은 쉬지 않고 계속 바람을 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아이가 무슨 체력이··· 아니면 혹시.’


노인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푸릉이가 검을 휘두르는 몸짓 하나하나가 선명히 노인의 동공에 담겼고, 그 검술은 분명히 처음 노인이 가르쳤을 때보다 조금 진일보해 있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버틸 수 없는 체력적 혹은 육체적 한계. 그러나 인간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을 뿐인 푸릉이는 땀이 나거나 근육통이 생길 일이 없었고···


‘심법처럼 무한히 수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노인은 속으로 경악을 삼켰다. 눈을 뜨고 다시 잠드는 순간까지 노인이 알려준 심법을 열심히 운용하고 있는 푸릉이. 그런 녀석이 검술조차 지치지 않고 수련할 수 있다면··· 일반적인 무인이 하루에 먹고 자고 다른 시간을 뺴고 8시진 정도 훈련할 수 있다면, 푸릉이는 최소한 그 두 배 가까이 수련을 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셈이었다.


“푸릉!”


노인의 흔들리는 시선에도 푸릉이는 재밌다는 듯이 즐거운 미소와 함께 검을 휘둘렀다. 노인은 그 옆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성에 차지 않아 가르침을 포기했던 제자들 보다도 눈 앞의 푸릉이가 더욱 재능있는 원석이 아닐까··· 한 때 화산파의 스승으로서 어린 제자들을 가르쳤던 노인의 눈이 불타오르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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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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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79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1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2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 8. 검법 23.03.28 99 3 12쪽
7 7. 심법 23.03.27 113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7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49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1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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