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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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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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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수 :
86,038

작성
23.03.2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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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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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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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노인은 괜찮다.

DUMMY

푸릉이는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변화했다. 크기는 커졌고, 몸놀림은 날랬으며, 무게도 제법 묵직해졌다.


“잘 먹는구나.”

“푸릉! 푸릉!”


캐온 나물을 몸에 넣고 소화시키는 푸릉이.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다녀서 그런 것인지 순식간에 포동포동해졌다. 먹는 양도 늘어 이제는 음식이 남지도 않게끔 한 번의 식사에 모든 잔반을 처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덕분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두던 항아리는 언젠가부터 쓰지도 않았다.


“이런.”

“푸릉?”


푸릉이와 같이 가볍게 밥을 먹던 도중, 노인의 젓가락을 빠져나온 고깃조각이 노인의 무복에 닿았다. 기름기가 무복에 스며들어 노인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산골에서 기름기는 세탁하기 어려운 골칫덩이였으니.


“푸릉아 부탁하마.”

“푸릉 푸릉!”


노인은 망설임없이 윗옷을 벗었다. 안에 흰 내의를 받쳐입은 상황이라 거리낌은 없었다. 푸릉이는 곧바로 노인의 저고리를 흡수하더니 몸집이 배로 늘어났다. 순식간에 사람 머리 정도로 커진 푸릉이의 몸 안에서 노인의 옷이 회전했다.


“푸릉~”

“매번 고맙구나.”


일각도 지나지 않아 푸릉이는 다시금 옷을 배출했다. 아낙네가 한 시진 정도 몽둥이질로 세탁한 것처럼 세탁물을 뽀송뽀송했다. 거기에 전혀 젖지 않고 보송보송하여 노인은 곧바로 옷을 입었다. 몸집이 커지고 나서 푸릉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청소 기법이었다.


‘처음에는 얼마나 놀랐는지.’


푸릉이가 처음 자신의 옷을 빨아들였을 때에는 기겁했었다. 설마 자신의 옷까지 소화시켜 먹는 것은 아닌지. 어찌 해야 하나 당황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세탁을 끝낸 푸릉이가 옷을 뱉어내었고, 그제서야 녀석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이후로는 푸릉이에게 옷을 맡기는 것이 일상이 된 노인이었다.


노인은 신기한 눈빛으로 푸릉이의 몸을 살폈다. 분명 아까만 해도 커졌던 몸집은 다시금 원상복귀된 상황. 미세하게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푸릉이는 세탁을 할 때면 자신의 몸을 부풀려 옷을 회전시키곤 했다.


“푸릉?”


노인은 천천히 푸릉이를 들어 그 모습을 살폈다. 티 하나 없이 맑아보이는 반투명한 몸. 그 안에 손톱 만했던 보석이 어느덧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커진 모습이었다. 무인의 단전에 내공을 쌓듯, 푸릉이의 몸 안에 존재하는 보석이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


“푸릉! 푸릉!”

“그래, 알았다. 밥 먹거라.”


불만스러운 듯이 몸을 퉁기던 녀석을 놓아주고는, 노인은 식사를 마쳤다. 이따금씩 샘솟는 호기심에 녀석을 관찰하고는 있지만 아직 그 정체를 파악하지는 못하는 실정. 지금에 와서는 같이 지내는 것이 중요하기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지만, 궁금한 것은 궁금한 것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산책이나 좀 해볼까.”

“푸릉?”

“그래, 이리로 오려무나.”


산책이라는 말에 반응한 푸릉이가 폴짝폴짝 뛰어왔다. 곧바로 뛰어오른 녀석이 노인의 품 안에 정확히 안착했다. 노인은 저고리를 고쳐매며 푸릉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원래라면 오후에 검술을 연마했겠지만 요즈음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때 무리한 반동이 남아 있군···’


푸릉이를 살리기 위해 억지로 내공을 끌어 썼던 것. 회복에 집중한 몇 년간의 요양이 물거품이 될 정도로 큰 일이었다. 결국 혈도에 손상을 입고 내상까지 얻은 노인은 도저히 칼을 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있기에는 심심하므로 이렇게 산책이라도 나가자는 생각이었다.


“요즈음 산의 기운이 영 기이하구나.”



노인이 산을 돌아다니기로 마음 먹은 것은 무료한 심신을 달래기 위함 말고도 다른 연유가 있었다. 바로 요즘 들어 산에 암운이 드리웠던 것. 무엇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산새들의 움직임과 풀벌레 소리, 나무들이 바람에 스치우는 것만으로도 노인은 유추할 수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이 산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음을.


“푸릉?”

“일단 돌아다녀 보자꾸나.”



노인은 빠른 발걸음으로 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시원한 폭포가 쏟아지는 산의 상류부터 물길을 따라 쏘다닌 노인. 숨이 점점 차오르고 열기가 올라오는 차에 노인은 강의 중류에 멈추었다. 그곳에는 물을 마시던 야생동물이 있었다.


‘오소리인가.’


흐르는 물에 혀를 낼름거리며 물을 마시는 족제비와 닮은 짐승. 전체적인 몸은 회색빛이었으나 얼굴 부분이 희고, 귀부터 눈아랫부분까지 검은 줄무늬가 인상적인 동물이었다. 산에 종종 보이는 짐승이기에 그저 물을 마시러 왔겠거니 싶었으나···


“으르르···”

“흐음, 이상하구나.”


눈 앞의 오소리는 노인을 발견하자 마자 털을 세우며 경계했다. 본디 잡식성이고 겁이 많아 공격을 받는 것이 아니면 위협적으로 나오지 않는 오소리인데··· 녀석은 이빨을 드러내며 노인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인의 기감에 오소리가 뿜어대는 검은 기운이 잡혔다.


‘이건 마기가 아닌가!’


놀랍게도 오소리가 품고 있는 것은 마교들의 기운이라고 할 수 있는 마기였다. 옅지만 분명 탁하고 패도적인 것이 마기와 똑같았다. 정사대전에서 패한 마교의 기운이 어찌 다시금 영산을 더럽히고 있는 것인지, 노인은 알 수 없었으나 지금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크앙!”

“이런.”


재빠르게 달려든 오소리. 노인은 옆으로 보법을 치며 공격을 피했다. 오소리의 입가에 침이 질질 흐르는 것이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제압해야할 듯 보였다. 노인이 검집에 손을 올린 순간 품 속에서 푸릉이가 튀어나왔다.


“푸릉아!”

“으르릉··· 크아앙!”


눈 앞에 놓인 괴생물체에게 돌격하는 오소리. 노인은 칼을 뽑았으나 이미 오소리는 지척까지 다가온 상황에, 몸이 회복되지 않아 움직임이 늦었다. 이미 오소리의 이빨은 푸릉이에게 박히기 직전이었다.


“푸릉!”


뭉텅이로 육신이 잘려나가기 직전, 푸릉이의 몸 안에 기운이 폭발적으로 회전했다. 이어진 기의 방출에 오소리는 곧바로 키이익 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근처의 풀과 나뭇잎이 떨릴 정도의 기운이었다. 검풍이나 검기를 발하는 일류 혹은 절정의 무인을 보는 듯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푸릉이의 몸이 움직였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빠른 속도로 오소리 앞까지 도착한 푸릉이. 하지만 푸릉이는 오소리의 옆으로 이동하는 궤적을 그렸다.


“크릉···”


푸릉이의 돌진을 눈치챈 오소리도 오히려 발톱을 내며 공격할 기세를 다졌다. 녀석의 눈에도 푸릉이가 자신의 몸에 닿을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터. 그 순간 푸릉이의 육신이 공중에서 궤도를 바꾸었다.


“끼이잉!”


움직일 수 없는 공중에서 다시금 도약한다··· 마치 전설 속에 있는 허공답보를 선보인 푸릉이. 거기에 궤도를 바꾸면서 속도가 화살처럼 가속하여 정통으로 오소리를 강타했다. 땅이 움푹 패일 정도의 충격과 함께 오소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후 축 늘어진 오소리는 눈을 뜬 채로 움직임이 멎었다.


“푸릉푸릉푸릉!”

“푸, 푸릉아. 도대체 이게···”

“푸릉?”


마치 전투의 열기에 취한듯 한 차례 오소리의 주변을 폴짝폴짝 뛰던 녀석. 노인의 부름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노인에게 다가왔다. 신발에 자신의 몸을 비비는 것이 마치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노인은 홀린 듯한 얼굴로 푸릉이의 몸을 쓰다듬으면서도, 눈은 오소리의 시체에 못 박혀 있었다.


‘뼈가 부러지고 땅이 패일 정도의 충격··· 마치 포탄과도 같구나.’


푸릉이의 공격을 막으려는 듯 펼쳐졌던 오소리의 앞발. 녀석의 앞다리는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여 있었다. 오소리의 바로 뒤에 있던 바위는 반으로 쪼개졌으며, 그 뒤에서도 움푹 파인 것처럼 흙과 풀뿌리가 비산해 있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도, 아니 무림인도 벌이기 어려운 기예였다.


그런 놀라운 행동을 보여주었음에도 푸릉이는 노인의 손길이 기꺼운 듯 부르르 떨 뿐이었다.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멧돼지의 앞에서 벌벌 떨던 그 녀석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무엇인가···


“...설마 이 늙은이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이냐?”

“푸릉!”


맞다는 듯이 위로 통통 튀는 녀석이었다. 그 때보다 몸집이 조금 커졌다고 한들 푸릉이의 성정은 바뀌지 않았다. 즉, 오소리라는 위협으로부터 노인을 지키기 위해서 푸릉이가 힘을 보였다는 뜻. 자신을 구해준 인물에게 위험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보다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먼저였다.


“고맙다, 푸릉아. 덕분에 살았구나.”

“푸릉~”


푸릉이는 노인의 발에 연신 자신의 몸을 비볐다. 그래, 이 아이가 자신을 위해 노력한 것이다. 위험한 생물이니 사람을 해칠 짐승이니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설령 그렇게 된다면, 그 전에 자신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을 뿐.


“오늘은 오소리 고기를 먹어볼까.”

“푸릉 푸릉~”

“그래, 돌아가자꾸나.”


노인은 죽은 오소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푸릉이를 쥔 채로 산을 올랐다. 내려왔을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 푸릉이의 새로운 일면을 보아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만약··· 자신이 없더라도 이 산에서 어느정도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노인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둔 고민이 해결된 순간이었다.



* * *



“푸릉 푸릉!”

“하하, 그렇게 맛있느냐.”


푸릉이는 오소리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마기를 품었다고 해서 먹었을 때 마기가 감도는 것은 아니었다. 마기라고는 해도 옅은 것이었기에 죽었을 때 대부분 공기 중에 사라졌기 때문. 거기에 혹시나 하여 노인이 가진 물건으로 정화를 조금 해두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맛이 더 좋구나.”


오소리 고기는 오히려 부드럽고 쫄깃하니 감칠맛이 있었다. 기운을 품은 동물이나 식물이 더욱 좋은 맛을 내는 것은 마의 기운이든 정순한 기운이든 상관없는 걸까. 아무튼 몸보신이 필요한 차에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노인은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네가 잡은 것이니 많이 먹거라.”

“푸릉!”


푸릉이는 잘 구워진 오소리 고기를 열심히 섭취했다. 오소리의 간이나 내장 등 노인이 먹기 어려운 부위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지금까지 기운이 깃든 먹거리를 많이 먹었으니 강력하게 성장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던 찰나 노인의 목에서 가래가 끓었다.


“쿨럭! 쿨럭! 크흠··· 또 기침이.”

“푸릉···”


푸릉이는 고기를 먹다말고 노인의 곁을 지켰다. 노인은 멋쩍게 웃으며 감추려하였으나 소매에 묻은 것은 피였다. 나빠진 몸은 좋아질 기세를 보이지 않고 점점 쇠약해지기만 하니, 노인은 제가 밟아온 세월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10년을 버텨 겨우 회복될 뻔했던 단전. 다시 상태가 안좋아진 지금, 노인은 또 10년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무인으로서의 죽겠다는 고집은 세월을 건너 풍화되었고, 남은 것은 추억과 아집, 낡은 오두막, 그리고··· 푸릉이 뿐이었다.


“괜찮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푸릉! 푸릉!”


노인은 푸릉이의 몸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혼자였다면 인생의 말로를 쓸쓸히 보냈어야 했겠지만,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직 자신을 걱정해주고, 위로해주고, 곁에 있어줄 이가 남아있어서. 노인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며칠이 지나 노인은 병세가 악화되어 앓아 눕게 되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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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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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79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1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2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8 3 12쪽
7 7. 심법 23.03.27 113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7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1 4 12쪽
»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49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1 4 12쪽
1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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