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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잠꾼 님의 서재입니다.

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귤잠꾼
작품등록일 :
2023.03.18 18:20
최근연재일 :
2023.04.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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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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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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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수 :
86,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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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9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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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 괴생명체의 조우

DUMMY

명산이 많은 중원(中原)에서도 손에 꼽는 명산을 오악(五嶽)이라 칭한다. 그 중에서도 서쪽에 있어 서악(西原)이라 불리는 산이 있었으니.


서악의 수많은 봉우리 중 어느 한 곳의 정상에 자그마한 오두막이 자리했다. 구름보다도 높이 솟아 사람의 발길이 쉬이 닿지 않을 봉우리에 덩그러이 놓인 집 한 채.


오두막의 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모습을 보였다.


곱게 차려입은 무복과 허리에 메인 검 한 자루로 노인이 무인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오두막에서 나온 노인은 구름과도 같은 발놀림으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그가 습관처럼 하는 아침 산책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 정상에서 나무가 무성한 중턱까지 내려오니.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어우러지며 노인의 귀를 즐거이 해주었다. 평화로운 자연의 정취에 흠뻑 젖어 노인의 발걸음도 자연스레 느릿해지던 그 때.


“꾸이익, 꾸이익!”


웬 돼지 멱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요 근방에서 종종 발자국이 보이던 멧돼지의 것이 분명했다. 산의 기운을 머금어 영물(靈物)로 변해 난폭해진 멧돼지. 필시 녀석이 산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을 마친 노인은 소리의 근원지로 발을 놀렸다. 걸음 한 번에 풍경이 바뀌고 나뭇잎이 스치울 정도로 빠른 속도. 이윽고 도착한 숲속에서 멧돼지를 마주한 노인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멧돼지 앞에 있던 것은 뱀도, 새도, 개구리도 아닌 이상한 것이었다. 노인이 평생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보지못한 괴생명체. 멧돼지는 그것에 겁을 먹어 몸을 잔뜩 부풀리며 울부짖었던 것이었다.


“이게 무어란 말인가.”


노인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하며 괴이한 생명체를 관찰했다. 1척이 조금 되지 못하는 동그란 구체 형태의 무언가. 재질이 무엇인지 푸른 피부에 반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구체의 중심점에서 자그마한 보석 같은 것이 반짝였다.


“푸릉푸릉!”


별안간 괴생명체가 펄쩍 뛰며 노인 쪽으로 폴짝폴짝 뛰어오기 시작했다. 물수제비처럼 찰박거리는 소음과 함께 기묘한 소음을 내는 생명체.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로 노인을 선택한 것일까? 필시 서로 처음 볼 터인데 그런 판단을 할 이유는 무엇인가. 노인은 괴생명체가 그리 행동한 연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멧돼지 앞에서 뒤를 보이고 도망가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으니까.


“꾸이익!!”


멧돼지는 콧김을 뿜으며 자세를 움츠렸다. 직후 폭발적인 가속력으로 괴생명체에게 돌진했다. 포식자로서 군림한 본능에 가까운 행위였으리라.


풀이 짓밟히고 흙이 움푹 패인다. 저 속도라면 말랑해보이는 괴생명체는 순식간에 폭살(爆殺)할 것이 자명해 보였다. 괴생명체는 땅의 울림으로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폴짝거림이 멈추었다. 노인은 녀석이 무슨 행동을 할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푸··· 푸르릉···”


녀석은 그저 바들바들 떨며 몸을 최대한 바닥에 밀착시킬 뿐이었다. 몸을 떠는 것으로 보아 죽고 싶지 않은 것은 맞았다. 다만 무력의 차이가 너무 심하여 감히 대응할 염두가 안나는 것일까. 멧돼지보다도 한참은 약한 생명체임이 틀림 없었다.


‘흐음··· 살리느냐, 죽이느냐.’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침음을 삼켰다. 자연의 섭리를 생각해보면 야생동물의 생사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저 괴생명체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둘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노인은 결국 허리춤의 칼을 뽑았다.


서걱-


가로로 휘둘러진 검격은 한 줄기 바람처럼 멧돼지에게 닿았다. 멧돼지는 검풍에 닿고도 자신의 죽음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왜 자신의 시야가 바닥에 곤두박질 치고 있는지, 왜 비릿한 혈향이 느껴지는지, 왜 배와 다리 부분이 시야에 잡히는지. 멧돼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숨을 거두었다.


입부터 시작해서 멧돼지의 꼬리 부근까지 가로로 양단(兩斷)해버린 결과였다.


노인은 그자리에 그대로 서있을 뿐. 피로 점철된 맷돼지의 시체를 감정 없는 눈빛으로 훑었다.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노인. 그의 발치에 괴생명체가 자리했다.


“너는 누구더냐.”

“푸릉?”


영물이 대답해올리 없다는 것을 앎에도 노인은 물었다. 여차하면 괴이한 녀석을 단칼에 도륙내기 위해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노인의 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세가 흘러나왔고. 괴생명체는 그저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멧돼지의 공격에도 아무런 대처하지 않던 이상한 생물. 생존 본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공격 수단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생각에 잠긴 노인은 허리를 숙여 괴생명체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말랑한 감촉과 함께 선선한 기운이 손바닥을 기분좋게 감쌌다.


“호오···”


노인은 손바닥 위에 괴생명체를 올렸다. 그대로 눈높이까지 말랑한 생명체를 들어올린 노인. 일반적인 동물의 형상이 아니므로 영물일 터. 살아있는 영물이라면 인간의 말뜻을 어느 정도 눈치채기 마련이었다.


“너는 인간의 적인가?”

“푸릉?!”


생물체는 곧바로 양옆으로 몸을 격하게 흔들었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탄력적으로 흔들리는 괴생명체의 육신을 바라보며 노인은 질문을 이었다.


“내 말을 알아듣는 것이냐.”

“푸릉 푸릉!”


이번에는 생명체가 위아래로 몸을 퉁겼다. 키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모습을 보며, 그제서야 노인은 눈 앞의 괴생명체의 의도를 깨달았다. 고개를 가로젓는 행위와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 즉 예와 아니오를 통해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기하구나.”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닌 기이한 외형은 물론, 표정과 신체부위, 발성기관도 없다. 어떻게 살아 있는지가 의문인 기이한 생물체. 그러면서도 인간의 말을 이해하고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니··· 노인은 녀석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그간 혼자 지내면서 적적하기도 하였으니.’


외딴 산 꼭대기에 오두막을 짓고 산지도 어언 십 년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사람을 한 번도 못 만난 것은 아니다만, 이따금씩 혼자 있을 때마다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달을 벗삼아 술을 마시고, 숲을 벗삼아 노래부르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흥취도 한계가 있었다.


“나를 따라오겠느냐?”

“푸, 푸릉! 푸릉!”


그래서 였다. 적적한 차에 이상한 생물이라도 같이 지내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노인의 제안에 괴생물체는 손바닥 위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노인의 입꼬리에 흐릿한 미소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는 웃옷의 품 속에 괴생물체를 살며시 넣어 놓았다.


“이상한 수를 쓴다면 네놈을 도륙낼 수도 있단다.”

“푸릉···”


슬라임이 미약하게 떨어오는 것을 느끼며 노인은 다시금 뒤로 돌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험준한 산세를 오르기 시작했다. 가뿐한 걸음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품 속의 괴생명체도 왼쪽 오른쪽 이리저리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감각에 간지러움을 느끼면서도 노인은 발걸음을 쉬지않고 놀렸다.


‘과연 이놈은 무얼 먹을까···’


새로 생긴 식구가 어떤 먹이를 주식으로 삼는지에 대한 고민. 생각이 많은 노인이 멍하니 산을 등산하던 도중에, 괴생명체가 옷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불상사가 있기도 했으나··· 부지런히 산을 오른 결과 꼭대기의 오두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인의 새로운 가족이 집에 첫 발을 내딛었다.



* * *



오두막에 도착한 노인은 괴생명체를 오두막 안으로 들였다. 방방 뛰며 오두막을 돌아다니는 괴생명체. 마치 기운 넘치는 개를 보는 듯한 감각에 노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리 좋더냐? 별 볼일 없는 방이다만.”

“푸릉!”


노인의 방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벽면 이곳저곳이 갈라져 진흙을 덧바른 티가 났고, 방은 객잔 방만큼 좁았다. 이불이나 베개 등의 필요한 물품이 구비되어있긴 했으나 딱 그 뿐. 이 외에는 주방겸 아궁이가 오두막 옆에 조그맣게 딸린 것이 전부였다.


“푸릉! 푸릉!”


그럼에도 괴생명체는 방안을 쉴 새없이 뛰어다니며 좋아했다. 특히 이불을 좋아했는데, 노인이 잘 개어놓은 이불위에 몸을 비볐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노인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이놈, 더러운 몸으로 어딜 비비느냐.”

“푸릉···?”


노인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녀석을 슬며시 들었다. 거친 산의 흙바닥을 굴러다녔으니 필시 이불도 먼지투성이가 되었을 터. 급히 이불빨래라도 해야 하나 노인이 한숨을 쉬며 자신의 요를 살폈다.


“허어···”


허나 그곳에는 먼지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던 듯 깨끗했다. 도리어 오랫동안 사용해서 생긴 오래된 얼룩이 조금 지워져 있었다.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던 때였는데 어찌 괴생명체가 닿자 사라진 것인가. 노인은 깨끗해진 이불자욱과 괴생명체를 번갈아 쳐다보았고···


“잠시 몸을 빌리마.”

“푸, 푸릉?! 푸릉푸릉!”


노인은 잠시 미안한 마음을 품으며 괴생명체를 자신의 이불에 비볐다. 통통 몸을 튀기며 반항하던 녀석이었으나 힘이 미약하여 역부족이었다. 수십 초 정도 문지르고 나서 이불을 펼친 노인은 기함했다.


“정말로 얼룩을 지워주는 구나···”


괴생명체로 문질렀던 부분과 문지르지 않았던 부분의 차이가 선명했다. 오래 사용한 만큼 새것처럼 변하진 않았으나 말끔히 사용한 중고품 정도로 격이 상승한 것. 노인은 앞의 생물을 주워와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푸릉!!”

“아이고, 알았다. 내 너를 막 다루지 않으마.”


물론 그것은 노인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꼼짝없이 갇혀 문지름당해야 했던 생명체의 마음은 좋지 않았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노인의 종강이를 연신 폴짝거리며 두들기고 있었다. 물론 탱탱하고 탄력적인 몸이라서 전혀 아프지 않았다.


“푸릉푸릉 거리는 것이 특징이니··· 이름은 푸릉이가 어떠하느냐.”

“푸릉?”


노인이 노골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앞으로 같이 살 식구인데 계속 괴생명체라고만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름을 지어주려는 것. 괴생명체··· 푸릉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노인의 허리춤 부근까지 통통 튀어올랐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 중에서 최고 높이의 뜀박질이었다.


“푸릉푸릉푸릉!!”

“그래 좋아하니 다행이구나.”


참 기운찬 녀석이로고. 살풍경한 방 안에 기운 넘치는 푸릉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노인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물건의 얼룩을 지워주는 것도 좋긴 하다만 말벗은 쉬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 더욱이 이렇게 인적 없는 험준한 산세에서는.


“아침 산책에 시간을 많이 썼군. 푸릉아, 먹고 싶은 것이라도 있느냐?”

“푸릉?”

“아궁이에 먹을 것들이 꽤 있으니 거기서 골라보거라.”


노인은 앞장서서 오두막 바깥에 자리한 아궁이를 보여주었다. 뒤따라온 푸릉이는 아궁이 옆에 놓인 식재료들을 골똘히 살폈다. 노인이 손수 공수해온 나물과 손질한 고기들이 즐비했다. 그제서야 노인은 멧돼지 고기를 두고왔음을 떠올렸다.


‘아뿔싸, 내 푸릉이에게 정신이 팔려 시체를 그대로 두고 왔구나.’


내버려두면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되겠지만 괜히 찝찝했다. 그리고 산속에서 신선한 고기를 얻는 것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었고. 어차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오래걸리는 것도 아니니 잠시 갔다와야 겠다. 생각을 마친 노인이 정신을 차려 보니 푸릉이는 한 식재료 앞에 멈춰서 있었다.


“···정말 그것이 네녀석의 주식이란 말이더냐?”

“푸릉!”

“허어··· 참으로 기묘한 생물이로다.”


나름 산 속에서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 차곡차곡 잘 정리되어있는 식재료 중에서 푸릉이가 고른 것은 다름아닌··· 먹다 남은 음식물과 뼈들을 모아둔 항아리였다. 앞서 이불의 얼룩을 빨아들인 것처럼, 푸릉이는 아무래도 청소에 특화되어있는 생물인 것 같았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작가 귤잠꾼입니다.

본 작품은 비정기 연재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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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고수는 슬라임을 키우기로 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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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完.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3 23.04.11 125 7 21쪽
14 14. 매화검법 23.04.10 79 3 14쪽
13 13. 말코 23.04.08 75 3 13쪽
12 12. 겨울에 찾아온 괴한 23.04.07 79 3 13쪽
11 11. 겨울의 초입 23.04.06 81 5 12쪽
10 10, 지키기 위한 검술 +1 23.03.31 82 3 11쪽
9 9. 깨달음과 성장 23.03.30 92 3 11쪽
8 8. 검법 23.03.28 99 3 12쪽
7 7. 심법 23.03.27 113 3 10쪽
6 6. 스승과 제자 23.03.24 128 4 11쪽
5 5. 심마(心魔) 23.03.23 122 4 12쪽
4 4. 노인은 괜찮다. 23.03.21 135 3 12쪽
3 3. 노인과 푸릉이의 변화 +1 23.03.20 149 3 14쪽
2 2. 푸릉이 23.03.19 161 4 12쪽
» 1. 괴생명체의 조우 23.03.19 25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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