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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who작가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즈(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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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라끌리에
작품등록일 :
2015.01.04 23:44
최근연재일 :
2015.01.27 20:07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3,412
추천수 :
229
글자수 :
348,419

작성
15.01.14 19:10
조회
330
추천
2
글자
7쪽

E. 닫는 이야기(황혼에 머무는 자)

DUMMY

말 많고 탈 많았던 반란 사건이 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몇 주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간 나는 어떻게 살았냐고? 그야 그럭저럭 잘 살았지, 뭐. 아, 편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사건 후로, 하얀 괴도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처럼, 나 혼자서 반란을 진압하고 사령관님을 구해냈다는 쓸데없이 과장된 소문이 온 동네에 퍼져버렸으니까. 매스컴에서 나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는 것은 그야 불 보듯 뻔한 일 아니겠어?


그렇게 기자들과 마이크에 둘러싸여 복작대는 나날을 보내다가, 나는 결국엔 우리 마을의 사령관이란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내가 이 과분한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제퍼나이어 사령관님의 역할이 컸다.

물론 사령관님께서 내게 임명장을 직접 건네주신 것도 있었지만은, 퇴임 예정일보다 그는 훨씬 빨리 사령관이라는 직책에서 물러났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는 나도 잘은 모르지만, 하여튼 그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른 마을로 도망치듯 거처를 옮겼다. 아마 저번에 악당들에게 사로잡혔던 충격이 꽤나 크셔서 그랬던 것 같다. 나중에라도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 어디 사시는 지도 알려주질 않으시니 원.


카이닌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고 싶진 않다. 그 애는 또 뭐가 불만인지 다시 히어로 블루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영웅 일에서 손을 떼 버렸으니까. 그는 이제 영웅 제복을 아예 걸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사령관님이 일찍 퇴임하신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랫사람이었던 카이닌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에 사령관님의 책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카이닌은 완전히 악의 편에 서서는 영웅들의 일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었다. 실비엔은 드디어는 포기를 했는지 별로 슬퍼하지도 않았다. 하여간 그 녀석은 소꿉친구 마음고생 다 시켜놓고 아예 배신을 때리다니 정말 죽일 놈이다.


사령관의 일은 아직까지는 별로 힘든 것은 없었다. 지침서에 써져 있는 대로, 악당들이 출동했다는 신호를 받으면 영웅들을 분배해서 출동시키고 실적을 착실하게 올려나가면 되었으니까. 영웅 시절과 하는 일에 대해서 별다른 차이는 없었기에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사령관이란 자리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내가 출격시킨 영웅들이 악당들을 많이 잡아올수록, 내 실적은 올라가는 것이었다.


제퍼나이어 사령관님께서 내게 이 자리를 물려주시면서 경고하시길, 절대 상부에서 어떤 압력을 넣어오든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듣자하니 일정한 실적을 내오지 못할 경우, 정부에서 적잖은 입김이 불어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악당 때려잡는 데 도가 튼 영웅 아닌가! 내가 어디 악당을 놓치기야 하겠어? 이젠 마인드 리더같이 머리 좋은 악당은 우리 마을이건 이웃 마을이건 더는 모습을 보이질 않는데 말이다. 다 고만고만한 악당들뿐이지.

그러나 사령관님께선 뭐가 그리 걱정이신지 내게 몇 번이고 강조하셨다. 절대, 영웅이 되기 위해 악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난 아직까지도 그가 그때 내게 하려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날씨가 화창한 오후, 나는 여느 때처럼 집무실에서 서류결제를 하고 있었다. 이런 재미없고 따분한 일을 반복하던 찰나, 반가운 손님이 본부에 찾아왔다. 아마 내가 이웃 마을로 가고 나서 잘 찾아가지 못한 유일한 지인일 것이다. 엔젤라 커멘더!

내가 엔젤라에게 차인 뒤로 이전과 같이 성가시게 찾아가지는 않았으니, 나는 그녀가 그녀 나름대로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못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폐인이 되어서는 내가 다시 찾아왔다.

내가 우는 그녀를 달래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계속해서 물어 봤지만 그녀는 고개를 흔들기만 할 뿐, 그간의 근황을 절대로 입 밖에 낼 생각을 하질 않았다. 할 수 없지, 뭐. 말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지. 분명 말 못할 사정이 있을 테지.


나는 그래서, 전에 라일리 선배가 내게 해주었던 충고를 착실하게 지켜나갔다. 엔젤라가 내게 상처 주는 그 어떤 말을 퍼붓더라도 나는 변함없이 그녀의 곁에 있어주었다. 하루 종일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녀의 옆에 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건 무슨, 부부싸움이라도 난 것만 같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엔젤라의 손을 잡고 뒷동산으로 석양을 구경하러 갔다. 왜 굳이 석양이냐고? 내 취향이다. 존중하시지. 내가 일에 치여 바쁘게 살더라도 꼭 한 달에 서너 번 씩은 뒷동산에 나와서 지는 해를 바라보곤 했다. 내 마음을 잔잔하게 안정시켜준다고나 할까? 눈부시게 내리쬐기만 하던 태양빛이 점점 사그라지면서 고요한 어둠이 깔리는 것을 감상할 때의 그 감동이란!

엔젤라도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꽁꽁 얼어붙은 입을 차즘 녹여버리는 듯 했다. 고마워요. 그녀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그 말을 내뱉곤 다시 입을 얼려버렸다. 그리곤 얼른 얼굴을 굽힌 무릎에 파묻어버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부끄러워 하기는.


나는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반쪽짜리 태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해가 뜰 때도 이런 식으로 뜨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문득 레치드 생각이 났다. 처음으로 악당의 집에 발을 들여 보았지. 뭣도 모르고. 지금 생각하면 레치드의 집에서 그와 참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었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난다. 레치드는 내게 무인도에서 태양이 뜨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걔는 제 하고 싶은 일을 이뤘을까?


“레치드라는 악당을 알아?”


내가 넌지시 물었지만 엔젤라는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고 대답을 하질 않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혼잣말을 공중에 흩뿌렸다.


“석양이 드리워질 때 퇴각하면서도, 다음날 낮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활개를 치고 다니곤 했었는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얌전히 앉아만 있던 엔젤라는, 내가 말꼬리를 흐리기가 무섭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얜 또 왜 우는 거야. 보는 내 마음까지 아파지잖아. 내가 위로한답시고 그녀의 등을 쓸어주자 그녀가 다시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가냘프게 내놓았다. 제가 버렸어요. 제가 버렸다고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나는 슬픈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 외에는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황혼에 내려앉는 땅거미들이 우리의 그림자 길이를 야금야금 늘려가고 있었다. 점차 가물어가는 햇빛이 상처받은 우리의 등을 따스하게 비추어주었다.


-히어로편(1부) 完


작가의말

히어로편(1부) 완결입니다
바로 빌런편(2부) 프롤로그 올리겠습니다
히어로편 다 안 읽으셔도 빌런편 읽는 데는 전혀 지장 없습니다
주동인물과 반동인물, 서술 분위기, 문체가 바뀝니다
등장인물과 배경, 시대, 세계관 같은 나머지 요소는 모두 히어로편과 동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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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P. 여는 이야기(악당 이야기) 15.01.14 439 2 4쪽
» E. 닫는 이야기(황혼에 머무는 자) 15.01.14 331 2 7쪽
20 11. 혁명 혹은 반란 15.01.14 420 3 8쪽
19 10. 배반자 15.01.13 472 3 12쪽
18 9. 은폐와 무지 15.01.13 424 2 14쪽
17 8. 지갑-(2) 15.01.12 506 2 9쪽
16 8. 지갑-(1) 15.01.12 426 3 13쪽
15 7. 잠입-(2) 15.01.11 408 3 10쪽
14 7. 잠입-(1) 15.01.11 583 3 10쪽
13 6. 툰드라-(2) 15.01.10 575 3 12쪽
12 6. 툰드라-(1) 15.01.10 479 3 19쪽
11 5. 레치드!-(2) 15.01.09 359 3 15쪽
10 5. 레치드!-(1) 15.01.09 478 3 11쪽
9 4. 구출과 구애-(2) 15.01.08 378 3 10쪽
8 4. 구출과 구애-(1) 15.01.08 667 6 10쪽
7 3. 마인드 리더-(2) 15.01.07 362 5 10쪽
6 3. 마인드 리더-(1) 15.01.07 662 9 16쪽
5 2. 영웅의 임무-(2) 15.01.06 859 11 13쪽
4 2. 영웅의 임무-(1) 15.01.06 1,152 11 11쪽
3 1. 경찰차-(2) +1 15.01.05 1,189 26 14쪽
2 1. 경찰차-(1) +1 15.01.05 2,483 22 15쪽
1 P. 여는 이야기(영웅 이야기) +2 15.01.05 3,624 4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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