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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who작가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즈(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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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라끌리에
작품등록일 :
2015.01.04 23:44
최근연재일 :
2015.01.27 20:07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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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글자수 :
348,419

작성
15.01.0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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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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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2. 영웅의 임무-(2)

DUMMY

그리고 수련회 날 당일, 나는 내가 했던 말을 땅을 치며 후회하기까지 이르렀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던가. 이놈의 머리가 방정이지. 학교 측에선 캠핑 도구와 장작만 몇 개 던져주고선 우리끼리 살 길을 찾아보라고 무책임하게 지껄여댔다.


이걸 지금 수련회라고 보낸 건가 지금. 영구동토층의 위엄을 자랑하는 듯 지금 내 가방에 있는 화이트 복장 중 겉옷만이라도 꺼내서 걸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담임선생님께서도 이 혹한 캠프라는 데에 따라오셨다는 것이다.

물론 학생들의 안전 차원에선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른 과목 선생님이 아니라 담임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덜 억울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번 수련회는 꽤나 재미있을 거라고 강력히 주장하시던, 우리 담임선생님 말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배정된 장작을 한 데 모으고 베이스캠프를 잡느라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카이닌과 함께 불을 내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었다. 라이터를 가져오겠다던 놈이 라이터를 그만 눈 속에 파묻어버려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한 놈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면 안 된다니까. 내가 투덜대며 나뭇가지를 비비고 있는데 불현듯 저 편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벌레 따위를 보고 놀라는 소리라고 넘어가기에는 상당히 심상치 않은 소리였기에, 나와 카이닌은 불 피우던 것을 중단하고 소리 나는 쪽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해 우리가 목격한 장면을 분석하자면 이런 것이었다. 악당 세 명이 우리 주변을 배회하다가 홀로 서 있던 우리 반 학생에게 걸린 것이다. 악당들은 조용히 하라고 협박했지만 이미 흉악한 인상과 무기들을 본 우리 반 여자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여자애가 잡혀 가는 줄만 알고 막으려다 도리어 인질로 잡히는 나비효과까지 일어나고야 말았다.


그리곤 나와 카이닌이 보는 앞에서 그 악당들은 담임선생님을 데리고 도주를 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카이닌이 재빨리 주머니에 있던 작을 추적기들을 던져 세 명 중 한 명의 뒷덜미에 제대로 안착했다는 점이었다.


돌발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본부에는 아직 연락이 닿질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여긴 외딴 지역인 툰드라라고! 실비엔은 어찌할 줄 모르고 영웅을 찾으며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별 수 있나? 우리들이 가야지 뭐. 영웅인 주제에 출동 명령만 기다리면서 손가락만 빨고 있으면 안 되지 않은가.


“실비엔! 우리가 영웅들을 불러올게! 넌 반 애들이랑 꼼짝 말고 거기 있어!”


내가 카이닌과 함께 베이스캠프 반대쪽으로 달려 나가며 소리쳤다. 변신할 때마다 한적한 곳을 찾아야 되니 이거 원 성가셔 죽겠다.



“어쩔 셈이야! 이번에 걸리면 자그마치 70년형이라고. 애들 선생은 대체 왜 잡아온 거야? 평생 감옥에서 썩고 싶어!”

“이 여자가 앞길을 막아서 그랬다, 어쩔래? 가뜩이나 보는 눈도 많던데, 영웅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 눌러앉아 있으면 바로 쇠고랑 차는 거라고!”


나와 카이닌은 침엽수 뒤에 숨어서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역시나, 두명의 악당들은 저마다 말다툼을 하는 데 정신이 팔려 담임선생님을 나무에 묶어 놓곤 별 신경을 쓰질 않았다. 그나마 선생님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악당은 한 명뿐이었다. 카이닌이 내게 작전을 속삭여 왔다.


“우선 담임선생님부터 구해야 해. 감시하는 악당부터 처리하는 거야. 내가 담임선생님을 애들한테 데려갈 테니까, 넌 그동안 저 두 악당을 상대해줘.”


그 정도야 거뜬하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교적 긴박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킴이 악당 한 명은 카이닌이 그의 입을 막고 내가 뒷목을 세게 쳐서 기절시켰고 선생님은 무사히 풀어드렸다. 블루가 담임선생님을 안전한 곳에 모셔두러 갔으니 이제 남은 문제는 내 앞에 있는 이 악당들이란 말이지. 그 둘은 험한 인상을 구기며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다급한 쪽이 먼저 움직인다고 했던가, 저쪽에서 단도를 빼들고 선취권을 잡기 위해 내게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내게 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 같았다. 시작과 동시에 비어버린 내 왼쪽 허리를 노렸으니까.

하지만 내가 얼른 그의 손목을 잡아채곤 뒤로 엎어버렸다. 나머지 하나는 장검의 길이를 이용해 그의 무기를 떨어뜨린 후 순식간에 항복을 받아내었다. 그 악당이 무릎을 꿇으며 원통하게 한 마디 뱉어내었다.


“이게 다 너희 영웅들 때문이야! 너희들이 굳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우린 저 여자를 곱게 풀어주려고 했었어!”

“하긴 우리 담임선생님이 좀 못 생겼……이 아니라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치사하게 둘이서 덤벼든 주제에 할 말은 아주 다 한다!”

“악당들이 원래 좀 비겁하거든…….”


그가 갑자기 은밀한 미소를 지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내가 직관적으로 상체를 뒤로 틀려고 했을 때, 내 바로 뒤편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났다. 그리곤 내 뒤에 아까 처리했던 한 악당이 손을 감싸 쥐고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아하, 배후를 노리려고 했었군. 이 자식들이! 그 악당의 옆엔 내 것이 아닌 칼이 칼집에 싸여 떨어져 있었다. 카이닌이 나를 구하기 위해서 던진 것이었다. 그가 뒤쪽에 칼을 날린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으니까.


“아, 안 돼! 이렇게 끝날 수는……”

“탈옥범 주제에 말이 많구나, 이 악당들아!”


세 명의 악당들은 카이닌이 불러온 처리반들에게 사이좋게 끌려갔고 뒤늦게 쫓아온 반 아이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고마워요, 경찰차! 실비엔은 블루와 화이트가 익히 아는 소꿉친구들인지도 모른 채, 카이닌과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씨구, 다들 사족을 못 쓰는구나. 내가 이 맛에 영웅 한다니까.


결국 급작스러운 악당들의 횡포와 경찰차 콤비의 활약 덕분에 혹한 캠프는 취소되고 안전한 캠프장으로 대신 가게 되었다. 물론, 따뜻한 곳으로 말이다.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이렇게 경찰차 콤비의 인기도와 명성은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다. 날씨는…… 아마 화창했던 것 같다. 제퍼나이어 사령관님께서 이번에는 우리에게 악당 진압 지령을 내리셨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에게 임무를 주는 사령관님의 표정이 상당히 어둡다는 것이었다.


“대규모 시위 진압이라도 되는가보죠? 표정이 왜 그러시죠? 우리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거죠, 그렇지요?”

“응? 아, 아니다. 시위 규모는 작아. 너무 작아서 탈이지. 광장에서 열린 시위인데 문제는……”


사령관님은 끝까지 말하기를 무안해하시다가 우리에게 직접 현장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라는 말만 남기고 급히 자리를 피해버렸다. 나와 카이닌은 뭣도 모르고 사령관님이 시키는 대로 일단 광장에 가기는 가 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어린 아이들이 저마다 팻말을 들고 시위 중이지 않은가! 정말 말 그대로, 작은 시위였다. 아이들이 높이 치켜든 팻말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름을 달라! 우리 부모님을 괴롭히지 마라!


내가 원래 어린 애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말이야. 얘들은 너무 귀엽잖아! 나는 본분을 새하얗게 잊어버린 채, 깔깔대며 애들을 안아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그 애들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악동’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만만하게 보였는지 애들이 우리에게 여러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나와 카이닌은 아주 순식간에 한 밧줄에 둘이서 묶이게 되어버렸다. 그리곤 우리의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려 버렸다. 이거야 원, 애들을 상대로 싸울 수도 없고! 그래서 사령관님께서 그렇게 당황해 하셨구나.

한 남자 아이가 비장한 눈빛을 하고 우리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내 이름은 해리슨이다! 우리 엄마를 대신해 너희 영웅들을 심판하겠다!”


그 아이의 외침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우리에게 대야에 담긴 어떤 액체를 뿌려댔다. 볼에 닿는 미끌미끌한 감촉으로 보아 이것은 기름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들이, 우리가 밧줄에서 풀려나는 것을 어렵게 하기 위해 기름을 뿌린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 다음에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화형 시켜라! 화형이다! 우리에겐 당하고만 살지 않을 권리가 있다!”


뭐! 이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 없어! 마녀 사냥이라도 당하는 기분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나와 카이닌이 남자라는 사실이고 집행관은 우리보다 몇 배나 어린 꼬마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성난 꼬마 군중들을 향해 허겁지겁 외쳤다.


“잠깐만 얘들아! 이러지 말고, 가서 엄마말씀 잘 듣고 착하게 살아야지. 너희들이 벌써부터 이래선 안 되는 거야.”

“하지만 우리 엄만 돌아가셨는걸요!”


군중 속에서 여자아이의 외침이 들렸다. 이런. 거기까진 생각 못했는데. 내가 사과를 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블루의 물음이 더 빨랐다.


“어쩌다 돌아가셨는데?”


야! 너는 상황파악도 못하고 거기서 호기심을 채우려 하면 어쩌자는 거야! 내가 블루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블루는 군중 속에서 걸어 나온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아이가 울먹이며 막 대답하려던 참이었다.


“요놈들! 이런 멋진 장난은 어른이 되고나서 쳐라!”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석하게도 우리들의 뒤편에서 들려왔기에 우리가 고개를 돌려서 그를 바라보려면 저 반사광이 좀 잦아들어야만 했다.

암만 머리를 비틀어봤자 그는 검은 실루엣에 불과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앞쪽에 있는 꼬마 군중들은 단박에 실루엣의 정체를 알아보곤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마인드 리더다! 악명 높은 악당, 마인드 리더가 떴다!”


안경을 쓴 아이의 비명을 시작으로 시위대는 마법처럼 갈기갈기 해체되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혼비백산해 도망치는 데에만 열중해 있었다. 나는 그 마인드 리더라는 악당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애들이 찍소리도 못하고 도망가나 슬슬 겁이 나고 있었다.


교묘하게도 항상 출격 시간이 안 맞았던 것인지, 마인드 리더라는 악당은 나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악당이었다. 그 대신 카이닌은 ‘마인드 리더! 당신이 대체 왜!’하고 소리치며 아는 체를 했다. 음, 카이닌도 당황하게 만들 정도면 이제 저 악당은 설명을 해주는 대신 우리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키지 않을까?


그런데 뜻밖에도, 마인드 리더는 나와 카이닌이 묶여 있는 밧줄을 풀어 주었다. 나는 그제야 마인드 리더의 생김새를 처음 구경해볼 수 있었다. 아이보리색 머플러와 검은 코트를 걸친, 흑발의 중년 남자였다. 특별히 잘생겼다거나 하진 않은 그가 내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다른 유명한 악당들과는 다른 점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원래 영웅이건 악당이건 정체를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충분히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가면 대신 그의 까만 눈동자가 재치 있게 빛났다.


“우리를 왜 구해준 거지?”


카이닌이 경계하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닌의 한 손은 장검 손잡이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인드 리더는 비웃는 듯이 낄낄대며 고개를 저었다.


“착각하지 마. 나는 저 어린 녀석들을 구해준 거니까. 나중에 본부에서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려고. 쟤네는 끌려가기엔 아직 어린 애들이야.”

“웃기지 마.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기로 소문난 악당인 마인드 리더가 남을 걱정한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


카이닌이 금방이라도 그를 베어버릴 듯 몸을 낮추자, 마인드 리더가 손을 내저으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워워, 이러지 마. 난 오늘 너희랑 싸울 기분 아니니까. 본인이 말하는데 뭔들 말이 안 되겠어? 나를 상대할 기회는 아직 많으니까 서두르지 말라고. 나중에 너희들은 꼭 내 손으로 없애버릴 테니 기대나 하고 있으라고.”


이쯤 되면 연막탄이지, 그래. 한차례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리는 동안 마인드 리더는 잽싸게 달아났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기침을 해대며 카이닌을 바라보았다. 카이닌은 아직도 그가 서있던 자리를 무서운 얼굴로 주시하고 있었다.

어휴, 할 수 없지 뭐. 마인드 리더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하게 물어나 봐야겠다. 카이닌이 빠짐없이 대답을 해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작가의말

2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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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7. 잠입-(1) 15.01.11 58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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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6. 툰드라-(1) 15.01.10 479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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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5. 레치드!-(1) 15.01.09 478 3 11쪽
9 4. 구출과 구애-(2) 15.01.08 378 3 10쪽
8 4. 구출과 구애-(1) 15.01.08 667 6 10쪽
7 3. 마인드 리더-(2) 15.01.07 361 5 10쪽
6 3. 마인드 리더-(1) 15.01.07 661 9 16쪽
» 2. 영웅의 임무-(2) 15.01.06 859 11 13쪽
4 2. 영웅의 임무-(1) 15.01.06 1,151 11 11쪽
3 1. 경찰차-(2) +1 15.01.05 1,189 26 14쪽
2 1. 경찰차-(1) +1 15.01.05 2,483 22 15쪽
1 P. 여는 이야기(영웅 이야기) +2 15.01.05 3,624 4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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