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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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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라끌리에
작품등록일 :
2015.01.04 23:44
최근연재일 :
2015.01.27 20:07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3,401
추천수 :
229
글자수 :
348,419

작성
15.01.08 19:08
조회
377
추천
3
글자
10쪽

4. 구출과 구애-(2)

DUMMY

실비엔의 조언을 받들어 나는 라일리 선배에게 부탁하여 엔젤라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다. 그 편지는 일종의 초대장―러브레터가 아니라고!―으로, 짧게 요약하자면 공원 분수대 앞에서 오후 3시에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일대일 대면을 해서 나오라고 하는 것보다는 더 나올 확률이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전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자신이 예상한 대로 일은 굴러가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 그 명언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오후 3시. 분위기도 좋았고 날씨도 좋았다. 주변에는 기분 좋은 바람이 산들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하지만 엔젤라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는 그러나 아주 큰 시련의 상처를 받기보단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사람은 대체 누군가?


“저기…… 그럼 내가 무엇이 네게 그렇게 부족했는지 알 수 있을까? 좋지 못한 점이라면 고치고 싶어서 그래.”

“아, 아니에요. 머빈은 잘못한 거 없어요. 이건 정말 사실이에요.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운명을 전들 어찌하겠어요.”


뭐, 뭐야. 그럼 내 생김새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이 정도 얼굴이면 어디 가서 돌 맞을 외모는 아니라고 보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나는 그녀가 애매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는 캐묻지 않았다. 말해봤자 별로 좋은 소리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엔젤라를 마음속에서 털어버리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저런 천사를 한 번 보고서도 아무렇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은 내가 장담하건대 남자가 아닐 것이다. 그녀가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았음에서도 나는 그녀를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참으로 마약 같은 여자라니까.


내가 본부에서 얼굴이 반쪽이 되어 앉아만 있자 라일리 선배가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했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차였어요.


“뭐? 어쩌다가? 누구한테?”


실비엔 이 자식아 여자들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며! 나는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올리고 싶지 않은 이름을 언급했다.


“엔젤라 말예요. 전 좋아서 미칠 것 같은데 엔젤라는 절 좋아하지 않아요. 절 밀어내려고만 하죠.”


라일리 선배가 내 말을 듣곤 가벼이 웃었다. 비웃음보다는 내가 사랑을 한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그랬던 것처럼 보였다. 왜, 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소문이 나면 주변인들이 덩달아서 신나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쩐지 주말마다 찾아온다 했더니 그게 엔젤라 때문이었어?”


라일리 선배는 서류를 모아 정리하듯 책상에 가볍게 두어 번 치며 말했다.


“그럴수록 더 잘해줘야지. 다만 엔젤라가 고마워 할 거라고 기대하지 말고 잘 해줘야 해.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계속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고, 슬퍼할 때는 안아서 달래주고. 이런 게 사랑 아니겠어? 명심해. 밀어내는 경향이 있을수록 더 외로워하는 법이야. 내가 말한 대로만 하면 엔젤라는 언젠가 분명 마음을 열거야.”


그 언젠가가 언제냐가 문제죠. 나는 속으로는 투덜거렸지만 겉으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일종의 구출이네요. 구애라는 건…….”

“그런 셈이지. 잘해봐. 응원할게.”


라일리 선배가 눈 한쪽을 찡긋하며 나를 응원했다. 어휴, 민간인을 구출해내는 것처럼 쉽게 남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집에 돌아가자마자 나는 열심히 머리와 손을 써서 그녀에게 구애를 할 방법을 모색했다. 사실, 이미 방법은 다 머릿속에 구상해놓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택배를 부치는 것이었다. 그러니 라일리 선배에게 엔젤라의 집주소를 알아냈지 않은가―절대 나중에 그녀의 집에 찾아가기 위해서 알아낸 게 아니다.


당연히 나를 상자에 넣어서 내가 선물이라는 그런 유치찬란한 고백은 아니다. 너무 스토커 같아 보이잖아. 그 대신 택배에 꽃다발을 넣어 부치기로 했다. 플로라를 조금만 꼬드기면 그깟 꽃들 꽃집에 굳이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난관은 그에 딸려 보낼 손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으악! 어르신들한테 서장이나 전갈을 보내는 것은 막힘없이 써내려갈 수 있다. 그런데 난 정말이지 여자애들이 그렇게 잘 한다는 교환일기나 펜팔 같은 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시도조차 해볼 수가 없단 말이다.

하물며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쓰는 편지는 말을 해 무엇 하리! 플로라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나를 구경하며 깔깔 웃었다.


“오빠, 실비엔 언니한테 쓰는 거야? 나도 쓸래!”

“걔한테 이걸 쓸 시간에 인류의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만한 일을 하겠다.”

“방금 오빠가 한 그 말, 편지에 적어서 실비엔 언니한테 보내야지!”

“뭐? 야! 너 진짜 편지지 마음대로 가져가지 말란 말이야! 그거 당장 안 내려놔!”


결국, 꽃말에 박학다식한 플로라의 강요로 편지를 포함해서 해바라기를 한가득 넣어서 보냈다. 해바라기는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해바라기에 얽힌 전설을 들어 보니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서부터 도출된 꽃말이었다.


플로라 이 녀석, 나를 도와줄 마음으로 그런 건가 아니면 골탕 먹일 마음으로 그런 건가? 하지만 의심하기에는 이미 택배를 부친 후였다.



다음 날, 낭만적인 사랑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이 터져서 나는 엔젤라에 대해 더는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집단 거주지에 뭉쳐있던 악당들이 아주 무더기로 마을 거리에 창궐한 것이다. 주동자들 중에는, 저번에 비밀 병기들의 설계도를 나타낸 문서들을 훔쳐갔었던, 얼굴에 흉터가 나있는 악당도 있었다.

내 역시 그럴 줄 알았지. 그렇게 발뺌하더니 결국엔 이런 일을 저지르고야 말지! 들리는 바로는 그때 이후로 감옥에 갔다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탈출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래서 경찰서는 믿을 수가 없다니까. 믿을 건 바로 우리, 경찰차이지!


하지만 그렇게 떵떵 자신만만해봤자 카이닌과 나는 의경과 합류해서 악의 무리를 제거하기보단 민간인을 구출하느라 바빴다. 악당들이 저마다 각목을 들고 보이는 것마다 때려 부셔버렸기 때문이었다. 죽어나는 건 민간인들이었다. 어쩜 저리도 피도 눈물도 없을 수가 있을까.

하긴, 그러니까 ‘악당’이라고 불리는 것 아니겠어. 꼴에 그들이 결성한 무리의 이름도 있는 모양이었다. 악당 권리 보장 혁명 동지회라는 것이다. 주변에 피해나 주지 말고 그런 이름을 갖다 붙이던지!



진압이 끝나고 대부분의 악당들은 수갑에 묶인 두 손을 뒤로하고 잡혀갔다. 아마 감옥 내지는 본부로 끌려가는 거겠지. 그들은 패배해서 연행되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얼굴에 오만과 경멸을 분장처럼 덕지덕지 붙여놓고 있었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카이닌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뉘우치는 표정이라도 지으면 동정심이라도 생기지, 저건 뭐. 하나같이 다들 자기네들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다는 표정들뿐이었다.


난데없는 습격으로 인해 상해를 입은 민간인들은 저마다 길바닥에서 의료진들에게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그중에는 아녀자들도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엔젤라를 찾아내지 못하곤 안도했다. 설마 내 눈에 띄지 않은 곳에서 다쳐서 쓰러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미치자 나는 카이닌을 내팽겨 쳐놓고 엔젤라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미 카이닌이 나를 붙잡느라 외친 고함소리는 내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한 불행한 상상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엔젤라는 멀쩡히 집에 있었다. 그녀는 내가 어떻게 이곳을 알아냈는지 어리둥절하게 현관문을 잡고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 한 낯선 아저씨가 엔젤라의 집에 또 찾아왔다. 이 사람이 엔젤라가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행색을 보니 택배 상자를 들은 택배 배달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거 내가 보낸 거 아냐! 그런데 왜 이렇게 찌그러져 있는 거야!


택배 아저씨는 볼품없이 구겨진 택배에 대해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했다. 이번에 악당 무리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란다. 그 놈들이 배달 트럭까지도 부순 모양이었다. 어휴, 그 악당 녀석들을 그냥, 확!


택배 상자에는 시들고 잎이 거의 빠져버린 흉측한 해바라기들이 들어 있었다. 편지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아마 상자 귀퉁이에 뚫린 구멍 밖으로 탈출했겠지. 엔젤라는 형편없는 내용물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머빈, 정말 고맙지만 전 이런 거 필요 없어요.”

“그래, 알아. 모양이 좀 이상하긴 하다. 내가 내일 새 걸로 갖다 줄게.”

“아녜요. 새 걸 갖다 주셔도 전 받지 않을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머빈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굳이 제가 아니라도요.”


엔젤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또 실패다. 반란의 폭풍 속에서 그리도 많은 인질을 구해냈지만 정작 엔젤라 한 명만큼은 구해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순간까지도 날 바람맞힌 엔젤라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걸 어쩌란 날더러 어쩌란 말이야.


더는 그곳에 서 있기 망측해서 나는 망가진 해바라기를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퇴각했다.


작가의말

4화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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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P. 여는 이야기(악당 이야기) 15.01.14 439 2 4쪽
21 E. 닫는 이야기(황혼에 머무는 자) 15.01.14 330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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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8. 지갑-(2) 15.01.12 506 2 9쪽
16 8. 지갑-(1) 15.01.12 426 3 13쪽
15 7. 잠입-(2) 15.01.11 408 3 10쪽
14 7. 잠입-(1) 15.01.11 583 3 10쪽
13 6. 툰드라-(2) 15.01.10 575 3 12쪽
12 6. 툰드라-(1) 15.01.10 479 3 19쪽
11 5. 레치드!-(2) 15.01.09 359 3 15쪽
10 5. 레치드!-(1) 15.01.09 478 3 11쪽
» 4. 구출과 구애-(2) 15.01.08 378 3 10쪽
8 4. 구출과 구애-(1) 15.01.08 666 6 10쪽
7 3. 마인드 리더-(2) 15.01.07 361 5 10쪽
6 3. 마인드 리더-(1) 15.01.07 661 9 16쪽
5 2. 영웅의 임무-(2) 15.01.06 858 11 13쪽
4 2. 영웅의 임무-(1) 15.01.06 1,151 11 11쪽
3 1. 경찰차-(2) +1 15.01.05 1,189 26 14쪽
2 1. 경찰차-(1) +1 15.01.05 2,482 22 15쪽
1 P. 여는 이야기(영웅 이야기) +2 15.01.05 3,624 4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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