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r.who작가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즈(Heroes)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라끌리에
작품등록일 :
2015.01.04 23:44
최근연재일 :
2015.01.27 20:07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33,394
추천수 :
229
글자수 :
348,419

작성
15.01.12 19:29
조회
505
추천
2
글자
9쪽

8. 지갑-(2)

DUMMY

해가 점차 뒷산으로 넘어가자 그제야 나는 여자아이를 돌려보내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휴, 빵집에 식당에, 오늘 대체 얼마나 쓴 거야! 나는 남아 있는 현금을 확인하기 위해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지갑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다가 떨군 거지? 과도한 소비로 인해 지갑에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갑에는 내 신분증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지갑은 실비엔과 카이닌이 선물로 준 지갑이었기에 절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야단났네, 잃어버리면 가만 안 놔둔다고 했는데 말이다. 분실물 센터라도 찾아가 봐야 되나.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그 지갑을 다시 내 주머니에 넣을 수가 있게 되었다. 지갑을 잃어버린 지 며칠 뒤에 지갑이 숙소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어떤 고마운 사람이 내 분실물을 찾아 주었는지 봤더니, 한 쪽지가 같이 들어 있었다. 그 종이에는 딱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빠, 미아내요.

나는 그제야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도난당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디서 배운 건지 맞춤법조차 틀리고 글씨체도 이상한 그 쪽지는 분명히 그 여자아이가 쓴 것이었다.

이 녀석! 내가 그렇게 도둑질 하지 말라고 일러두었건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지갑을 열어 보았다. 역시나 현금만 사라져 있었고 신분증을 포함한 그 외의 것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쨌든 지갑을 돌려받았으니 나는 그것으로 그 아이를 용서할 수밖엔 없었다. 아직 애인데 어떻게 책임을 물겠어.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맞아요. 재앙이에요, 재앙.”


사람들이 저마다 탄식하며 수근 댔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대강 흘려들으며 판자에 대고 망치질을 해댔다. 아직 반도 채 완성 못했는데 오늘 저녁까지 얼마나 끝낼 수 있으려나…….

아, 지금 내가 뭘 하는 짓이냐면 집을 수리하는 중이었다. 이 마을에 영웅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악당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자연 재해 중 하나인 태풍이었다. 내 고향 마을에 눈보라가 자주 몰아닥친다면 여긴 차가운 태풍이 자주 몰아닥쳤다. 민간인들과 관련된 일인지라 영웅들이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우리는 그러나 초인이 아니므로, 태풍을 막는다거나 이러지는 못하지만 피해를 입은 건물들을 수리하거나 정비하는 일들을 한다. 일종의 의무 자원봉사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좋은 취지에서 하는 일이라 나는 되도록 수리 작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노력은 하고 있지만 폼이 안 나 보이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악당 퇴치가 힘들어도 재미있긴 한데 말이다. 이를 악 물고 목재들을 나르는데 저편에서 마을사람들이 못질을 하며 투덜거렸다.


“에고, 힘들다. 이게 다 그 악당 집단들 때문이지.”

“맞아요, 틀림없어요. 분명 우리에게 나쁜 주술을 걸었을 거예요.”


마을 사람들의 악당들에 대한 원망과 저주는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그 악당 집단’이라니 나는 그런 집단이 있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 그 악당 집단들이 뭐하는 놈들이냐고 묻자 그들이 이를 갈며 이렇게 말했다.


“마을에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악당 소굴이 있어요. 밤마다 모여서 뭔가 의식을 치르는데 그건 태풍을 부르는 주문이 틀림없어요.”


우리 마을에도 악당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는데 이 마을에도 비슷한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악당 집단을 소탕해야 한다는 둥 이구동성으로 힐난을 해대자 키가 작은 한 소년이 소심하게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저 소문에 불과 한다던데……”

“예끼. 틀림없다니까. 어른들 말에 토 좀 그만 달아라.”


소년의 옆에 있던 노인이 경을 치자 소년은 꼬리를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그 소굴이라는 거, 말로만 들으니까 궁금한데.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 내가 택한 일은 뭐다? 뭐긴 뭐야 바로 그 악당 소굴이라는 데를 직접 답사하러 가는 거지. 악당에 대한 소문이라면 좋은 소문이건 나쁜 소문이건 뒤를 밟는 것이 영웅들의 의무이기도 하고 말이다.

혼자서 으스스한 밤길을 걷자니 암만 내가 영웅이라도 땀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위기 상황에 대비해서 나는 히어로 화이트의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이 알려준 그 소굴에 찾아갔다.


악당의 소굴은 소문과는 살짝 차이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음침하고 스산한 기분이 드는 곳이라고 평을 내렸는데, 오히려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더러운 건 여전하지만. 그들은 우리 마을과 비슷한 다리 밑에 신문들을 깔고 앉아 있었고, 옅은 오렌지색 램프를 주변에다가 은은하게 켜 놓았다. 거기서, 무슨 주문을 외우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잘 들어보니 그것은 주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읽는 소리였다. 내가 뭔 일인가 싶어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았다. 거기엔 어른이라곤 단 한명도 없었다. 전부 다 허름한 천 조각을 걸친 가난한 아이들뿐이었다. 이 애들이 악당이라고? 이게 웬 임시 소학교야? 그들은 바닥에 너덜너덜한 책을 펼쳐놓고 열심히 읽고 있었다. 내가 얼떨떨해서 그림자에 숨는 것도 잊고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악당들은 소리 없는 경악을 내질렀다. 다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떡해, 영웅이다, 영웅이야.


나는 겁에 질린 그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가면을 벗었다. 원래 이러면 안 되긴 하지만 차마 그 가련한 모습들을 계속 볼 수는 없었다. 그러자 그 악당 무리 중에서 한 여자아이가 아는 척을 했다.


“머빈 오빠야!”


이 아이는 그때 그…… 내 지갑을 훔쳐갔던 녀석이잖아! 여자아이는 내게 쪼르르 달려 와서 난데없이 무릎을 꿇었다. 지갑을 가져간 일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런데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뜻밖이었다.


“오빠, 정말 미안해요. 오빠가 영웅인 줄 저도 몰랐어요. 우리들 신고하지 말아주세요…….”


그 애의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내 지갑에 몇 남지 않았던 돈을 털어서 바닥에 널브러진 중고 책들을 샀단다. 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우린 그저 글을 배우고 싶었어요! 다른 짓은 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런 애들을 보면서 왠지 마음이 심란해졌다. 다들 돈이 없어서 학교도 못 가고 있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악당들이라도 의무 교육은 있을 텐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난 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최대한 친절하게 그들을 설득했다.


“글을 배우는 건 좋지만 잠시 동안은 해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을 사람들이 너희들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어. 감당하기 어렵다면 다른 곳에라도 가서 책을 읽으렴.”


아이들은 내가 그들을 꾸짖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하나같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신문지를 치우고 등불을 거두는 동안 그 여자아이는 내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런 애를 어떻게 미워하겠어, 아무리 도둑이라도 말이야.

나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내가 너 이름 지어줘도 될까?”

“정말, 정말요?”


여자아이의 눈은 기대로 가득 차서는 반짝반짝 빛났다. 이름 짓기를 못하는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아주 멋진 이름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월렛(wallet). 어때, 마음에 들어?”


내가 미소를 지으며 생각해둔 이름을 말하자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곤 얼굴을 발갛게 붉히며 내가 자신의 친오빠였으면 좋겠다는 수줍은 고백까지 해왔다. 꼬였던 매듭을 풀 듯 일이 좋게 끝났으니 이만한 다행이 또 있으랴. 나는 안도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아해줘서 다행이다.


그러나 여자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보니, 한구석으로는 레치드에게 이런 일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레치드도 내가 이런 식으로 진짜 이름을 지어주었으면 좋아했을까? 아이들에게 방금 생긴 자신의 이름을 자랑하러 다니는 월렛을 보며, 나는 한동안 꺼림칙함이 가시질 않았다.


작가의말

8화 끝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히어로즈(Heroes)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P. 여는 이야기(악당 이야기) 15.01.14 439 2 4쪽
21 E. 닫는 이야기(황혼에 머무는 자) 15.01.14 330 2 7쪽
20 11. 혁명 혹은 반란 15.01.14 419 3 8쪽
19 10. 배반자 15.01.13 472 3 12쪽
18 9. 은폐와 무지 15.01.13 424 2 14쪽
» 8. 지갑-(2) 15.01.12 506 2 9쪽
16 8. 지갑-(1) 15.01.12 426 3 13쪽
15 7. 잠입-(2) 15.01.11 408 3 10쪽
14 7. 잠입-(1) 15.01.11 582 3 10쪽
13 6. 툰드라-(2) 15.01.10 575 3 12쪽
12 6. 툰드라-(1) 15.01.10 479 3 19쪽
11 5. 레치드!-(2) 15.01.09 359 3 15쪽
10 5. 레치드!-(1) 15.01.09 478 3 11쪽
9 4. 구출과 구애-(2) 15.01.08 377 3 10쪽
8 4. 구출과 구애-(1) 15.01.08 666 6 10쪽
7 3. 마인드 리더-(2) 15.01.07 361 5 10쪽
6 3. 마인드 리더-(1) 15.01.07 661 9 16쪽
5 2. 영웅의 임무-(2) 15.01.06 858 11 13쪽
4 2. 영웅의 임무-(1) 15.01.06 1,151 11 11쪽
3 1. 경찰차-(2) +1 15.01.05 1,189 26 14쪽
2 1. 경찰차-(1) +1 15.01.05 2,482 22 15쪽
1 P. 여는 이야기(영웅 이야기) +2 15.01.05 3,623 46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