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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who작가 님의 서재입니다.

히어로즈(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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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라끌리에
작품등록일 :
2015.01.04 23:44
최근연재일 :
2015.01.27 20:07
연재수 :
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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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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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글자수 :
348,419

작성
15.01.1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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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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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10. 배반자

DUMMY

가장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는 일은 어디에서나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아담과 이브의 큰아들인 카인(Cain)이 그랬고 시저(Caesar)의 양자인 브루투스가 그랬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이닌 블루라는 내 소꿉친구에게 말이다!


며칠 뒤, 나는 본부에서의 긴급호출을 받고 내가 살던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그 긴급 상황이라는 게, 나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카이닌이, 영웅을 때려 쳤단다. 집에도 도통 돌아오질 않는다고 한다. 악당의 꾐에 넘어가서 악에 현혹되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반항이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사령관님께선 카이닌은 악의 길에 빠지면 아주 위험한 인물이 될 테니, 그를 가장 잘 아는 내가 설득을 좀 해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하기야 검술에 꽤나 능수능란한 애니 악당이 되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도 내가 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을지 없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원래 말 잘 듣던 모범생이 한번 삐뚤어지면 걷잡을 수 없이 타락하지 않던가. 가뜩이나 목석같은 놈을 내가 어떻게 말로 설득할 수 있을는지…….



본부에서 사정을 들어 보니, 카이닌은 악당이 아니라 악당들을 도와주는 영웅이 되었단다. 언제부터 그런 식으로 어긋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라일리 선배의 말로는 서류를 몰래 빼돌려 레치드에 관한 신상을 털고 나서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카이닌이 민간인을 해치거나 인질을 잡거나 하진 않으니 악당이라고 하기엔 애매하지만, 그의 죄목인 공무집행방해는 충분히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할 이유가 되었다. 그는 영웅들이 악당들을 잡으러 올 때, 악당들의 편에 서서 영웅들을 저지했다. 그러나 악한 짓 따위를 도와주진 않았다. 참으로 이도저도 아닌 편에 서서 그는 홀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영웅 노릇을 그만두었다고 했으면서 항상 영웅 복장을 입고 영웅들과 싸웠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도 카이닌이 히어로 블루라고 생각한다. 그의 일탈이 영웅을 증오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더라면 진작 그런 복장 따위는 소각했어야 할 것 아닌가.



카이닌이 영웅 같은 악당이 되어 사라지고 난 뒤,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일게 된 곳은 카이닌의 집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카이닌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실비엔에게도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내 님이 이상한 길로 빠지더니 며칠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니! 실비엔은 울면서 친구를 배신하고 가족을 배신한 카이닌이 얼마나 못돼먹은 놈인지를 내게 하소연해댔다.


“난 정말 걔가 그럴 줄은 몰랐어. 나는 어쩌면 좋지? 내가 카이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내가 악당의 인질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좋아. 카이닌이 다시 히어로 블루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실비엔이 내 목을 끌어안고 처절하게 울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는 것 외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혼란스럽고 암울한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걱정 마. 내가 걔를 악당이 되도록 가만히 놔두겠어? 반드시 우리 친구를 되찾아 올 거니까 기다리고나 있으라고.”

“정말이지? 널 믿어도 되는 거지? 난 다시 경찰차를 보고 싶어. 히어로 화이트랑 히어로 블루가 활약하던 경찰차 콤비 말이야.”


사실은 카이닌이 보고 싶은 거면서 포장해서 말하기는. 나는 눈물을 글썽이는 실비엔에게 멋쩍게 웃어 보였다. 나도 그 시절이 그립기는 하거든. 임무 때문에 경찰차는 일시적으로 해체되었지만, 카이닌이 이대로 영웅이기를 포기한다면 영구적으로 해체될 지도 모른다.

반드시 그의 마음을 돌려놔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히어로 화이트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본부로 향했다.



“머빈, 이번엔 네가 나가거라.”


본부에서 악당이 나타났다는 사이렌이 울리자 사령관님께서 나를 지목하셨다. 이번 악당은 별로 그리 유명한 악당도 아니고 그저 집 털이범에 불과했다. 이런 악당들에게까지 카이닌이 신경 쓸까 싶었다. 내가 뒷머리만 긁적이자 제퍼나이어 사령관님이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카이닌은 악당이 누구든 간에 가리질 않아. 오히려 이런 사소한 범죄일수록 잘 나타나곤 한단다.”

“정말 알 수가 없네요.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걸까요, 카이닌은.”

“그걸 알면 굳이 널 번거롭게 이웃 마을에서 다시 불러낼 이유는 없었겠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난 이만 이웃 마을에 가봐야 한단다. 나대신 카이닌을 부탁한다, 머빈.”


사령관님은 내게 임무를 맡기면서도 열심히 이웃 마을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사령관님도 참으로 고생이 많으시구나. 가뜩이나 이웃 마을에 악당들까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는데 이쪽 마을에서도 심각한 일이 터지다니.

그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는 꼭 이번 임무는 실패로 처리해서는 안 되었다.


역시나 내가 집 털이범 악당의 목덜미를 잡고 훔친 물건을 회수하고 있는데 카이닌이 등장해 주었다. 그 악당은 교활하게도, 내 손아귀에서 버둥거려서 벗어나더니 카이닌의 뒤에 숨어버렸다.

카이닌은 그런 악당이 자신을 방패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뜩 굳은 얼굴로 내게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먼저 그런 그에게 인사를 던졌다.


“오랜만이네 블루. 그동안 잘 지냈어?”

“잘 지냈냐고?”


그가 얼굴에 냉소를 비치며 허리춤의 검을 빼들었다. 자, 잠깐, 벌써부터 왜 이러는 건데! 내가 그렇게 말을 잘못 한 거야? 당황한 내가 허둥지둥 그를 말렸다.


“이러지 마. 난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우린 둘도 없는 친구잖아!”

“내가 먼저 너를 배신한 이상 우린 더는 친구가 아닌 걸로 보는데.”


그게 배신인 줄은 잘 아는 모양이군. 그런 녀석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건데! 카이닌이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내가 이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테지. 난 그런 네게 내가 왜 그러는지 말해줄 수가 없어. 혼자 깨닫지 않는 이상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는 알아버렸으니까. 마인드 리더도 아마 나와 같은 심정이었겠지. 그래서 내게 실마리밖에 알려주지 않았던 거야.”

“아니, 나는 달라! 뭐라도 좀 알려 줘봐. 너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볼 수 있게!”


내가 간절하게 애원하자 그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내게 힘겹게 말을 꺼냈다.


“화이트. 우리는 깨끗한 바다에 튜브를 타고 떠 있어. 정말로 깨끗하고 얕아 보이지. 따뜻한 햇빛을 쬐면서 일광욕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지.”


문제는, 그것이 아주 뜬금없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갑자기 튜브 타령은 또 왜 하는 거지? 이게 자기가 영웅 일을 그만둔 것과 무슨 상관인 거야? 황당하다는 기색을 용케 감추며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 말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너는 수면 위에 떠 있어서 몰라. 그 바닷속이 얼마나 깊고 어두침침한지. 무시무시해 보이는 심해 생물들이 눈도 뜨지 못한 채 득시글대지. 그들은 우리가 항상 받는 햇빛을 단 한줄기조차 받아본 적 없어. 난 네가 없는 동안 해저를 보았어. 거긴 인간이 살 곳이 아냐.”


카이닌이 계속 딴소리를 해대자 이쪽은 상당히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발끈하며 그에게 화를 냈다.


“해저가 뭐 어쨌는데? 좀 더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 낚시를 하고 싶은 거야, 뭐야!”

“낚시?” 카이닌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아무리 낚싯대를 드리운다고 해도 그 해저 생물들을 구할 순 없었어. 레치드란 악당에게서 나는 그걸 뼈저리게 깨달았지. 나는 이젠 이전의 내가 영웅이었었는지도 모르겠어.”

“넌 영웅이야!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우린 블루 엔 화이트잖아! 경찰차 콤비!”

“이젠 아냐. 난 더 이상 이딴 위선자 노릇은 못 해먹겠다. 난 영웅이 아냐. 영웅의 탈을 쓴 악당에 불과하지. 그렇게 잘난 영웅 놀이를 하고 싶다면 너 혼자 해. 어디 하얀 경찰차를 끌고 끝까지 도로를 밟아보라고. 타이어에 펑크가 날 때까지!”


그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장검을 들고 내게 달려들었다. 공 그만 차고 검술 연습이나 더 하라고 하시던 아버지의 꾸지람이 그렇게나 절실하게 다가올 수가 없었다. 진짜, 무지막지하게 빠르다! 다행히도 첫 번째에 이어 서너 번 들어온 공격은 힘겹지만 잘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힘에 부쳐서 무리였다. 카이닌 녀석은 전혀 육체적으론 가뿐해보였지만 그도 심리적으론 오랜 친구였던 나를 공격하는 것이 좋지만은 않았는지 몇 번 빈틈을 내보였다. 그러나 그의 허술한 모습에도 나는 선뜻 그에게 검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이놈의 묵은 정이 문제였다.

지칠 대로 지친 내가 숨을 헐떡이며 말을 내뱉었다.


“제발 그만 해. 네가 영웅들과 싸운다고 해서 악당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차라리 악당들을 갱생시켜보는 것은 어때? 무작정 지키려고만 하지 말고……”

“갱생? 세상에 처음부터 악한 악당은 없어. 우리가 그들을 악하게 만든 것뿐이지.”


카이닌은 힘들어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카이닌이 세게 내 검을 쳐내자 그 반동으로 나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내 목에 장검을 들이밀었다. 금방이라도 목이 따일 것만 같았지만 난 한편으로는 아직도 그를 믿고 있었다. 그는 어느 길로 빠지든 나를 해칠 위인이 아니었다.


“잠깐, 기다려!”


그렇게 위태로운 순간, 누군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며 싸움을 중단시켰다. 난 처음에 그 사람이 실비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녀는 실비엔이 아니라 바로 라일리 퍼플 선배였다. 그녀가 카이닌의 검을 물리곤 가까이 다가섰다.


“너희,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진짜 큰일 났어. 당장 옆 마을로 가 봐야 해. 블루 너도!”

“왜 이러시는 거죠? 또 사령관님께서 제게 그렇게 명령을 내리시던가요?”


블루가 아랑곳하지 않고 반항의 눈초리를 내보였다. 그러나 라일리 선배는 물러서지 않았다. 연이어 그녀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반항하려는 그의 입을 봉했다.


“아니, 사령관님과는 연락이 끊겼어. 현재 옆 마을은 악당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야. 그들은 사령관님을 인질로 잡고는 저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담은 계약서에 서명을 하라고 협박을 하고 있어. 뒤늦게 연락을 받은 본부의 영웅들이 출동을 하긴 했지만 그 악당들이 옆 마을의 출입구를 봉쇄해버렸지 뭐니.”


라일리 선배의 말에 카이닌은 그만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구나. 어쩌면 그들은 사령관님께서 옆 마을로 점검을 가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조짐만을 보였던 거겠지.

이런 교활한 놈들 같으니! 사령관님께 강제 서명을 하라는 그 계약서의 내용은 안 봐도 뻔했다. 분명 본부의 운영권을 포기하라는 내용일 것이다. 영웅들이 쇠퇴한 틈을 타서 우리 마을까지도 점령하려고 할 테지.


나는 그들의 치밀함에 이를 갈았다. 그렇게 위급한 소식을 들었는데 멍청하게 손 놓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지. 나는 떨어뜨린 내 검을 주워들며 카이닌에게 말했다.


“들었지, 블루? 악당은 어디까지나 악당일 뿐이야. 아직도 그런 녀석들을 옹호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그건……”

“됐어. 아무 말도 하지 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네가 좋든 싫든 우린 다시 손을 잡아야 돼. 사령관님께서 위험에 처하셨잖아. 악당들을 위하느라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돼. 우리들의 본분을 잊지 마.”


나는 강제로 카이닌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라일리 선배의 지도로 우리는 신속하게 기차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렇게 경찰차 콤비는 재결성된 채, 옆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10화 끝입니다

내일 11화와 에필로그가 올라오고

1부(히어로편)는 완결이 납니다

9화부터는 분량이 짧아서 두개씩 올리는 게 낫겠더라구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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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배반자 15.01.13 472 3 12쪽
18 9. 은폐와 무지 15.01.13 423 2 14쪽
17 8. 지갑-(2) 15.01.12 505 2 9쪽
16 8. 지갑-(1) 15.01.12 426 3 13쪽
15 7. 잠입-(2) 15.01.11 408 3 10쪽
14 7. 잠입-(1) 15.01.11 582 3 10쪽
13 6. 툰드라-(2) 15.01.10 575 3 12쪽
12 6. 툰드라-(1) 15.01.10 479 3 19쪽
11 5. 레치드!-(2) 15.01.09 359 3 15쪽
10 5. 레치드!-(1) 15.01.09 478 3 11쪽
9 4. 구출과 구애-(2) 15.01.08 377 3 10쪽
8 4. 구출과 구애-(1) 15.01.08 666 6 10쪽
7 3. 마인드 리더-(2) 15.01.07 361 5 10쪽
6 3. 마인드 리더-(1) 15.01.07 661 9 16쪽
5 2. 영웅의 임무-(2) 15.01.06 858 11 13쪽
4 2. 영웅의 임무-(1) 15.01.06 1,151 11 11쪽
3 1. 경찰차-(2) +1 15.01.05 1,188 26 14쪽
2 1. 경찰차-(1) +1 15.01.05 2,482 22 15쪽
1 P. 여는 이야기(영웅 이야기) +2 15.01.05 3,623 4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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