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귀여운 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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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이사와 축 이사의 경우 램니서치를 인수하려는 재성의 의도는 눈치챘지만, 킬라일을 이용해 시간과 돈을 아끼면서 토시바를 인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왜요? 불가능한가요? 그럼 상당히 실망인데요?”
“시, 실례지만 저희 자산이 얼마인지나 알고 계십니까?”
“186억 달러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시가총액 500억 달러가 넘는 회사를 인수하라고요? 사실 저희도 일본에서 쓸만한 회사가 없나 물색하던 중이라 이미 알아본 바가 있습니다. 주식 51%를 사려고 해도 255억 달러가 필요합니다.”
“그거야 69억 달러만 빌리면 되지 않습니까?”
“186억 달러는 이미 대부분 다 투자가 된 상태입니다.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255억 달러를 빌리면 되지 않습니까?”
“....”
기가 막힌지 또 다시 입을 쩍 벌리고 쳐다본다.
재성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보니아디 이사님이 결정하기 힘드실테니 본국에 연락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자, 잠시만요. 미스터 천! 아까 그 밀실 좀 씁시다.”
그는 천 이사의 안내를 받아 옆 방으로 가더니 한참 후에 돌아왔다.
재성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두 사람의 형태를 보아하니 미국 WH에서는 핵심멤버들이 모여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터였다.
문제는 지금 미국 시간이 밤 10시를 넘었다는 사실이었다.
세계의 대통령을 자부하는 부시가 잠도 안자고,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 회사 대표에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통쾌하지 않은가?
“뭐라고 하던가요?”
“이건 엄청난 모험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잘못될 경우 탄핵까지 갈 수 있는 일이라 대표님이 말한 대가로는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런가요? 어떤 대가를 원하셨나요?”
“불확실한 5% 보장이 아니라 확정적인 15% 프리미엄을 원하셨고요.”
여기서 재성은 하마터면 웃을 뻔 했다.
‘아이고! 이 욕심만 많은 양반아! 그냥 내 말대로 했으면 50%를 앉아서 먹을텐데 지 복을 지가 걷어차네.’
3년 후 토시바는 무려 50%나 주가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2003년 5월부터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때가 되면 재성의 자산은 더 크게 불어나기 때문에 토시바의 시가총액이 50% 상승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굳이 부시가 지 복을 걷아차겠다니 어찌 말리겠는가?
거기에 한국인인 자신이 직접 토시바를 인수하려고 했다가는 일본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수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아니 그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결코 한국에 토시바를 넘기는 것을 허용치 않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가 미국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은 일본도 미국에 꼼작 못할 시기니까 더 상황이 유리했다.
속마음과 달리 재성은 인상을 북북 쓰면서 말했다.
“아니 15%라니 너무하시네요. 저는 어디 땅 파서 장사합니까?”
“어쨌든 15% 프리미엄을 원하셨고요. 또한 3년 동안 255억 달러에 대한 연이자 6%도 대표님이 부담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야 껌 값이지. 기꺼이 부담 해드리리다.’
당연히 속마음과 겉으로 나오는 말은 달랐다.
“진짜 너무하시네요. 대신 램니서치를 제가 인수하더라도 미국 국내 법인으로 인정해 주십시오. 그럼 받아들이겠습니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외국법인 미국사업장은 이런저런 불이익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법을 고쳐서 미국 국내 법인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입니다. 주식 비율만 조정하면 되지 않습니까? ‘미국인 혹은 미국법인이 51% 이상 주식을 소유한 경우에만 미국법인으로 본다’라는 규정을 30%로 고쳐주십시오.”
“자, 잠시만요. 이것도 제가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보니아디는 다시 밀실로 갔고 윈스톤과 천 이사, 축 이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한 표정으로 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참 통화하던 보니아디가 돌아와 말했다.
“그럴 경우 20%의 프리미엄을 보장하라고 하셨습니다.”
오~! 이건 좀 세다.
뭐 그래봐야 13억 달러 차이다.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값어치가 있었다.
램니서치를 미국법인으로 인정받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향후 재성이 전개하는 사업의 키포인트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저를 괴롭게 하시는군요. 거절할 수도 없고... 이거야 원! 어쩔 수 없지요. 받아들이겠습니다.”
온갖 인상을 다 쓰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보니아디와 윈스톤이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재성은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다 아파서 그러는 것이었는데...
“대표님의 조건을 받아줄만한 곳은 저희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만한 대가를 너무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하아~! 위로해 주시니 고맙기는 한데 너무 큰 출혈이라...”
“나중에는 분명 대표님께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오오~! 정답! 보니아디 당신을 메인의 현인으로 인정하겠습니다.
재성은 속으로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말했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요. 축 이사님! 두 분을 청석으로 모시고 가서 기진산 대표변호사님의 입회하에 국제상사법원에서 구속력 있는 계약서를 작성하세요.”
“예! 대표님. 두 분 저와 함께 가시죠.”
세 사람을 엘리베이터까지 전송하고 온 재성은 참지 못하고 낄낄거리며 웃고 말았다.
“아하하하~! 아이고 배야!”
“대, 대표님?”
천 이사가 당황해 어쩔 줄 모른다.
“아하하? 미, 미안해요. 너무 재미있어서요.”
“뭐, 뭐가 말입니까?”
“아니 그렇잖아요? 부시와 그 일당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갖 신경을 다 쓰고 있었을 거 아니에요?”
“....”
물론 그거 보다야 지 복을 지가 스스로 걷어차고 보니아디가 위로해 준 것이 더 웃기지만!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던 재성은 방 이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잠시 후 연락을 받고 방 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동산 펀드는 어쩌고 있죠?”
“백화점 인수가 일단락되고 대출한도가 차서 어제부터 63빌딩과 국동빌딩을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두 빌딩뿐만 아니라 백화점까지 재평가를 빨리 끝내고 추가 대출금액으로 대후전자의 직영점 23개부터 인수하세요. 청담동 사거리와 홍대거리는 조금 미룹시다.”
“예? 대후전자의 직영점 말입니까?”
“맞아요.”
“아까 회의에서 축 이사가 보고했다시피 23개의 가격이 무려 1조 1113억원이나 됩니다.”
당초 직영점 35개 중 덩치가 작은 12개는 이미 팔렸고, 시내 중심가의 요지에 있거나 덩치가 커서 막대한 액수가 필요한 놈들만 남은 상태였다.
원래 역사에서 이들 중 상당수는 외국계 헤지펀드에 팔렸다가 나중에 LT, 새세계 등에 팔려 쇼핑몰로 변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역사는 달라지고 있었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제가 치매도 아닌데 겨우 몇십분 전의 일을 까먹었을라고요?”
“빌딩과 백화점 전체를 20% 상승한 것으로 재평가해도 추가대출 가능한 금액은 5616억 밖에 안됩니다.”
“40% 상승한 것으로 재평가하세요.”
“예에?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HSBS은행에서 결코 인정하지 않을텐데요?”
시피은행에서 부동산펀드 대출을 거절하자 재성은 HSBS은행에서 대출을 받도록 했다.
JI은행 인수에 실패한 뒤 한국에서 먹을 게 없나 어슬렁거리던 HSBS은행은 근대증권 부동산펀드의 제안을 낼름 받아들였다.
금액이 크다보니 6% 이자라도 상당한 수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들이 대출한 금액은 2조 5100억원이나 되었다.
“이 추가 대출분에 대해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제가 책임지겠다고 하세요.”
“...각서를 요구하면 어쩝니까?”
“써주세요. 단 제 자산을 담보로 잡게 해서는 안됩니다.”
“신용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방 이사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부동산 펀드가 직영점 구입을 완료하면 즉시 수한과 위탁운영계약을 체결하시고요.”
빙그레 웃는 재성의 말에 그는 인상을 쓰다가 나갔다.
그러자 천이사가 다시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대, 대표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직영점 매입도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더니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하실 줄이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디보자! 그럼 토시바와 직영점은 해결 되었네요? 투산도 해결되었고. 그럼 남은게... 아직 겁나게 많네요. 지금 몇시죠?”
“10시 5분 전입니다.”
“이크! 보컬 트레이닝 시간이네요. 저 내려갑니다.”
재성은 후다닥 달려나갔다.
뒤에 남은 천이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그동안 정영주의 샵에서 의상을 가져오면서 조영희의 코디네이팅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블랙비트와 정지운, 최동운, 백댄서 5인방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물론 재성이 보기에는 아직도 촌스럽고 껄끄러운 점이 있었지만 조영희가 처음 가져왔던 의상들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었고, 조영희의 의상 고르는 솜씨도, 그 요구에 맞추어 디자인하고 만드는 정영주의 실력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파란 바탕에 단 금빛 단추가 유난히 거슬렸다.
“누나! 이거는 곤란하네요. 금빛 단추가 너무 튀고 시선을 빼앗아가요. 다시 해달라고 하세요.”
“알았어.”
그러자 이번에는 은빛 단추를 달아왔다.
도긴개긴이었다.
“누나! 이거나 그거나요? 왜 이런데요? 정영주씨 갑자기 권태기가 오셨나? 아니면 그새 매너리즘에 빠지셨나? 다시 해달라고 하세요.”
“아, 알았어.”
다시 해온 단추는 붉은 금색이라 더 튀었다.
짜증이 난 재성이 말했다.
“아니 누나! 진짜 왜 이런데요? 가서 장난하냐고 물어보세요.”
“이씨! 알았어! 겨우 단추 하나 가지고 왜 그래? 네가 더 이상하다.”
조영희도 짜증을 내면서 나갔다.
한 30분 있으니 씩씩거리며 그녀가 직접 쳐들어왔다.
“대체 어떤 놈이야! 엉? 나보고 장난하냐니? 내가 이거 만든다고 얼마나 고심했는데? 앙? 대체 누구야? 이리 나와!”
컥? 영주가 이런 성격이었나?
아니 전생에서는 그렇게 친절하더니?
다 가면이었던 거야?
“저, 전데요?”
재성이 쭈볏거리며 나가자 멱살을 잡으려던 정영주가 눈이 똥그래지며 말했다.
“어? 설마 그때 그 작업남?”
“자, 작업남이라니? 당신한테 아무 관심 없는데요?”
“에이! 거짓말! 익시 아저씨가 나한테 작업 걸려는 거라던데?”
컥? 이익시 회장이 사람 잡네?
아니 내가 어디 봐서 작업이나 걸고 다닐 사람이야?
이래봬도 임자 있는... 그러고 보니 이 생에서는 아직 얼굴도 한번 못봤구나.
재성의 얼굴이 아련해지자 정영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 봐! 이것 봐! 내 말이 맞잖아? 작업남! 당신 정체가 대체 뭐야? 그때는 떠오르는 재계의 신성이라고 하더니 갑자기 무슨 아이돌이야? 너 설마 사기꾼?”
그 말에 재성이 발끈해 소리쳤다.
“여보쇼! 사기꾼이라니? 나 사기꾼 아니거든? 그리고 당신 말이야. 내가 엄연히 한 살 위로 아는데 어디서 반말이야?”
“어머머! 펄쩍 뛰는 걸 보니 맞네. 맞아.”
“미치겠네. 아니라니깐? 애들아! 말 좀 해줘라.”
재성의 말에 멤버들과 정지운, 최동운, 백댄서들이 웃었다.
“야~! 형 임자는 따로 있었네? 세상에 재성 형을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영주씨! 파이팅!”
“박남홍! 너 죽을래?”
재성이 그를 향해 주먹을 내밀며 흔들었지만 녀석은 혀를 낼름 내밀며 약을 올렸다.
한바탕 소동 끝에 양실장이 와서 대충 사정을 설명해 주고 나서야 정영주는 조금이나마 믿는 눈치였다.
“그건 그렇고 당신 말이야! 아니 금색 단추면 어떻고, 은색 단추면 어떻고, 적금색 단추면 어때서 그 난리야? 이 단추들 하나하나 얼마나 정성 들여서 만들었지 알기나 해? 육십 먹은 노장인(老匠人)이 하루 종일 두들겨서 겨우 만든 거라고. 이게 우습게 보여?”
“하아~!”
재성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애들아! 이 옷 입고 촬영한다. 바로 준비해라.”
적금색 단추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 줘야할 것 같았다.
재성의 말에 멤버들도 궁금했든지 곧장 옷을 갈아입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집의 <beast beat>에 따라 춤추고 노래하며 무대를 꾸몄다.
당연히 유리벽 뒤에서는 촬영을 했다.
그런 뒤 테이프 하나를 가지고 와서 비디오로 틀어주었다.
그걸 본 정영주와 조영희는 눈이 커졌다.
“어? 이게 왜 이래? 왜 색이 퍼지는 거지?”
파란 바탕에 튀는 단추를 달았더니 움직일 때마다 단추의 색깔이 길게 따라오면서 잔상을 만들었다.
자연히 무대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보이는 것은 단추 밖에 없었다.
전생에 엔터업계를 3년간 전담하면서 얻은 지식이었다.
“정영주씨! 이제 알겠수? 이래서 내가 그랬던 거유!”
“히잉~! 이게 왜 이러지?”
“떽! 어디서 귀여운 척이야?”
재성은 그녀의 머리에 꿀밤을 멕였다.
물론 아주 약하게였다.
재벌 따님을 꿀밤 멕인 사람은 재성뿐일터였다.
- 작가의말
제 글은 요새 트랜드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1회에서 하나의 에피소드가 완성되면서 직관적이고 바로바로 결과가 나오는 형식이 아닙니다.
주인공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으며 몇화, 혹은 나중에 가야 결과가 나옵니다.
예를 들자면 비싸기만 하고 별 볼일 없는 램니서치를 있는 대로 돈을 탈탈 털어넣어 인수하고, 미국 국내법인으로 인정받으려는 이유 등이지요.
제가 직관적인 글을 쓰는 능력은 없으니 이런 점을 감안하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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