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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cea 님의 서재입니다.

세티아 왕국의 작은 영주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렌시아a
작품등록일 :
2020.05.11 22:43
최근연재일 :
2020.05.27 21: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732
추천수 :
73
글자수 :
303,156

작성
20.05.12 06:00
조회
142
추천
3
글자
8쪽

막간

DUMMY

결투가 끝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태양은 이미 저물어 하늘의 주황빛이 점점 보랏빛으로 물들어갔다.

결투의 결과는 제피란의 승리. 방패를 던짐으로서 루틴 교수의 시야를 가리고 그 찰나의 순간 품에서 준비한 권총을 꺼내 사격했다.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런 재치가 나온 것일까? 세실리아는 피식 실소하며 와인잔을 기울였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뜨거운 알콜이 톡 콧잔등을 쏘는 것 같다.


“···과음하십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윌리엄은 작은 목소리로 제지했다.

훈련을 끝마쳤는지 후줄근한 운동복 대신 깔끔하게 차려입은 예복은 세삼 그가 고위 기사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세실리아는 자신을 제지하는 옛 친구를 힐끔 곁눈으로 보고는 이내 그의 충고를 무시하며 와인잔을 채웠다. 또르르, 적막한 방안에 와인이 굴러가는 소리만 잔잔히 흘렀다. 세실리아는 와인잔을 들어 그 색을 음미하듯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곤 시선조차 주지 않고 옆의 옛 친구에게 물었다.


“···루틴 자작은?”


“오늘밤 급히 아카데미로 떠나셨습니다.”


충직한 기사의 대답에 세실리아는 “흐응.” 콧바람을 불었다.

결투에서 제피란이 쏜 총은 빗맞았다. 루틴 교수가 자신을 겨눈 총구에 간신이 몸을 틀어 피한 것이다. 물론 무리한 움직임에 금방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까지 찧었지만······. 그런 그에게 소년은 다시 한 번 총구를 들이대었고,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루틴 교수는 항복을 선언했다.

세실리아는 그 때의 결투를 회상하며 작게 웃었다.


“저기, 우리아들, 어땠어?”


다시 한 번 와인을 털어 마시곤, 잔득 취기가 오른 목소리로 윌리엄에게 물었다. 그러나 충직한 기사는 그런 귀부인의 모습에 굳게 입을 닫았다.

비겁하다. 그것이 알펜시아 백작가의 대부분이 생각하는 제피란에 대한 평이었다. 그도 그럴게 결투에서 권총을 숨기고 임하고 또 그것으로 상대를 사격하다니, 어딜 어떻게 보아도 정정당당한 결투가 아니다. 아니, 애당초 이 결투는 무효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윌리엄은 입을 열지 않았다. 또한 예전부터 그런 윌리엄을 잘 알고 있기에 세실리아 역시 윌리엄의 소리 없는 답변에 실소할 뿐이다.

또르르, 다시 한 번 와인병을 기울여 잔에 루비 빛 액체를 채운다.


“있잖아, 우리아들 대견하지 않아? 어린나이로 자기 나이의 3배나 되는 성년을 이겼잖아.”


“······비겁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세실리아의 물음에 윌리엄은 어렵사리 대답했다. 그런 윌리엄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던 세실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와인잔을 기울였다.


“어린아이와 결투는 비겁하지 않고?”


“······.”


만약 세영이 정정당당히 결투에 임했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 했을 것이다. 진검은 말할 것도 없고 목검이어도 반신불수의 병신이 되었을지도······. 결투에서 도망쳤다고 하더라도 가득이나 입지가 좁은 알펜시아 백작가에서 완전히 매장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윌리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 충직한 기사양반께서 보시기에는 비겁한 행동이겠지.”


침묵을 일관하는 윌리엄을 돌아보지도 않고, 세실리아는 빈정대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원망어린 소리 탓일까? 윌리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원망스러우십니까?”


그 모습이 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나 의외였을까? 세실리아는 놀란 표정으로 윌리엄을 돌아 봤다. 그러나 이내 피식 실소하며 “설마.”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러울 정도로 쓰게 웃으며 다시금 와인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백작님께서 제안하신 목검 결투. 부인께서 주도하신겁니까?”


세실리아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미어지는 윌리엄은 화제를 돌리듯 물었다. 그런 윌리엄의 물음에 세실리아는 재미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글세? 설마하니 그 너구리가 그렇게 쉽게 들어준 게 이상하긴 하지만······.”


세실리아가 백작에게 부탁했다. 하다못해 목검으로 결투하게 해달라고, 이제 열 살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물론 그 백작이 진짜로 들어줄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세실리아에게 있어서도 이번 결투에서 백작의 제안은 예상 밖이었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태지만,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복잡한 머리를 환기시켰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제 아무래도 좋았기 때문이다.


“있지, 나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


“알고 있지? 어차피 나는 이 집안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거.”


“······.”


백작이 원하는 건 로렌시아 영지. 그걸 위한 제피란이라는 정통성이다. 백작가에 있어서 그러기 위한 연결고리가 세실리아라는 목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정식으로 양자로 입양한 제피란에 세실리아는 실상 백작가에 필요 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아니, 애초에 엔시스 남작가가 몰락하고 로렌시아 지방의 정통성을 미끼로 백작에게 제안한 것은 다름 아닌 세실리아 그녀 자신이었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엔시스 남작이 영지민들 손에 처형되고, 간신히 도망쳐 어린 아들 하나 데리고 백작가의 문을 두드렸다. 남편인 펠튼 경이 단두대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음에도 세실리아는 그렇게 간신히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가지 못 할걸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이상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지고 간혹 기침에 피가 섞여 나온다. 병이라고 하기에는 그 시기가 이상할 정도로 딱 들어맞지 않은가? 아이러니하게도 살기위해 도망쳐 온 곳이 사지였던 것이다.

정말 멍청하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세실리아는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그것이 얼마나 허탈한지, 웃음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분명 미량의 독성이 들어있을 와인을 계속해서 잔에 채웠다.


“윌리엄. 너도 참 재미없는 남자야······.”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그것은 그에 대한 실망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을까? 이미 잔뜩 취기가 오른 그녀조차도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이 드셨습니다.”


무리하듯 과음하는 세실리아를 더 이상 지켜보지 못 한 윌리엄은 손을 들어 잔을 옮기는 팔을 제지했다. 그 탓에 쨍그랑,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와인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이 깨졌다.

제법 요란한 소리에 하녀들이 들어올 법도 하건만, 방안은 안타까울 정도로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백작가에서 고립된 듯, 그 방은 외로울 정도로 고요했다.

먼저 그 고요함을 깬 것은 세실리아였다.


“···나를 안을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와인 향과 함께 매혹적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제피란의 앞에서는 언제나 순진한 어머니인 세실리아는 도저히 그녀라고 생각되지 않을 도발적인 미소를 지은 채 윌리엄에게 달콤하게 속삭였다.


“···나를, 좋아하잖아.”


윌리엄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나를 원해서, 주인을 배신한 거, 아니었어?”


감미로울 정도로 매혹적인 목소리는 흡사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윌리엄은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 저는······.” 나오는 소리라곤 평소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말더듬뿐이다.


“······바보 같은 남자.”


세실리아는 웃음을 거두곤 몸을 돌렸다. 그리곤 비틀거리는 몸으로 침대에 쓰러지듯 눕는다. 그런 그녀를 눈으로 배웅하고는, 윌리엄은 꾸벅 목례한 후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딸깍 하고 조심스럽게 닫히는 문고리의 작은 소리만이 천둥마냥 방안에 맴돌았다.


“······.”


마치 세상에서 고립된 것 마냥, 어두운 적막함만이 흐느끼는 세실리아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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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pilogue. +1 20.05.26 57 0 11쪽
35 Ep 1. 미운오리새끼(32) 20.05.26 33 0 10쪽
34 Ep 1. 미운오리새끼(31) +1 20.05.25 36 1 20쪽
33 Ep 1. 미운오리새끼(30) 20.05.25 26 0 17쪽
32 Ep 1. 미운오리새끼(29) +1 20.05.24 43 1 18쪽
31 Ep 1. 미운오리새끼(28) 20.05.24 38 0 23쪽
30 Ep 1. 미운오리새끼(27) 20.05.23 32 0 23쪽
29 Ep 1. 미운오리새끼(26) 20.05.23 34 0 27쪽
28 Ep 1. 미운오리새끼(25) 20.05.22 40 0 19쪽
27 Ep 1. 미운오리새끼(24) 20.05.22 38 0 25쪽
26 Ep 1. 미운오리새끼(23) 20.05.21 40 0 25쪽
25 Ep 1. 미운오리새끼(22) 20.05.21 41 0 19쪽
24 막간 20.05.20 44 0 20쪽
23 Ep 1. 미운오리새끼(21) 20.05.20 48 0 19쪽
22 Ep 1. 미운오리새끼(20) +1 20.05.19 55 1 21쪽
21 Ep 1. 미운오리새끼(19) 20.05.19 48 0 18쪽
20 Ep 1. 미운오리새끼(18) 20.05.18 63 3 17쪽
19 Ep 1. 미운오리새끼(17) 20.05.18 58 1 13쪽
18 Ep 1. 미운오리새끼(16) 20.05.17 65 1 12쪽
17 Ep 1. 미운오리새끼(15) 20.05.17 64 0 18쪽
16 Ep 1. 미운오리새끼(14) 20.05.16 70 0 13쪽
15 Ep 1. 미운오리새끼(13) 20.05.16 75 1 13쪽
14 Ep 1. 미운오리새끼(12) 20.05.15 79 1 20쪽
13 Ep 1. 미운오리새끼(11) 20.05.15 89 1 15쪽
12 Ep 1. 미운오리새끼(10) 20.05.14 92 4 19쪽
11 Ep 1. 미운오리새끼(9) 20.05.14 92 0 19쪽
10 Ep 1. 미운오리새끼(8) 20.05.13 102 2 25쪽
9 Ep 1. 미운오리새끼(7) +2 20.05.13 110 2 18쪽
8 Ep 1. 미운오리새끼(6) 20.05.12 139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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