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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cea 님의 서재입니다.

세티아 왕국의 작은 영주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렌시아a
작품등록일 :
2020.05.11 22:43
최근연재일 :
2020.05.27 21: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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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0
추천수 :
73
글자수 :
303,156

작성
20.05.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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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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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Ep 1. 미운오리새끼(10)

DUMMY

백작의 계획은 생각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엔시스 남작의 자손인 제피란이, 백작 자신의 손이 아닌 로렌시아 지방의 영지민들 손에 죽는 것. 휘하 기사를 사주하여 영지를 약탈한 엔시스 남작의 악명으로 제피란 역시 영지민들 손에 처형되는 것이다. 그것으로 제피란을 제거하고도 계속해서 로렌시아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사람들에게 살의를 심어주기에 제피란은 너무 어렸다. 아무리 엔시스 남작의 자손이라고 떠들어봐야 당장 생계가 바쁜 그들로선 관심도 없는 이야기다. 영지민들은 그저 자기만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래도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수로 제피란을 죽이도록 할 수 있을까?


병사들이 무장을 마치고 로비로 내려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타닥, 타들어 가는 여관의 모습에 세영은 인상을 찡그린 채 여관 정문을 바라보았다. 작은 산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3층으로 이루어진 제법 큰 여관은 그 크기만큼이나 큰 정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껏 해봐야 한꺼번에 나갈 수 있는 인원은 2~3명 정도. 인원을 활용하기에 매우 불리한 입장이었다.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인파들이 정문을 지키듯 빙 둘러싸고 있으니, 섣불리 나갔다간 사방에서 농기구가 날아들 것이다. 그야말로 독 안에든 쥐나 다름없었다.


타닥, 기둥에 옮겨붙은 불씨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갔다. 세영은 마음을 굳힌 듯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탕! 곧바로 예의 정문을 향해 사격했다. 총성이 신호였을까? 병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정문을 향해 뛰어나갔다. 총격으로 인해 한 명이 쓰러졌지만, 포위진은 병사들의 항전에 대비하듯 더욱 견고히 진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런 포위진을 향해 갖은 가구들이 우박마냥 떨어져 내렸다. 총성을 신호로 고용인들이 위에서 가구들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야?!”


위에서 쏟아지는 가구들에 놀란 탓일까?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던 포위진이 삽시간 만에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창대를 꼬나 쥔 병사가 마을 사람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푸욱! 가장 먼저 뛰쳐나간 병사가 창을 세워 상대를 꿰뚫었다. 그 여세를 몰아 병사의 뒤로 하나둘 계속해서 사병들이 창날을 세운 채 쏟아져 나왔다. 마치 부채꼴이 펼쳐지듯, 병사들은 빠른 속도로 넓게 퍼지며 마을 사람들을 압도했다. 삽시간에 무너진 진영에 기세가 기울자 당황한 그들은 다른 숙소의 포위를 포기하고 이쪽으로 가세했다.


그러나 그것이 실책이었다. 마치 포위망이 풀리길 기다렸다는 듯 느슨해진 진영에 그 여관에서도 무장을 갖춘 병사들이 돌격해 나왔다.

졸지에 여관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인파가 역으로 포위를 당하게 되었다.

사병들은 흡사 올가미를 죄듯 포위망을 좁히며 인파를 향해 창대를 힘껏 찔러 박았다. “으억!” “악!” 포위망 사이로 비명만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 찔러 들어오는 창에 농기구만으로 무장한 그들로선 대항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전투는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쉰 명에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시체가 되어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긴장이 다소 누그러져서일까? 세영은 길바닥에 나뒹구는 시체에 인상을 찡그렸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낯선 죄책감에 세영의 어깨를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영은 밀려드는 죄악감을 떨쳐내고자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마을 광장으로 이동한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병사들을 통솔했다. 우선순위로 현재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터로 이동한 것이다. 이미 세영의 머릿속에서 도주 따윈 없었다. 그도 그럴게 200명이 넘어가는 인원이다. 어디로 도망치든 간에 추격을 뿌리치긴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단순한 마을 사람들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백작이 무슨 수로 영지민들의 손으로 제피란을 제거할 수 있단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누명을 씌워버리면 되는 것이다. 영지민들로 위장한 기사들을 시켜 제피란을 죽이면 그만이다. 물론 누명을 뒤집어쓴 영지민들이 격렬히 항의하겠지만,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아마 사전에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모든 사건을 마친 후 마을 사람들에게 죄를 씌워 말살하려 했을 것이다. 백작가의 차남을 죽였다 명분을 내세워 이미 죽인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다시 한번 죽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쓰러진 시체들 사이에서 몇몇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그런 기사들을 상대로 도망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애초에 말을 탄 기사를 상대로 걸어서 도망치는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다. 결국, 세영으로선 싸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광장에 도착한 세영은 뒤이어 사병들의 전열을 맞추고 집사들을 농기구로 무장시켜 부대를 편성하는 등 서둘러 지휘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세영이 군세를 정비하는 동안 알펜시아 기사들이 광장 앞으로 모여들었다.

말을 탄 채 랜스를 장비한 그들은 은빛 갑주를 걸친 채 사납게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선두에는 세영도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윌리엄!”


뻔뻔한 기사의 모습에 세영은 이를 갈고 노려보았다.

잘도 배신했겠다!

애초에 200명에 달하는 행렬이 이런 험난한 산골짜기를 지나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게 지도상으로는 빠르게 보일지 몰라도 좁고 험준한 산을 넘는 것 자체가 행군하는 입장에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영은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비록 알펜시아 기사라곤 하더라도 윌리엄은 제피란의 스승이었다. 그렇기에 불만을 품고 있는 기사 중에서 윌리엄만큼은 신뢰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를 믿고 길잡이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이젠 무장까지 하고 나오고, 아주 싹 다 죽여 버리겠다는 심산이냐?”


세영은 기사들의 배신에 빈정대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로 변장한 기사들의 기습이 실패하자 무장을 갖추고 나타났다. 영지민들에게 죄를 씌우기 위해서는 목격자는 모두 죽어야 했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니 새끼가 애미 배 속에 있었을 때부터.”


세영은 낮게 으르렁대며 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쌍욕에 기사들이 발끈하여 나섰지만, 윌리엄은 이를 제지했다. 그리고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로 “투항하십시오.” 항복을 권하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기가 찼던지, 세영은 “하!” 헛바람을 내쉬며 웃어 보였다. 타앙! 총성이 울리며 핏, 총알이 윌리엄을 스쳤는지 그의 볼에 날카로운 상처가 길게 그어졌다.


“지금 그걸 지랄이라고 하는 거냐?”


“도련님 한 분으로 다른 사람들의 안전이 보장됩니다.”


“지랄. 그 너구리 영감탱이가 행여나? 그 성격에? 그렇게 상냥했으면 나를 죽이려 들지도 않을 텐데?”


“······.”


위험 요소는 한시라도 빨리 배제한다. 백작이 목격자를 살려둘 이유가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윌리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윌리엄.”


그런 그에게 세실리아는 작게 탄식 섞인 애절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 소리를 들었기 때문일까? 윌리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릴 적 강하고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독극물에 의해 초췌하고 창백한 안색의 그녀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동 때문일까? 한눈에 봐도 아침과 비교해서 몸 상태가 매우 악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영 역시 세실리아의 목소리에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영이 봐도 그녀의 상태는 매우 안 좋아 보였다.

그녀는 힘겨운 안색으로 “제피란을···.” 운을 떼었지만 이내 기침 소리에 묻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곤,


“콜록콜록, 욱! 우욱!”


기침이 심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후두둑, 바닥에 다량의 피를 토해냈다.

그 모습에 사병들 기사단 할 것 없이 놀라,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잔뜩 독이 오른 세영조차도 그런 세실리아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콜록, 콜록! 적막한 산골 마을에 메마른 기침 소리만 메아리쳤다.

세실리아가, 피를 토했다? 왜? 기억 속의 그녀는 아무 지병 없이 건강했을 텐데?


“어, 어어···.”


가슴을 태우는 무언가가 입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목을 타고 넘어오는 그것에 머릿속이 뒤죽박죽 뒤섞여버린다. 쿵! 심장이 오그라들며 가슴을 세차게 두드린다.


“···어, 째서.”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같이 정원을 뛰놀던 기억이 있는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다정하게 웃음 지어 주셨는데? 백작가에 오기 전에는, 그렇게 건강하셨는데······?


“무슨 짓을 한 거냐!!”


세영은 울부짖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이 울리며 격발된 탄환은 퍽 하고, 윌리엄 옆의 기사의 가슴팍 깊이 박혔다. 털썩, 총을 맞은 기사가 맥없이 말에서 떨어졌다. 머리부터 떨어진 그는 목이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무슨!”


갑작스러운 동료의 죽음 때문일까? 기사단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그 소란을 잠재우듯 세영은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탕! 격발과 함께 총탄은 다른 기사의 미간에 박히며 그의 투구를 흔들어 놓았다.


“헬레나, 어머니를!”


세영은 기사들을 노려보며 짧게 부탁했다. 그런 세영의 부탁에 헬레나는 “네, 넷!” 즉각 대답하며 기침을 계속하는 세실리아를 부축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을까? 윌리엄은 세실리아를 향해 몸을 돌리는데······.


“움직이지 맛!”


노기 서린 괴성과 함께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렸다. 이번에도 총에 맞은 기사가 맥없이 낙마했다. 그런 세영의 모습에 윌리엄은 탄식했다. 잔뜩 흥분한 세영은 이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생각을 뒷받침하듯 세영은 노기 서린 원성으로 사납게 울부짖으며 죽일 듯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전원, 전투 준비!”


윌리엄의 명령을 기다린 것일까? 기사들은 세영을 향해 비웃음을 머금으며 일제히 랜스를 겨눴다. 그 모습에 세영 역시 “전투 준비!” 외쳤다.


“돌격!”


윌리엄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사들이 랜스를 꼬나 쥔 채 일제히 박차를 가했다.

보통 사방이 건물로 막힌 좁은 마을에서 기마전은 불리했지만, 세영은 몸소 넓은 광장으로 이동해 주었다. 물론 대규모 병력을 운용하기에는 넓은 곳이 유리할지 몰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전력이 비슷할 때 이야기다.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한 사병이 중무장한 기사의 돌격을 받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에 세영은 동요하기는커녕 낮게 으르렁대듯 명령했다.


“굴려.”


세영의 명령에 맞춰 앞 열이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터준다. 그 뒤로 뒷 열이 감춰두었던 큼지막한 배럴을 기사들을 향해 굴렀다. 보기만 해도 묵직해 보이는 그것은 경사지에 의해 서서히 가속도를 받으며 기사들을 향해 맹렬히 굴러 내려왔다.


“뭐?!”


기사들은 숨을 삼킨 채 고삐를 당겨보았으나 이미 속도가 붙은 말은 무심할 정도로 계속 질주할 뿐이었다. 뒤이어 술통에 발이 걸리고, 말들이 일제히 히이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앞 열이 무너지고 뒤따라 돌격하던 2열 3열 역시 무너진 동료를 짓밟거나 발이 걸려 무너졌다. 술통을 가득 채운 기름 터져 나온 탓일까? 매캐한 휘발성 향이 코를 찌르며 광장 바닥을 적셨다. 그 덕에 간신히 낙마를 면한 기사들 역시 미끄러지며 차례차례 무너져 내렸다.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무너져 내린 기사들을 노려보며 세영은 “돌격, 모두 죽여버려!” 울부짖듯 명령을 내렸다.


“우아아아!”


창을 꼬나 쥔 병사들이 일제히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쓰러진 기사들을 밟고 그 목에 창을 박아 넣었다. 흡사 광기에 사로잡힌 듯, 전쟁과도 같은 참상에 윌리엄은 말을 잃었다. 몇몇 낙마를 면한 기사들이 애써 항전에 들어갔지만, 이미 기동성을 잃고 진형이 무너진 기병은 아래 병사들에게 그저 잘 보이는 표적에 지나지 않았다. 말을 탄 기사 한 명에 네다섯 명이 달라붙었다. 애당초 기동력을 빼앗긴 기병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보병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틈을 찔려 반격당한 기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전열을 가다듬어 항전할 것이다. 애초에 사병과 기사, 훈련량부터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그런 윌리엄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세상에.”


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사병들임에도 불구하고 기사단의 손실은 점차 커져만 갔다. 그도 그럴게 미끄러운 기름으로 적셔진 마을 광장에서 개인의 기량 차이는 아무 의미 없었다. 적이나 아군이나 할 것 없는 진흙탕 싸움은 훈련의 차이를 메꾸며 순수하게 숫자의 싸움으로 몰고 간 것이다. 이래서야 전열을 가다듬기는커녕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전멸당할 위기였다.


그제야 윌리엄은 자신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영이 광장에 진을 친 이유는 단순히 많은 수의 병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노리는 상대가 마을주민이 아닌 기사들임을 알고 있던 세영은 일부러 넓은 장소를 택함으로써 기사들의 돌격을 유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돌격을 막는 바리케이드 역시 설치하지 않았다. 아니, 병사들 뒤로 큼지막한 배럴이란 바리케이드를 숨겨놓은 것이다.


어린아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재치에 윌리엄은 분노는커녕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대견하지 않아?’ 다시 한번 세실리아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았다.

윌리엄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어린 나이에, 그것도 처음 임하는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세영이 발휘한 재치는 분명 뛰어났다. 짧은 시간에 병사들의 지지를 얻고, 순식간에 상대의 전력과 전략을 파악하여 그 점을 이용했다. 이 정도면 대견을 넘어서 대단할 정도다. 제피란의 나이가 이제 갓 열 살임을 고려했을 때 천재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만약 제피란이 그대로 성장했더라면, 정말로 엔시스 남작가의 재건은 꿈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영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아직 어리십니다. 도련님.”


감정에 휩쓸려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세영의 실수에 윌리엄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윌리엄의 혼잣말이 끝나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세영의 진영 후미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야?!”


난데없는 비명에 놀란 세영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아니나 다를까 중무장한 기사들이 무방비한 세영의 진영 후미에 돌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알펜시아 기사들은 바로 앞에 쓰러져 있는데······.


세영은 갑작스러운 급습에 당황하여 앞뒤를 번갈아 살폈다. 세영과 함께 길을 나선 제3부대의 인원은 기사장인 윌리엄을 포함 전부 52명이다. 전방에 쓰러진 기사가 서른 명, 무너진 진영 속에서도 계속해 항전하는 기사가 스무 명 남짓, 병력을 나누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펜시아를 상징하는 장미가 새겨진 방패를 내세운 기사들은 세영의 진영을 휘저어 놓았다. 얼핏 봐도 쉰 명에 가까운 인원으로······. 마치 새로운 부대가 참전한 것 같이.

···잠깐!


“···새로운, 부대?”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처음 여관을 포위하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 역시 쉰 명은 족히 될 부대였다. 윌리엄을 비롯한 제3 돌격 부대는 여기 있는데, 그만한 병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전투에 들어가기 전부터 뭔가 이상했다. 애초에 기사들과 함께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들과 함께 보았던 마을 사람들은 대체······.

계속되는 피해에 세영은 신음을 삼켰다. 이렇게 된 이상 한시라도 빨리 정면을 돌파하고 태세를 정비하여 뒤의 적을 치는 수밖에······.

그러나 세영의 계획은 시작하기도 전에 무너져 내렸다.


“···말도 안 돼.”


어디서 또 나온 것일까? 윌리엄의 제3 돌격 부대의 뒤로 새로운 기사들이 증원되었다. 그 수도 눈대중으로 어림잡아도 쉰 명, 세영은 망연자실해 중얼거렸다. 또다시 기사들이 나오다니, 알펜시아 기사단이 통째로 이곳에 주둔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분명 3, 4부대를 제외하곤 전부 영지 순찰을······.

순간 떠오른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세영은 헛바람을 삼켰다.


“······설마.”


영지 순찰을 핑계로 처음부터 이곳에 주둔해 있었던 거야? 나 하나 죽이기 위해서?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루틴 교수와의 결투에서 백작이 왜 목검을 운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로렌시아 영지민들을 학살하고 주둔해 있는 기사들 때문에!

까득, 세영은 이를 갈며 알펜시아의 금빛 장미를 노려보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병력의 피해가 속출했다. 뒤의 중기병 돌격을 무방비하게 받은 집사들은 그 수가 반 이하로 크게 줄었다. “크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세영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삼켰다. 애써 상황을 돌이켜 보기 위해 소리 높여 지휘해 보았지만, 갑작스러운 기사들의 돌격을 받아 공황에 빠진 집사들에게 세영의 명령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었다. 애초에 훈련 한번 한 적 없는 고용인들이다. 농기구 따위로 무장한 그들이 중무장한 기사들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한 번 대열이 무너지자 고용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무기를 던지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 상태로 계속 전투를 벌이는 것은 무리다. 지금은 일단 물러나 전열을 다시 가다듬어야 했다.

타앙, 세영의 발포 소리에 앞에서 교전을 벌이던 병사들이 일제히 썰물 빠지듯 물러났다. 혼전 중에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에 작은 위안을 느끼며 세영은 전방을 향해 횃불을 던졌다. 이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하녀들 역시 세영을 따라 횃불을 던졌다.


화륵, 깨진 술통에서 흘러나온 기름에 무서운 기세로 불이 옮겨붙었다. “으아악!” “이게 뭐야!!” 삽시간에 번진 거센 불길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며 쓰러진 기사들의 살을 태웠다. 기름을 뒤집어쓴 기사들과 함께 불길은 광장을 반으로 나누며 기사들의 전진을 막았다. 이걸로 한동안 전방의 기사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틈에 세영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병사들을 앞세워 부대를 반전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후미를 습격한 기사들은 다시 한번 랜스를 번뜩이며 돌진해왔다. 그 무자비한 공격에 세영은 다시 한번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요란한 소리에 말들이 놀란 탓일까? 돌격해오는 기사들의 기세가 주춤거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돌격! 반드시 돌파한다!” 세영의 각오 서린 외침에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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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pilogue. +1 20.05.26 55 0 11쪽
35 Ep 1. 미운오리새끼(32) 20.05.26 33 0 10쪽
34 Ep 1. 미운오리새끼(31) +1 20.05.25 35 1 20쪽
33 Ep 1. 미운오리새끼(30) 20.05.25 26 0 17쪽
32 Ep 1. 미운오리새끼(29) +1 20.05.24 41 1 18쪽
31 Ep 1. 미운오리새끼(28) 20.05.24 37 0 23쪽
30 Ep 1. 미운오리새끼(27) 20.05.23 32 0 23쪽
29 Ep 1. 미운오리새끼(26) 20.05.23 34 0 27쪽
28 Ep 1. 미운오리새끼(25) 20.05.22 40 0 19쪽
27 Ep 1. 미운오리새끼(24) 20.05.22 36 0 25쪽
26 Ep 1. 미운오리새끼(23) 20.05.21 40 0 25쪽
25 Ep 1. 미운오리새끼(22) 20.05.21 41 0 19쪽
24 막간 20.05.20 42 0 20쪽
23 Ep 1. 미운오리새끼(21) 20.05.20 48 0 19쪽
22 Ep 1. 미운오리새끼(20) +1 20.05.19 53 1 21쪽
21 Ep 1. 미운오리새끼(19) 20.05.19 48 0 18쪽
20 Ep 1. 미운오리새끼(18) 20.05.18 63 3 17쪽
19 Ep 1. 미운오리새끼(17) 20.05.18 56 1 13쪽
18 Ep 1. 미운오리새끼(16) 20.05.17 63 1 12쪽
17 Ep 1. 미운오리새끼(15) 20.05.17 64 0 18쪽
16 Ep 1. 미운오리새끼(14) 20.05.16 70 0 13쪽
15 Ep 1. 미운오리새끼(13) 20.05.16 74 1 13쪽
14 Ep 1. 미운오리새끼(12) 20.05.15 79 1 20쪽
13 Ep 1. 미운오리새끼(11) 20.05.15 89 1 15쪽
» Ep 1. 미운오리새끼(10) 20.05.14 92 4 19쪽
11 Ep 1. 미운오리새끼(9) 20.05.14 92 0 19쪽
10 Ep 1. 미운오리새끼(8) 20.05.13 102 2 25쪽
9 Ep 1. 미운오리새끼(7) +2 20.05.13 110 2 18쪽
8 Ep 1. 미운오리새끼(6) 20.05.12 137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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