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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cea 님의 서재입니다.

세티아 왕국의 작은 영주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렌시아a
작품등록일 :
2020.05.11 22:43
최근연재일 :
2020.05.27 21: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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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3
추천수 :
73
글자수 :
303,156

작성
20.05.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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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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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 1. 미운오리새끼(16)

DUMMY

세영은 수풀을 해치며 계속 달려 나갔다. 나뭇가지에 피부가 찢어지고 벗겨졌지만, 세영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심장이 터질 듯 뛰었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고르지 못한 산길에, 다리가 풀려 몇 번이고 바닥을 굴렀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다시 일어나 달렸다.

처음 제피란으로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족들을 따라서 투신했는데 자신 혼자 이상한 세계에, 그것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머니, 세실리아를 만났다.

세영으로선 당연히 탐탁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세실리아는 제피란의 어머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렇기에 가슴을 옥죄는 감정을 애써 묻으며 그녀를 피했다. 자신은 제피란이 아니다. 세실리아, 그녀가 가진 모성애는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 아들 제피란을 향한 것.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하아, 하아, 하아.”


세영과 제피란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다. 그 때문에 세영은 제피란이 아니다. 결코, 세영은 제피란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변명했다.

정말 멍청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대학 시절 교양과목으로 듣던 심리학 강의에서도 성격을 결정하는 DNA 요인은 고작 50%, 나머지 절반은 경험과 학습, 훈련 등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형성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말 간단한 이야기지 않은가? 이제 겨우 10살 된 어린아이가 갑자기 20살의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성격과 가치관이 변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다. 겨우 성격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세영이 제피란이 아니라는 건 억지에 지나지 않았다.


“하아, 하아, 하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제피란이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윌리엄을 믿었고, 그의 배신에 분노했다. 세실리아가 피를 토했을 때, 이성을 잃고 방아쇠를 당겼다.

단순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제피란이었던 시절, 세영 본인의 가족들을 잊은 채 행복하게 살아갔던 기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영으로서 삶의 이유였던 그들을,


-가족들을 잊고 있었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마음속 견고하게 막아둔 둑에 균열이 갔다. 세영이 기억을 되찾고, 이제껏 계속해온 거짓말이 하나, 둘, 조각나며 무너져 내렸다. 거친 호흡에는 오열이 섞였고 붉어진 눈시울에 시야가 흐릿했다. 그럼에도 바닥에 처박힌 몸을 일으켜 세우며 달렸다.

그렇게 내려온 산골 마을.

세영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심장에 다리를 멈췄다. 얼마나 난폭하게 달려왔던 것일까? 의복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고 피부가 노출된 부분은 길기 찢기며 핏물이 맺혀있었다. 어깨의 상처도 벌어진 모양인지 붕대를 타고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몸을 적셨다.


“하아, 하아.”


세영은 멈춰서 생각했다. 어디를 가면 세실리아의 행방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때 하녀들이 어느 방향으로 도망갔을까? 만약 자신이 추격을 받는다면?


“···이쪽인가?”


추격을 받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적이 없는 곳으로 갔을 것이다. 또 적이 자신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이를테면 다른 영지의······. 만약 하녀들이 도주를 결심했다면 그곳은 알펜시아도 로렌시아도 아닌 제3의 영지, 엔티아 지방으로 뻗은 가도로 말머리를 돌렸을 것이다.


“···찾았다.”


마치 그날의 재현 같은 밤, 마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제법 넓은 도로가 나왔다. 허리를 숙여 길바닥을 살펴보니 마차가 지나간 자리인지 양쪽 가장자리의 자잘한 돌들이 깨져있었다. 십중팔구 이 길일 것이다.

세영은 마음을 굳히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심장이 뛰었다. 제발 아니길, 마차의 흔적이 이대로 엔티아 지방까지 이어지길, 세영은 마음을 졸였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이내 길바닥에 까만 흙들이 나타났다. 세영은 조심스럽게 흙을 살폈다. 점성을 띄며 덩어리져 굳어진 검붉은 흙.

세영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가능성에 망연자실했다.


*


모리스는 밤에 주로 산책하러 나간다. 그도 그럴게 모리스의 직업 자체가 뒷골목 상인이었다. 밝은 대낮보단 어둑어둑해질 때쯤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그로서는 낮보다 밤에 더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 결과 산책 역시 밤하늘을 즐기며 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 까닭에 모리스는 용병들을 대동하여 오늘도 밤 산책을 즐겼다. 알펜시아의 기사들의 말에 의하면 마을 사람들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없다고 했지만, 의심 많은 모리스는 밖에 나갈 때면 항상 주위에 용병을 거느리고 움직였다. 그도 그럴게 뒷골목 장사가 직업인만큼 항상 여러 사람에게 노려지는 입장을 고려하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너무 조용한데······.”


모리스는 작게 투덜거렸다. 비록 작은 마을이었지만 거리를 거니는 사람이라곤 모리스와 그 주위 용병 몇 명이 전부다. 마치 세상 속에서 자신만 뚝 떨어져 나온 것만 같은 괴리감에 모리스는 인상을 구겼다.

본래 그가 밤 산책을 즐기기 시작한 계기는 사냥감 탐색이 목적이었다. 어둠을 틈타 여성이나 어린아이 등을 납치해 노예로 판매하기 위해서, 즉 모리스에게 산책이란 그의 악명을 대표하는 취미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마을 사람 하나 없는 마을이 그로서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밤하늘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지만 계속 보고 있자니 금방 싫증이 났다. 이런 재미없는 마을에서 며칠간 더 묵을 생각을 하니 모리스로선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쉰 그는 “돌아갈까?” 중얼거리곤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마을 외곽을 돌며 뛰어다니는 그림자를······.

분명 기사들에게 아무도 없는 마을이라고 지겹도록 들었음에도 어린아이로 보이는 그림자는 뭔가를 찾는 듯 마을 외곽을 돌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모리스의 흥미를 자극했다.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사냥감에 모리스는 입맛을 다셨다.


*


“그리고, 도련님이 횃불을 던졌는데, 글쎄 광장 전체가 불바다가 되었다니까요?!”


“호오, 그래서?”


“불바다로 앞의 기사들을 태우고 뒤에 기습을 건 비겁한 놈들은 순식간에 해치우신 거예요. 그 덕분에 하녀들이 도망갈 수 있었죠.”


“그거 대단한데.”


“······.”


레이나는 열심히 세영이 남긴 흔적을 따라 그를 추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죽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그는 세리스의 폭언에 이성을 잃고 폭주하였다. 만약 세실리아의 죽음에 대한 단서를 찾았을 경우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가령, 자살이라든지······. 그뿐만이 아닌 그는 현재 알펜시아 기사단의 추격을 받고 있다. 함부로 혼자서 돌아다녔다간 객사 당한다 해도 이상할 것 전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뒤의 둘은 그런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 어느새 의기투합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더군다나 도련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우리들이 안전히 도망갈 수 있게 계속 기사단을 붙잡아 주셨죠.”


“제법이잖아!”


그 이야기가 세영의 활약상으로 얼마 전 사병을 통솔해 기사단과 싸웠던 이야기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쩐지 과장되다 못해 신화 속 전설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실상 유리엘이 말해준 정보에 의하면 그날 이후 알펜시아 기사단의 전력이 급감했다고 한다. 공작가의 정보망에 의하면 3개의 기사단이 전멸했고 1개 기사단 역시 그 수가 반 수 이하로 줄어들었다. 객관적인 자료와 엘레노어의 이야기를 대조해 보았을 때 그녀의 이야기도 완전히 과장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녀석, 정말 대단한 녀석이잖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세리스는 엘레노어의 이야기에 경탄성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아까 엘레노어를 울린 죄책감에 어느 정도 그녀의 비위를 맞춰 맞장구쳐주었지만 그것도 처음 몇 번뿐, 이후 기상천외한 세영의 재치에 세리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주변에 대한 세영의 인식이 좋아져서일까? 엘레노어는 양손을 허리에 대며 “애햄!” 잘 난 듯 콧김을 뿜었다. 다행히 아까보다 기분이 많이 풀린 모양이었다.


“근데, 이런 녀석이 아까는 그렇게 찌질 댄 거야?”


세리스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게 엘레노어의 말을 들어보면 이 제피란이란 놈은 정말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천재나 다름없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과장들이 많이 섞여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전술이나 전황을 읽는 눈은 웬만한 노장들보다 뛰어날지도 몰랐다. 그런 녀석이 어머니의 죽음에 쉽게 이성을 잃고 날뛴다는 게 세리스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련님도 이제 열 살밖에 안 되셨는걸요. 누나인 제가 잘 보살펴드려야죠.”


“······.”


엘레노어는 부끄럽다는 듯 수줍게 몸을 꼬며 말했다. 그 모습에 세리스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닫았다. 세리스는 무슨 상상을 하는지 양팔을 두르고 핑크빛에 몸을 꼬는 엘레노어를 놔두고 레이나에게 다가갔다.


“추적은 잘 되가?”


세리스의 말에 레이나는 “예.” 짧게 답했다.

세영의 흔적을 찾는 건 의외로 쉬웠다. 막무가내로 뛰쳐나간 그는 애초에 흔적을 남기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목적지를 확실히 정해두고 달렸는지 마을로 내려와서부터는 방향이 일정했다. 과장 좀 보태서 굳이 흔적을 찾지 않아도 그대로 쭉 가기만 해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세리스는 레이나의 뒤를 따르며 중얼거렸다.


“녀석이 정말 대단한 놈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내가 가지고 싶은데······.”


“또 입니까? 그 인재 욕심.”


그런 세리스의 중얼거림에 레이나는 질렸다는 듯 되받아쳤다. 레이나의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일까? 세리스는 “남이사.” 작게 투덜거렸다.

레이나는 “네, 네.” 건성으로 대답하며 흔적을 살펴 나갔다. 마을 외곽을 따라 이동한 흔적이 이내 제법 넓은 대로를 따라 뻗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하녀들이 이 길로 도망쳤었어!”


순간 기억난 듯 엘레노어는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분명 세실리아를 태웠던 마차도 하녀와 함께 도주했다고 했겠다.

세리스는 씨익 웃어 보이며 “좋아!” 힘차게 외치며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세영의 목적지를 알았으니 더 이상 흔적을 살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레이나는 당돌한 세리스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랐다. “아앗, 같이 가요!” 갑자기 달리기 시작하는 세리스와 레이나의 모습에 엘레노어도 뒤늦게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이내 앞에 사람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


세리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도 그럴게 앞에 인영이 한 명이 아닌 것이다. 알펜시아의 기사인가? 마을에 남아서 제피란을 추적하는 일당일까? 제피란은 어떻게 됐지?


“공주님!”


어느새 따라온 레이나가 사태를 파악하고 황급히 칼을 뽑아 들었다. 그 모습에 모리스는 방긋 웃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군.”


사냥감들이 이렇게 제 발로 굴러들어오다니, 모리스는 즐거움에 웃었다. 그러곤 살짝 손을 들어 신호를 주니 길 양옆으로 수풀 속에 숨어있던 용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봐도 족히 스무 명은 될 법한 인원이다.

···아무리 레이나가 왕실 호위 기사라 할지라도 이길 수 없었다. 레이나 혼자라면 어떻게 가능할지 몰라도 옆의 세리스와 엘레노어를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 모리스 옆에 망연자실해 있는 소년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세리스는 예상치 못한 외통수에 “큭!” 신음을 삼켰다.


“레이나. 검을 거둬.”


“공주님, 무슨?!”


세리스의 명령에 레이나는 작게 항명했지만 이내 세리스의 진지한 표정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검을 갈무리했다. 그 예상 밖의 행동에 모리스의 미간이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원하는 게 뭐야?” 세리스의 물음에 환하게 웃어 보였다.


“정말 똑똑한 아가씨군.”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모리스는 용병들에게 “끌고 가.” 작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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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tra. 20.05.27 44 0 8쪽
36 Epilogue. +1 20.05.26 55 0 11쪽
35 Ep 1. 미운오리새끼(32) 20.05.26 33 0 10쪽
34 Ep 1. 미운오리새끼(31) +1 20.05.25 35 1 20쪽
33 Ep 1. 미운오리새끼(30) 20.05.25 26 0 17쪽
32 Ep 1. 미운오리새끼(29) +1 20.05.24 41 1 18쪽
31 Ep 1. 미운오리새끼(28) 20.05.24 38 0 23쪽
30 Ep 1. 미운오리새끼(27) 20.05.23 32 0 23쪽
29 Ep 1. 미운오리새끼(26) 20.05.23 34 0 27쪽
28 Ep 1. 미운오리새끼(25) 20.05.22 40 0 19쪽
27 Ep 1. 미운오리새끼(24) 20.05.22 36 0 25쪽
26 Ep 1. 미운오리새끼(23) 20.05.21 40 0 25쪽
25 Ep 1. 미운오리새끼(22) 20.05.21 41 0 19쪽
24 막간 20.05.20 43 0 20쪽
23 Ep 1. 미운오리새끼(21) 20.05.20 48 0 19쪽
22 Ep 1. 미운오리새끼(20) +1 20.05.19 53 1 21쪽
21 Ep 1. 미운오리새끼(19) 20.05.19 48 0 18쪽
20 Ep 1. 미운오리새끼(18) 20.05.18 63 3 17쪽
19 Ep 1. 미운오리새끼(17) 20.05.18 56 1 13쪽
» Ep 1. 미운오리새끼(16) 20.05.17 64 1 12쪽
17 Ep 1. 미운오리새끼(15) 20.05.17 64 0 18쪽
16 Ep 1. 미운오리새끼(14) 20.05.16 70 0 13쪽
15 Ep 1. 미운오리새끼(13) 20.05.16 74 1 13쪽
14 Ep 1. 미운오리새끼(12) 20.05.15 79 1 20쪽
13 Ep 1. 미운오리새끼(11) 20.05.15 89 1 15쪽
12 Ep 1. 미운오리새끼(10) 20.05.14 92 4 19쪽
11 Ep 1. 미운오리새끼(9) 20.05.14 92 0 19쪽
10 Ep 1. 미운오리새끼(8) 20.05.13 102 2 25쪽
9 Ep 1. 미운오리새끼(7) +2 20.05.13 110 2 18쪽
8 Ep 1. 미운오리새끼(6) 20.05.12 137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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