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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cea 님의 서재입니다.

세티아 왕국의 작은 영주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렌시아a
작품등록일 :
2020.05.11 22:43
최근연재일 :
2020.05.27 21:00
연재수 :
37 회
조회수 :
3,714
추천수 :
73
글자수 :
303,156

작성
20.05.12 06:05
조회
137
추천
2
글자
17쪽

Ep 1. 미운오리새끼(6)

DUMMY

2.


제피란으로 이틀째 아침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익숙하진 않지만,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 세영에게는 분명 낯선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세계. 알 수 없는 위화감은 점점 불쾌함으로 변했다.


“······.”


꿈을 꾸었다.

아버지랑, 어머니랑, 아영이랑, 다 같이 가족여행을 가는 꿈을. 언제나 똑같은 장소에서 언제나 제각각 놀고 떠드는 꿈을. 쾌활하신 아버지와 걱정 많으신 어머니, 겁이 많아 언제나 자신을 졸졸 따르던 야영이. 가족들과 지내던 그 때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깨닫고 보면 세영의 머리맡이 살짝 젖어있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세영이 있을 곳은 없다. 그도 그럴게 이곳에서 세영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서 세영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제피란 알펜시아. 이곳에서 세영을 부르는 이름. 자신은 분명 제피란의 기억과 감정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세영으로선 제피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기억과 그 감정. 본래 자신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하였을 것이다. 본래 세영이었다면 이런 감정 따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제피란의 기억에서 세영은 없었다. 제피란의 인생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용납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세영은 제피란이 아니다. 아니, '세영이 제피란이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심장은 쿵쾅 요란하게 뛰었다. 삶의 이유를 잃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관망하려는 자신을 붙잡은 사람이 있었다.


“···헬레나.”


이제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은 전속 하녀는 세영을 붙잡아 주었다. 물론 그녀가 붙잡은 사람이 자신이 아닌 제피란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그럼에도 쿵 울리는 심장에, 미어지는 가슴에 세영은 혼란스러웠다. 지금 이 감정이 제피란의 기억인지, 세영 자신의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젠장.”


감상적인 생각에 세영은 욕지기를 씹으며 사납게 눈가를 훑었다.

일어나자.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면 조금이나마 잡념이 사라지겠지. 더군다나 오늘은 로렌시아로 떠나는 날이다. 우물쭈물 거리다간 그제마냥 헬레나가 쳐들어와 문답무용으로 옷을 갈아입힐 것이다.

세영이 침대를 밀어 몸을 일으키자 스륵 몸을 덮고 있던 담요가 흘러내렸다.


“···응?”


그리고 그 흘러내린 담요 사이로, 뭔가 묵직한 무언가가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뭐지 이건? 부드럽고, 제법 큼직한, 뭉둥이 같은 그것은 세영의 가슴을 횡으로 가로지르듯 놓여있었다. 그 때문일까? 서서히 잠기운이 가신 세영은 옆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우웅···.” 어쩐지 잠꼬대 같은 그 인기척에 말도 안 돼는 가설 하나가 세영의 머릿속의 경종을 울렸다.

설마, 아니겠지······? 딱딱하게 경직된 목을 애써 돌려 옆을 확인하는 세영.


“우웅······.”


아니나 다를까 세영의 옆에는 그도 잘 알고 있는 여성이 잠기운에 뒤척였다.

헬레나! 순간 비명이 터져 나올 뻔한 것을 억지로 입을 틀어막아 삼켰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우우웅······.” 웅얼거리더니 세영을 감싼 팔을 죄여오기 시작했다. 자, 잠깐! 세영의 소리 없는 비명은 헬레나에게 전해질리 없었고, 이윽고 우악스러운 그녀의 팔에 이끌려 그대로 품에 안기는 형상이 되었다.

이 무슨, 아무런 복선도 개연성도 없이 이런 행복한, 아니 당혹스러운 이벤트가?! 갑자기 상황이 급전개로 치닫자 세영은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왜 그녀가 자신의 방에서, 그것도 한 침대위에서 자고 있는 것인가?!


“윽!”


위험하다. 빨갛게 상기된 홍조에 금방이라도 뜨끈한 코피를 쏟을 것만 같았다. 세영은 애써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당혹스러운 상황을 견뎠다.

그때였을까? 똑똑,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도련님?” 문 밖에서 어딘지 수줍게 들리는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흠칫 놀라며 세영의 몸이 크게 떨렸다.

분명 헬레나는 옆에 누워있는데? 도대체 누가 찾아온 거지?! 세영은 쪼그라드는 심장에 불안한 눈빛으로 방문을 바라보았다.

마치 불륜을 저지르는 도중 갑작스럽게 걸려온 부인의 전화를 받는 유부남의 심정이다.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긴장하는 건지 세영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이내 본능에 몸을 맡기듯 헬레나의 품속에서 숨을 죽였다. 방안이 조용하면 밖의 하녀들도 나중에 찾아오지 않을까? 세영은 작은 기대를 가졌다.

한동안 세영의 반응이 없자 이상하게 생각한 것일까? 세영의 그 간절했던 기대와는 달리 달각, 방문을 잠근 자물쇠가 해제되었다.

자, 잠깐! 지금 들어올 생각은 아니겠지?! 예상 밖의 상황에 세영은 다시금 화들짝 놀랐다. 그도 그럴게 한 침대에 남녀가 나란히 누워있다니, 누가 보더라도 오해를 부를 광경인 것이다.


“잠깐!”


비명을 지르듯 외치며 일어나려는 세영을 헬레나가 “우웅···,” 우악스럽게 끌어안는다. 옛 신화 속 대형 오징어에 붙잡힌 선박마냥 세영은 자신을 휘감는 헬레나의 팔에 붙들려 다시금 침대위로 맥없이 가라앉아버렸다.

서서히 문고리가 돌아가고 끼익, 방문의 경첩소리와 함께 하녀들이 들어왔다.

그러곤,


“어머.”


침대위에 가라앉은 세영을 확인하고 입을 가리며 놀라는 하녀a. 그 뒤로 졸래졸래 따라 들어온 어린하녀b 역시 그 모습에 놀라 얼굴을 붉혔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뭔 소릴 하는 거야!”


하녀a의 말에 세영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지 기가 차서, 세영은 씩씩 숨을 고르며 홍조로 익은 양 볼을 귀엽게 부풀렸다.


“······.”


물론 좋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방해라고 할 것까지야, 랄까 뭘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냐! 머릿속을 맴도는 번뇌의 속삭임에 세영은 거세게 고개를 도리질쳤다.

그런 세영에게 어린하녀b가 말없이 다가왔다. 그러곤, 짜악! 하고, 매서운 손이 세영의 볼을 후려갈겼다.

억! 하며 세영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런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녀a는 다시금 “어머.”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품위 있게 놀란다.

얼얼한 볼을 어루만지며, 세영은 자신을 때린 하녀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왜 맞았는지조차 모르는 세영으로선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째선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소녀가 한 명······.

세영은 어쩐지 낯익은 하녀를 보고는 이내 “아!” 짧은 탄성을 뱉었다. 분명 어제 아침 세영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어린하녀였다.


“도련님 따위, 이제 몰라요!!”


빽! 소리를 지른 그녀는 이내 후다닥, 도망치듯 방문을 뛰쳐나갔다.


“어머.”


또 다시 입가를 가린 채 놀라는 하녀. “우웅?” 한바탕 소란에 이제야 잠이 깬 듯 헬레나는 작게 웅얼거리더니 품에 안겨있는 세영과 눈이 마주쳤다.


“······.”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세영은 자포자기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차츰 결투소동이 진정될 때 쯤, 알펜시아 백작가는 새로이 스캔들의 진위여부로 들끓기 시작했다.


*


엘레노어는 알펜시아 저택의 최연소 하녀였다. 올해로 열두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가 알펜시아 백작 저택에서 일하게 된지도 어느덧 1년 남짓. 비록 나이어린 소녀였지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 이제 막 열 살 남짓 되는 아이를 써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간간히 어머니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약초를 캐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뿐인 나날들······.

어떻게든 어머니께 힘이 되고자 엘레노어는 열심히 집안일을 하였다. 방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조리하고. 어머니께 배운 약초를 구별하는 법을 익혀 직접 약초를 캐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작가에서 하녀를 모집한다는 공문을 보게 되었다.

그 공문을 보고 엘레노어는 뛸 듯이 기뻤다. 어머니를 돕기 위해 글을 익혀둔 보람이 있었다. 비록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많지 않았지만 공문을 읽는데 부족함은 없었다. 백작가의 하녀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평민이 버는 돈보다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 무리하실 일도 없을 태고, 또 그러면 어머니께서 다시 건강해 지시겠지?

얼레노어는 부푼 마음에 하녀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백작가의 하녀는 어린소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치 않았다.

귀족가의 고용인은 보통 몰락 귀족의 자손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게 귀족을 모시는 입장에서 귀족의 예법과 글은 필수로 알아야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평민 출신인 어린소녀는 매일같이 선배들의 놀림과 구박,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를 꾸윽 악물고 버텨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백작가의 새 식구가 찾아왔다.


“저기, 안녕······?”


처음 보는 소년은 소심하게 인사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찰랑이며, 푸른 눈동자가 수줍은 듯 시선을 피했다. 엘레노어와 동년배로 보이는 소년은 귀족 자제와 어울리지 않게 수줍음이 많았다.


“제피란, 이라고 해. 잘 부탁해······.”


어설프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귀족. 엘레노어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린소녀는 그런 귀족의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심약한 소녀를 보는 것 같았다. 알펜시아 백작의 양자로, 백작가의 차남이 되는 그는 하녀의 앞에서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소녀에게는 너무 못 미더워 보였다.

-그 모습이, 소녀에게는 너무 불안해 보였다.

-그 모습이, 소녀에게는 너무······.


못미더운 소년의 모습에 소녀는 항상 소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보아주지 않으면 소년이 잘 못 될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소년의 전속하녀가 정해졌다.

어째서일까? 그날 밤 가슴이 답답한 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축축한 머리맡에 일찍 빨래를 하였다. 소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소녀는 그가 결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대는 서른을 넘긴 귀족으로 왕립 아카데미에서 박사위를 가진 사람이라 했다.

소녀는 덜컥 겁이 났다. 그 못미더운 소년이 귀족의 칼에 찔릴 생각에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래서 소녀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소년을 찾아가 필사적으로 물었다. 제발 아니길 바라며 물었다.


“저, 도련님? 결투 이야기, 정말인가요?”


소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다는 듯, 피곤하다는 듯, 축 어깨를 늘인 채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소녀는 복도에 혼자 남겨졌다.

어째서인지 소녀는 가슴이 아팠다. 소년의 차가운 모습에 소녀는 작게 흐느꼈다. 그렇게 소녀의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아침 소년이 찾아왔다. 온통 땀과 먼지투성이인 그는 그답지 않게 자상하게 웃으며 아침식사를 부탁했다.

소년의 부탁에 소녀는 어째선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기쁜 마음에 일과도 모두 잊고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하였다. 소녀는 고사리같이 작은 손으로 손수 카트를 밀며 소년의 방으로 찾아갔다. 거기에는 소년과 그의 전속하녀가 있었다.

꾸벅! 소녀는 고개 숙여 인사하곤 식사를 차렸다. 왠지 모르게 소녀는 가슴이 답답했지만 묵묵히 식사를 차렸다. 그 답답한 가슴에 파르르 작은 손이 떨려왔다.

식사를 차리고 소녀는 소년에게 다시 한 번 꾸벅 인사하였다.


“수고했어. 바쁠텐데 도와줘서 고마워.”


소년이 소녀의 머리를 매만졌다.

무리한 운동으로 물집이 터지고 가죽이 벗겨진 손바닥이지만, 그 손은 너무나도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소녀는 소년의 손길에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슬쩍 고개를 들어 소년을 살펴보니 그는 또 그답지 않게 자상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소녀에게는 너무 다정해 보였다.


소녀는 당황하여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왔다. 소녀는 매우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가슴이 콩콩 뛰는 것이 소녀 스스로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일과를 빼먹어 선배에게 혼이 났지만, 소녀는 꾸중을 들으면서도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정오가 되고, 소년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못미더운 소년의 결투에 소녀는 다시 불안해졌다. 그래서 소녀는 기도했다. 제발 저 소년을 살려주세요. 어째서 저 소년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을까? 소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빌었다. 소녀가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 노력이 가상하여 소원을 들어주신 걸까? 때마침 백작님께서 목검으로 결투할 것을 제안하셨다.

소녀는 너무나 기뻤다. 소녀에게는 마치 백작님이 신께서 내려주신 메시아처럼 느껴졌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소녀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소년은 소녀의 기도를 무참이 짓밟으며 진검승부를 요청했다. 그 모습에 소녀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지, 가슴을 죄여오는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소녀는 울먹였다.

그리고 소년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칼을 겨누고, 상대가 소년을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비명이 나올 것만 같았다.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소녀는 눈을 질끈 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앞으로 들릴 소년의 비명에 두 귀를 꽉 틀어막았다.

그리고, 타앙! 소리가 들렸다. 요란하게 울려 퍼진 발포소리에 소녀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 앞에는 소년에게 달려들었던 상대가 엉덩방아를 찧은 채 기겁한 표정으로 소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져, 졌습니다.”


소년이 상대에게 다가가자 상대는 겁에 질린 목소리고 항복을 선언했다.

···이, 겼다?

저 미덥지 못 한 소년이, 결투에서 이겼다?

그 사실에 소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소녀에게 있어서 소년의 승리보다 소년의 안위가 더 크게 다가왔다. 다행이다. 소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안도감에 풀린 다리는 한동안 움직일 생각을 못 했다. 그렇게 또 소녀의 하루가 지나갔다.

아침이 되자 백작님께서 특별 지시가 내려왔다. 지원자에 한에서 로렌시아 지방을 방문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에 소녀는 한 번의 고려도 없이 지원서를 작성했다. 어째서일까? 소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지원서가 손에서 떠났을 때였다. 그럼에도 후회는 들지 않았다. 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소녀는 솟아오르는 즐거움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래서일까? 소녀는 때마침 소년을 깨우러가는 선배와 동행을 요청했다. 본래라면 전속하녀의 업무였지만 어젯밤부터 소년의 전속하녀가 보이지 않는 이유에서였다.

콧노래와 함께 덩실덩실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소녀는 선배의 느릿한 발걸음에 짜증이 났다. 찌릿, 귀엽게 째려보지만 느긋한 선배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어머.” 놀라기만 할 뿐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어느덧 소년의 방에 도착한 소녀는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방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똑똑, 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


어째선지 방안의 대답이 없다.

소녀는 문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어제의 결투로 소년이 잘 못 된 게 아닐까? 소년에 대한 생각에 소녀는 울상인 얼굴로 선배를 돌아보았다. 그런 소녀의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선배는 우아한 웃음과 함께 마스터키를 꺼냈다. 철컥, 마스터키가 방 자물쇠와 맞물리며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연 선배가 먼저 들어가고 소녀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소녀는 보았다.

침대위의 소년과 그를 껴안고 자고 있는 그의 전속하녀를······.


“······.”


그 이후로 소녀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소년의 얼굴의 홱 돌아가 있었다.

어째선지 오른손이 화끈거렸다.

어째선지 죄여오는 가슴이 답답했다.

어째선지, 눈물이 흘러나왔다.


“도련님 따위······.”


소녀는 매여오는 목으로, 간신히 쥐어짜낸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제 몰라요!!”


소녀는 울면서 도망치듯 방을 나섰다.

어째서일까?

소년이 여자랑 있는 것이 싫었다.

소년이 여자 품에 안겨있는 것이 싫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이 싫었다.


“······.”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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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pilogue. +1 20.05.26 55 0 11쪽
35 Ep 1. 미운오리새끼(32) 20.05.26 33 0 10쪽
34 Ep 1. 미운오리새끼(31) +1 20.05.25 35 1 20쪽
33 Ep 1. 미운오리새끼(30) 20.05.25 26 0 17쪽
32 Ep 1. 미운오리새끼(29) +1 20.05.24 41 1 18쪽
31 Ep 1. 미운오리새끼(28) 20.05.24 38 0 23쪽
30 Ep 1. 미운오리새끼(27) 20.05.23 32 0 23쪽
29 Ep 1. 미운오리새끼(26) 20.05.23 34 0 27쪽
28 Ep 1. 미운오리새끼(25) 20.05.22 40 0 19쪽
27 Ep 1. 미운오리새끼(24) 20.05.22 36 0 25쪽
26 Ep 1. 미운오리새끼(23) 20.05.21 40 0 25쪽
25 Ep 1. 미운오리새끼(22) 20.05.21 41 0 19쪽
24 막간 20.05.20 43 0 20쪽
23 Ep 1. 미운오리새끼(21) 20.05.20 48 0 19쪽
22 Ep 1. 미운오리새끼(20) +1 20.05.19 53 1 21쪽
21 Ep 1. 미운오리새끼(19) 20.05.19 48 0 18쪽
20 Ep 1. 미운오리새끼(18) 20.05.18 63 3 17쪽
19 Ep 1. 미운오리새끼(17) 20.05.18 56 1 13쪽
18 Ep 1. 미운오리새끼(16) 20.05.17 64 1 12쪽
17 Ep 1. 미운오리새끼(15) 20.05.17 64 0 18쪽
16 Ep 1. 미운오리새끼(14) 20.05.16 70 0 13쪽
15 Ep 1. 미운오리새끼(13) 20.05.16 74 1 13쪽
14 Ep 1. 미운오리새끼(12) 20.05.15 79 1 20쪽
13 Ep 1. 미운오리새끼(11) 20.05.15 89 1 15쪽
12 Ep 1. 미운오리새끼(10) 20.05.14 92 4 19쪽
11 Ep 1. 미운오리새끼(9) 20.05.14 92 0 19쪽
10 Ep 1. 미운오리새끼(8) 20.05.13 102 2 25쪽
9 Ep 1. 미운오리새끼(7) +2 20.05.13 110 2 18쪽
» Ep 1. 미운오리새끼(6) 20.05.12 138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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