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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cea 님의 서재입니다.

세티아 왕국의 작은 영주님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렌시아a
작품등록일 :
2020.05.11 22:43
최근연재일 :
2020.05.27 21: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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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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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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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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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Ep 1. 미운오리새끼(29)

DUMMY

하멜 크로이츠 루 엔티아 백작은 눈앞의 소녀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다.

세리스티나 리디아 폰 세티아. 세티아의 4왕녀이자 왕국 최고의 천재 소녀는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러. 니. 까. 귀공께서는 현재 라도기어 성에서 머물고 계시다는 거죠?"


열한 살의 나이로 재상 각하를 도와 정계에 몸을 담고 계신 공주님은 상대를 옭아매는 듯 한 시선으로 크로이츠 백작을 올려보았다.

어째서 그녀가 이런 말을 꺼내는 걸까?

어째서 그녀가 이런 상황을 연출한 걸까?

바보 같은 질문이다. 어째서 요새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호출해 이런 이야기를 하겠는가?! 결론은 저 공주님께 거래를 들켰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라도기어 성은 도시 외곽 동산에 위치해 도시와 격리된 곳이다. 또한 출입할 수 인원들도 몇 안 될 뿐만 아니라 기사단원 및 고용인들 역시 백작의 허가 없이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다. 그곳이 이리도 쉽게 들통나버리다니······.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는 걸까?'


성의 출입이 자유로운 것은 알펜시아 백작을 비롯한 그 곳에 머물고 있는 귀족들 뿐, 그 중 딜러인 알펜시아 백작을 제외한 다른 귀족이 배신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크로이츠 백작은 요새에 머물고 있는 다른 귀족들에 치를 떨었다.


"귀공들이 거래하려는 품목에 관심이 생겨서 말이죠."


크로이츠 백작은 바짝 타들어가는 목에 꿀꺽, 다시금 마른침을 삼켜 보았으나 목만 더 타들어갈 뿐이었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 것일까? 눈앞의 열 살배기 소녀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채 앙증맞은 입을 열었다.


"귀공께서 그렇게 긴장하시니 무슨 괴물이라도 된 것 같네요."


"······."


왕국법상 노예거래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왕족에게 들켰으니 이 상황을 두고 괴물과 대치한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더군다나 상대는 세티아의 천재 공주님.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왕국 내에서도 수완가로 이름 높으신 천재 공주님이다. 모르긴 몰라도 크로이츠 백작가가 하루아침에 몰락해버리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자, 그럼······."


그런 백작의 걱정을 잘 알고 있는 공주마마께선 능청스럽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요."


해맑게 웃어보였다.


*


애기 동산의 라도기어 성. 알펜시아 백작가의 자랑인 중장 렌서들의 본거지인 그 곳이 화마의 열기에 휩싸였다.

흡사 성을 포위하듯 동산을 태우는 화마는 밤하늘을 찢어발기며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마치 무대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처럼······. 모르긴 몰라도 이 화재로 도시와 그 밖의 모든 이목이 이 작은 동산에, 그리고 알펜시아의 요새에 집중될 것이다.


'그러나 그 뿐······.'


동산의 화재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하더라도 그 안에 숨어있는 노예상을 발견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이다.

발키리아는 어디까지나 구호의 기사단. 수사권은 전적으로 영지에 주둔중인 알펜시아 기사단이 가지고 있었다. 요컨대 발키리아가 요새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노예상의 존재 유무를 확인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화재를 진압하면서 가도를 봉쇄하면 문제될게 없단 말이지."


화재를 진압함과 동시에 진화 작업으로 가도를 막음으로서 발키리아가 요새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모리스는 세영의 설명에 작게 침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진정이 된 탓일까? 모리스의 표정은 어둡기는 했으나 이전과 같이 광기 어린 모습은 아니었다. 그 모습에 세영은 작게 한 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글거리며 동산의 태우는 화염 뒤로 여신을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였다. 구호의 성 소녀 기사수도회. 아마도 세리스가 통솔하고 있는 왕국 기사단이자 노예상을 붙잡기 위한 그녀의 유일한 기물.


'···뭘 노리고?'


앞서 화재를 낸 것까진 좋았으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화재로 이목이 집중된다 하더라도 이곳에 머물고 있는 귀족들이 충분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태고, 수사권 역시 없다. 그렇다고 백작의 영지 안에서 무작정 강행돌파 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고······. 일을 벌이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체크메이트를 위한 기물이 부족하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가 원하는 시나리오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때였을까? 쾅쾅! 벽이 떨릴 정도로 사납게 집무실의 문을 두들기더니 이내 벌컥 문을 열어 재끼고 기사장 카인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꽤나 바쁘군."


급하게 달려온 것인지 숨을 고르는 카인의 모습에 모리스는 짧게 감상을 남겼다.


"하아, 하아, 크, 큰일 났다!"


어느 정도 숨을 고른 카인이 이내 황급히 말을 꺼냈다.


"귀, 귀족들이, 단체로 사라졌어!!"


"그게, 무슨······."


모리스는 카인의 말에 어렵사리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그도 그럴게 귀족들이 사라졌다니? 분명 요새에서 묶고 있던 그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어디로! 언제!?"


카인의 보고를 받은 세영 역시 버럭 언성을 높여 카인을 닦달했다.


"나, 나도 몰라. 갑작스러운 화재에 동요치 않게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칫!"


카인의 대답을 끊고 세영은 혀를 찼다. 지금 상황에서 귀족들을 놓친다면 그들의 방패막이는 기껏 해봐야 알펜시아의 이름뿐이다.


'어째서 귀족들이 갑자기 종적을 감춘거지?'


그것도 지금 이 타이밍에 맞추기라도 한 것같이···.


"잠깐, 맞춰?"


세리스가 불을 지른 타이밍에 맞춰 귀족들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건 그 이전이라 치더라도 이 타이밍에 귀족들 전부가 부재중일 수가 있을까?


"설마."


노예상이 숨어있는 위치를 정확히 집어낸 공주님이다. 요새에 기거하고 있는 귀족들의 리스트쯤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알 수 있는 영특한 그녀다.

설마, 그 모두를······.

그런 세영의 생각을 증명해주듯 콰앙! 굉음이 터지며 작은 지진에 벽이 떨렸다.


"뭐, 뭐야?!"


당황한 모리스가 언성을 높이며 창가로 뛰어가 밖을 확인했다. 그런 모리스와 달리 세영은 턱을 매만진 채 생각을 정리했다.


'폭발이라, 이 정도 폭발이라면 무기고 쪽인가?'


동산을 태우는 화마는 주위의 이목과 개입의 명분을 만들어 줄지언정 실질적으로 노예상의 목을 조이지는 못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새안의 사람들을 매수한 것이다. 이를테면 거래를 하는 귀족들을······.

아마도 귀족들이나 매수된 고용인으로 하여금 성내 화약고를 날려버린 것이겠지. 그럼으로써 구호의 기사단이 요새 내부까지 수색할 명분 또한 갖춰지고······.


"한 방 먹었군."


보지 못했던 세리스의 기물과 그 한 수에 세영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뭐야, 이제 열한 살 된 꼬마 아가씨가 어떻게 되먹은 게······.'


허탈한 마음에 뭔가 불평이라도 하고 싶은 세영이었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서쪽 성문을 개방, 돌진해 나간다."


"뭐, 라고?!"


"무슨, 왕실 기사단과 싸우자고?!"


세영의 말에 모리스와 카인은 황당함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웅얼거리며 말했다.

그런 그들에게 세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우, 웃기지마! 저들과 싸우면 우린 그날로 반역이라고! 지금 알고서 말하는 거야?!"


흡사 비명 같은 카인의 말에 세영은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어쩔 수 없어. 현재 귀족들은 배신, 도리어 백작을 고발하려고 단합한 상태야. 우리의 방패는커녕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라고! 결국 들키는 것은 기정 사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강행돌파 밖에 없어."


"그게 무슨······."


"설명하고 있을 시간 없어. 지금 살기위해선 발키리아가 막고 있는 서쪽 가도를 확보해 최대한 빨리 국경을 뜨는 것뿐이야."


단호한 세영의 말에 카인과 모리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두 사람이지만 그 상황이란 것이 급박하단 것만큼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카인은 현재 남아있는 기사단의 무장을 그리고 모리스와 나는 용병들을 준비시키고, 성문이 열리는 즉시 랜서들이 돌격하여 길을 뚫고 뒤를 이어 용병들이 길을 넓힌다."


*


엘레노어는 입안에서 퍼지는 찻잎 향을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이 불쾌했던 것일까? 맞은편의 세리스는 "아니지, 아니야. 차는 그 향을 음미해서 마시는 거라고!" 어린 하녀에게 역설했다.


"······."


엘레노어 역시 백작가의 하녀로 차를 마시는 법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로선 현 상황에서 도저히 차를 홀짝일 배짱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생전 처음 보는 귀한 마차 안에서 생전 처음 잡아본 귀한 식기로 생전 처음 마셔본 귀한 차라니, 맛을 음미하는 것 자체가 그녀로선 무리인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저, 공주님? 우리 이렇게 차를 마시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마차 밖 유리창 너머는 동산을 감싸고 있던 나무들이 이글거리는 화마에 삼켜져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해가 저문 지도 오래 되었지만 마치 정오와 같이 밝은 열기에 엘레노어는 도저히 차가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불을 지른 당사자인 세리스는 태연한 얼굴로 찻잔을 기울였다.


"안될게 뭐 있어? 어차피 싸우는 건 밑에 것들인데."


"······."


뻔뻔하신 공주님의 말씀에 엘레노어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뭐, 지금 상황에서 어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냥 여기 앉아 차나 마시는 것 말곤."


그런 엘레노어의 시선이 불편해 졌는지 세리스는 약간 상기된 볼을 감추며 애써 자신들을 변호했다.

그 변호가 먹힌 것일까? 엘레노어는 말없이 자신의 찻잔을 기울였다.


"어때? 괜찮지?"


흡사 자신이 찾은 보물을 자랑하듯 세리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배경만 괜찮았다면 또래 여자아이처럼 귀여웠을 텐데.

연상인 엘레노어는 그런 위험한 생각을 고이 묻어두고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런 엘레노어의 반응이 마음에든 것일까? 세리스는 방긋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귀족분들을 회유하신 거예요?"


갑작스런 엘레노어의 질문을 받아서일까? 찻잔을 기울이다 멈춘 세리스는 "응?" 찻잔을 비우고 입을 열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너넨 걸렸으니 자수해 라는 정도로 찔러준 것뿐이야."


"···그렇게 해서 넘어와요?"


미덥지 않은 세리스의 설명에 엘레노어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보통은 발뺌하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리스크가 너무 큰걸. 더군다나 아직 거래를 하지 않은 지금이라면 미수로 그칠 수 있으니까."


세리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이곤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 미수로 그치면 공주님에겐 더 손해가 아닌가요?"


귀족들의 확실한 약점을 잡기 위해선 거래명세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경우는 노예를 거래하기 전이니 명세서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엘레노어의 의문에 세리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을 이었다.


"무슨 걱정을, 걔네들은 이미 명세서에 서명을 했어."


"네? 그게 무슨······."


"어차피 이번 일은 노예상을 잡음으로서 라도기어 성에 노예상이 있었단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겠지. 그럼 거기에 숙박하고 있었던 녀석들 전부 공범이 되는 거야."


"어? 그러기 전에 자수함으로서 명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결백한 거 아니에요?"


"응. 그렇게 안 돼. 아니,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야."


세리스의 선언에 엘레노어의 고개가 갸웃.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숙박 리스트만 있어도 충분해. 거래명세서는 내가 서명하면 되니까. 물론 필사로."


"네?"


···네에에에에에에엣?!?!?!


"어차피 숙박 리스트는 본인들이 직접 서명을 해놨으니까. 나중에 내가 쓴 거래명세서와 개연성을 이어붙이면 녀석들은 거래를 한 것이 되는 거지."


사기다! 사기꾼이 여기 있어!!

엘레노어는 순간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간신히 억눌렀다.

이것이 정계의 신동. 천재 공주마마 세리스티나의 수완이라는 것인가······.

이런 엘레노어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리스는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앉아서 기다리는 것 뿐.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말이지.

세리스는 올라오는 뒷말을 삼키며 걱정 많은 하녀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


"제 주인은 세리스티나 공주마마십니다."


레이나 린드가드. 여성의 몸으로 왕실 근위 기사단 로얄가드에서도 손꼽히는 천재 검술가인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절 높게 평가해 주신 점에 대해서는 감사하오나 저는 공주님의 호위 기사입니다."


즉답이었다.

마치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는 듯 그녀는 아멜리아의, 세아크 재상 각하의 권유를 거절했다.

아멜리아로선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기사위란 주인인 귀족이, 귀족이 아닌 이나 주인보다 낮은 계급의 귀족에게 일정의 녹봉이나 권리를 수여하여 맺는 계약직이다. 다른 쪽에서 더 좋은 대우를 해준다면 주인을 바꾸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되었다.

그 때문에 기사들의 충절은 그리 높지 않았으며 실제로도 많은 고위급 귀족들의 기사들은 그렇게 기사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로얄가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의 이력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평균 3개 정도 귀족 가문의 이름이 나올 정도다.

그런 그들에겐 모시고 있는 주인의 왕위 서열로 대우 및 녹봉이 다르다. 요컨대 국왕 태자 왕자 공작 후작 왕녀 순으로 그 서열이 나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왕위 계승권 50위 밖인 어린 왕녀님을 선택했다. 여성의 몸으로, 분명 남들보다 배는 노력해왔을 그녀는 국왕도 태자도 아닌 한낱 어린 왕녀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세티아의 실질적인 2인자 세아크 재상 각하가 아닌, 이제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왕녀를 선택한 것이다.

이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가 있을까?

그 날 이후 레이나는 왕녀의 기사이자 왕실 내에서 고고한 기사의 대명사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랬던 그녀인데······.'


아멜리아는 굳게 잠긴 철창 밖으로 여기사를 올려다보았다.

금실 같은 긴 생머리를 단정히 올려 묶은, 은빛 갑옷을 입은 여기사는 노예들을 관리하는 간수들을 감독하고 있었다.


'그녀가, 어째서?'


세아크 재상 각하의 권유도 마다한 그녀가 어째서 한낱 노예상의 용병으로 있단 말인가?!


"칫!"


아멜리아는 답답한 마음에 혀를 찼다. 그녀가 이곳에 있다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임무는 고사하고 이곳에서 탈출이나 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경박한 용병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이젠 어떡해야 하나요······.'


···설마 이대로 노예로 팔려가는 건 아니겠지?

생각만큼이나 무거워진 마음에 아멜리아는 크게 한숨을 토해낸 채 두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누나도 잡혀온 거야?"


그런 아멜리아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감금된 철창 맞은편에는 소년이 갇혀있었다.


"응?"


이제 십대 중반쯤 되었을까? 소년은 성노리개 상품을 수용해 놓은 감옥에서 유일한 남성 노예였다.

물론 귀족들 사이에서 성적 소수자가 있으니 그리 드문 편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맞은편 철창에 홀로 수용된 소년은 사지가 구속구로 채워져 벽에 고정돼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성 노리개와는 달리 누더기가 되다 못 해 걸레가 된 옷과 군데군데 눌어붙은 검붉은 피떡, 여기저기가 붓고 찢어진 피부 등 빈말로라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저래서야 상품이기 이전에 곧 죽어도 이상치 않을 산송장 같았다.


"아, 으응."


그 모습이 충격이었을까? 소년의 처참한 모습에 아멜리아는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아멜리아의 반응이 우스웠던 것일까? 소년은 피식 실소를 흘리며 피떡지고 부르튼 입술을 다시금 달싹거렸다.


"그래도 누나는 운이 좋네."


"뭐?"


운이 좋다니? 노예로 잡혀 들어온 게?

소년의 말을 이해하지 못 한 아멜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응. 정말 운이 좋아."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소년은 피떡진 입술을 말아 올리며 애써 웃어보였다.


"이제 곧 나갈 수 있으니까."


"뭐······?!"


그게 무슨······.

그때였을까? 쾅! 하고 요란한 굉음이 감옥의 벽을 때리며 아멜리아의 의문을 날려 버렸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간수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마도 폭발음의 진원을 확인하려는 모양이다.

그런 용병들을 감독하던 레이나는 상황을 수습할 생각이 없는지 묵묵히 그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 이게 대체······."


갑작스러운 이 소동은 뭐지? 갑작스러운 폭발과 혼란에 패닉에 빠진 아멜리아와 달리 소년은 쉬익 부어터진 입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 것도 잠시 이내 철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화악, 하고 환해졌다.

이번에는 또 뭐야, 라고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갑작스러운 빛과 열기, 거기에 맞춰 간수 한 명이 비명조차 채 지르지 못 하고 고꾸라졌기 때문이다.


"으, 으아아악!!"


언제 베인 걸까? 간수는 잘려나간 자신의 어깻죽지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왜, 왜······."


갑작스러운 동료의 비명에 당황한 걸까? 옆에 있던 간수는 상황을 파악치 못 하고 멍한 표정 그대로 목이 떨어졌다.

그 순간 어깻죽지가 날아간 간수의 목 역시 차가운 돌바닥을 뒹굴었다.


"······."


순식간에 주변에 있는 간수 3명을 베어버린 여기사는 칼을 털어 닦곤 칼집에 칼을 집어넣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멜리아 자신을 붙잡은 레이나가 이번에는 간수들을 베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얼빠진 표정의 아멜리아를 향해 철창안의 소년은 웃으며 말했다.


"탈옥, 축하해."


소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굳게 닫혀있던 철창문이 철컥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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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p 1. 미운오리새끼(30) 20.05.25 26 0 17쪽
» Ep 1. 미운오리새끼(29) +1 20.05.24 42 1 18쪽
31 Ep 1. 미운오리새끼(28) 20.05.24 38 0 23쪽
30 Ep 1. 미운오리새끼(27) 20.05.23 32 0 23쪽
29 Ep 1. 미운오리새끼(26) 20.05.23 34 0 27쪽
28 Ep 1. 미운오리새끼(25) 20.05.22 40 0 19쪽
27 Ep 1. 미운오리새끼(24) 20.05.22 36 0 25쪽
26 Ep 1. 미운오리새끼(23) 20.05.21 40 0 25쪽
25 Ep 1. 미운오리새끼(22) 20.05.21 41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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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p 1. 미운오리새끼(21) 20.05.20 48 0 19쪽
22 Ep 1. 미운오리새끼(20) +1 20.05.19 53 1 21쪽
21 Ep 1. 미운오리새끼(19) 20.05.19 48 0 18쪽
20 Ep 1. 미운오리새끼(18) 20.05.18 63 3 17쪽
19 Ep 1. 미운오리새끼(17) 20.05.18 56 1 13쪽
18 Ep 1. 미운오리새끼(16) 20.05.17 6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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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p 1. 미운오리새끼(14) 20.05.16 70 0 13쪽
15 Ep 1. 미운오리새끼(13) 20.05.16 74 1 13쪽
14 Ep 1. 미운오리새끼(12) 20.05.15 79 1 20쪽
13 Ep 1. 미운오리새끼(11) 20.05.15 89 1 15쪽
12 Ep 1. 미운오리새끼(10) 20.05.14 92 4 19쪽
11 Ep 1. 미운오리새끼(9) 20.05.14 92 0 19쪽
10 Ep 1. 미운오리새끼(8) 20.05.13 102 2 25쪽
9 Ep 1. 미운오리새끼(7) +2 20.05.13 110 2 18쪽
8 Ep 1. 미운오리새끼(6) 20.05.12 138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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