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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cea 님의 서재입니다.

세티아 왕국의 작은 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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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시아a
작품등록일 :
2020.05.11 22:43
최근연재일 :
2020.05.27 21:00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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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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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글자수 :
30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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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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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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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Ep 1. 미운오리새끼(13)

DUMMY

3.


딜러라는 게 있다. 흔히 말하는 카드 게임에서 카드를 나누는 사람을 말하지만, 뒷골목으로 들어갔을 때 이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경매를 주선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 경매는 법적으로 금지된 물건을 사고팔기에 반드시 힘 있는 주최자, 즉 딜러가 필요했다. 그것은 노예 경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국에서 노예제도는 엄격히 제재받았다. 왕권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노예는 왕권을 약화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노예는 다방면에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며 훌륭한 군사력이다. 더군다나 노예는 사병이 아니기에 귀족들의 반란 조짐을 알아채기가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공화국이나 몇몇 봉건왕조의 국가를 제외하곤 노예 산업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티아 왕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륙에서 노예상인을 탄압하는 법은 대체로 대동소이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세티아는 그 강도가 심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노예를 판매한 자는 전 재산 몰수하는 것도 모자라 교수형이었고 노예를 구매한 귀족은 심할 경우 작위 몰수까지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 역시 영지의 일부분을 반납해야 했다. 그러나 말이 일부분이지, 영주가 지목하는 것이 아니기에 한순간에 주 수입원인 영토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때문에 많은 노예 상인들에게 세티아 왕국은 불모지로 통했다. 그도 그럴게 누가 목숨을 걸고 장사하고 싶어 하겠는가? 다른 왕국의 경우 비교적 처벌도 가벼운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 상인 쥬디 모리스는 세티아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곧 세티아의 국경입니다.”


마차를 모는 마부의 말에 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로 말틴 공화국에서 활동하는 그는 이 바닥에서도 제법 이름을 떨치는 상인이었다. 물론 말틴 공화국 내에서 상권을 주름잡고 있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노예를 들여오는 방식이 매우 악질이었기 때문이다. 집정관들에게 일정 뇌물을 건네고 마을 소녀를 납치한다거나 영주의 손이 닿지 않은 시골 마을을 손수 약탈하여 마을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가 계속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리스의 뒤를 봐주는 귀족들과 원로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차가 세티아 왕국 국경에 접어들자 덜컹,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멈추었다. 마차 문이 열리고 거기에는 낯선 기사가 서 있었다.


“실례합니다. 쥬디 모리스님이십니까?”


금장 장미가 새겨진 판금 갑주를 입은 기사는 정중히 물었다.


“그렇소만.” 모리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긍정했다.


모리스의 대답에 기사는 간단히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예를 표했다.


“알펜시아 백작님의 명으로 지금부터 저희가 모리스님을 모시겠습니다.”


“흐음, 고맙소.”


모리스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내심 싹싹한 기사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도 그럴게 대부분의 기사들은 귀족임을 내세워 상인인 자신을 무시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알펜시아의 기사는 작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깍듯한 태도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알펜시아 영지가 국경에 있는 거요?”


“국경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국경지대는 아닙니다. 여기서 보름은 족히 걸립니다.”


모리스의 질문에 기사는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 모습에 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경으로부터 보름이나 걸리는 영지에서 기사단을 파견했다? 모리스로선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알펜시아 기사가 국경까지 마중을 나오려면 일단 거쳐 오는 영지의 통행권이 있어야 했다.

또 장거리 이동을 위한 식량 역시 필수적인데, 보통 이 식량난에 기사들은 주변 마을을 약탈하기 일쑤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 영주들은 타 영지의 기사들에게 통행권을 발행해주길 꺼려했다. 전시가 아닌 이상 통행권 없이 타 영지를 방문할 수 없는 것은 왕법으로도 제정돼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알펜시아의 기사는 어떻게 타 영지를 통과해 국경까지 마중을 나온 것일까?


“다른 영주님들께 통행 허가를 받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사는 그런 모리스의 의문을 읽었는지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기사의 세부적인 설명에 모리스는 무안한 마음에 얼굴을 붉히며 흠흠, 헛기침하였다.


“그래서, 이대로 알펜시아의 영지로 가는 것이오?”


“아닙니다. 알펜시아 영지는 공주마마님의 약혼식 일로 많이 위험하기에······.”


모리스에게 기사는 이해를 바라는 듯 말끝을 흐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싹싹한 기사였다. 모리스는 내색하지 않으며 “그럼 어디로···?” 짧게 물었다. 그 질문에 기사는 이번에도 역시 정중하게 답했다.


“로렌시아 지방입니다.”


“로렌시아?”


세티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게 세티아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산골 지방이다. 외국인인 모리스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알펜시아 옆의 영지입니다.”


기사의 설명에 모리스는 흐음, 침음했다. 노예 경매에서 가장 적절한 판매 시기는 파티가 끝난 직후다. 그도 그럴게 대륙에서 금지하는 노예를 숨기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른 물건처럼 한곳에 보관할 수 없는, 살아있는 인간을 거래하는 것이기에 파티가 끝나고 각자 영지로 돌아가는 순간 구매하여 본인의 영지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다. 왕족의 약혼식이 끝날 때 동안은 모리스는 숨어 지내야 했다.


“그럼.”


기사는 전달사항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잠깐.” 모리스는 그런 기사를 멈춰 새웠다. 모리스의 부름에 기사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나?”


“토마스 아치볼트라 합니다.”


알펜시아 제1선임 기사장 토마스는 모리스의 물음에 친절히 답했다.


*


세아크 공작령인 리그니토 영지를 출발한 지 어느덧 나흘, 세리스 일행은 로렌시아 지방을 지나고 있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세리스는 기뻐하기는커녕 잔뜩 짜증스러운 얼굴로 마차 밖을 내다보고만 있었다.

그도 그럴게 어떻게 닦아 먹은 길인지 마차의 승차감이 매우 나빴다. 아까부터 덜컹거리며 쉴 새 없이 흔들리는 게, 쿠션을 깔고 앉아도 엉덩이가 아플 지경이다. 차라리 말을 타고 가도 이보다 덜 피곤할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맞은편, 유리엘은 잔뜩 인상을 찡그린 세리스와 달리 우아하게 펼친 부채로 우아하게 미소 짓는 입가를 가리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공주마마, 그렇게 인상을 쓰시면 미용에 좋지 않아요.”


“남이사!”


유리엘의 지적에 세리스는 퉁명스레 답했다. 차라리 멀더라도 조금 돌아가는 게 낫지, 이건 무슨 싸구려 안장을 얹은 야생마를 탄 기분이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도착, 하는 거야!”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마차에 세리스는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게 웃는 유리엘은 “글쎄요······.”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


무서운 녀석. 세리스는 흔들리는 마차에도 태연한 귀공녀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그런 세리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리엘은 여전히 입가를 가린 채 말을 이었다.


“로렌시아 지방의 북동쪽 산골 마을에서 행방불명되었다니까, 이제 금방이겠네요.”


“······뭐?!”


예상외의 유리엘의 답변에 세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도 그럴게 행방불명이라니, 200명이나 동원된 대규모 행렬이다. 갑자기 그만한 인원이 하루아침에 증발하지 않는 한 백작가의 차남이 행방불명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무슨, 그게, 말이 돼?!”


젠장! 이놈의 승차감 어떻게 좀 안 되나?! 세리스는 의아해하는 한편 거슬릴 정도로 막돼먹은 도로에 짜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


“들리는 말로는 영지민들의 습격이랍니다 만, 실제로는 알펜시아 백작이 손을 쓴 모양이에요.”


유리엘의 대답에 세리스는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작이 손을 쓰다니, 뭘?


“그게, 무슨, 말이야?”


“백작이 제피란을 죽이기 위해 기사단을 파견, 뭐 이런 느낌일까요?”


“······.”


알펜시아 백작이 자기 아들을 죽이려 든다? 세리스로선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어떻게 부모 된 입장에서 자식을 죽이기 위해 기사단까지 동원한단 말인가? 혼란스러워하는 세리스를 바라보며 유리엘은 “뭘요, 어머니인 세실리아는 살해당했는걸요.” 태연하게 말했다.


“······뭐?!”


백작가의 자손뿐 아니라 백작 부인도 해를 입었다? 더군다나 그 남편의 손에 살해당했다고?! “제피란은 백작가의 양자니까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황당한 세리스에게 유리엘은 우아하게 웃으며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 건 빨리 말하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세리스의 모습에 유리엘은 예의 우아한 동작으로 입가를 가리며, “어머, 말씀 안 드렸나요?” 부드럽게 변명 아닌 변명을 꺼냈다. 놀리는 거다! 분명 날 놀리고 즐거워하는 거라고! 그 추측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리엘은 부채로 말려 올라간 입가를 가렸다.


“그럼 그, 녀석도, 벌써 죽은 거, 아니야?”


“글쎄요?”


세리스의 의문에 유리엘은 우후훗! 부채로 웃음을 가리며 대답했다. 어머니인 세실리아 역시 살해당했다고 하는데, 더군다나 기사단이 투입되었다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게 상대가 기사단이다. 일방적인 학살로 끝났으면 끝났지, 결코 살아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세리스의 확신을 증명하듯 유리엘은 부드럽게 웃으며 운을 뗐다.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네요.”


유리엘의 대답에 세리스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한동안 멍하게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이내 “···뭐?”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기사단은 과반수가 괴멸. 7할가량이 사망했다고 하니 이 경우는 격퇴당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죠?”


“······뭐?!”


“보고서에선 사병과 고용인들을 통솔해 싸웠다고 하는데, 그 중장 기병을 상대로 이런 성과를 올리다니 정말 얼굴 한번 보고 싶네요.”


“······.”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소년의 행방은 알 수 없다니, 아마도 놓쳐버린 모양이네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정말 아쉬워요.” 부드럽게 눈웃음 짓는 유리엘의 모습에 세리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사병들을 통솔해 기사단과 싸운다고? 열 살배기 어린아이가? 그것도 2배 이상이나 나는 수적 열세에 개개인의 기량을 놓고 봐도 학살로 끝날 것 같은 전황을 뒤집고 기사단을 괴멸시켜? 그 말을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세리스는 놀랍다 못해 황당한 보고에 불쾌해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불쾌함이 새어 나온 것일까? 세리스는 콧방귀를 뀌며 유리엘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세리스의 반응에 유리엘은 “어머!” 놀라듯 말했다.


“전투 후 성과 보고는 보고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요.”


그러면서도 묘하게 목소리가 즐거운 것이, 뭔가 잔뜩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물론 저도 믿지는 않지만요.”


“······너 말이야.”


세리스는 자신을 놀리며 즐거워하는 악우의 모습에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의문이 하나······.


“그런데, 그 정보는, 어디서, 들은 거야?”


덜컹거리는 의자에 채여 세리스는 딱딱 끊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리그니토 영지를 출발해서 지금까지 유리엘은 계속 세리스와 붙어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녀에게만 정보가 들어오는 거지? 그런 세리스의 의문에 유리엘은 눈초리가 가늘어지며 웃었다.


“세아크 공작가의 정보력은 대륙 제일이랍니다.” 언제나 듣던 대답을 하였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설마요.” 세리스의 추궁에 유리엘은 부드럽게 웃으며 부정했다. 그런 유리엘의 모습이 못마땅한 세리스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


“······.”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감돌고 예의 마차만 덜컹거렸다.


“유리엘.”


“무슨 일이신가요?”


“너는 왜,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고상함을 갖추면 마차의 흔들림 따윈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나는, 품위가, 없다, 이거야?!”


“······어머!”


“······.”


“······.”


놀리는 거 맞잖아!


작가의말

분량 조절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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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Epilogue. +1 20.05.26 55 0 11쪽
35 Ep 1. 미운오리새끼(32) 20.05.26 33 0 10쪽
34 Ep 1. 미운오리새끼(31) +1 20.05.25 35 1 20쪽
33 Ep 1. 미운오리새끼(30) 20.05.25 26 0 17쪽
32 Ep 1. 미운오리새끼(29) +1 20.05.24 41 1 18쪽
31 Ep 1. 미운오리새끼(28) 20.05.24 37 0 23쪽
30 Ep 1. 미운오리새끼(27) 20.05.23 32 0 23쪽
29 Ep 1. 미운오리새끼(26) 20.05.23 34 0 27쪽
28 Ep 1. 미운오리새끼(25) 20.05.22 40 0 19쪽
27 Ep 1. 미운오리새끼(24) 20.05.22 36 0 25쪽
26 Ep 1. 미운오리새끼(23) 20.05.21 40 0 25쪽
25 Ep 1. 미운오리새끼(22) 20.05.21 40 0 19쪽
24 막간 20.05.20 42 0 20쪽
23 Ep 1. 미운오리새끼(21) 20.05.20 48 0 19쪽
22 Ep 1. 미운오리새끼(20) +1 20.05.19 53 1 21쪽
21 Ep 1. 미운오리새끼(19) 20.05.19 48 0 18쪽
20 Ep 1. 미운오리새끼(18) 20.05.18 63 3 17쪽
19 Ep 1. 미운오리새끼(17) 20.05.18 56 1 13쪽
18 Ep 1. 미운오리새끼(16) 20.05.17 63 1 12쪽
17 Ep 1. 미운오리새끼(15) 20.05.17 64 0 18쪽
16 Ep 1. 미운오리새끼(14) 20.05.16 70 0 13쪽
» Ep 1. 미운오리새끼(13) 20.05.16 74 1 13쪽
14 Ep 1. 미운오리새끼(12) 20.05.15 79 1 20쪽
13 Ep 1. 미운오리새끼(11) 20.05.15 89 1 15쪽
12 Ep 1. 미운오리새끼(10) 20.05.14 91 4 19쪽
11 Ep 1. 미운오리새끼(9) 20.05.14 92 0 19쪽
10 Ep 1. 미운오리새끼(8) 20.05.13 102 2 25쪽
9 Ep 1. 미운오리새끼(7) +2 20.05.13 110 2 18쪽
8 Ep 1. 미운오리새끼(6) 20.05.12 137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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