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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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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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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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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서임식 (2)

DUMMY

왕도로 향하는 길은 지나칠 정도로 쾌적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 바로 공간을 넘어버린 덕분에 그 어떤 준비도 필요 없었다. 그저 약간의 긴장 정도로 끝이었다.

텔레포트 게이트는 꽤 간단한 형태였다. 바닥과 천장에 마법진을 각인한 원통형 공간을 통째로 옮겨버리는 것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마법진에 분류가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원의 크기가 나누어져 있었는데, 펠릭스 혼자 이동하는 거라 가장 작은 원만이 마력을 잡아먹으며 가동했다. 많은 인원이 움직인다면 넓은 면적의 원을 가동할 것이다.


'이상한 부분에서 효율을 따지네.'


펠릭스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러 매체에서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할 때의 이펙트는 무척 화려했다. 공간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공간이동은 몇 차례 어떤 원리로 시전하는지 묘사되는 경우는 있어도 텔레포트 게이트의 효율성은 생각해본 적 없었다. 1명을 옮기나 10명을 옮기나 마나 소모량이 똑같다면 10명을 옮기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1명만 옮겨야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단계적으로 텔레프토를 가동할 면적을 제한하여 시전하는 건 효율적이긴 하지만, 멋은 없었다. 당장 텔레포트 게이트를 활용해 엄청난 거리를 돌파한 펠릭스조차 실망감에 혀를 내둘렀다.

천장과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에 마나석을 끼울 때까지만 하더라도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는데 정작 반짝하고 끝났으니 낙담이 없을 수 없었다.


'마나가 흔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왕도의 텔레포트 게이트는 꽤 개방된 장소에 있었다. 벽으로 폐쇄하지 않고 기둥으로 천장을 지탱하여 주위가 훤히 보였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바리케이드나 방어진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병사가 가득했다.


'아, 텔레포트 게이트로 기습하는 걸 막는 1차 방어선이구나.'


펠릭스는 빠르게 그들의 존재의의를 알아챘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설치될 정도로 중요한 장소에 특수부대를 보낼 수 있다면 막대한 피해를 상대에게 입힐 수 있다. 아무리 상호동의 하에 연결할 수 있다지만, 한쪽이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언제고 큰 사달이 발생할 수 있다. 텔레포트 게이트가 마탑 관리하에 놓이는 이유도 이런 이유다. 마법사의 본진에 정예병을 밀어 넣는 건 누구에게나 아까운 일이다.

자신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하인이 느껴지자 펠릭스는 주위의 삼엄한 방어선에서 시선을 돌렸다.


"펠릭스 란소스 오브 인데브님이 맞으시온지요."

"맞다."

"저는 란소스 경을 임의로 모시게 된 엘룬이라고 하옵니다.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따라와 주십시오."

"그러지."


하인을 따라 텔레포트 게이트를 나와 밖을 향한다. 주위를 돌담으로 둘러싸인 저택의 정원이었는데, 왕도 밖에서 들어오는 자들을 검문하는 곳인 듯 텔레포트 게이트 여러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각 게이트끼리 거리가 좀 멀었는데, 바리케이드나 화살탑 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게이트 자체의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펠릭스는 마나를 풀어 주위의 병사를 스캔해봤는데, 하나같이 마력을 어느 정도 품은 자들이었다. 익스퍼트 기사와 마법사가 반이고, 나머지 반은 궁병이었다. 마스터나 고위 마도사가 아닌 이상 기습에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을 것이다.


'음?'


엘룬은 펠릭스를 저택이 아니라 밖으로 안내했다. 대문에는 말 4마리가 끄는 고급스러운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란소스님께선 입궁이 허가되었으므로 이곳에서 기다리실 이유가 없으십니다."

"저기에서 기다린다 치면 며칠이나 걸리지?"

"용무에 따라 크게 달라져 잘 모르겠사옵니다."

"그것도 그러네."


펠릭스는 마차에 올랐다. 왕궁이라는 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오래 걸려도 할 말은 없었다. 오히려 트렐라드 변경백이 두둑하게 챙겨준 여비로 수도 관광이나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지낼 때 다녀본 여행이라고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다녀와 본 게 고작이라 할 줄 아는 거라곤 숙소를 잡고 여기저기 들쑤시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견문을 넓히는 건 언제라도 이득이면 이득이지 불이익은 안 되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마중을 나온 사람도 있고, 입궁도 바로 허락되었으므로 펠릭스의 소망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바깥을 봐도 괜찮겠나?"

"네."


마차의 창가에 처진 커튼을 젖혔다. 바깥의 풍경은 지극히 전근대다웠다. 평면유리로 창문을 장식했고, 테라스나 창문 받침이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있었다. 도로는 평평한 돌을 깔고 틈에 모래를 채워 꽤 탄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세라고 뭉개기는 어려운 발전상이었다.

행인이 차려입은 옷을 살펴보았다. 인데브의 길거리에서 보았던 모습은 그나마 옛날 같았다. 양모로 만든 천과 뭔지 모를 가죽으로 만든 옷이 대부분이었다. 두껍고 투박한 직물이 재료였으니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하도록 넉넉한 사이즈를 입었다. 그런데 여기는 달랐다. 왕도, 그중에서도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상류층 밀집지역이라 그런지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자가 드물지 않았다. 가공과정을 몇 번 거친 세사(細絲)로 짠 옷은 멀리서 봐도 비단처럼 곱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펠릭스는 털털한 옷이었고, 눈앞의 엘룬은 고운 천으로 만든 옷이었다.


'여기도 수도랑 지방의 차이가 좀 큰가?'


일반적으로는 수도라고 해봐야 '좀 강한 대귀족의 본거지' 정도에 불과하다. 왕도라고 해봐야 모든 게 집적된 진정한 의미의 수도는 로마 정도고, 그 뒤로는 고만고만한 대도시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껏해야 콘스탄티노플 정도가 현대적 의미로 수도 구실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유럽 문명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이탈리아 반도가 도시국가로 조각조각 나뉘어서 수도라고 부를 수 없게 된 소국이 되어버린 점, 새로 등장한 국가라 역사가 짧아 대도시로 성장할 조건을 갖추기 어려웠다는 점에 있다. 도시로 발돋움하려면 막대한 인구를 부양하는 식량과 소비재를 먹어치워야 하는데, 그만한 생산력과 교통을 갖출 수 있게 된 시기가 중세 후기로도 부르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그런데 양판소에서 이런 걸 따질 순 없고.


'이쪽 관련자에게 질문하다 보면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 수 있겠지.'


도시공학은 꽤 근대적인 학문이다. 마법이 있는 세계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이 필요한 이상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기반시설이므로 당연히 세계에 근본적으로 직결한 이야깃거리가 잔뜩 나올 것이다.

애초 예정과 다르게 바로 왕궁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모든 일정을 재검토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딱히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 세계에 대해 알아갈 요량으로 지내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왕궁에 들어가면 그다음엔 뭘 하지?"

"서임식에 앞서 몸가짐을 정돈하시게 되옵니다. 세신과 착복 후 서임식 절차를 공부하실 예정이옵니다."

"절차라."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어려운 단어만 골라서 사용하는 느낌이 들어 펠릭스는 얼굴이 살짝 찡그렸다. 세신은 목욕이고, 착복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궁중예식은 영 아닌데.'


불편하기 짝이 없는 허례허식은 반갑지 않았다. 너무 직설적이지만 않은 정도면 만족하는 펠릭스에게 말을 빙글빙글 돌리는 화법은 질색이었다.


'여기에서 오래 있으면 안 되겠다. 바로 튀어야지.'


변경백의 피로도 그렇고, 귀족생활은 영 아니었다. 입신양명을 노릴 거라면 당연히 귀족이어야겠지만, 펠릭스는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펠릭스가 앞날을 살아갈 지침을 조정하는 사이 왕궁 입구에 도착, 마차에서 내렸다. 왕궁은 좋은 의미로는 웅장했고 나쁜 의미로는 진부했다. 재래식 전쟁을 위한 높은 성벽은 대신 낮고 두꺼운 성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대포가 발명된 이후의 축성 양식이었는데, 이유는 뻔했다.


'마법사가 전쟁에 자주 참가하는 모양이지?'


옛날의 성벽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려는 병사를 막기 위해 높이 쌓았다. 투석기나 벽력거 등이 성벽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건 성벽이 얇은 덕분이었다. 명중률이 낮고 준비가 오래 걸리는 공성 병기의 역할은 성벽 붕괴. 하지만 성벽은 오랫동안 얇고 높았다.

얇고 높은 성벽이라는 메타가 바뀐 결정적 원인은 대포. 근본적으로 바위는 지극히 무거워서 한계가 있었다. 투석기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려면 바위가 무거워야 했고, 그걸 던지려면 가깝게 접근하거나 기술자가 필요했다. 전쟁에서 그런 건 사치에 가깝고, 그 결과 트레뷰셋이라는 투석기 상위 버전이 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술자를 동원하게 된 셈인데, 당연히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포가 등장하면서 메타가 격변했다. 작고 무거운 대포알은 얇고 높은 성벽을 종이처럼 허물었다. 트레뷰셋과 달리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술자는 있어야 했지만 그건 트레뷰셋도 마찬가지. 대신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으나, 대포가 등장할 시기에는 영주 간 싸움보다는 국가 간 싸움으로 양상이 바뀌어서 전쟁의 규모 자체가 달라졌기에 큰 문제는 안 됐다.


'왕궁의 성벽이 저런 형태란 말이지···.'


어느 곳이나 그렇지만, 대도시는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다. 성벽도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건축물이 아니다. 그런데 왕궁의 성벽이 저런 형태라면 상당히 오랫동안 이 메타가 유지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장 대포가 처음 유럽에서 등장한 시기는 14세기 중순이었지만, 대포에 대응하기 위한 성형 요새는 백 년이 훨씬 지난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됐다. 그 말은 마법사가 전장에서 활약한 지 백 년은 훨씬 지났다는 이야기.


'애초에 마왕이 나타나 이 세상을 불바다로 만든 게 3천 년 전이라고 했으니까···. 그 시절부터 이어졌으면 별로 신기할 것도 아니긴 한데.'


발전양상이 궁금했지만, 앞서가는 엘룬을 잠자코 따라가야 했다. 질문하기엔 때와 장소가 영 안 좋은 까닭이다.

주위를 둘러볼수록 판타지 세계라기보다는 잘 꾸며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만한 화사한 풍경이었다. 삭막한 요소는 전혀 안 보였고, 잘 꾸며진 화단과 산책로가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마치 로맨스 판타지처럼.


"흐음."


왕궁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반작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잘 차려입은 하인들, 품격 뛰어난 귀족들, 보기만 해도 든든한 기사들. 하나같이 펠릭스가 지금까지 살아온 일상과 동떨어진 자로 가득했다.

저런 무리에 섞이는 건 사양이다. 물론 저런 삶을 선호하는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펠릭스는 자신의 두 번째 삶을 답답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이고깽처럼 막장은 아니더라도 스릴 있는 모험은 하고 싶었다.


"이 무슨···."


양판소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계단을 밟듯 하나하나 소재거리가 모여서 형성되었다. 소드마스터는 그랜드 소드마스터가, 8서클 마법사는 9서클과 10서클 그 이상으로 나아갔다. 어느 시점에서 인간 개인의 강함보다는 세력의 강함을 어필하기 위해 탱크와 전투기 역할을 하는 공상요소까지 창작했다.

골렘과 비공정! 펠릭스는 왕궁 안쪽에 만일을 대비하는 최첨단 장비가 입궁하는 사람들을 위용을 과시하는 것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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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임식 (2) 20.04.18 240 5 12쪽
12 서임식 (1) 20.04.18 244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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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체 단련 (2) 20.04.15 248 5 12쪽
9 신체 단련 (1) 20.04.14 246 4 12쪽
8 트렐라드 변경백령 (4) 20.04.13 250 3 13쪽
7 트렐라드 변경백령 (3) +1 20.04.12 254 8 12쪽
6 트렐라드 변경백령 (2) 20.04.11 274 7 13쪽
5 트렐라드 변경백령 (1) 20.04.10 286 4 11쪽
4 각자의 고민거리와 해결방법 +1 20.04.09 316 4 12쪽
3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2 20.04.08 344 6 12쪽
2 각성 20.04.08 431 7 11쪽
1 프롤로그 +2 20.04.07 590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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