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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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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8
추천수 :
230
글자수 :
391,305

작성
20.04.1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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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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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마나 블레이드

DUMMY

셀튼의 경악은 뒤로하고, 펠릭스는 바로 그 오러가 누구의 마나로 생겼는지 알아차렸다. 자신이 아침에 주입한 마나였다. 네리카가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검에 불어넣은 것이다.

평소에는 그저 육체의 피로를 해소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아버지가 남긴 비전서에 셀튼의 입문소양을 듣자 오러를 깨우친 것이다. 일반적이라면 깨우쳤다고 끝이 아니다. 지속해서 수양을 거치며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다지며 확장해서 마나를 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건너뛰었다. 펠릭스가 불어넣은 마나 덕분에!


"어? 어어? 어어어?"

"침착해. 검에게 지배되지 말아라. 손에 쥔 건 어디까지나 너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검이다."


당혹스러워했던 감정은 금방 날아가고, 셀튼은 낮은 목소리로 네리카의 혼란을 가라앉힌다. 수양을 거쳐야만 오러를 뽑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검에게 먹혀 생명력을 제물 삼아 오러를 뽑아낼 수도 있었다. 당연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펠릭스는 네리카의 반응을 보며 빠르게 훑는다. 마나의 움직임, 오러의 외견, 네리카의 상태. 모두 흉내 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네리카가 활용하는 마나는 펠릭스가 부여한 것이다.


'어디 보자. 이게 되나···.'


먼 거리에서 자신의 마나를 조작해본다.


'어라, 안 되네?'


네리카의 심장에서 마나가 느껴지긴 하는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좀 더 덩어리가 커졌고, 걸쭉해졌다.


'이게 마력이라는 건가···. 네리카의 마력, 이라고 부르면 되나? 저런 식으로 되어야 마법사가 감지할 수 있는 거구나.'


펠릭스는 네리카의 심장을 관찰했다. 펠릭스가 아무리 마나를 움직여도 주위에서 느끼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네리카의 마력은 지극히 작았지만, 마나보다는 훨씬 컸다. 모래알과 탁구공 정도로 확연했다.

상대적인 크기도 있지만, 절대적 크기도 명백했다. 지금 이렇게 마력의 크기를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는 것도 운이 좋아서다. 함셰르를 비롯한 다른 사람은 아예 심장에 침투를 못 했기에 관찰할 수 없었으니까. 네리카는 펠릭스의 마나를 받아들였고, 마력 자체가 펠릭스의 마나에서 생성된 거라 가능한 것이다.


"으, 으으···."


반면 네리카는 미칠 노릇이었다.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심장이 박동하는 게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뭔가가 스멀거리고 있었다. 심장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자신의 마나가 아니므로 느껴지는 이질감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펠릭스가 실시간으로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자극을 주고 있으니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네리카는 펠릭스가 원인이라고 짐작지도 못했지만.


"검에서 손을 떼거라. 옳지. 그래."


검에 먹혀 미치는 검객을 무수히 만나본 셀튼이라 네리카가 발광하기 전에 검에서 손을 떼도록 유도했다. 깨달음과 비교하면 정신의 깊이가 부족한 사람에게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일이라 셀튼은 네리카를 탓하지 않았다. 신체 단련이 부족한 상황에서 펠릭스를 따라 진도를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설마 첫 번째 시도에서 성공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네리카는 천천히 바닥에 검을 내려놓고, 뒷걸음질로 멀어졌다. 검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심장에서의 이질감도 사라졌다. 최악의 경험이었지만.


'이게···, 마나?'


전화위복이었다. 이질감이라는 건 부정적이긴 하지만 분명히 직관적인 감각이었다. 무언가가 있다는 인지는 네리카에게 큰 발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펠릭스가 노리던 부분이기도 했다. 같이 지낼 사람이니 강할수록 좋았다. 마나 친화성을 높이려고 차근차근 떡밥을 뿌리긴 했는데 겨우 1년 만에 이런 성과가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럼 나도 한 번 해볼까. 주위에서 이상하다고 여기겠지만, 거리낄 필요는 없어.'


셀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검을 회수하려고 할 때, 펠릭스는 검에 손을 뻗었다. 셀튼은 펠릭스가 질투 때문에 검을 든 것이라 보고 네리카의 검으로 펠릭스의 검을 위에서 눌러 들어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검집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오두막 안에 공허하게 울린다.

설마 아예 검을 들지 못하게 누를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나오니 펠릭스는 손잡이를 쥔 채 셀튼을 바라본다.


"급할 건 없습니다. 깨달음에 순서는 없는 법. 검객에게 필요한 것은 여유입니다."

"나도 가능할 것 같아서."

"네리카는 아직 단련이 덜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강함을 믿기 위해선 진실로 몸이 튼튼해야 하는 법. 아직 단련이 덜 된 아이의 기준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네리카가 보인 오러는 아직 미숙한 것이니 질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지만, 펠릭스는 어깨를 작게 으쓱하고 검집에서 검을 뽑기로 한다. 검집 걸이를 풀어 옆으로 슥 진검을 꺼냈다.

셀튼은 인상을 쓰며 고민한다. 말려야 하는가, 방관해야 하는가. 누나처럼 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 상황은 더욱 최악이다. 재능 차이를 실감하는 것 이상으로 친인척을 배타적으로 만드는 게 없다.

그리고.


"이런 거군."


진검에 덧씌워지는 펠릭스의 오러. 네리카의 오러보다 훨씬 선명하게 이글거렸다. 그저 존재한다는 걸 암시하는 일렁임이 아니라 셀튼의 것처럼 고도로 압축된 마나가 일렁거렸다.

네리카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고, 셀든은 경악한다.


"아, 샤메드시여!"


셀튼의 외침은 짧고 굵었다. 감탄과 탄식이 반씩 섞인 말. 젊은 기사의 오러는 가르친 기사의 홍복(洪福)이지만, 그만큼의 책임도 막중했다.

일반적으로 귀족가의 자식이 오러를 깨우치면 가문으로부터 거액의 사례금을 받고 물러난다. 그리고 더 뛰어난 기사를 초빙하여 오러를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 이것은 '오러를 깨우치는 일'과 '오러를 활용하는 일'이 전혀 다른 방향성인 탓이다.

그런 탓에 셀튼의 감탄은 재능을 향한 선망과 기대감이, 탄식은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어린 나이에 이리저리 흔들리게 될 미래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었다.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어찌 이런 시련을···.'


네리카가 오러를 뽑아냈을 때는 감출 수 있었다. 셀튼의 교육대상은 펠릭스지, 네리카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네리카가 오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도 감추는 데에 당위는 있었다. 하지만 펠릭스는 아니었다. 그런 계약이었다.

셀튼의 고민을 모르는 펠릭스가 오러에 집중해 보았다. 검명, 세계의 진리 중 하나. 4개 원소를 근간으로 하는 세계관의 기본설정을 깨달아야 접할 수 있는 감각.


'아직까진 아리송한데? 이게 맞나?'


세계관 차원을 넘는 높은 시선에서 세계를 이해한다. 이 점에서 펠릭스는 그 누구보다도 독보적이었다. 세계의 진실을 아는 펠릭스였으므로 이런 깨달음이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훤했다.

다만 문제점은 '이게 맞나?'라는 혼란이었다. 보이는 게 너무 많아 정확히 무엇인지 짚어낼 수 없었다. 이건 네리카의 오러를 보는 거로 해결할 수 없었다.


"아, 이거군."


세계관 설정 중에서 검명에 해당하는 걸 되짚는다. 사원소 이론이 오러의 근간이라면, 마나 블레이드의 근간은 무엇이 더해져야 하는가?

유럽의 세계관 중 한 축을 담당했던 이론인 만큼 여러 석학이 사원소에 대한 주석을 붙였다. 펠릭스는 그중에서 플라톤의 원자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테르 설을 꼽았다. 마나라고 하는 무안단물은 어느 의미로 원자이며 에테르였다. 원소보다 더 작은 물질이며, 원소가 회전하도록 만드는 힘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러의 형성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파생 이론이다.


"···어떻게!"

"당신의 설명이 훌륭한 덕분이지. 고맙다."


셀튼 이드쿨라는 쥐어짜듯 외쳤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제 16살 된 애가 오러를 뽑아내더니, 이젠 12살 아이가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냈다. 일반인의 인지능력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펠릭스는 마나 블레이드를 거두고 검집에 넣었다. 왠지 검이 덜덜 떠는 느낌이었는데, 착각은 아닐 것이다. 이 세계관이 사실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게 들렸고, 많은 걸 보았지.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

"그대 덕분이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어."


펠릭스는 묵례하며 예를 표했다. 함셰르의 백 마디 말도 값진 말이었지만, 셀튼이 보여준 한 번의 경험도 무척 값졌다. 무엇보다 네리카를 통해 마력이라는 게 얼마나 큰지 체감한 것도 큰 성과였다.

셀튼은 눈을 감고 검집을 누르던 검을 거두었다. 경지에 오른 자에게 무슨 말이 필요하랴.


"죄송합니다."

"무엇이?"

"저의 보잘것없는 안목이 도련님을 불편하게 한 점에 사과드립니다."

"됐다.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한들 활용하지 못하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지. 사용하기 나름이다."


셀튼은 고개를 푹 숙였다. 탓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고 보나?"

"···평온하게 지내실 수는 없을 겁니다. 트렐라드가 혼란스러우니 어떻게든 역할이 주어질 터. 어쩌면 수도로 향하실 수도 있겠지요."

"수도로 가면, 난 뭘 하게 될까."

"모르겠습니다. 저는 트렐라드를 떠나본 적이 없고, 수도의 소식은 늘 뒤죽박죽이라 저로선 알 방도가 없습니다."


함셰르도 알지 못하는 수도권의 소식을 셀튼이 알 리 없었다. 멀기도 멀었고, 수도의 분위기를 한낱 기사가 알 방법도 없다.

펠릭스는 고개를 좌우로 갸웃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마나 블레이드, 딱히 어려운 기교는 아니었다. 각성한 이후 계속 마나를 움직이며 심장에 쌓은 양은 추가로 마나를 모으지 않아도 일주일 동안은 마나 블레이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전쟁터에 참가한다면 온몸에 마나를 활용해야 할 테니 팍 줄어들겠지마는 그래도 하루가 넘도록 유지할 자신감이 있었다.

마나 블레이드를 직접 본 셀튼이라, 펠릭스의 자신감을 이해했다. 오러만 하더라도 무수한 기사 중에서 상급이다. 그리고 무수한 익스퍼트 중에서도 독보적인 게 소드마스터의 경지.

오슬레아 대왕국에 소드마스터는 40명이 안 되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소드마스터가 마흔 중견. 10대에 익스퍼트를 달성한 자가 1년에 열 명 넘게 배출하는 대왕국이라지만, 10대 마스터는 그 가치가 달랐다. 하물며 말이 10대지, 12살 아닌가.


"알카탄에 6명, 지세트에 1명이 있습니다. 기세등등하게 이 난장판을 유도할 여력이 있는 건 아마 알카탄이겠지요. 따라서 도련님께서 주로 맞닥뜨릴 적은 알카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알카탄은 내륙국이라 마스터를 쉽게 재배치하긴 어려울 텐데?"

"카팔라 제국이 어지러운지라 알카탄의 북서부 왕국은 알카탄 방면이 취약해졌겠지요. 알카탄은 내륙보다 바다를 노리고 남하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세를 읽는 눈이 뛰어나군. 어디서 들었나?"

"소싯적에 토벌한 알카탄 탈영병 무리의 지휘관에게서···. 부족한 식견입니다."


알카탄 공국, 카팔라 제국이 뿌려놓은 무수한 소국 중 하나였고 오슬레아 대왕국이 꺼림칙하게 여기는 국가였다. 북쪽의 마게트 왕국과 란가스 왕국, 키펠 왕국과 달리 알카탄은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철저하게 내부정보를 단속하여 정보를 캐오려는 시도가 족족 막혔다.

이런 소식이 귀족사회가 아닌 기사들 선까지 내려온 이유는 사로잡은 포로를 심문해서라도 정보를 캐라는 지시가 있는 탓이고, 바꿔말하면 그 정도로 정보에 고프다고 할 수 있었다.


"알카탄이라."


인데브 남작령에서 작은 능선을 몇 번 넘으면 알카탄 공국 영토이었다. 그곳에서 넘어오는 유민과 몬스터는 인데브 남작을 과로로 밀어 넣을 정도로 중대한 문제였다.


"몇 년 동안 여기를 흔들며 피로에 쩔게 만들었으니, 수확하러 올 시점이 가깝긴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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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나 블레이드 20.04.16 252 5 12쪽
10 신체 단련 (2) 20.04.15 248 5 12쪽
9 신체 단련 (1) 20.04.14 245 4 12쪽
8 트렐라드 변경백령 (4) 20.04.13 250 3 13쪽
7 트렐라드 변경백령 (3) +1 20.04.12 254 8 12쪽
6 트렐라드 변경백령 (2) 20.04.11 274 7 13쪽
5 트렐라드 변경백령 (1) 20.04.10 286 4 11쪽
4 각자의 고민거리와 해결방법 +1 20.04.09 316 4 12쪽
3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2 20.04.08 344 6 12쪽
2 각성 20.04.08 431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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