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령검법
그때 밤하늘 밝은 달이 구름도 없는데 갑자기 가려지는 듯
하더니 신법을 전개하고 있는 장평의 위 허공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그의 몸을 감싸며 부드럽게 속삭이듯 했다.
“ 이제 육신의 고통을 벗고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돌아가라”
그렇게 부드럽던 바람이 장평의 등뒤에서 갑자기 4가락으로
갈라졌고 싸늘한 예기를 띄었다.
그 예리함은 쇠를 능히 자를 정도였고 온몸을 훑으려 했다.
무림에 바람이 칼날 같은 날카로움을 가지는 이름난 무공이
있으니 풍령검법 48초식이었고 지금 풍령검법 중 무영의 비검이
펼쳐지고 있었다.
풍령검법(風靈劍法)은 본래 중주지방의 매씨가문에서 비전으로
전수되는 것이었다.
수련자는 아는 것보다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희망
이 현실보다 강력함을 믿는 자만이 비로소 펼칠 수 있었다.
수련자는 처음 입문시에는 십여년간을 사해를 떠돌며 바람이
부는 온갖 양태를 보고 듣는다.
빈 나뭇가지를 통해 허공으로 사라지는 바람의 공허함을, 겨울
고드름을 스치는 맑은 바람을, 낮은 지붕을 흔드는 불안한 모
양의 바람을, 가을 밤 술통이 바람에 쓰러져 구르는 소리, 꽃
이 바람에 피고 지는 소리를 듣고 보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의 진실된 모습을 배워가는 것이
다.
최후에는 마음 깊이 부동심의 호수에 도달해 관조의 달이 비치고
바람에 물결이 이는 것을 심안으로 보고 느끼는 경지에 도달한
다.
그리고 그 경지에 도달한 자들을 그들 매씨 가문은 명사(名士)라
불렀고 그 중 중주사검이라 불리는 자들이 가장 출중했다.
그런 명사들이 펼치는 풍령검법은 피하기에는 이미 늦고 알고
막기에는 그 허실을 장담할 수 없는 상승검도였다.
그러한 4인의 명사가 한꺼번에 살검을 펼쳤으나 장평이 이미
경공에 온 전력을 쏟고 의식이 흐려진지라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의 몸이 풍령검법에 갈기갈기 시들은 바람꽃 같이 찢기기
직전이었다.
“멈추어라!”
순간 한 소리 우렁찬 사자후가 4인의 명사의 귓전과 머리속을
천둥같이 울렸다.
사자후는 주위를 차단하며 4명 각각에게 전해졌음에도 모두가
동시에 진기가 격동되어 흩어지며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보이지 않는 경기가 이미 멀리 있는 장평과
4인의 명사들의 사이를 막고 장평의 신형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장평을 공격하던 4명의 명사가 일순 멈추었다.
달빛 아래 드러난 그들은 각각 청, 홍, 녹, 백색의 장삼을 입은
40대 후반의 중년검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사자후를 터뜨린 이는 고동색 장삼을
단정하게 걸친 한 나이든 노인이었다.
노인은 상투를 높이 틀어 비녀를 질러 넣고 등뒤에는 장검을
둘러멘 키가 크고 날렵해보였으며 검도 고수 특유의 날카로운
예기가 풍기고 있었다.
노인의 불의의 일격에 공격을 막힌 풍령검법의 4 명사들이
눈빛을 빛내며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들이 달빛 아래 드러나는 노인의 얼굴을 보고는 갑
자기 안색을 밝게 하더니 예를 갖추며 반가와 했다.
“아! 검제 장로님! 만강의 인물인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히
고함소리 하나로 저희 중주사검의 공격을 멈추게 하는 인물이
현 무림에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그들 4인의 명사가 바로 유명한 중주사검이었고, 무림십기를
포함한 절대고수들마저 그들의 합공은 대적할 수 없다고 정평이
나있었다.
고동색 장삼을 입은 노인은 바로 무림십대고수의 일인이며 최근
곽홍의 정의회에 호법으로 가입한 검제 윤중명이었다.
오늘 혼돈망망대진의 실질적인 주제자인 혼돈의 중요한 자리
를 검제가 맡고 있었다.
그가 곽씨세가의 보호자이기에 곽영채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
치지 못하고 휼과 숙과 함께 혼돈망망대진을 맡았고 실제로
곽영채가 가장 믿는 인물이었다.
검제 윤중명이 인사를 받더니 물었다.
“너희들은 이곳에 어쩐 일이냐?”
“궁의 명을 받아 수호신녀와 무림맹의 싸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중주사검 중 당당한 체구에 얼굴에 철사같은 구렛나룻이 무성
한 백의무복 차림의 첫째 매일현이 대답했다.
그들이 비밀리에 속한 천궁에서 오늘 싸움을 미리 안 것이고
궁의 인물들 중 고수들을 파견한 것이다.
방금 대답한 중주일검 매일현이 장평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초조한지 말했다.
“장로님, 만강의 수호신녀를 이대로 놓아 보내서는 안됩니다”
“너희들은 복면인이 펼친 검법을 보았느냐?”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매일현이 대답했다.
“저는 보았다고 생각했으나 부끄럽게도 사실 보지 못했습니다.
보기도 전에 어느 순간 백승마창의 목숨이 끊어져 있었습니
다”
그가 단련한 풍령신안에 의해서도 복면인이 펼친 검법을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기에 창피함으로 목덜미가 벌개졌다.
검제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너희들중 누가 복면인의 검을 느낄 수 있었더냐?”
매일현이 형제들을 돌아보더니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턱밑의 구렛나룻이 일그러지는 탓에 일견 우스워 보였으나
심각한 대화에 그 자리의 아무도 웃지 않았다.
“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마치 눈앞에서 검은 똑똑
히 펼쳐지는데 제가 못보고 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검의 속도는 그대로인데 그 검을 대하는 제자신이 느리게 움
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은 정지되고 행동 또한 느려지니, 상대의 보통 속도로
펼쳐지는 검이라도 그 검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으로 인식
되었습니다. 아마 당사자인 백승마창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
입니다”
“그렇다. 그 검은 너희들의 인식을 뛰어넘은 것이다”
중주사검이 허탈하면서 한편으로 궁금해했다.
분명 검제 어르신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결국 성질 급하고 자존심 강한 청의문사차림의 셋째 매삼현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 검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검을 보고 듣고 느끼기를 수십
년 해온 저희들을 한 순간에 장님과 귀머거리로 만들 수 있습
니까? 무림에 그 어떤 검이 있어 우리 형제들의 평생의 자
존심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그 풀지못한 이유때문에 결국 그들의 절정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앞서 장평을 급습하는 것으로 결과를 가져간 것이었다.
이미 중주사검의 무너진 자존심을 예상한 듯 검제가 차분히
설명했다.
“너희들이 본 검은 다른 문파의 것도 아닌 본문의 무상검이다”
그 한마디 말에 모두 놀라 외쳤다
“무상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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