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은 매화나무 가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청진자가 처음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잘못 심각한 결과를
야기했다.
그가 본래 화산 본산의 전대고수들중 무공이 출중했고 천산유
검이라는 화산에 몸을 담기전 젊은 시절의 명호를 끝까지 고
집할 정도로 자존심과 고집 또한 강한 화산의 명숙이었다.
그러한 그가 지금 비록 지켜보는 사람은 없더라도 나이어린
청년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우르르릉-!"
밖으로 퍼져나가는 소리는 없었으나 장평의 장력이 청진자의
머리속에는 여름하늘에 먹장구름을 몰고가는 바람소리, 천둥
소리와 같이 크게 울렸다.
장평의 손속이 다시 광활한 은하의 무질서속의 질서의 철리를
꿰뚫은 심오한 변화를 가져가니 그 변화의 흐름 또한 청진자
의 비장절기인 심우만변의 변화에 못지않았다.
더욱이 속도의 우세는 말할 것도 없었고 내공의 심오함 역시
장평보다 세배는 더 세상을 살아온 청진자의 자존심을 무너뜨
릴 정도로 고강했다.
문득 싸움의 다급한 공방중에도 청진자의 머리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누구인가? 이 어수록해 보이는 외모이나 몸안에는 천외천의
천력과 하늘을 휘롱하는 절기를 지닌 남의청년은?'
강남무림에 그동안 가히 누가 있어 속가제자의 무공도 아니고
풍림(楓林)화산의 장로가 펼치는 화산의 수백년 진산절기를 불과
20대로 보이는 젊은 나이에 이렇게 여유있게 맞설 수 있었던
가?
청진자의 기억속에는 최근 10여년 사이에 없었고 그러한 인
물이 있었다는 이야기조차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가 생각할수록 오히려 자신이 초라해보였고 그럴수록 공격
은 상대적으로 강맹해지고 있었다.
"쾅! 우르릉-!"
그리고 앵무새 천앵 역시 몰아치는 빗발치는 경풍에 주위에
얼씬도 못하고부근의 높다란 잣나무 큰 가지를 두발로 꼭
붙잡고 앉아 있었다.
천앵이 보기에 벌써 바닥에 곤두박질 되어 있어야할 고약한
젊은 놈이 오히려 자신의 주인을 위압하는듯 하기에 당장 날
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싸움에 개입 하고 싶었다.
아니면 적어도 공중에서 실컨 욕이라도 하면 했다.
그러나 자존심 덩어리인 자기 주인이 나중 공평한 대결을 방
해한 자신을 혼낼 생각에 그만 속으로만 끙끙거리고 있었다.
청진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수세로 접어든 자신의 입장뿐 아니
라 머리속을 왔다갔다하는 장평에 대한 의구심에 사로잡혀 초
반의 집중력이 흐뜨러졌다.
그가 이제 초조해진지라 손안의 불진의 공격이 경풍을 동반하
며 빠르고 급해졌다.
"펑!-"
그러나 한번 마음의 평정을 잃자 그제까지의 현현한 기운이
옅어지고 외견상은 강맹해진 듯 했으나 장평이 느끼는 압력은
오히려 처음보다 못했다.
이제 장평의 신형이 물속의 물고기인양, 피는 매화 사이로
잦아드는 달빛인양 자유롭게 움직였다.
'달빛은 매화가지에 머물지 않는다!'
장평이 생각하기에 이제 결코 승리를 득할수 없다는 것을 깨
달은 고집센 노도장이 알아서 스스로 물러날 듯 싶었다.
장평이 아직 대화산파의 전대고수의 위명과 무림에서의 영향
력에 어떠한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무림에는 자존심을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자들이 즐비했고
한번 악감을 평생 잊지 않고 보복하는 자들 역시 그러하지 않
은 자들보다 더욱 많음을 그가 알 수 없었다.
그순간 갑자기 청진자가 위맹한 일격을 가했다.
동시에 그동안 두사람 사이에 통제되던 소리마저 무너지며 강
한 파괴음과 함께 물밀듯한 강기의 폭풍이 휘몰아쳐왔고 장평
또한 물러서지 않고 이에 대응했다.
“꽝!-"
두 경기가 마침내 강하게 맞부딛치고 그 여파로 돌개바람이
일고 바위가 구르고 주위 나무가 둥지채 부러졌다.
"우지끈!"
이윽고 주위의 흙먼지가 가라앉으니 청진자는 몇걸음 물러서
있었고 가슴의 기복이 눈에 보일 듯 했고 큰내상은 입지 않았
으나 창백한 안색에 잘빗은 머리상투마저 흐뜨러져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불진의 끝부분인 천조각들이 떨어지고 너들해
져 있었다.
자신처럼 정들은 훼손된 불진을 바라보는 청진자의 표정이
밝지 못했고 장평 역시 속으로 뜨끔했다.
상대가 강적이라 진기의 조정을 못하고 노도장의 신물인 불진
을 상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기자신도 그만큼 싸움에 열중해 있었던 것이
다.
그때 명백한 패배를 깨달은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더 이상 대결을 계속할 필요가 없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 연혁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눈
앞의 청년의 무공을 분석하여 다음기회를 바랄 수 밖에 없었
다.
더욱이 방금의 큰 소리로 주변 찻집의 불이 더욱 밝혀지고 주
위사람들의 이목이 이쪽을 향한 듯 했다.
청진자가 여러생각에 패배의 쓴마음을 애써 달래고 침통한 표
정으로 말했다.
“본도장이 깨끗이 졌네. 그리고 본도장은 화산의 천산유검 청
진자라하네. 이곳 항주 유천무관에 잠시 와서 묵고 있지. 자
네는 누구인가? 자네의 사문이나 속한 문파를 이야기해줄 수
있겠는가? 이곳 항주에 살고 있는가?”
이왕 묻기 시작하니 여러개의 질문을 한번에 꺼낸 청진자의
말투가 처음보다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래서 무림인들은 실력으로 말한다 했다.
한편 청진자가 화산파의 고인이며 더구나 유천무관에 있다는
말에 장평이 놀랬다.
그러나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 애써 쉽게 생각했
다.
‘유천무관은 넓다. 노도장이 잠시 묵고 있다 하니 아마 떠날
때까지 만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장평이 마음속에 캥기는 것이 있는지라 겸손한 태도로 대답했
다.
“소생이 결코 이겼다할 수 없고 그나마 이렇게 비길수 있는 것도
진인께서 양보해주신 덕분입니다. 그리고 소생은 항주에 온지
며칠되지 않고 제 사문 역시 호남성의 심산에 있는 조그마한 사문
입니다.제 스승님 또한 얼마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가, 본래 고인은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지. 자네의 돌아가
신 스승 또한 세상에 드문 은거기인인듯 하군. 그리고 자네의 이름
은 어찌되는가?"
"사람들은 소생을 삼파권이라 부릅니다”
그가 차마 자신의 본이름은 대기가 거북하여 빠뜨리려 했으나
청진자가 재차 물어보는지라 궁색해하던 차에 마침 표사들이
지어준 삼파권이라는 별호가 떠오른 것이다.
청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불도 삼파의 무공을 한몸에 아우른다는 커다란 뜻이구나.
삼파권이라는 명호가 자네와 잘 어울리는군. 자네의 무공의 근원이
삼파의 특징을 모두 함유한 듯 소림의 무거움과 무당의 깊이와
속가의 표횰함을 함께 지녔으니 ”
주방장의 칼, 재단사의 가위, 이발사의 면도칼을 의미하는 삼
파권이 이렇게 높게도 해석되구나 하고 장평이 속으로 실소
했으나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마침 청진자 역시 시간이 늦어 자리를 떠나며 말했다.
“항주에 있는한 언제 다시 가르침을 받겠다. 오늘은 본도장이
패해 이만 간다마는 다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다시
보세”
그의 신형이 숲위를 비조같이 날아오르고 눈같이 흰 앵무새
또한 그의 뒤를 쫓아갔다.
장평 역시 청진자의 뒷모습을 잠시 보더니 그 자리에서 떠나
갔다.
그때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 한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자가 두 사람이 떠난 방향을 잠시 주시
하더니 지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특히 장평의 싸움을 어둠속에 숨어서 처음부터 지켜봤는지 장
평의 흔적을 유심히 응시했다.
숲속의 어둠속에서 싸움의 흔적을 낮같이 볼 수 잇는 그자의
능력도 예사롭지 않았다.
달이 잠시 구름속에 드러나고 달빛에 비치는 사내는 흑의를
입은 단정한 모습의 3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그가 혼자말을 했다.
“숙영아가씨가 참으로 무서운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누가 알
겠는가? 유천무관의 한 평범한, 평소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관
원이 실제 무관을 창립한 대화산파의 전대고수를 뛰어넘을 정
도의 실력자라니. 정말 고인은 평범속에 기거하며 자신을 드
러내지 않는다더니”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오늘밤 향원루에서 세운 정의회는 저 청
년과 숙영아가씨 두 사람만으로도 그 배경과 실력이 이곳 절
강성의 작은 한방파보다도 무섭다”
흑의인이 다시 생각을 하는듯 했다.
"그리고 정의회의 회주라는 자그마하고 머리만 큰 녀석도
만일 우연의 일치가 아니고 미리 두 사람의 능력을 알고 호법과
군사로 삼았다면 필히 예사놈이 아닐 것이다!"
이미 그가 정의회 모임에 대해서도 잘알고 있었다.
하기는 당시 향원루 정자내에서의 곽홍의 목소리는 누구라도
관심이 있는 자는 모두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비밀이 없
었고 큰목소리였다.
이윽고 사람은 반드시 모두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법 흑의인
역시 자리를 떠났고 숲속 빈터에는 부러진 나무둥치와 달빛만이
고즈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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