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하늘의 일을 계획하지 않는다
군웅들이 의외의 인물의 등장에 놀라 돌아보니 바로 개방의 장
로인 만리신개였다.
만리신개가 군웅들의 관심을 받으며 만강의 조사자료에 대한
설명을 했다.
“곽회주의 부탁이 있어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철야로 만
든 조사자료이오. 막간산 인근의 분타로부터 올라온 자료까지
급히 수합하여 만든 것이며, 여기 그 증빙자료가 있으니
맹주께서 대표로 확인해주기 바라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묶음을 건네주었고 인의대협이 읽어보
더니 확신의 말을 했다.
“과연! 사실이오. 곽회주가 말한 사실과 추호도 틀리지 않소이
다. 곽회주는 이번에 정말 큰일을 했소이다”
점창파의 천뢰도장 역시 서류철을 건네받고 훑어보더니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오히려 곽홍에 대해 칭찬을 했다.
“노도가 곽회주에게 사과하는 바이네. 곽회주 같은 젊은이가 있
다는 것은 무림계의 큰 홍복이네!”
그렇게 모두가 작은 키에 왜소한 용모에도 불구하고 흡사 현신
한 삼국지의 제갈공명같은 곽홍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쳇!”
갑자기 미약한 비웃음이 장평의 바로 뒷 탁자에서 들려왔고 물
론 그 소리는 군웅들의 웅성거림속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다.
장평만이 호기심이 들어 조심히 돌아보니 등뒤에 장검을 멘
삼십대로 보이는 한 차가운 인상의 회의사내가 내뱉은 소리였고,
그 탁자 주위에는 회의 장한외에도 무기를 휴대한 3명의
무림인들이 앉아 있었다.
무엇보다 장평과 마주보는 인물은 4명중에서 가장 연장자로 보
였고 사십대의 나이에 빛바랜 황포를 입고 있었으며 큰 키에 마른
몸매 그리고 얇고 긴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 긴 손가락들이 반듯한 자세로 젓가락을 쥐고는 탁자위의
낙화생을 집고 있었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시종일관 표정의 변
화가 없이 얼굴이 냉막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풍기는 기풍이 쾌검이나 귀검같은 검을 익힌
검도의 고수일 것이다.
그러나 장평은 달리 평가하고 있었다.
‘검도고수가 아닌 외문기공의 고수이다! 딱딱하게 굳어진 피부며, 젓가락을 움켜지
고도 손의 근육이 거진 움직이지 않는다! 특이하게 몸의 균형이
마치 손이 몸의 중심인듯 하다.
일장진천! 일장이 하늘을 가르는 힘,일격필살! 저자의 무공은
거령장(巨靈掌), 대수인과 같은 외문기공인 장공일 것이고
시간을 끌지 않고 단 몇 수에 승부를 결정할 것이다!’
거령은 황하를 막은 화산을 반동강이로 내어 황하가 지나게한
거령신의 이름을 딴 거력의 장력이고, 대수인은 장력의 기운이
넓어 손그림자가 하늘을 가리고 적의 시야를 덮는다 했다.
단지 황포인의 첫 인상에 장평의 머릿속에 스쳐가는 생각이었으
나, 황포인의 등뒤에 메어진 검도의 고수임을 말해주는 불쑥 튀어
나온 고색창연한 장검을, 더구나 보검인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
뚱 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본래 절대고수는 무의식속에도 상대의 외모와 자세로 그자의 능
력과 주된 무공을 읽는다.
그리고 대개 그것이 맞고, 그렇지 않을 경우 본능적으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지금황포인을 포함하여 같은 좌석의 나머지 인물들 역시
내재된 기풍과 다른 장검을 소지하고 있음에 장평이 의문과
더불어 그의 본능이 묘한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때 마침 곽홍이 인의장주와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신중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맹주님 불초 강호후학이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곽홍이 그간 강호에서 검 한자루로 주유하는 협객의 협객행을
본받아, 지금 맹주인 인의대협에게 사용하는 어구 또한 무림인의
풍도가 흠뻑 풍기는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한 곽홍에게 점점 관심이 가는 인의대협이 눈빛을 빛내며
쾌히 대답했다.
“하하, 부탁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보게. 오늘 곽회주가 한 공
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뛰어난 공적이네”
곽홍이 흐뭇해하며 말했다.
“불초가 회주로 있는 정의회가 시간이 되면 막간산에 가서 만강
의 총단을 직접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도중에 혹시 무림맹과
마찰이 있더라도 편의를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만강의 총단이 막간산 어림에 위치한다는 것이 알려진 이
상 분명 무림계 전부뿐만 아니라 무림맹에서도 막간산을 주시
할 것이고, 잘못 그곳에서 무림맹에 의해 행동을제한당할 수 도
있기에 곽홍이 미리 부탁하는 바였다.
물론 곽홍이 즉석에서 결정한 바이며, 옆자리의 장평과 임숙영
이 놀라워 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였다.
그의 평소 신조인
‘일을 벌리는 것이 사람이고, 그 일을 완수하는 것은 하늘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계획을 짤때는 하늘의 도움을 염두에 두지
않기에 모든 일이 불가능하게 보일뿐이다’
라는 말이 발휘된 것이다.
인의대협이 곽홍이 말한 바가 어려운 부탁이 아니기에 바로 승
낙하면서 그래도 의아심이 드는 바가 있었다.
“그렇게 조치를 취하겠네. 그런데 정의회가 불과 회주를 포함하
여 7명에 불과하다면서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곽홍이 잠시 머뭇거리며 만리신개에게 마치 말을 해도 되는 것
인지 여부를 묻는 눈길이 향하자 눈치빠른 만리신개가 대신 말했
다.
“맹주, 노부도 정의회의 일원이오. 정의회가 비록 7인이지만 노개와 같은 무림십기인 현
명진인과 무영노괴 역시 포함되어 있소, 그들 두 사람의 능력이면
막간산 주위의 어떠한 절진도 무용지물일 것이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멀리 있는 장평과 임숙영을 잠시 스쳐보더니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삼인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특히 한
인물은 노부도 그 숨겨진 능력의 끝을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출중하오”
그 말을 듣던 영웅전에 있던 현명진인과 무영노괴를 비롯하여
화산의 청진자, 해월대사 그리고 곽홍의 동생 곽영채까지
포함하여 은연중에 시선이 장평쪽을 향해 있었다.
“무림십기중 3인이라니!”
“정의회가 그런 절대고수들이 가입한 곳이라니... 그 자체로 과
히 하나의 작은 문파에 필적할 것이다!”
2천이나 되는 군웅들의 소란과 웅성대는 가운데 인의대협 역시
정의회의 능력을 물론 인정하는 바였다.
“하하 무림십기중 세 분이나 계신데 무슨 불가능한 일이 있을
것인가! 또한 그러한 훌륭한 분들이 모인 회를 이끄는 곽회주의
능력은 정말 탁월하네”
전쟁에서의 장수는 업적과 수하의 능력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미 곽홍이 밝힌 만강에 대한 정보와 아울러 무림십기라는 원
로고수들의 등장이 그의 입지를 더욱 굳게 했다.
군웅들 역시 인의대협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정말 그러하오. 절세공자라는 명호가 결코 부족하지 않소이다”
“항주 곽씨세가에 영웅이 한 명 새로 탄생한 것 같소이다”
“하하, 곽씨 세가는 큰 아들 그리고 따님인 항주 13세가의 곽영
채 군사를 비롯하여 하나같이 용봉지재인듯 하오!”
그러한 칭송을 듣고 있는 곽씨세가의 현 가주 곽적산 역시 즐거
워하며 마음속으로 곽홍을 다시 평가했다.
‘하기는 저 곽홍 녀석이 어릴적부터 사고만 많이 쳤다뿐이지 남
보다 능력이 썩 뒤떨어지지는 않았지...그것이 오늘 이 자리에서
모두 이렇게 영웅의 기질을 발휘하기 위한 기벽일뿐이었다!’
그때였다.
“흥!",
"콰앙!-”
지금까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단번에 깨는 차가운 냉소와
나무탁자를 내리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그 냉랭하고 큰 소리는 영웅전 안쪽좌석의 잠시 사담을 나누고
있던 나이든 원로들의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바로 앞서 장평이 주시한 4명의 무림인들이 앉아 있던 좌석이
었고 그 회의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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